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록] 나기레오_23.10 대운동회 돌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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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레오] 23년 10월 대운동회 돌발본.

 

미카게 레오는 열여덟이 되자마자 운전면허증을 땄다. 해외에서도 쓸 수 있도록 국제 면허증을 땄다는데, 왜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는 운전면허증을 딴 것이 퍽 기뻤는지 친구들을 볼 때마다 자랑하곤 했는데, 대부분은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평을 했다.

나기 세이시로 역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레오가 하는 일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레오는 어차피 운전기사가 태워주는 차로 출퇴근할 거 아니냐며 야유를 퍼붓는 친구들의 말을 멋지게 무시하며 나기에게 어때, 하고 물었다.

나기 세이시로는 몇 번이고 했던 말을 되풀이해주었다.

“면허증 종류는 아무래도 좋아. 레오가 운전하는 건 멋있고.”

“그렇지?”

레오는 조금 우쭐거리며 면허증을 지갑 안에 넣었다. 저 지갑은 나기가 처음 받은 월급으로 사 준 것이다. 레오의 취향에 맞을지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다 주문한 것이라, 그가 유용하게 쓰는 걸 볼 때마다 꽤 흡족하다.

그러나 레오의 자랑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나기, 너도 얼른 따.”

“...귀찮은데.”

“엄청 재밌어, 직접 차를 몰아보면 너도 좋아할걸. 게임 좋아하잖아? 비슷해.”

“으음…. 유로 트럭은 그닥……. PVP가 가능한 쪽이 좋아.”

레오의 권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면허를 따는 도중에도 함께 수업을 듣자며 꼬드기기도 했고, 예행연습을 위해 빌린 트랙에 데려가며 나기의 호기심을 돋우려고도 했다. 그러나 나기는 심드렁할 뿐이었다.

“면허증을 따면 갈 수 있는 곳이 훨씬 많아진다고. 밤늦게 바다를 보러 갈 수도 있고, 네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행사장 같은 곳도 금방이야.”

“그런 곳은 흥미 없어…. 그리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나기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레오가 있으면? 하고 말끝을 따라 했다. 아, 저거 레오의 책상에 꽂혀 있던 책에서 읽은 적 있는 기술이다. 상대방의 끝말을 반복해서 동질감을 끌어내는 사교술. 역시 미카게 레오, 대단하네. 멍하게 생각을 끝낸 나기는 느릿하게 말을 끝맺었다.

“앞으로도 레오가 데려다주면 되잖아.”

“윽. 너 말이야, 내가 없으면 어쩌려고 그래?”

레오는 툴툴거리기는 하였으나 기분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에,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레오는 계속 내 옆에 있을 거잖아?”

흰 머리통이 나른하게 까딱였다. 누가 보았다면 얄미운 행동이라고 하겠으나 레오의 눈에는 그저 귀엽게 보였는지, 그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히죽 웃었다.

“뭐, 어쩔 수 없지. 계속 내가 모시러 다닐 수밖에.”

나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레오가 꼬드겨도 귀찮은 일은 귀찮은 일이었다.

 

*

 

그런 나기의 생각이 180도 변한 계기는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여느 때처럼 레오는 나기의 방에 불쑥 들어와 외출을 요구했고, 나기는 귀찮은 몸을 이끌고 비적비적 그에게 끌려 차동차에 앉았다. 앉자마자 푹신한 감촉이 그를 반겼다.

레오가 새로 샀다는 차는 무척 크고 편안했다. 누워서 잘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내부에 나기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뱉었다.

“오….”

“근사하지?”

나기가 조수석 의자에 몸을 파묻자,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레오가 선택한 자동차답게 승차감 또한 훌륭해서, 나기는 제가 잠든 줄도 모르고 스르르 잠들어버렸다.

“나기. 일어나 봐.”

“으응….”

나기는 부스스 눈을 떴다. 레오의 손가락이 나기의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레오는 기분이 좋을 때면 나기의 손을 잡아 깨워주곤 했다. 깜빡 잠든 채로 먼 곳을 온 것 같았다.

자동차가 언제 멈췄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은 분명했다. 공기에서 바다 특유의 짠 내음이 났다.

“바다 냄새….”

“응. 바다야!”

레오가 활짝 웃었다. 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도 희게 빛나고 있었다. 자신만만한 표정은 사람을 홀리는 데가 있어서, 나기는 조금 멍하게 레오를 바라보았다.

자동차의 상체가 열리며 스르륵 뒤로 넘어갔다.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어도 꽤 좋은 차인 것만은 분명했다.

레오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그의 귓바퀴에서부터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이 그의 몸에 색을 칠하고 있었다. 보랏빛이 도는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것은 무척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봐, 예쁘지?”

레오가 고개를 휙 돌렸다. 즐거움으로 가득 찬 얼굴이 재잘재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얼마 전에 운전 연습을 하다가 발견했거든. 제일 먼저 네게 보여주고 싶었어.”

어떻게 하면 운전 연습을 하다가 이 먼 곳까지 왔냐는 질문은 적절하지 않았다. 레오가 하는 일에는 뭐든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우연히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든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때, 하고 도발하듯 웃는 얼굴은 나기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이다. 가슴이 떨려왔다. 나기 세이시로는 미카게 레오의 이런 모습에 반했으니까.

레오는 신이 나서 떠들었다.

“야간 운전도 나쁘지 않단 말이지. 그래도 혼자서 쭉 몇 시간씩 운전하는 건 지친단 말이지. 다음엔 누구라도 꼬드겨서 번갈아서 운전을 하는 편이…. 나기? 왜 그래?”

나기는 제 표정이 어떤지 확인하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레오. 나 면허증 딸래.”

“오,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야? 그래도 잘 생각했어!”

도련님의 예쁜 얼굴에 웃음이 활짝 피었다. 그의 갸름한 뺨 위로 햇빛이 비쳤다. 보랏빛 머리카락이 빛을 반사해 반짝반짝 빛났다. 바다 같은 건 뭐가 예쁜지 전혀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바다를 바라보는 레오는 아름답다. 이런 모습을 다른 놈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나기는 가만히 생각했다.

미카게 레오는 나기 세이시로의 옆에 있어 주기로 했다. 그러니 레오의 옆에는 나기 외에는 아무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귀찮은 것 정도는 감수해야겠지.

레오가 창문을 닫고 차 안의 이런저런 버튼을 눌렀다. 금방 공기가 훈훈하게 달아올랐다. 그는 나기의 손에 미리 준비한 레몬티며 군것질거리를 쥐여주며 물었다.

“열심히 일출 명소를 찾은 보람이 있네! 네가 마음을 돌릴 줄이야! 역시 일출은 좋지?”

잿빛 눈동자에 조용히 불꽃이 일었다. 그러나 제 마음을 들킬 생각이 없는 에고이스트는 사랑스러운 남자를 보며 의뭉스럽게 대답했다.

“응. 나, 이런 거 좋아해. 레오.”

차가 다시 부드럽게 출발했다. 나기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잠들지 않았다. 속셈이야 어쨌든, 레오가 기쁘다면 된 일이다.

 

돌아가는 길에 잠깐 운전대를 잡아 본 나기가 완벽하게 면허증을 따내 레오를 경악시키는 것은 조금 뒤의 이야기.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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