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 꽃잎이 내리는 풍경을 영원토록 사랑할 수 있는가

[OC] 연, 클로에, 테로, 플뢰르, 안단테

서적 by 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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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가 보인다.

연이 다니는 학교, 플로스 고교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학교 건물 뒷쪽의 아름다운 벚나무였다. 학생들은 그 아래에서 고백을 하면 이루어진다는 소문을 믿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소문은 ‘진짜’ 였다. 단 한 번도 벚나무 아래에서 헤어지는 일은 없었다. 이후 학생들이 다툼과 갈등을 겪어 헤어지는 일은 있어도 벚나무 아래에서의 고백은 반드시 성사되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착각 같은 것에 모두가 집중했다. 그것을 진실이라 믿었다. 단순 헛소문일 뿐인데도.


안단테님한테 고백하려고요.

클로에의 목소리에 연이 눈을 깜빡였다. 안단테는 학교에서 제일 가는 성적을 자랑하는 다정한 남학생이었다. 다른 여학생들은 벚나무를 너무 믿는 거 아니냐며 지적하기도 했지만 클로에는 괜찮을 거라면서 제 편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연은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딘가에 통화를 걸며 그는 성큼성큼 어딘가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보던 한 남학생이 중얼거렸다. 곧 수업 시작하는데. 쟤 어디 가?


연이 도착한 곳은 벚나무 아래였다. 벚나무 아래에는 한 학생이 있었다. 테로 선배. 연의 목소리에 테로가 연을 바라보았다. 테로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이번엔 또 누가 헛소문을 믿어?

벚나무 아래에서 소원을 빌면 그 사랑이 꼭 이루어지는 이유가 있었다. 벚나무 아래에서 고백하는 것으로 사랑이 쉽게 이루어질 리가 없지 않은가. 연과 테로는 벚나무의 전설을 지키는 이들이었다. 정확히는 그런 조건으로 계약된 이들이었다. 플로스 고교의 교장이 사회에서 배척받은 ‘잉크’ 들을 돕겠다 말하며 내건 조건 중 하나였다. 테로는 연에게 알약 하나를 건넸다. 연은 그걸 바라보기만 했다. 먹어. 먹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아. 결국 연은 알약을 삼켰다.

곧 연은 입 안에서 푸른빛의 액체를 토해냈다. 액체가 바닥으로 뚝 뚝 떨어졌다. 연이 한참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면 테로가 연의 수첩을 가져갔다. 그러는 사이 연은 액체를 다 뱉어낸 채였다. 바닥에 떨어진 액체는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졌다.

클로에. 1학년 A반. 짝사랑의 대상은 안단테인가.

솔직히 이루어질 거라고는 보지 않지만요.

그것조차 이루어지게 만들어야지. 그게 계약 조건이니까.

테로는 가져온 가방 안에서 노트 하나를 꺼냈다. 연은 그런 테로를 바라보았다. 이내 조금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면서 테로에게 물었다.

왜 저희가 계약을 맺어야 하는 거예요? 솔직히 모르겠어요. 저 사람이 뭐라고.

연, 우리가 평소에 먹던 안정제를 합법적인 루트로 만들어주는 사람이 이 학교의 교장선생님 말고 누가 있지?

연은 침묵했다. 테로는 알면 됐다면서 다시 노트를 내려다보았다. 테로는 까다롭긴 하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 사랑을 어떻게 해야 이루어지게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연의 입장으로서는 어렵기만 한 일이었다. 연은 테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언제쯤인지 나와있어요? 테로는 고개를 끄덕임으로서 답했다. 그러고는 눈을 깜빡였다. 악용되고 있는 거야. 어쩌면 교장은 우리가 곤란해하는 걸 좋아하는걸지도. 그리 말하면서 테로는 제 휴대폰을 꺼냈다. 움직이자.


연은 수첩 하나를 들고 복도를 걸었다. 건너편에서 플뢰르가 걸어오고 있었다. 플뢰르와 연은 서로를 마주하고 가벼이 인사했다. 연은 플뢰르의 손에 수첩을 쥐여주었다. 플뢰르는 수첩을 펼쳤다. 그러고는 1학년 C반 앞에 도착했다. 마침 앞에 있었던 다른 학생에게 플뢰르는 물었다. 혹시 안단테 있어? 곧 학생은 안단테를 불렀다. 두 사람은 같은 수예부 학생이었다. 서로를 불러낼 개연성은 충분했다. 잉크로서 플뢰르는 이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무가 있었다. 안단테가 플뢰르에게 다가왔다.

잉크들은 평화적으로 사랑을 해결하지 않는다. 당연했다.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면 잉크라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무슨 일이에요?

수예부 일에 대해서 회의할 게 있어서. 지금 시간 괜찮아?

그럼요.

안단테는 플뢰르를 따라 수예부 부실로 걸어갔다. 연이 그런 안단테의 뒤를 밟았다.


수예부 부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문을 열고 어두운 수예부 부실의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시간이라 그런가 다른 부실은 고요했다. 안단테가 불을 키려는 순간 어둠 속에 숨어있던 테로가 안단테를 붙잡았다. 안단테가 당황하기도 전 테로가 안단테의 뒷목을 탁 치고 기절시켰다. 그 광경을 보던 세 명의 잉크가 안단테를 내려다보았다. 플뢰르는 같은 부원으로서 좀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과격한 방법을 정말 써야 해요? 어쩔 수 없다면서 테로가 어깨를 으쓱였다. 연은 안단테를 제대로 눕혀주었다.

그때, 테로가 부실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 클로에가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테로는 클로에에게 달려들어 제압했다. 우당탕! 테로는 클로에의 입을 제 손으로 막고는 천천히 일으켜세웠다. 그러고는 클로에를 데리고 부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미행 붙은 것도 모르고 있었어?

전 분명 제대로 확인했어요. 정말인데.

어쩔 수 없네. 일단.

테로가 누군가를 부르려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부실 문 쪽으로 가 제 몸으로 문을 막았다. 대신 클로에는 풀어주었다. 클로에는 잠시 조용히 있었다. 연이 입을 열었다. 이건 그러니까. 그 순간 클로에가 눈을 반짝였다. 정말이었어! 그 기묘한 반응에 클로에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사랑을 이루어주는 큐피드들은 정말로 실존하는 거였군요!

그 순간 세 사람은 직감했다. 클로에의 관심사는 안단테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일부러 단서를 흘리고 우리를 제대로 미행하고 있었다 그거지.

그럼요 그럼요. 두근거리잖아요. 큐피드 탐방이라니.

괴짜네.

테로의 한 마디에 연도 플뢰르도 동의했다. 기절한 안단테는 플뢰르의 능력으로 제자리에 되돌려놓았다. 클로에는 역시 신기하다면서 고개를 정열적으로 끄덕였다. 겉으로 봐서는 인간 같은데, 아까도 그렇고. 뭔가 특별한 거라도 있는 건가요? 클로에의 물음에 세 사람은 도대체 어떤 답변을 내려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냥 다 말하기도 애매하고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기에는 클로에가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테로는 한참 고민하다가 부실 문을 열었다.

잠깐 너희가 보고 있어. 이건 물어봐야 할 것 같으니까.

대답도 듣지 않고 테로는 부실 밖으로 나갔다. 클로에가 남은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가 현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연과 플뢰르는 한 걸음씩 클로에에게서 멀어졌다. 부담스러웠다. 클로에는 수첩을 꺼내고 두 사람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방금 그 능력에 대해 알려주세요! 소원은 어떻게 이루는 건가요! 큐피드님들은 총 몇 분 이신가요! 그러고 있던 중 테로가 다시 부실로 들어왔다. 거두절미하고. 테로는 그 말과 함께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부터 잉크들의 업무에 저 클로에, 라는 녀석이 함께하게 될 거야.

그 말은 즉슨 큐피드들과의 공동 업무!

테로가 고개를 끄덕이면 클로에의 눈은 화려하게 빛났다. 연은 그래도 되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든 말든 클로에는 굉장히 신나보였다. 그럴만했다. ‘큐피드’ 를 클로에는 꽤 동경했으니까 말이다. 연은 한 번 더 생각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신나보이는 클로에를 말릴 수는 없었다.

잉크들 사이의 일반인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반짝거리는 큐피드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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