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등등

잃어버린 아빠

이번엔 진짜 제목대로 가자 (주의: 해피엔딩 아님, 좀 우울함)

“야, 내 아빠는?”

[뭐?]

“내 아빠는 어디 있냐고, 어? 네가 여기 있다면서. 근데 없잖아? 어디 있냐고.”

프레이가 신상을 붙들고 흔들어 제꼈다. 눈을 깜빡이는 신기한 나무 신상은 멀미난다며 그만하라 소리쳤지만, 프레이는 멈추지 않았다. 박현우였을 시절의 아빠가 아직까지 무사한지 알아야 지구로 돌아가든 말든 할 것 아닌가. 그런 그의 생각을 멈춘 것은 신상의 비명이었다.

[그만, 그만! 네 아빠를 왜 나한테서 찾아! 네 바로 옆에 있는데!]

“……뭐?”

[괘씸해서 안 알려주려고 했는데 네가 아주 지랄을 해대서 알려준다. 네가 지금까지 신세지고 있던 후작이 네 아빠야!]

……후작님이, 내 아빠라고? 프레이는 들고 있던 신상도 떨어트리고 멍하니 섰다.

[어이, 어이! 신상을 떨어트리면 어떡해! 흠집이라도 나면 어쩔 거야!]

망할 신놈이 떠들어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프레이는 행복감에 가득 찼다. 드디어 열네 살 생일 날에 잃어버린 아빠를 찾았다는 행복과 기쁨. 이제는 아빠가 살아 있을까, 죽었을까 상상하며 가슴 졸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하나뿐인 가족이 살아 있어서, 그래서 이제는 제대로 삶을 살아볼까, 하는 생각.

“프레이, 기도는 다 끝났니? 이제 돌아갈 시간이란다.”

그때, 문이 끼익 열리며 아르시가 고개를 문틈 사이로 들이밀며 말했다. 젊었을 때의 후작이라고 해도 믿을 그 얼굴을 보자마자 모든 감정이 순식간에 진창에 처박혔다. 그래, 후작은 박현우의 아빠가 아니었다. 박현창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인이 아니었다. 주신이 국교이고 마법과 검이 당연한 세계, 이곳 아스레이 제국의 자랑스러운 무투파 가문, 가르실 후작가의 가주, 테넌 사이세이 가르실 후작이었다. 슬하에 자녀를 넷씩이나 두고 있는.

누님의 얼굴이 아르시 위에 겹쳐졌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누님, 아르시 형님, 그리고 동생들. 그 사이에서 뿌듯하고 행복이 충만한 얼굴로 웃고 있는 아빠와, 아니 후작님과 후작 부인. ……완전한 가족이었다. 박현우와 아빠, 그러니까 박현창과 박현우와는 다르게 온전했다. 흠 잡을 데가 없는 가족이었다. 아마도 아빠는 이런 가족을 바라지 않았을까.

아내는 지병으로 죽고, 아들은 학교에 성실히 다니지도 않고 속만 썩이는, 그런 가족이 아니라.

프레이는 고개를 돌려, 어느샌가 제자리에 놓여 있는 신상을 바라봤다. 그 뒤에 걸려 있는 거울이 프레이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옮겨갔다. 검은 눈썹, 검은 눈, 검은 머리. 극동아시아인 특유의 살구색에 가까운 피부, 서양인에 가까운 이곳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그리 오똑하지 않은 코, 크지 않은 눈, 크지 않은 입. 어디 하나 특출나지 않은 평범한 외모.

어느 구석 하나 후작과 닮은 구석이 없었다.

어느 한 구석도 박현창을 닮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만일 아빠가 정말 후작이었다면, 한국에서의 삶은 떠올리기 싫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날 못 알아봤던 게 아닐까? 아무리 열네 살에 잃어버렸다고 해도 얼굴이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을 텐데. 지금까지 날 못 알아봤던 건 아마도……. 내가 싫어서가 아닐까?

“프레이? 괜찮니? 넋이 나간 거 같은데.”

아르시가 프레이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프레이는 거울에서 시선을 떼고, 아르시를 바라봤다. ……정말, 아르시는 후작과 판박이였다.

눈동자의 색은 비취를 닮은 듯, 푸르른 바다를 닮은 듯 오묘한 파란색이었고, 머리칼과 눈썹은 하늘의 맑음을 담은 것처럼 청아하고 맑은 파란색이었다. 코는 오똑했고, 피부도 옅은 살구인듯 하얀색인듯 했다. 이목구비가 완벽한 균형을 이룬 듯 보이는 완벽한 얼굴. 길 가다가 마주친다면 누구나 뒤를 돌아볼 외모.

이 이상 후작과 닮을 수 없는 외모.

프레이는 생각했다.

지금의 나로 후작의 아들임을 알린다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후작은 자신을 내칠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얼굴도 닮지 않았는데 무슨 배짱으로 그랬는지 모른다면서 손가락질하겠지. 그 완벽한 가족 속에서 나 자신을 갉아먹지 않을 자신도 없으니 잘 됐어. 아빠는 어차피 날 기억도 못하겠지. 설사, 설사……. 아빠가 날 기억한다고 해도, 난 그 가족 속에서 이물질일 뿐이야. 그런 취급 받기는 싫어. 그냥, 포기하자. 내 손으로 또 다른 가정을 파괴하고 싶진 않아……. 행복한 그 가정에 불행을 불러오고 싶지 않아. 난 아빠가 없는 거에 익숙하니까, 그냥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익숙하잖아.

“흑, 끅……. 흐읍…….”

“프레이, 프레이? 괜찮은 거야? 프레이!”

근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 걸까. 왜 바닥이 젖는 거지. 왜 내 목이 이렇게 듣기 싫은 소리를 내는 걸까. 왜 바닥에 머리가 대어져 있는 거지. 내가 무릎을 언제 꿇은 걸까.

“아아아아아악!”

“프레이! 어디가 아픈 거야? 저기요, 누구 없습니까!”

난 괜찮은데……. 정말로 괜찮은데.

“아, 아……. 흡, 흑, 윽…….”

“아무래도 가슴 쪽이 아픈 거 같은데, 빨리 봐주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프레이의 가슴을 짚는 손이 그의 시야에 간신히 들어왔다. 그러나 누구의 손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프레이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세계를 찾은 이방인은 생각했다.

……눈을 뜨고 싶지 않다, 고. 지구로 돌아가서 죽어버리고 싶다고. 그렇게…… 생을 버리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프레이, 정신이 드니?”

“……후작님.”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신전에서 그렇게 쓰러지고 다들 혼비백산해서 후작가로 달려왔어. 근데 몸에는 아무 이상 없다고 하지, 넌 곧 죽으려고 하지.”

“……아무 일도요.”

“근데 이렇게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일단 신전에 다시 가서…….”

프레이는 급하게 말을 쏟아내는 후작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후작님. 제가, 제가…… 신성력이랑 잘 안 맞나봐요. 앞으로 신전에는 안 가는 게 좋겠어요.”

“프레이.”

“정말이에요. 음, 아르시가 많이 놀랐을 텐데. 아르시는 괜찮아요?”

본인은 돌보지도 않고 아르시를 언급하는 프레이의 행태에 후작은 엄한 표정을 지었다.

“프레이. 아픈 것도 아니고, 피를 토한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는데 신성력이랑 잘 맞지 않다는 게 말이 되니? 아무 일도 없었단 얘기는 신빙성이 없다는 걸 아직도 모르겠어? 무슨 일인데 그래.”

……왜 이럴까. 프레이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후작을 멍하니 바라봤다. 후작 내외가 쓰는 방에다가 자신을 데려다 놓고 왜 이러시는 걸까. 이러면…… 털어 놓고 싶어지잖아. 프레이는 자신이 스무 살 중반도 넘기지 않은 애송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모 화랑이 모 소설에서 그랬지. ‘자신은 정에 약해서 누군가가 다정하게 대해주면 금방 마음을 연다’고. 프레이도, 아니 박현우도 똑같았다. 한참 예민할 사춘기 시절 때 극심한 이별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아무에게서도 정을 받지 못한, 몸만 큰 어린이. 그래서 누군가가 다정하게 대해주면 금방 넘어간다.

“……신이.”

“응.”

“아빠가 누군지를 알려줬는데.”

“응.”

“이미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

“근데 아빠는 이미 너무 행복해 보여서……. 나랑 엄마랑 말고, 다른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데, 내가 거기에 낄 수도 없고, 무엇보다 아빠는…… 나 같은 건 벌써 잊어 버렸을 거 같아서. 그래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그랬구나.”

“미련인 건지, 아님 집착인 건지. 포기가 안 돼요.”

후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프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프레이가 올려다본 후작은, 본인이 더 아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프레이는 그 다정에 질식해버릴 거 같았다. 이게 문제였다. 그저 불쌍해 보이는 아이에게 적선해 주는 동전 같은 것일진데, 자신은 거기에 푹 빠져버려 버리니까. 그래서 그 다정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니까…… 동전을 던져준 사람은 당황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도는 이게 아니었으니까.

“…….”

“아버지!”

쾅!

문이 힘차게 열렸다. 후작의 신경이 순식간에 그쪽으로 옮겨갔다. 프레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떼어지고, 침대 옆에 있던 의자에서 일어났다. 프레이는 후작의 망토를 붙잡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어이쿠, 공주님. 넘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응?”

프레이는 부러웠다. 스물 중반을 훌쩍 넘긴 여자에게 공주님이라고 하는 후작과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페리에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유대감이. 그에게는 열넷부터 없었던 가족 간의 유대감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는 시선을 돌렸다.

곧이어 후작의 자식들이 속속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아버지.”

“오랜만입니다, 아버지!”

“아빠 안녕~!”

다들 후작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프레이에게로 돌진했다. 아무도 후작 내외가 쓰는 방에 프레이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저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여겼다.

‘……좋은 사람들이지.’

그리고 그 호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신이 나쁜 사람이었다.

“프레이, 이제 괜찮은 거야?”

“아르실이 엄청 놀랐다더라!”

“용병단 단장이 호출해서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는데, 그래도 일 끝나면 바로 온대.”

“아하하……. 전 괜찮아요, 이제. 모두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르실에게는 신경 쓰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태평한 목소리에 리에바가 머리를 짚었다.

“으휴, 너 그래서 내가 몸조리 좀 잘하라고 했잖아. 이렇게 비실비실하더니, 결국은 신전에서 쓰러졌네.”

“하하하…….”

“리에바, 너무 그러지마. 본인도 반성을 했겠지. 안 그래, 프레이?”

“음…….”

“이것 봐!”

“프레이…….”

그렇지만 여기서 그렇다고 대답하면 단련에 끌고 갈 거잖아요. 프레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 옆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세 기사들의 시선을 피했다. 어차피 강제로 끌고 가진 않을 거니까, 거부 의사만 확실히 밝히면 될 것이다. 자식들과 프레이의 만담을 즐거이 지켜보고 있던 후작은 프레이가 더 이상 곤란해지지 않도록 부드럽게 대화를 중단시켰다.

“자, 얘들아. 프레이는 안정을 더 취해야 하니까 우리 이만 나갈까?”

“앗, 그런가요?”

“우리가 너무 귀찮게 했어, 프레이?”

“그건…….”

“멍청이들아, 프레이한테 그런 소리 해봤자 ‘아니에요, 더 있으세요’ 같은 소리밖에 더 하겠어? 우리가 나가는 게 맞아.”

페리에가 쌍둥이들을 거칠게 밖으로 몰아내며 프레이에게 외쳤다.

“나중에 다시 올게! 몸조리 잘하고 있어!”

“하하하…….”

프레이는 힘없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저들은 기운이 넘치다 못해 남들에게까지 전파 시키려 했다. 그 과정에서 프레이 같은 내향형 인간은 기가 다 빨리는 거고 말이다. 방에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전과 확연히 차이 나는 안색에 후작이 멋쩍은 기분으로 헛기침을 했다.

“그럼, 잘 쉬어. 아버지라는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내게 말하고.”

“……네, 그럴게요.”

손을 흔들며 후작을 배웅한 프레이는 일으켰던 몸을 침대에 다시 뉘였다. 저렇게 단란한 가족을 보니, 더더욱 말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일 것이다. 프레이는 눈을 감으며 미소를 지었다. 다시 눈을 뜨면 지구에 돌아가져 있기를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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