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온] 화양연화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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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고 덜 됨

한 온, 그는 21년 인생 중 가장 최악의 선택을 방금 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구역질까지 나는 건, 술 때문인지, 술집에서 나와 미친 듯이 뛰어서인지, 방금 그 선택 때문인지 분간이 안 갔다. 그렇다, 그는 방금, 15년을 알아 온 친한 형에게 고백을 했다.

화양연화

: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w. 은월

"밍도아!"

"한 온! 밍도아 아니고 민! 도! 하! 거등? 그리고 내가 너보다 한 살 형이야!"

"민! 도! 하! 형! 나랑 놀아여!"

키도 별로 차이가 안 나는 듯한 두 남자아이들은 나이로 실랑이를 버리고 있었다. 자신을 민도하라 소개한 아이는 6살로, 자신이 나이가 어려 보인 게 분한지 씩씩대고 있었다. 반면에, 한 온이라 불린 5살 꼬마 아이는 도하를 형이라 부르며 놀자고 보태고 있었다. 그런 둘의 모습이 귀엽다는 듯 멀리서 두 아이의 엄마는 웃으며 얘기하고 있었다.

온은 이내 도하를 끌고 놀이터에 갔다. 분명 온보다 나이 많은 게 도하지만 행동은 온이 주도했다. 온이 신나서 즐겁게 도하의 곁에서 쫑알쫑알 떠드는 동안 도하는 관심 없다는 듯 나뭇가지로 모래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온은 이런 도하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도하가 그림을 그리는 걸 발견하자마자 옆에서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우와 형 그림 잘 그리네여."

"나 미술학원에서 상도 받았엉."

온은 도하의 옆에 계속해서 붙었고 도하는 그런 온을 자꾸만 밀어냈다. 이런 둘의 관계는 이때부터 시작 되었다.

아니, 둘은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도하의 엄마는 원래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걸 즐겼고, 온의 엄마는 이런 도하의 엄마를 만나게 된 것이다. 도하와 온의 첫 만남이 이랬다. 민도하를 밍도아로 부르고 도하는 이를 정정해준 것. 딱히 특별한 만남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친구를 만나는 것과 같은 만남이었다. 짧고, 간결하고, 임팩트가 없는 그런 만남 말이다.

그런데 이 짧은 만남에서 온은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항상 도하네 집에 가서 도하를 데리고 놀곤 했다. 온에게는 친구란 도하밖에 없었다. 그것도 일방적인 친구 느낌이었다. 도하가 마지못해 자신보다 어린 온을 놀아주는 느낌 말이다. 이런 일방적인 관계는 얼마 안 가 끊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둘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았다.

온에게는 둘 사이를 연결하는 실이 있었고 도하에게는 그걸 끊을 수 있는 가위가 있었다. 온이 도하에게 들러붙을 때마다 도하는 가위를 들고 고민했지만 결국 다시 가위를 내려놓고 노는 그런 관계였다.

"나 이제 너랑 많이 못 놀아."

"왜요...?"

"나 이제 초등학교 가야 돼."

둘이 서로를 안지 2년 가까이 됐을 때, 둘은 그네에 앉아 이런 얘기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나이 차는 무시할 수 없나보다. 둘의 나이 차는 야속하게도 둘을 끊었다. 도하가 이 말을 무심하게 전하자 온은 울상이 되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온을 보자 도하는 어쩔 줄 몰랐다. 도하가 우물쭈물 하는 사이, 온은 도하 앞에서 처음으로 펑펑 울었다.

도하가 1학년이 되고, 온은 여전히 7살 유치원생에 머무르고 있었다. 온에게는 친구가 도하밖에 없었고, 도하는 그랬었다. 초등학교에 가니 도하와 잘 맞는 친구는 많았다. 그렇기에 도하는 점점 온과 노는 시간은 줄고 친구들과 노는 시간만 늘어났다. 도하는 온을 별로 신경 쓰지 않은 것이다. 그저 도하에게 온이란 스쳐 지나가는 인연 그 이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온은 달랐다. 도하와 아주 친하게 지냈던 1년간 항상 내일이 기대됐고 하루하루가 설레었다. 도하와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가 좋았다. 도하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는 상관이 없었다. 자신은 도하를 좋아했으니 그걸로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도하가 친구들과 웃으며 노는 걸 본 순간 바뀌었다. 자신 말고 다른 사람들과 노는 걸 보니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아팠다. 이때 온은 이 감정을 알지 못 했다.

둘의 초등학교 시절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듯했다. 교류가 많이 없었던 탓일까, 도하를 향한 온의 마음도 점점 좋아함에서 정으로 변질하려는 때 사건이 터졌다.

온이 5학년 때 6학년 선배한테 맞았다. 그렇다,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요즘 초등학교에 무슨 일진이 있냐고 하지만 이런 후배를 향한 폭력은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온이 6학년 선배에게 맞은 걸 도하가 보게 되었다. 온은 그것도 모른 체 사과를 하고 가려는 순간 도하가 달려와 그 선배에 주먹을 날렸다. 온은 처음 보는, 도하가 폭력을 쓰는 모습에 멍하니 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 한쪽에서는 또다시 사랑의 감정이 자라났다.

"형 아파요?"

"존나 아프다 새꺄."

"욕 쓰지 마요."

둘의 싸움은 꽤 오랫동안 지속됐고 많은 사람이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와서 말리자 그 둘은 떨어져 서로를 노려봤다. 그러면서도 도하는 온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우습게도 둘 다 보건실에 누워 있었다. 그 6학년은 집에 갔고 보건실에 남은 건 그 둘이었다. 온은 얼굴에 얼음찜질을 하고 있었고 도하는 반면에 온 몸에 덕지덕지 밴드가 붙어 있었다. 온은 궁금했다, 왜 도하가 대신 싸우고 다친 것인지. 자신이 그렇게 희생을 하면서까지 지켜줄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형, 형은 왜 저 대신 때려줬어요?"

"나 원래 그 새끼 싫어해. 아니 반장 투표에서 지 뽑아달라고 난리를 치지 않나."

"그러면 왜 제 손 잡았어요?"

"..."

손을 왜 잡았냐는, 온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도하는 이상하게 말이 없었다. 온은 고개를 갸우뚱 하고는 자신도 그냥 얌전히 있었다. 아마 온은 도하의 귀가 빨개진 걸 몰랐나 보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둘에 붙어 다니는 시간은 더 늘었다. 전에는 온이 도하에게 붙어 다녔다면 이제는 쌍방이었다. 도하도 온에게 붙어 다녔고 온도 그랬다. 온은 같이 다닐 수록 도하의 마음을 몰라서 미칠 것 같았다. 당연히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마음도 더 잘 알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도하는 친해질 수록 모르겠는 그런 사람이었다. 도하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형은 여름이 좋아요 겨울이 좋아요?"

"글쎄."

"형은 졸업식 때 하고 싶은 거 있어요?"

"글쎄."

항상 도하는 글쎄로 대답을 피해 갔다. 온은 그 대답을 너무 싫어했다, 그 두 글자로 모든 질문에 대답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이 야속했다. 도하의 표정도 항상 똑같았다. 웃는 건지 안 웃는 건지 어중간한 표정. 차라리 웃던지, 그냥 무뚝뚝하게 서 있던지. 정말 그럴 수록 도하가 더 헷갈렸다.

온이 있던 사실 하나가 있었다. 바로 졸업식 날짜는 그가 수업을 하는 날짜였다는 것이다. 온은 도하의 졸업식 날, 졸업식 때 많이 준다는 꽃다발도 사서 멋지게 고백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신은 이런 온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날짜를 미묘하게 엇갈리게 했다. 온은 결국 계획을 틀어 수업이 끝나자마자 편지를 전해주며 좋아한다 말하기로 결심했다.

"형, 형은 졸업식 날 어떨 것 같아요?"

"모르지. 귀찮을 것 같아."

"왜요?"

"있어. 그리고 너, 수업 끝나자마자 나 찾ㅡ"

도하와 온이 나란히 하교를 하는 어느 날이었다. 도하가 하려는 말은 공사장의 소음에 의해 끊겼다. 도하는 다시 온에게 말하려 했지만 온은 괜찮다고 전했다. 왜냐면 도하가 할 말은 수업 끝나자마자 나 찾아오라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도하는 그런 온에게 어깨를 으쓱하며 알겠다고 했다. 온은 이때, 도하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졸업식날이었다. 온은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마자 도하를 찾으러 1층에 내려갔다. 이쯤이면 졸업식이 다 끝나고 운동장에 모여, 어설프지만 만들어놓은 포토존에 모여 사진을 찍을 때였기 때문이다. 온이 편지를 들고 도하를 찾는데 학교 뒤쪽에 가자 두 남녀의 말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온은 이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숨어서 들었다.

"도하야, 나 예전부터 너 좋아했어."

"알아."

온은 여학생이 고백하는 상대가 도하라는 걸 알자마자 그곳에서 뛰쳐나왔다. 온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숨 가쁘게 달렸다. 그러다 지쳐 편의점 앞에 마련해놓은 의자에 앉아 숨을 내쉬었다. 아니, 도하가 하려는 말이 사실은 끝나고 바로 찾아오지 말라는 거였나? 게다가 도하는 그 여자애다 도하에게 고백할 걸 알고 있었고? 온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온은 손에 들고 있는 편지를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온이 억울해 바닥만 바라보는데 익숙한 숨소리와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여깄어. 찾았잖아... 아 겁나 힘드네. 문자도 보내고 전화를 거는데 안 받아 이 새끼..."

"절 찾았어요...?"

"당연하지. 사진 찍어야 되는데 너 찾느라 학사복 이런 거 다 반납했다."

온은 핸드폰을 꺼내 도하의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무슨 다른 사람이 보면 오해할 만큼 많이 전화를 해놨다. 아무튼, 온은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도하의 목소리를 들어 기뻤지만 그의 얼굴을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는 이미 그녀의 고백을 받아 사귀고 있을 게 분명하니까. 온은 눈물이 핑 돌았다. 도하는 이런 온의 어깨를 토닥여주고는 편의점에 들어가 물을 사 왔다. 온이 궁금해 고개를 들자 도하가 무심하게 말했다.

"마셔. 왜 울려고 해."

"아니에요."

온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형 때문에요. 형 좋아해서 그래요.'를 꾹 참고 사다 준 물을 마셨다. 도하는 그런 온을 한 번 보고 일어나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온도 습관처럼 일어났다. 온은 은근슬쩍 도하의 손을 잡았다. 도하가 잠깐 움찔하는 게 보였지만 도하도 별 신경 안 쓰는 게 보이자 온은 마음 놓고 손을 잡았다.

이 날의 하교는 다른 날과 달랐다. 도하와 온이 나란히 초등학교에서 하교하는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그럴 수록 더 말을 많이 나눠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그 둘은 아무 말 없이 손을 더 꼭 잡고 있었을 뿐이다. 집에 다다르자 도하는 온을 지그시 봤다. 온은 도하가 눈으로 '할 말 있으면 해.'라고 말하자 온은 말했다.

"그 형... 졸업... 축하해요... 저희 이제 중학교 가면 형도 친구들이랑 잘 지내야 하니까 같이 등교는 못 하겠죠...?"

"... 그렇겠지. 고맙다."

온은 내심 속으로 도하가 아니라고 말해주길 기대했지만 현실은 상상과 매우 달랐다. 현실은 아프고, 냉정하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었다. 온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도하에게 눈물을 꾹 참으며 손 인사를 했다. 그날 온이 집에 어떻게 들어갔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그저 집에 들어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펑펑 울었다는 것밖에 기억이 안 날 뿐이다.

도하가 없는 학교생활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다. 그저 몇몇 여학생들이 온에게 와서, 작년에 그 잘생긴 선배랑 친했던 애 맞냐고 물어볼 뿐이었다. 온은 이런 지겨운 학교를 꾸역꾸역 다녔다. 그래야만 도하와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하는 쓸데없이 머리도 좋고 이과 성향이어거 같은 대학교에 가려면 정신 차리고 공부를 해야했다.

온은 7월쯤 됐을 때 한 가지 깨달았다. 여학생들의 그 '잘생긴 선배'에서 알아낸 것이었다. 그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는데 도하는 객관적으로 잘생겼다. 선천적으로 밝은 갈색 머리에 냉미남상. 게다가 공부까지 잘 하는데 인기가 없을 수 없었다. 온은 반면에 활발하고 강아지 같은, 따뜻한 분위기였다. 아무튼, 도하가 잘생겼다는 걸 온은 단 한 번도 깨닫지 못 한 것 같다. 어려서부터 봐 온 탓이었을까? 이걸 알자마자 온은 도하의 집에 가면 쓰레기통에 있던 편지들의 정체와, 같이 못 간다고 했던 날들이 왜 그러했는지 알게 되었다. 도하는 자신 말고도 다른 사람들의 짝사랑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온은 씁쓸하게 웃었다. 하긴, 도하가 워낙 인기가 많아서 말이지. 온은 도하가 자신과 사귀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많이 했는데 그 상상은 이미 다 물 건너 간 일들이었다. 이제는 붙잡을 수 없는 일들. 게다가 그 중요한 졸업식 날에 사진도 같이 못 찍었으니 이토록 하루를 망치는 친한 동생이 있었을까.

또 한 가지가 있었다. 온이 남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도하 또한 남자를 좋아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게다가 온이 도하에게 느끼는 좋아함과 도하가 온에게 느끼는 좋아함은 다른 듯 했다. 이제와 생각하니 머리가 많이 아팠다. 전에 날 하루하루 행복하게 만들었던 사람이 이제는 날 매일매일 괴롭게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좋아하는 그 감정을 포기한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질투가 난다는 건 그를 좋아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전에는 여름방학이 되면 도하와 놀 수 있어 좋았는데, 지금은 도하가 중학생이니 자신과 놀아줄 리가 없었다. 논다 하더라도 다른 동네에서 놀 게 뻔했다. 이렇게 온은 별 희망을 갖지 않고 여름방학을 보내려 했다. 온의 여름방학 첫 날, 온의 집에 도하가 찾아왔다. 어차피 온의 집에 그날 부모님은 안 계셨으니 둘만 있는 셈이었다. 오랜만에 본 도하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약간 걸치고 있는 듯한 둥근 안경은 섹시했다. 게다가 눈을 덮을락 말락하는 앞머리도 매력적이었다.

"너 살아있냐?"

"네?"

도하를 감상하고 있었는데 도하의 살아있냐는 질문에 온은 깜짝 놀랐다. 도하는 벽에 기대고 서있었는데 키가 거의 10cm 가량 더 큰 것 같았다. 전에는 비슷비슷해서 설렘이 별 크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정말 설렜다. 사람들이 설레는 키차이 이러는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형 키 왜 이렇게 커요? 전에는 나랑 비슷했는데."

"180이다. 많이 컸지? 넌 아직도 작네. 귀여워."

"쳇 저도 교실 가면 커요."

도하는 귀엽다며 온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냉장고를 보기 시작했다. 온은 심장에 손을 얹어보았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빨리 뛰는 게 느껴졌다. 너무 크게 뛰어 혹여나 도하에게까지 들릴까 걱정도 됐다. 귀엽다, 그 세 글자가 그렇게 설레는 말이었는가? 온은 그 말이 설레는 게 아니라 도하가 그렇게 말해서 설렌 것이라도 생각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귀여움은 그저 그가 친한 동생으로써 귀엽다고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찌릿했다.

도하는 온에게 이내 콜라을 쥐어주고는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온은 도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한번 고삐가 풀리면 미친 듯이 자신의 마음을 말할 게 뻔하니 참고 있었다. 그래도 전에 도하가 말은 해야 아는 것이라고 말했기에 용기를 내 질문을 해봤다.

"그 형, 형 친구가 형한테 고백하면 어떨 것 같아요?"

"끔찍한데."

"네?"

"존, 아니 겁나 끔찍해. 겁나 못생긴 애들인데. 근데 사람에 따라 다를 것 같아."

온은 순간 끔찍하다는 말에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남자여서 끔찍하다는 건가? 근데 못생겨서 끔찍하다고 하니 어딘가 안신되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도하가 온에게 난 남자도 좋아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하의 말을 곱씹었다. 뭔가 이상했다. 말이 뭔가 부족한 느낌...?

"형 왜 욕 안 써요?"

"너가 그랬잖아. 욕 쓰지 말라고. 그래서 안 쓰려고 노력 중이다."

도하는 자신이 말하고도 멋쩍은지 머리를 긁적였다. 온이 장난삼아 보건실에서 욕 쓰지 말라고 했던 게 진짜였다니. 어이가 없었다. 근데 그 말은 더하가 온의 말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정말, 민도하 마음은 죽어도 모르겠다.

또다시 시간은 빠르게 흘러 온의 졸업식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온은 도하가 졸업식에 왔으면 했지만 오지 못 할 것처럼 보였다. 온의 졸업식날은 그의 방학 첫 날이었기에, 그는 친구들과 놀아야했다. 온은 그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너 졸업식 언제야

읽씹하기만 해 봐 AM 09:12

AM 09:13 저 X월 X일이요 >

AM 09:14 진짜 올 거에요? >

< 적어도 너처럼 사진 찍기도 전에

도망가지는 않아 AM 09:14

도하의 졸업식에 갈 거라는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내가 아는 민도하는 이런 거에 빠질 사람이 아니었지. 어떻게 보면 온이 자기자신을 점점 더 아프게 하고있는 것처럼 보였다. 짝사랑은 어차피 되지 않을 거니까 처음부터 부정적인 생각을 심는 그런 자포자기한 심정. 아무튼, 졸업식이 그렇게 기다려지지 않았는데 도하 덕분에 졸업식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온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고백을 해야하나 하면 안 되나. 어차피 중학교는 도하의 학교로 배정이 되서 상관이 없었다. 고백을 하기에는 자신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봐야 한 살 차이지만 둘의 느낌은 너무 달랐다. 온은 활발한 학생이었고 온은 조용한 스타일이었다. 이런 도하가 자신의 고백을 받아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백은 또 미뤄졌다.

온의 초등학교 졸업식 날이 왔다. 온이 졸업장을 받고 나서 내려오기 전 학부모석을 봤는데 짝사랑의 힘인지 도하를 한 눈에 찾을 수 있었다. 온은 도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었다. 졸업식은 별다를 게 없었다. 교장선생님의 뻔한 훈화, 그리고 각 반 아이들과의 헤어짐. 온은 반 아이들과 그렇게 친하다할 친구가 없었기에 단체사진만 찍고 도하에게 달려갔다. 도하는 온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 나갔다.

"졸업, 축하해."

"형 뭐에요...?"

"안 보이냐? 꽃다발이잖아. 꽃, 내가 골랐다."

도하가 무심하게 꽃다발을 한 손으로 줬다. 온은 어쩔 줄 모르다 두 손으로 덥석 받았다. 도하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이 났다. 꽃다발을 받고 좋아하는 온을 보니 영락없는 초등학생이긴 했다. 온은 꽃다발을 구경하다 문득 이게 무슨 꽃인지 궁금해졌다.

"이거 무슨 꽃이에요? 되게 예쁘다. 다른 꽃다발에서는 쉽게 볼 구 없는 느낌?"

"영산홍이야. 예쁘지?"

"우와... 꽃말이 뭐에요?"

"모르겠는데? 그냥 예뻐서 샀지."

온은 내심 도하가 꽃말을 말하며 고백하길 원했지만 그건 온의 바람에 그치지 않았다. 온은 도하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무슨 6학년이 사랑을 아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온은 이 짝사랑에 꽤나 진심이었다.

이 날도 도하의 졸업식날과 다를 게 없었다. 그저 달라진 건 키가 더 커졌다는 것밖에 없었다. 손을 잡고 집에 데려다주는 길이 어찌나 설렜던지. 오늘은 온이 도하의 집에 바래다줬다. 온은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했다.

"졸업 축하해. 조만간 찾아갈게."

"네, 형 꽃 고마워요."

도하는 온에게 손을 흔들고는 집에 갔다. 아직 다 사라지지 않은 도하의 실루엣을 보며 온은 작게,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는 고백을 했다.

"형 좋아해요..."

도하는 역시 아무것도 못 들은 채 뒤도 안 돌아보고 들어갔다.

< 나 할 말 있어

놀이터로 나와 PM 19:24

PM 19:24 필수예요? >

< ㅇ PM 19:24

나오라는 도하의 말에 온은 걱정되었다. 조만간 찾아간다는 말이 이거였어? 졸업식이 있고나서 이틀 후였다. 온은 긴장한 채 놀이터로 나갔다. 저녁이라 아이들은 집에 들어가 놀이터에는 도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도하는 온을 발견하자마자 옆에 앉으라 손짓했다. 벤치 옆에 앉으니 도하가 땅만 보며 말했다.

"여자친구 생겼어."

"네? 다시 말해봐요."

"여자친구, 생겼다고."

도하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대화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여자친구가 생겼다니, 온이 아는 도하는 여자친구를 막 사귈 성격은 아니었다. 게다가 도하를 더 좋아하는 건 자신인데 도대체 왜 난 그와 이어지지 않는 것인지 슬펐다. 온은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도하는 그런 온에게 물었다.

"왜 그래?"

"왜 사귄... 거에요?"

온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도하는 답했다. 도하 말로는 여자친구가 작년부터 자신을 좋아했는데 간절해 보여서 사귀어줬다고. 그리고 여자친구 아빠가 학원 원장이라나 뭐라나. 온은 울컥했다. 그저 그런 간절함이 있으면 동정심이 들어 사귀어 주는 것이고, 그런 빽이 있어야 자신이 이득을 보게 되서 사귀어 주는 것인가? 온은 도하가 그녀와 빨리 헤어지길 바랬다. 그러나 대놓고 헤어지라고 말하기에는 이런 자신의 못난 마음이 도하에게 들킬까 무서웠다.

"형... 형 좋은 대학교 가고 싶다면서요."

"걔랑 어차피 두 달 정도 사귀고 끝낼 거야. 대충 중간고사 대비문제 이런 것만 받아놓고 튀면 되지. 내가 뭐 걔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쵸? 동정심에 사귀는 거죠?"

"그치. 근데 너 왜 이렇게 집착하냐."

도하가 온을 보며 말했다. 도하의 그 눈빛, 몇 번 본 적 있었다. 저 특유의 차가운 눈빛과 모든 걸 안다는 눈빛이 나올 때마다 온은 자신의 생각을 들키곤 했다. 온은 덜컥 겁이 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도하에게 '그냥요.'라는 설득력 없는 대답을 한 뒤 집으로 정신없이 뛰어갔다. 민도하와의 대화는 그닥 즐겁지 않았다.

그 뒤로 온은 도하를 필사적으로 피해 다녔다. 등교 시간도 묘하게 다르게 하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친구 뒤에 숨곤 했다. 도하가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부터 온의 마음은 많이 복잡했다. 나가 도하형을 좋아하는 건 맞는데, 그는 사실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내가 그를 좋아하는 마음은 들킨 것 같고. 참, 모르는 사람과 삼각관계라니. 이것도 웃겼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숨어다닐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도하에게 멋지게 대학생이 되서 고백도 못 할 테고, 몇 년 간 쌓아온 계획이 무너지는 것이었다. 온은 결국 아주 예전에 자신에게 빌려준 후드집업을 핑계로 도하네 집에 찾아갔다.

"갑자기? 들어와."

"녜... 이거... 돌려주려고..."

"아 이거? 고마워. 그것만 말하러 온 거 아니잖아."

도하의 얼굴도 못 보고 옷만 반납했다. 거의 무슨 죄지은 사람 마냥. 도하는 눈치가 워낙 빨라서 온에게 말했다. 그쵸 형 제가 이것만 반납하러 온 건 아니죠 근데... 많이 복잡해서. 온은 어색하게 웃으며 도하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봤는데, 도하가 진짜 잘생기긴 했구나 느꼈다.

"형 잘생겼어요."

"그 말 하려고 왔어?"

"헙! 아니요? 네? 아니 제가 뭔 말 했... 에?"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말이 입밖으로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정작 도하는 아무런 신경을 안 쓰는디 온의 얼굴은 완전히 빨개졌다. 얘기하려고 왔는데 정작 하게 된 말아 형 잘생겼어요? 정말 대단하다. 온은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지만 도하가 그를 붙잡았다.

"나 잘생긴 건 알겠고 너도 귀여우니까 좀 들어올래? 할 얘기 있다고 새꺄."

"욕!"

"인마."

도하는 온을 끌고 와 소파에 앉게 했다. 온은 쿠션을 안고 가만히 있었다. 또 할 얘기다. 저 할 얘기가 문제다. 저 말만 나오면 관계가 틀어지는데... 온은 속으로 한숨을 쉬고 도하의 얘기를 들었다. 도하는 또다시 그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온에게 말했다.

"여친이 생겼다는 걸 믿냐?"

"여친 아예 없었어요?"

"너 반응 보려고 한 거야. 순진하긴."

온은 도하의 말에 뒤통수를 망치로 세게 맞은 듯 했다. 정작 나는 그 여자친구 때문에 마음을 졸이고 속앓이를 했는데 다 장난에 불과했다니. 온은 도하를 미워하고 싶었지만 미워할 수가 없었다. 짝사랑이란 너무나도 신기하다. 누군가를 미워해야하는데.미워할 수가 없다. 신은 왜 사람을 창조할 때 감정을 이렇게 만들어서.

온은 멍하니 아무 화면도 안 나오는 티비만 쳐다봤다. 도하는 그런 온의 반응이 신기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처음에는 도하의 이런 행동이 설렜는데 이제는 그냥 이게 도하의 습관 같아 의미부여를 안 하기로 결심했다. 해봤자 상처받는 건 나니까.

도하와 온은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눴다. 온이 도하를 피해다닐 때 얘기, 예전에 싸움이 붙었을 때 얘기. 그다지 재밌는 얘기들은 아닌데 도하와 얘기할 때면 항상 즐거웠다. 도하는 이런 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녁이 되자 집에 가라며 온의 등을 떠밀었다. 온은 이렇게 사람마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도하가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생활은 별다른 탈없이 지나갔다. 방학이 되면 같이 놀고, 벚꽃이 피었다고 하면 같이 보러 가고, 시험이 있으면 응원하는 그런 생활. 그리고 도하가 19살이 되었을 때, 수능이 다가왔다.

수능날, 도하의 폰에는 쓸데없는 응원 메시지만 많이 와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건 온이었다. 고3이 되었을 때 온에게 수능이 끝나고 놀자고 했던 약속 때문이었다. 온이 보낸 문자는 남들과 비슷한 힘내라는 말이었지만 뭔가 고심해서 쓴 듯 보였다.

형 힘내요!! 끝나고 나랑 노는 거 >

AM 06:05 잊으면 안 되는 거 알져??

< 다 끝나고 학교 앞으로 와

놀 거니까 AM 06:12

온은 일부러 도하를 시험장에 배웅하러 가지는 않았다. 가봤자 도하가 신경쓰일 것 같아, 시험이 다 끝나고 가자는 마음이었다.

수능이 다 끝날 시간에 맞춰서 도하를 보러 가니, 키가 훤칠한 멀리서도 눈에 띄는 사람이 나오는 게 보였다. 온은 도하에게 뛰어갔다. 그러고는 무의식적으로 도하에게 안겼다. 온은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한 건지 깨닫고 도하의 가슴팍을 밀었다.

"응원해줘서 잘 본 것 같다. 너도 공부 열심히 해서 내가 간 대학교 와."

"네! 그럴 거에요."

자신이 안겼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내고 원래 하려던 말을 하는 도하를 보니 마음 한 쪽이 아파왔다. 도하는 그저 자신을 친한 동생으로만 보는 것 같아 속상했다. 도하에게 당장이라도, 수능이 끝났으니 고백을 하고 싶었지만 도하와는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었기에 오늘도 고백은 못 하게 되었다.

그 뒤로 온이 수능을 보는 날이 오기까지의 1년은 빠르게 흘러갔다. 도하는 원하던 대학에 가서 연락이 뜸해지긴 했다. 온은 '도하가 설마 애인이 생겼나'라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물론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온도 수능을 마치고, 도하가 다니는 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온은 도하에게 고백할 준비가 모두 되있었다. 그러나 대학교에 가서 보게 된 도하는 많이 달랐다.

대학교에 들어가 훨씬 밝게 염색한 헤이즐넛색 머리와, 주위에 그를 따라다니는 여학생과 남학생들. 온은 이런 도하가 자신에게 관심을 주기나 할지 걱정되었다. 게다가 온과 도하는 학과가 달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이런 도하에게 연락이 온 건 그가 2학년이었을 때였다.

< 야 오랜만이긴 한데 저녁에 우리 학과 애들이랑 술 마실래? PM 03:12

PM 04:09 네 형 자주 가는 거기 맞죠? >

온은 약속한 시간이 되자 도하가 오라고 한 곳으로 갔다. 신기하게도 아는 얼굴이 도하밖에 없었다. 온은 도하의 옆에 앉았다. 도하가 맨 끝 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도하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온은 그것에 조금 자부심을 느꼈다.

주위 사람들이 온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했고, 얘기도 했는데 어떻게 대답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근데 술은 또 잘 마시는 편이 아니니 두 잔 정도 마시고 도하의 손만 만지작거렸다. 술이 이상하게 계속 들어갔다.

2차에 가자는 선배들의 말을 무시하고 도하는 온과 함께 가게에서 나와 가게 옆쪽에 앉았다. 도하는 아무 말 없이 있었고 온이 얘기를 시작했다.

"형. 너무 오랜만이네요. 전 형한테 연락 없어서 많이 걱정했어요. 형이 혹시 날 잊은 건 아닐까. 날 싫어하게 된 건 아닐까. 애인이 생긴 건 아닐까."

"..."

"형이랑 알게 된 게 16년이에요. 오랫동안 알고 지냈죠? 신기하네요. 형, 혹시 화양연화가 무슨 뜻인지 알아요?"

"... 몰라."

도하는 온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고 온은 다시 말을 계속했다. 술이 한번 들어가니 말이 멈출줄 몰랐다.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화양연화라고 한대요. 저 형 좋아해요. 9년 동안 좋아했어요. 형 좋아한 시간이 제 인생의 화양연화였어요."

"야 너 지금 뭐라고ㅡ"

"저 무슨 말 한 거에요...? 형 죄송해요. 저 갈게요."

온은 도하에게 덜컥, 고백을 해버리고 말았다. 젠장, 멋지게 꽃다발까지 사서 하려고 했는데 정작 해버린 건 취중고백이었다. 온은 자신의 자취방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편의점 앞에 멈췄는데 구역질이 나고 울음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고백을 해버렸으니 둘의 관계는 돌릴 수 없는 것이었다. 온은 우습게도, 편의점 의자에서 펑펑 울었다. 고백을 이렇게 끝낸 것도 싫었고, 자신이 미웠다. 차라리 도하를 몰랐다면 어땠을까.

그날 집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충격을 많이 받았다.

그날 그 고백 이후로 온은 필사적으로 도하를 피했다. 전화번호를 차단은 안 했지만 문자는 읽씹에 전화는 받지 않았다. 도하가 수업을 듣는 건물에 불가피하게 가야 될 때면 모자를 푹 눌러쓰고 헤드셋까지 낀 뒤 아무도 모르게 다녔다.

이런 비밀스러운 일상이 일주일을 넘겨가고 있을 때 온에게 도하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느때처럼 끊으려 하는데 뒤에서 자신의 어깨를 잡는 게 느껴졌다.

"얘기 좀 하자."

"네?"

도하의 저 눈빛, 몇 번째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 온의 손은 이내 도하의 손에 의해 잡혔고, 도하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형도 자취했구나.

"너 이제부터 아무 말 하지 말고 내 이야기 들어."

"... 네."

"너가 일주일 전에 술 마시고 나한테 무슨 말 했는지 기억나지? 나 좋아한다고 했잖아. 왜 도망쳤을까. 난 그게 내가 널 싫어할 거라는 너의 착각 때문이라고 봐. 넌 날 9년 동안 좋아했다고 했지? 난 널 15년 동안 좋아했어. 너가 6살 때부터 좋아했다고. 내 유일한 친구였는데 어떻게 안 좋아해? 근데 너 정말 눈치도 없도 참을성도 없더라. 나 졸업식날, 나한테 고백하는 거 들었지? 내가 걔한테 뭐라 했는지 알아? 난 좋아하는, 친한 동생 있어서 안 된다고 했어. 일부러 그렇게 말했는데 넌 참을성도 없지. 너 좋아하는 동안 엄청 힘들었어. 넌 9년 동안 변한 게 없어. 그때도 끝까지 들었어야지. 취중고백을 해놓고 대답은 안 듣고, 무서워서 연락은 피해? 어이가 없네."

"형 그거ㅡ"

"많이 좋아해 온. 너가 날 좋아한 시간보다 오래 좋아했어. 난 15년이야."

도하의 말에 머리가 복잡했지만 딱 한 마디만은 확실하게 들렸다. 자신을 15년간 좋아했다는 말. 온은 도하에게 웃으며 물었다.

"저희 사귀는 거에요?"

"응. 너와 함께한 시간은, 함께할 시간은 내 인생의 화양연화야."

둘의 화양연화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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