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MATE

CHECKMATE IF

흥미진진한 눈으로 훑듯이 살피던 이들의 시선이 걷히고 나서야 숨통이 트였다. 보는 눈이 많아서야 마음대로 숨조차 내쉬기 힘들다. 치즈펠은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 사이로 몸을 감추다시피 하고 나서야 크게 숨을 내쉬었다. 하아아. 시종장이 보았다면 채신머리없다면서 헛기침으로 눈치를 주었을 테지만 다행히 이곳에는 그가 탄 말과 그 고삐를 쥐고 있는 그의 기사뿐이다.


말을 잠시 매어둘만한 공터에 도착하자, 앞서 걷던 기사가 가볍게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세웠다. 가볍게 투레질을 한 말은 얌전히 멈춰섰다. 가벼운 발굽 소리와 함께 말은 그 자리에 멈춰서 무성히 자라난 풀을 뜯었다. 기사는 말의 갈기를 쓰다듬고 있었다. 치즈펠은 안장에 앉아 가만히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침묵의 대치가 이어졌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기사였다.


“아직도 받침대가 필요하십니까?”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무덤덤한 목소리지만 치즈펠은 이제, 기사의 눈꼬리 끝에 걸린 감정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어린아이의 투정을 보는 듯 재미있다는 눈. 투정 정도야 받아줄 수 있다는 말에 치즈펠이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흠. 짧게 숨을 고른 기사는 팔을 뻗어 가만히 치즈펠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가볍게 번쩍 안아 올려 땅에 내려놓는 일련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웠다.


안전하게 땅에 내려선 치즈펠은 신발 앞코를 땅에 쳐 가볍게 정리했다. 찌뿌둥한 몸에,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 나자 태평해 보이는 치즈펠의 모습에 머리 위로 한숨이 떨어졌다. 제국의 황제에게 상당히 불경스러운 행동이었으나, 그도 치즈펠도 신경 쓰지 않았다.



“사냥 나오는데 이것저것 가져오라고 하기 귀찮잖아.”

“그래서, 제대로 다룰 수는 있으신지.”


기사는 치즈펠의 가슴팍과 옆구리 사이의 홀스터에 꽂힌 권총을 바라보았다. 총 자체를 만들 수 있는 기술자가 적고, 탄환 또한 만들기 힘들어서 제국에 몇 대 없는 총이지만 제국 내에 황제가 구할 수 없는 물건은 없었다.


그런 물건이다. 사냥에 총을 가져간다는 말에 제관은 낭비라며 만류했지만, 그 계획을 밀어붙인 것은 다름 아닌 치즈펠의 기사, 하디였다. 시위를 당길 힘도 없는 황제에게 활을 쥐여주라니. 지나치게 수준이 낮은 음해에 어울려줄 기분도 나지 않았다. 가벼운 놀림에 발끈하는 황제를 보며 뒤틀린 심기를 달랜 하디가 미소를 지었다.



“잠시, 실례.”


허락이나 거절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가벼운 손놀림이 총을 빼냈다. 총이 저렇게 작았던가. 남의 손가락에 감겨든 총을 보며 치즈펠이 쓸데없는 감상에 젖은 사이, 총을 살피던 하디가 망설임 없이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총구를 겨누었다. 쾅! 폭음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총구 끝으로 어마어마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반사적으로 양손을 들어 귀를 막은 치즈펠과 달리, 총을 쏜 당사자는 물론이고 말까지 태연한 얼굴이었다. 풀을 뜯던 말이 물끄러미 치즈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웃는 듯한 눈에 치즈펠이 말을 노려보았지만, 말이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하디가 황제에게 총을 돌려주었다. 한 손으로 잡아보려고 했으나 꽤 묵직해 양손으로 총을 받아든 치즈펠이 물었다.


“그렇게 갑자기 막 쏴도 되는거야?”

“테스트라고 해두죠.”

“아깝게! 갑자기 튀어나왔을 때 쏘면 되잖아.”

“마침 왔군요.”


뭐? 이렇게 타이밍 좋게? 치즈펠이 놀라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언제나처럼 익숙한 뒷모습이 그의 시야를 가렸다. 이런 경우, 굳이 앞으로 나서서 좋을 일이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닫고 있었기에 치즈펠은 얌전히 그 등에 시선을 못 박은 채 서 있었다. 하디는 검도 뽑지 않은 채 비수를 날렸다. 그렇게 위협적인 동물은 아닌 모양… 쓰러지는 소리가 제법 컸다.


“뭐야? 뭐가 잡힌 거야?”

“지나가던 잔챙이군요.”

“잔챙이?”


그러기엔 소리가 너무 컸는데? 멧돼지 정도는 되지 않을까?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치즈펠이 고개를 빼꼼 내밀기도 전에, 기사가 돌아서는 것이 먼저였다.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이 치즈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엇이든 들어줄 것 같은 얼굴이지만, 저 상태면 무엇을 해도 들어주지 않을 상태라는 걸 알고 있기에 치즈펠은 얌전히 돌아섰다. 돌아서는 척을 하며 볼 수도 있었겠으나 그의 기사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뒤처리는 사용인들에게 맡기십시오. 말은 제가 데려가지요.”


하디가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멀지 않은 거리였으니 숲 경계에서 사냥물을 기다리던 이들이 올 것이다. 치즈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숲의 입구를 향해 걸어나갔다. 따라오는 발걸음이 있었기에 두렵지 않았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