새벽의 기록

로로리토의 장례식

그리고 나나모와 영웅

-주의: 희망의 등불 이후, 관련된 사람들의 행방 간접 스포. 창천의 이슈가르드 완료 후 열람 권장. / 성별 포함 특정한 모험가 묘사가 없습니다.

로로리토 나나리토의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다날란에 사는 모든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알았다. 에랄리그 묘당에서부터 매장지까지 관이 지나가며 뿌린 동전 덕분이었다. 울다하 최고의 갑부는 떠나는 길에도 부를 과시했다.

나나모 울 나모 여왕도 당연히 참석했다. 비록 정치적 견해 차이가 컸고 세력 다툼도 서슴지 않았던 사이였지만, 그것이 정적의 죽음에 예의를 갖추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조금 저열하게 말하자면, 로로리토는 죽었고 나나모는 살았기 때문이다. 산 자의 특권은 죽은 자가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미화하고 왜곡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관 뚜껑을 뜯고 나오지 않는 이상 나나모가 로로리토를 어떻게 이용하든 그는 이제 불평할 수 없었다.

약간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었다. 로로리토의 장례식에는 울다하의 명사뿐만 아니라 그와 거래 관계에 있었던 이들도 참석했다. 새벽의 혈맹은 딱히 거래 관계는 아니었으나 사람을 보내 조의를 표했다. 부조를 위해 온 사람들은 에오르제아의 영웅과 알피노, 산크레드였다. 셋 다 한때 울다하와 긴밀히 협력한 이들이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나나모가 그들을 크게 반기기는 어려웠다. 나나모는 시종을 시켜 관이 묘당을 떠난 뒤 잠깐 보자는 말을 전했다.

영웅이 언제 자리를 떴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제가 한참 고인이 날달 신의 인도를 받아 명계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기원하는 축문을 읽을 때였다. 누군가 묘당의 문을 발로 차서 열었다.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구를 돌아봤다. 큼지막한 들통을 든 영웅이 서 있었다. 두 손으로 들어야 할 정도로 큰 통이었다. 기분 탓인지 구릿한 냄새도 났다. 자리에 있던 사람 대부분은 똥 냄새를 떠올렸지만 이내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영웅은 성큼성큼 로로리토의 관으로 다가갔다. 뒤쪽에 앉은 사람들은 차례로 들통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의문은 더 깊어졌다. 앞쪽에 앉은 로로리토의 정적과 거래 상대 중에는 들통에서 출렁이는 액체의 정체를 알아챈 자도 있었다.

영웅은 로로리토의 관 위로 거침없이 들통을 휘둘렀다. 구린내 나는 점액질이 관 위에 흩뿌려졌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알피노도 마찬가지였다. 산크레드는 골치아프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 녀석 결국 사고를 쳤군….’ 로로리토의 측근들은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는 듯 급히 사고를 수습했다. 구리칼날단이 들이닥쳐 영웅을 포박했다. 그는 의외로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연행되었다. 와중에 나나모와도 눈이 마주쳤다. 영웅은 면목 없다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나나모는 다시 시종을 불러 영웅이 구금된 감옥이 어디인지 알아오라고 했다. 혹시 그가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것 같으면 자신의 이름으로 손을 써 놓으라고도.

관에 뿌려진 액체를 청소하고 난 뒤에야 장례식이 재개되었다. 그러나 영웅이 뿌린 액체가 대체 뭐였는지 구린내는 도통 가시지 않았다. 사제는 숨을 아껴가며 축문을 마저 다 읽었다. 스카프로 코를 가린 관지기들은 한숨을 푹푹 쉬며 냄새나는 관을 어깨에 멨다. 동전이라도 뿌리지 않았다면 관이 지나갈 때 누구도 가까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로로리토의 정적 중 하나는 그 광경을 이렇게 평했다. ‘주머니 두둑하기로 일등, 뒤가 구리기로도 일등이었던 사람은 달 신 곁으로 가는 길마저 생전과 똑같구나.’ 다음날 미스릴 아이즈가 그 말을 인용해 장례식 기사 헤드라인을 뽑은 것은 물론이다.

관이 묘당에서 나간 뒤 나나모는 영웅을 찾으러 갔다. 가는 길에 알피노와 산크레드를 만나 그들과 동행하기로 했다. 둘은 영웅의 일행이라는 이유로 같이 끌려갈 뻔했으나, 산크레드의 강력한 항변 덕에 연행은 불발로 그쳤다. 여왕이 그들을 아는 체했으니 구리칼날단 위병은 둘을 놔줄 수밖에 없었다.

영웅은 묘당 근처의 치안대 감옥에 갇혀 있었다. 멀지 않은 거리여서 걸어갈 만했다. 그동안 나나모는 영웅이 관에 뿌린 액체가 몰볼의 타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크레드는 사실 영웅이 무언가 꾸미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평소에 그는 울다하의 권력자층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사흘 전 장례식 소식을 듣자마자 손을 들질 않나, 연금술 재료 전문 상회에 갑자기 들락거리질 않나.

산크레드는 한탄했다. 영웅이 초보 모험가였던 시절에도 이만한 대형 사고를 친 적은 없었다고. 알피노는 영웅이 그 옛날의 원한을 아직 간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자기도 로로리토에겐 유감이 있지만, 알았다면 열심히 말렸을 거라나. 나나모는 바로 그래서 지금 사고를 친 게 아닌가 싶었다. 뒷배 없고 물정 모르는 모험가보다는, 공로가 많은 거물 쪽이 과격한 짓의 뒷감당을 하기 수월하니까. 울다하는 특히 새내기 모험가와 상인들에게 혹독하게 굴었다.

여왕의 권위를 앞세우니 면회가 빨랐다. 산크레드를 호위로 세운 덕에 안전 문제를 걸고넘어질 사람도 없었다. 영웅은 감옥이 제집인 양 앉아 있다가, 나나모 일행이 들어오자 벌떡 일어났다.

나나모는 산크레드가 잔소리를 끝내길 기다렸다. 마지막 차례는 여왕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영웅은 자연스럽게 나나모와 시선을 맞췄다.

“왜 그리하였느냐, 친애하는 영웅이여.”

영웅은 다시 눈을 피했다. 나나모는 기다렸다.

“화가 나서요.”

무엇이? 하고 되묻기도 전에 영웅은 이유를 설명했다. 로로리토는 구리칼날단을 사병화하고, 사업상의 경쟁자를 위법적인 수단으로 제거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아무리 여왕의 암살을 막았다고는 하나, 공을 세운 것과 죗값을 치르는 건 다른 얘기다. 그렇다고 나나모가 무슨 트집을 잡아 그를 처형하거나, 그의 집으로 독배를 보내거나, 그랬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장례식을 탈 없이 치르도록 놔두고 싶진 않았다…. 영웅은 다시 나나모와 눈을 맞췄다.

“저는 폐하 편이니까요.”

나나모 울 나모는 잠시 말을 잃었다. 창살 너머로 보이는 영웅의 얼굴 때문이다. 라우반의 충성과도, 파파샨의 걱정과도 비슷한 감정이 거기에 있었다. 그런 것을 받을 자격이 내게 있는지 따져볼 수밖에 없는 신뢰가. 영웅의 지지라는 가치를 제외하더라도, 그가 보내는 믿음은 귀한 것이었다. 나나모는 영웅이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나나모는 대기하고 있던 위병을 불러 영웅의 구금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다. ‘지금 석방할까요?’ 라고 되묻는 것이, 과연 앞으로 할 일이 산더미처럼 남았음을 실감케 했다. 나나모는 살짝 인상을 썼다. ‘원칙대로 하게.’ 위병은 지레 겁을 먹고 이런 경범죄는 피해자와 합의를 본 뒤 벌금을 물거나, 며칠 옥사에 가둔다고 대답했다. 로로리토 측(이제 죽었으니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상하지만)은 영웅의 지갑을 뜯는 것보다는 명예를 실추시키는 쪽이 낫다고 판단할 것이다.

“들었느냐? 며칠 갇혀 있게 생겼구나.”

영웅은 앓는 소리를 냈다. 이마를 짚으려다 아직 손에서 구린내가 난다는 걸 알고 멈칫하는 모습이 꽤 웃겼다. 나나모는 제안했다.

“급한 일이 없다면 풀려난 뒤에 왕궁으로 오거라. 오랜만에 식사나 하자꾸나. 자고 갈 방도 준비해줄 테니 사양 말고.”

아예 영웅이 풀려날 때 이쪽으로 전갈을 보내라고 했더니, 위병은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나나모의 혀 차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긴 했다.

영웅이 보여준 신뢰에 대한 작은 보답이었다. 정적이 당한 모욕에 여왕이 아주 신났다느니, 그런 짓을 한 자를 감싸면 우리 쪽으로 역풍이 불 거라느니, 안팎으로 시끄럽겠지만 뭐 어떤가. 여왕은 로로리토의 관에 몰볼 타액이 뿌려질 때 속이 아주 시원했다. 내 편이 나를 위해 수고해줬으니 뒷수습을 맡아야겠지.

왕궁은 오랜만에 분주해졌다. 여왕은 장례식장에서의 돌발 상황에 고생했으니, 같이 쉬라고 산크레드와 알피노를 붙잡았다. 나나모는 즉위 후 손에 꼽을 정도로 즐거운 며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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