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지타임] 준쟁_헤드셋

20230723 7월 대운동회에서 배포하였습니다.

대운동회에서 배포한 준쟁:헤드셋 연성 웹업로드합니다.

진재유는 헤드셋을 자주 끼고 다녔다. 남들이 이어폰을 끼고 다닐 때도 꿋꿋하게 헤드셋을 썼다. 예쁘고, 귀가 편하고, 밖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헤드셋을 끼고 있으면 남들이 말을 잘 걸지 않는 게 좋았다.

차분한 것을 좋아하는 진재유로서는 기꺼운 일이었다. 그는 기력이 없는 날이면 헤드셋을 끼고 노래를 듣는 척했다.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소란스러운 틈에 끼어있으면 괜히 몸이 축 늘어지는 기분이 드는 날이 있곤 했다. 그래서 그런가, 진재유는 성준수의 옆을 좋아했다.

서울 소년의 옆은 언제나 조용했다. 성준수 자체가 조용한 사람인 탓도 있었고, 예민한 성격을 굳이 건드려봤자 좋은 꼴을 못 보기 때문이기도 했다. 저희끼리 있으면 떠드느라 정신이 없는 후배들도 성준수의 앞에서는 눈치를 보았다. 진재유는 성준수의 옆에 앉아 물끄러미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성준수의 멀끔한 얼굴은 볼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건들지만 않으면 이래 조용한 아를... 준수 임마는 가만히 놔둬도 화보네, 화보야. 화만 덜 내면 더 잘생겼겠는데.’

성준수는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소리를 다 죽여 놔서 영상만 보는 꼴이긴 했으나 무어라 참견할 생각은 없었다. 진재유 또한 들리지 않는 음악을 듣고 있는 척하니까. 성준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유튜브에 올려 둔 예전 경기 영상이었다. 그는 간간이 입술을 달싹이다가, 깨물었다가, 짜증스럽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뭐가 또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지. 진재유는 생각했다.

성준수는 가만히 보면 웃긴 애였다. 예민하고 까탈스럽기 짝이 없으면서도 어느 부분에서는 또 무던하고 둔했다. 나쁜 애는 아닌데 상황이 자꾸 성준수를 조급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경기 실적 하나 없던 이전보다는 느긋해져서, 요즈음에는 후배들 칭찬도 입에 올리곤 했다.

“재유.”

다른 생각을 하다 보니 제 이름을 부르는데도 반응이 늦고 말았다. 진재유가 대답하지 않자 성준수는 안 들려? 하고 재차 물었다. 이번에는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애를 태우다가 사실은 듣고 있었다, 하고 웃으면 성준수는 뭐야, 하고 괜히 툴툴거리면서도 장난에 당했다는 듯 가볍게 대꾸할 것이다. 진재유는 언제 헤드셋을 벗고 대답할지 타이밍을 재었으나, 성준수는 핸드폰 화면에 다시 시선을 고정할 뿐이었다. 성준수를 놀리려던 진재유로서는 괜히 김이 새는 상황이었다.

‘싱겁게시리.’

그래도 어깨를 치거나 헤드셋을 두드리지 않는 걸 보니 중요한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전했을 것이다. 성준수는 그런 녀석이었다. 하고 싶은 건 어떻게 해서든 해냈다.

이제 진짜 노래나 들을까, 하고 진재유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려는 찰나 성준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재유, 나 너 좋아해.”

진재유의 시선이 허공을 배회했다. 제가 헤드셋을 쓰고 있어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의심까지 했다. 성준수에게 들으리라고 생각한 적 없던 말이었다. 무심한 목소리는 사실을 열거하듯 더듬더듬 제 속에 있던 말을 꺼내 늘어 놓았다.

“...왜 좋아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너 없으면, 허전하고, 아무튼 그래. 네가 다른 새끼들 말고 내 옆자리에만 앉으면 좋겠고. 좀, 가슴이 간질거리고, 그러는 것 같아.”

동그란 머리통 위로 속삭임이 내려앉았다. 진재유는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고 멍하니 허공에 시선을 고정했다.

‘점마는 인터뷰도 저렇게 하더니.’

진재유는 성준수가 어색하게 뱉어내는 말들이 어쩐지 귀엽다고 생각했다가 제가 제 생각에 놀라 머리를 세차게 앞으로 흔들었다. 성준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가 눈이 마주치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언제나 뽀얗던 얼굴이 분홍빛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세상에 저런 얼굴을 하고선 고백을 저따위로 하는 놈이 어딧노.’

붉어진 얼굴을 손등으로 가린 성준수가 한숨처럼 뱉었다.

“너 그러는 것도 좀, 귀엽고... 어쨌든 나중에 제대로 고백할게.”

성준수의 얼굴을 제대로 볼 자신이 없어진 진재유는 고개를 무릎 사이로 감추었다. 분명 노래는 틀어 놓지 않았는데 드럼 소리가 자꾸 귀를 간지럽혔다. 진재유는 제가 헤드셋을 끼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너한테는 안 들릴 텐데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보지 않아도 붉게 변했을 게 분명한 귓바퀴를 숨길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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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호기심많은 조랑말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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