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종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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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티니2 드림 연성
* 등장인물 [까마귀, 마라 소프?]
[종이배]
기탄잘리.
여자아이가 말했다.
제 이름은 기탄잘리에요. 부모님이 저를 더 이상 먹일 수 없어서 당신에게 버렸죠.
새벽제비는 기탄잘리를 빤히 쳐다보다, 고개를 돌려 냇가의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이것이 자신의 기억인지 헷갈렸다. 그는 병들었고, 이제는 자신의 기억도 믿을 수 없었다. 새벽제비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서른 명의 아이들을 천천히 생각했고, 서른 한 번 째 만난 사랑스러운 이도 기억했다.
뭘 그렇게 생각하나?
까마귀가 책상 의자에 앉아 물었다. 사실, 이제 새벽제비에게 필요없는 물건이었다. 그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옥석같이 짙은 녹색의 눈은 흰 얼룩으로 더럽혀진지 오래였다. 그래도 같은 시간에 찾아오는 어린 수호자의 횃대가 되어주니, 영 필요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새벽제비는 자신에게 필요없는 물건이 까마귀에게 얼마나 쓰이는지 가늠해보다 문득 말했다.
배고프다.
아침에 먹다 남긴 흰 죽이 있던데.
물려.
까마귀는 이해한다는 듯 짧은 한숨 소리를 내었다. 기탄잘리....... 새벽제비는 그 이름을 머릿 속에서 지웠다. 먹고 싶은 것이 있었다.
매운 라멘. 매운게 당기는데, 어떻니, 얘야.
아니....... 먹을 수 있는걸 말해라. 어차피 먹어도,
그래. 다 토하겠지.
새벽제비가 무심하게 말했다. 그러나 표정에는 어렴풋하게 슬픔이 떠올랐다. 까마귀는 그것을 쳐다볼 수 없었다. 먹어도, 먹지 않아도 괴로운건 매한가지였다.
뭐.
까마귀는 새벽제비를 일으켜세웠다.
먹고 후회하는게 낫지 않겠어?
새벽제비는 인영을 쳐다보았다. 냇가에서 아이들이 참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몇몇은 종이배를 따라 뛰어갔다. 내가, 이렇게 눈이 흐리던가. 새벽제비가 눈을 비볐다. 기탄잘리가 옆에서 발을 툭툭 차며 말했다.
종이배, 아저씨가 띄운거에요?
하이옌이라 부르렴.
아저씨, 저 종이배는 어차피 물에 젖어 가라앉잖아요. 바닥에 양초를 아무리 칠한다 해도.......
오늘은 하이옌이야. 왜냐면, 지금 나는.......
슈,
까마귀가 다급하게 말하며 새벽제비의 목구멍에 우악스럽게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새벽제비는 바닥에 먹은 것을 죄다 게워냈다. 둘 다 토사물로 엉망진창이었다. 먹고 후회하는게 낫다곤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새벽제비가 헐떡거렸다.
하이옌.
그건 중요한 문제였다. 까마귀 앞에서 그는 한 번도 하이옌인 적이 없었다. 까마귀는 잘못 들은 줄 알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새벽제비는 방점을 찍듯, 사그러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이옌.
새벽제비가 트로이메라이를 잃었을 때, 그는 슈였다. 새벽제비는 빛 없이 달렸다. 전할 말이 있었고, 그는 전령이었다. 달릴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빛 없이 달리는 자신의 속도를 과대평가했고, 진군하던 붉은 군단과 마주쳤다. 그의 속도만으로는 따돌리기가 힘들었다. 둘 중 한 명은 희생해야했다. 원래대로라면 새벽제비가 죽으면 됐다. 그러나 트로이메라이는 불확실한 것 보다 확실한 선택을 했다.
계속 달려요.
트로이메라이가 섬광탄처럼 빛났다. 새벽제비 역시 그 빛에 눈이 멀었으나 발은 멈추지 않았다. 시야가 돌아왔을 때, 새벽제비는 군단을 따돌린 뒤였다. 모든 것이 끝나고 새벽제비는 트로이메라이를 잃은 장소로 돌아갔지만, 의체 조각도 건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계속 달렸다. 변화하는 지형을 외우고, 적들의 영토를 기억하고, 그들 사이를 잇는 치명적인 경로를 전달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네게 병이 있다는 사실을 왜 나한테 말하지 않은거지?
바닷가 절벽의, 동굴 안에서 살 때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새벽제비는 까마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열이 치솟았고, 심하게 어지러워 몇 백년 동안 오르던 길을 내려갈 수 없었다. 날은 흐리고 바람은 불었으며 까마귀는 이를 꽉 깨물었다.새벽제비는 트로이메라이의 이름으로 가득 채운 노트를 찢어 종이배를 접었다.
종이배를 띄우는 곳은 냇가가 적당하지만, 이 근처엔 냇가가 없구나.
고스트가 죽어서 그런건가? 그게 네 마음에 흠집을 낸건가?
까마귀, 나는 꽤 오랫동안.......
새벽제비가 다음 장을 찢었다. 그리고 천천히 종이배를 접었다. 이 배는 양초를 칠한다 해도 결국 가라앉겠죠, 그건 덧없어요, 기탄잘리가 음울하게 말했다. 그 아이는 사춘기 정도로 보였다. 새벽제비가 말했다.
빛에게 선택받지 않은 자들을 부러워했다. 내가 사랑한 그들처럼 나도 이 세상을 스쳐지나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네 고스트도 그렇게 생각할까?
암, 내가 이 말을 할 때 마다 의체로 내 머리를 때렸어.
빛에게 선택받지 않은 사람들은, 너처럼 병이 들었을 때, 치료를 받아. 도시로 온다고 했나?
도시로 갈거야. 아무리 그래도 동굴 속에 갇혀서 열병에 시달리고 싶지는 않거든.
새벽제비는 손가락을 들어 까마귀의 말을 멈췄다. 그 때 새벽제비는 아직 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까마귀는 그 눈을 기억했다. 옥석과 같이 반짝이던 눈을, 옥석과 같이....... 은은하게 반짝이며 어떤 감정도 내주지 않던 눈을. 새벽제비의 마음은 몇 세기에 걸쳐 닳았다.
......하지만 치료는 받지 않을거란다.
그래. 너같은 괴짜들을 위한 병동도 있어.
나를 위한 모든 자비로운 것들이 싫다.
대체 왜 그러는거야?
말했잖아, 나는 드디어 이 세상을 스쳐지나갈 수 있게 됐어.
너무 오래 살아서 어떻게 된게 아니라?
악에 받혀 까마귀가 따져물었다.
너무 오래 살아서, 모든게 덧없어 보이는 것이겠지. 아이만 서른 명이랬던가? 그 아이들을 떠나보내며 어딘가 망가진게 분명해.
침묵이 감돌았다. 까마귀는 후회했지만, 사과하기는 싫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삼키고 또 삼켰다. 새벽제비는 생각했다. 계속 달려요, 그래서 계속 달렸다. 이젠 쉬고싶었다. 까마귀가 자신의 말에 괴로워하는 것을 알고 새벽제비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수 세기 동안 아이들을 키웠고, 묻었다. 나는 수 세기 동안 연인을 만나 사랑한 적이 있었고, 그들도 묻었다. 나를 짝사랑하던 이도 묻었고, 내가 짝사랑하던 이도 묻었다. 하지만 나는 미치지 않았어.
그렇다면 치료를 받아.
새벽제비는 답을 하지 않았다. 거절의 의미라는 것을 아는 까마귀는 가느다랗게 물었다.
나를 위해서라도, 그럴 순 없는건가?
가까이 오거라.
새벽제비는 수행원의 도움을 받아 걸음을 옮겼다. 수행원이 그의 팔을 놓자, 그는 희부연 안개 속에 홀로였다. 그는 습기의 냄새를 맡았다. 따듯한 냄새였다. 자박거리면서 오는 발걸음 소리는, 그처럼 맨발이었다. 어째서, 여기에, 그런 차림으로, 그의 의심은 짧게 끝났다.
너는 오늘.
대부분 그는 지칭되지 않았다.
하이옌이다.
특히, 이름으로는. 그는 눈을 내리깔았다. 오늘은 어쩐지 슈로 있고 싶었다. 여왕의 앞에서. 남자의 몸으로 있고 싶었다. 새벽제비는 그러나, 입을 뗐다.
예. 당신에게 있어서 저는 여인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아와 나를 안거라.
새벽제비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고,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묻어났다. 몇 걸음을 걸어야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는 앞으로 쓰러지듯 여인을 끌어안았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사람 만큼의 부피도, 조금 높은 온도도, 습기 어린 향긋한 냄새도 그 자리에 있었으나, 그건 없는 것이었다. 그만큼의 공허가, 덧없음이, 사그러짐이, 굶주림이, 굶주림이,
슈!
까마귀가 그를 거칠게 흔들었다.
슈, 아니, 하이옌, 숨을...... 숨을 같이 숨을 쉬자, 응?
새벽제비의 목구멍에서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하루하루 야위었다. 그는 다달이 꺼지는 모습으로 여왕 앞에 나아갔다. 여왕은 지독히도 무심한 태도로 그를 맞이했다. 내가 죽어가는 것을 알기는 할까, 하지만 그것이 여왕과 그 간의 계약이었다. 여왕 마라 소프는, 새벽제비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대신, 그의 마지막까지 새벽제비를 여왕의 전령으로 사용한다.
네 마지막을 어떻게 알고 귀신같이 지켜보겠다는 것이지?
까마귀는 불만 가득하게 물었다. 네가 병원에 있다면 마지막을 지켜볼 수 있겠지, 의사들이 연락을 하면 되니까, 그런데 넌 집에 있고 나만 너를 보고 있다. 선봉대는 네게 거처를 마련해주었으나, 네 병세까지 들여다 볼 정도로 한가하진 않다. 새벽제비는 긍정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문에 까마귀는 마지막 말을 삼켰다. 나는 네 죽음을 허락받지 못했는데, 어째서.
까마귀 앞에서 너는 어떻게 변모하는가.
여왕이 물었다. 다소 무례한 질문이었다. 새벽제비의 정신은 수많은 위성들이 그러하듯, 변화하는 것 처럼 보인다. 두 성별이 번갈아가며 새벽제비의 머리 안을 맴돌았다. 여인일 때는 하이옌으로, 사내일 때는 슈로, 어째서인지 까마귀 앞에서는 슈로 스스로를 정체화했다. 그 미묘하고도 불합리한 작용을 설명하지 못해 새벽제비는 입을 열지 못했다.
내 앞에서 너는 내가 명한대로 탈피하지. 그것은 왜 그러한가?
그건.......
새벽제비는 그 물음에 대해서는 명쾌히 답을 할 수 있었으나, 주인이 들을 것은 아니었기에 열었던 입을 다물었다. 여왕이 낮게 웃었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냐.
여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똑같이 무릎을 꿇었다. 새벽제비는 한쪽 눈이 거의 멀었기에, 마라 소프를 온전히 보지 못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알고있구나.
두 눈이 모두 멀고, 여왕의 껍질을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되자, 새벽제비는 손을 모아 그 앞에 나갈 수 있었다. 여왕은 흡족해했다.
무엇을 해야할지 잘 알고있구나.
기탄잘리. 그 아이는 염세적인 아이였다. 팔찌를 여러개 끼고 있었는데, 값이 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새벽제비는 굳이 그에게 긍정적인 시각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말했다.
아직 밖은 위험하니, 네가 다 자랄 때 까지 내 옆을 지켜다오.
기탄잘리는 그에게 종이접기 하는 법을 배웠다. 사실 트로이메라이에게서 배운 것이 더 크다. 트로이메라이는 아이들에게 좋은 스승이었다. 어느날 새벽, 트로이메라이는 그에게 영상을 하나 가져왔다. 기탄잘리는 울고 있었다. 울며 종이접기를 하고 있었다. 길고 긴 서간문으로. 새벽제비가 전해야하는 서간이었다. 기탄잘리는 글자로 빼곡한 종이배를 들고 냇가로 갔다.
괜찮을까?
트로이메라이가 물었다.
글쎄요, 하지만 자신은 없네.
내가 더 지켜볼게요. 오늘은?
공허했다. 그래서 새벽제비가 말했다.
새벽제비.
그 이름 싫어하잖아.
어쩌겠어요.
기갑단 납탄이 날아와 트로이메라이를 맞췄다. 그는 트로이메라이가 만든 그림자에 숨었다. 시야는 돌아오지 않았다. 발은 날래게 내달렸다. 하이옌은 굶주림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자 슈는 마지막 덩어리를 토해내고 발작적으로 숨을 쉬었다.
슈, 괜찮나?
까마귀가 그를 꽉 껴안았다. 파랗게 죽어가던 입술이 차차 피부색으로 돌아왔다. 둘은 너절하게 앉아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네가 이러는 것을 보는게 점점 힘들어져, 슈. 아니,
슈 맞다.
하지만 아까는 하이옌....... 그래, 슈.
네가 나를 위해 해주는 것은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단다, 얘야. 언제든.......
까마귀의 몸이 분노로 굳는 것을 느꼈다. 슈는 낮게 웃었다.
그만 두라고 하면 너를 무시하는거겠지. 하지만 치료는 받기 싫다.
넌 죽고싶은건가?
새벽제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환상은 깨어졌다, 신은 찬양받았다, 이제 짧은 거리만 남았을 뿐이다. 삶의 굶주림은 죽음과 위장을 공유했다. 새벽제비에게 있어서 이 모든 고통은 현실이었다. 환상도, 신도, 사랑도 그 어떤 것도 그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그는 담담히 발바닥을 털고, 지팡이를 짚고, 내달렸다.
글쎄. 언젠간 너도 나를 이해할 때가 올거란다.
그랬으면 좋겠군. 일단 씻을까,
웃긴 말이지만.
까마귀의 부축을 받고 새벽제비가 일어섰다. 그는 한참을 큭큭거렸다.
배고파.
까마귀는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곤 새벽제비를 화장실에 밀어넣었다. 이번엔 흰 죽만 줄거다, 까마귀가 따끔하게 말했다. 새벽제비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때가 있었다. 때로는 죽은 이들에게, 때로는 트로이메라이에게, 때로는 까마귀에게, 또 때로는 흠모하는 여왕 폐하께. 그렇게 공책을 하나 빼곡하게 채우면 그는 종이배를 접었다. 띄울 냇가를 봐두었다. 그는 손 끝에 피를 내었다. 그 위로 배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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