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놀

Home, SWEET HOME

한때는 그런 것들을 꿈꾼 적 있었다.

타꼬야끼 by 타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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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어엿한 한 명의 수호자로서 그 몫을 다하기 직전에 스승을 잃었다. 누가 봐도 사고였다. 잘못을 돌려 탓할 자도 없었다. 더군다나 험난한 밀림에서는 이런 일들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일일이 품었다가는 미쳐 버릴 게 분명하므로 이 슬픔을 언제까지고 지닌 채 살아가지도 못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때마침 남자가 독립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시기가 조금 더 앞당겨졌을 뿐이다.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니더라도 조만간 느꼈어야 할 감정이라고,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서 와요, 로미오.”

혼자 돌아가는 마을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마을 전체가 그를 환영했으나 순수한 호의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이들은 누구를 반기는 것인가.

마을의 일원이었던 소년인가 씨족의 보전을 위한 한 명의 남성인가.

“……아히나?”

그들은 남자의 스승에 대해 그리 오래 애도하지 않았다. 추모는 했으나 금세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들의 판단이 맞았다. 그러나 스승을 잃은지 얼마 되지 않은 이에게는 마냥 받아들일 수만은 없었다.

“안녕…… 로미오.”

그가 어떻게 생각하건간에 마을 구성원으로서 할 일은 일대로 해야 했다. 그것이 오랜 전통이고, 그러기 위해 이 지독한 시간을 살아가는 걸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첫 짝으로 맺어진 상대가 일면식이 있는 사이임은 어쩌면 그에게는 다행일지도 모를 일이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함께 자랐고, 성별을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그를 성심성의껏 위로하던 소꿉친구는 어느새 훌륭한 전사가 되어 있었다.

“오랜만이야.”

“그러게, 네가 마을 밖으로 나가고 나서…… 처음이지?”

“……응. 아마도.”

어렸을 적에도 늘 한데 모여 어울리며 지낸 탓에 둘만 있을 기회는 적었다. 그런 몇 되지 않는 기회가 지금, 어릴 적과는 다른 이유로 찾아올 줄이야. 게다가 둘 사이에는 긴 공백도 있었다. 더는 어릴 적 친하게 지낸 친구가 아닌, 낯선 남녀로 인식한대도 과하지 않았다. 아늑한 분위기의 오두막에 내려앉은 어색한 침묵에 남자는 금방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있잖아, 로미오.”

“아히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열었다. 그 부름이 단박에 비어 있던 시간을 메우는 듯했고, 이후부터는 마치 어릴 적으로 돌아간 듯했다. 강제로나마 홀로서기를 하게 된 이후 오랜만에 느껴지는 편안함이었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남자가 불문율을 깨고서 또다시 마을에 방문하게 된 까닭은 따로 있었다.

“아히나!”

남자는 다급한 목소리로 제 짝을 찾았고, 마을의 다른 누군가가 서둘러 그를 짝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아히나……!”

“쉿, 조용히.”

남자의 짝을 돌보던 일원 중 하나가 그에게 눈치를 주었다. 남자는 얼른 입을 닫고서 고개를 끄덕였고, 조심스레 그녀를 뒤따라 간 곳에는

“아, 로미오…….”

“때를 잘 맞춰서 왔네. 축하해, 로미오.“

그의 짝은 엉망이 된 모습을 보기 부끄러워했다. 하나 그런 것따위가 중요하랴. 처음으로 맞이한 제 짝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데.

“산모도 아이도 전부 무사해.”

“………….”

“한 번 안아 볼래?”

산파로부터 건네받아 조심스레 품에 안은 아이는 생각보다 더 작았고, 가벼웠고, 연약해 보였다. 스치는 콧바람에도 부서질 것 같아 간헐적으로 숨을 참기도 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양수에 얼굴이 불어 쪼글쪼글했다. 이전이었다면 필시 못생겼다고 웃어댈 정도로.

“조금 더 제대로 안아 봐, 그 정도로는 안 부서져.”

“그치만…….”

방금 막 아버지가 된 젊은 이의 움직임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주변에서 그를 지켜보던 이들이 깔깔 웃어댔다. 함부로 힘을 주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초보 부모의 모습이란, 그들의 눈에는 마냥 귀여워 보이기만 하리라. 결국 작은 아기가 칭얼거림으로 불편을 호소하고 나서야 주변에서 남자의 자세를 고쳐 주었다.

“자, 이렇게…… 네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줘.”

아이의 조그만 머리통이 맞닿은 가슴팍이 간질거렸다. 이 작은 몸에 제 절반이 담겨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지난밤 함께한 시간은 세상에 또다른 흔적을 만들어낸다. 이 경이로움이 남자는 아직은 얼떨떨하기만 했다.

제 어미도 저를 처음 봤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름은 뭘로 할지, 정했어?”

“……내가?”

“그럼 네가 짓지 누가 지어?”

“그야…….”

남자가 아이의 어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남편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무언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남자의 시선은 다시 제 아이에게로 향할 수 있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나의 샛별, 내 북극성, 새로운 희망.

그 어떤 수식어를 가져와도 우리의 결실보다 못하리라는 것쯤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기는 곧 잠들었다. 남자는 다시 아내에게 아기를 안겨 주었다. 그 광경을 눈에 담으면서, 그는 시간이 잠깐 멈추기를 바랐다. 이 설레는 장면을 충분히 음미하고 머릿속에 새겨 넣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드디어 다시 살아갈 의지를 얻었다.

달마스카가 드디어 물러나고 갈레말이 밀림에 손을 뻗기 전까지만.

이후의 기억이 어떠했는가는 남자 또한 잘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얼마간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만은 또렷한 감상으로 남아 있었다.

삶이란 지옥이요, 저주나 다름 없나니.

그럼에도 죽지 못하고 계속해서 살아야 한다면 그 이유를 이제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내 모든 건 타오르는 푸른 불꽃이 전부 집어 삼켜버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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