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티니 2 연성

[드림] 나무에 열리다

드림썰에 대한 보상 규정은 샤크스 경의 "드림연성 피해조항 8조" 를 살펴보세요

* 이쯤되면 데스티니 세계관은 내 습작에 희생된게 아닐까

* 등장인물 [까마귀]

그것은 리프의 지도였다. 까마귀는 가볍게 인상을 썼다. 그는 그 지역이 어디인줄 알고 있었다. 수호자들에게 열려있지 않은 도시였다. 인구를 관리하는 도시, 아이들을 키우는 도시. 새벽제비는 까마귀에게서 지도를 뺏듯 가져갔다.

남의 것을 함부로 보면 안돼.

새벽제비가 경고했다.

함부로? 그 이전에, 난 지도의 내용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마치 네가 리프의 요원이라도 되는 듯 말하는구나.

날카로웠다. 까마귀는 그 말에 베여 잠시 숨을 들이켰다. 울드렌 소프의 기억을 되찾았다고 해도, 그는 더 이상 리프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 속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대화는 끝났고, 새벽제비는 지도를 한번에 그러모아 둘둘 말았다.

이 이야기는 새벽제비가 자신의 지도를 선봉대에 증여한 뒤에 뜬금없이 이어진다.

새벽제비는 지도를 가지고 선봉대에 갔을 때 보다 더 병들었고, 맑았던 그의 눈은 희뿌옇게 변해있었다. 까마귀는 일이 없을 때 매일 같은 시간 새벽제비를 방문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 그를 돌보았다. 그 날도 그랬다. 그는 별 생각 없이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요양보호사라고 소개했다. 올바른 일이었다. 까마귀가 왔으니, 그는 자리를 비우겠다고 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말을 남기며. 까마귀는 침대에 기대듯 누워있는 새벽제비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말은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네가 불안해 할 것 같아서.

하지만,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새벽제비가 요양보호사를 부른 것은 정말 의외의 일이었다. 까마귀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쩌면 새벽제비가 마음을 돌리고 자신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병은 좀 힘들지만 완치가 가능한 것이다.......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새벽제비는 자신의 계획을 주절주절 늘어놓기 시작했다. 까마귀가 힘들 것 같아 전문 인력을 불렀을 뿐이고, 간단한 수액 정도는 맞을 수 있겠지만 병은 그대로 둘 것이었다. 죽는 것을 조금 늦추는 정도.

내가 사랑한 것들처럼,

사라져가겠다고?

까마귀는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꺼냈다. 정제되지 않아 웬갖 감정이 다 섞여있었다. 슬픔, 분노, 애수, 걱정, 불안, 영원히 죽어버리는 것에 대한 확신.

그럼 난 그 뒤에 남는데, 슈, 너는 사라져가도 나는 남는데.

말해봐야 새벽제비가 마음을 바꿀 리 없다는걸 알았다. 그런데도 까마귀는 입을 열었다 닫았다, 새벽제비를 설득하고싶어서 안달이 났다. 새벽제비는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다른 얘기를 하자꾸나.

까마귀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감정을 삼키려 했다. 지금 이렇게 말해봤자 두 사람의 의견은 평행선을 달리기만 할 것이다. 까마귀는 그래서 아무 화두나 던졌다.

위대한 사냥 때, 넌 뭘 했지?

아하하, 새벽제비가 답지 않게 큰 소리로 웃었다. 까마귀는 자기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잠시 고민했다. 새벽제비가 웃은 이유는 별 것 아니었다. 수호자들은 용을 잡고, 전설을 만들어 떠벌리고 다녔지만, 새벽제비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위대한 사냥에 참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이잖아! 잡아보고 싶지 않았나?

알다시피 나는 용을 잡기엔 능력이 애매했지. 그리고 애도 딸려있었다고.

들어보면 넌 애를 키우기 위해 수호자가 된 것 같아. 서른 명이랬나.

네가 하는 꼴을 봐서는 서른 한 명으로 늘어난 것 같구나. 그런데, 얘야.

새벽제비가 말을 멈췄다. 까마귀는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의 표정이 애섪게 일그러졌다.

소원의 용을 본 적은 있단다.

표정을 보니 좋은 결과는 아니었나보군.

그럼. 용이 나에게 소원을 묻지 않았거든.

그는 부드럽게 웃었다.

아이를 훔쳐온 여자가 있었고, 그 여자를 쫓아온 사냥터지기가 있었다. 그 둘은 아함카라를 만났고, 여자는 자신이 아이의 가족이 되기를 빌었으며, 사냥터지기는 여자를 연행하고 아이를 안전하게 리프로 데려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자리에 우연히 내가 있었는데, 아함카라는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나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지.

그렇게 되리라, 아함카라는 말했다. 새벽제비는 자신의 두 손을 보았다. 그리고 바위에 놓인 포대기에서 뭔가 불편한지 이리저리 뒤채이는 아이를 보았다. 여자와 사냥터지기는 상반된 소원을 빌고는, 어떤 소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아함카라에게 따져 묻고 있었다. 새벽제비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그는 아함카라의 도구였다.

어떻게 이루어졌는진 몰라도 끔찍한 결과였겠군.

까마귀가 말했다. 새벽제비는 아이를 품에 안아 이마에 입을 맞추고 여자와 사냥터지기를 등 뒤에 놓고 냅다 달렸다. 그 두 사람이 새벽제비의 배신을 눈치챈 것은 몇 분 뒤에서였다. 아함카라는 주둥이를 활짝 벌린 채 웃었고, 그의 등에 난 촉수는 뭐가 기쁜지 팔랑거리고 있었다.

맞아. 내가 그 아이를 들고 튀었거든.

뭐?

용은 나에게만 소원을 묻지 않았어.

아이는 잘 자랐나?

하지만 유약했어. 자신의 과거를 너무나도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의 과거를 들고 도망가버렸어. 그 아이는 찾을 수 없어서 여자와 사냥터지기에게 아이의 사망을 통보했단다.

하....... 마라와 함께 하더니 물들었나보군. 너도 신비주의 이런 것으로 나가려 하는건가?

까마귀는 갑자기 새벽제비의 굴에 있던 지도를 떠올렸다. 리프의 지도. 지도들은 모두 선봉대에 양도했다고 했다. 그럼 리프의....... 지도도, 어쩌면 군사적으로 악용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그것도 같이 양도된건가? 아니, 애초에 이 지도는 새벽제비의 이야기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까마귀는 그런 두려움은 상관도 않는 사람이었다.

새벽제비. 네 지도를 기억하나?

맞아. 리프의 지도, 그 때 같이 들고 뛰어갔어.

왜? 어차피 아이를 데리고 리프로 돌아갈 것은 아니었잖아.

새벽제비는 잔잔히 미소지었다.

아이의 포대기 속에 숨겨져있었는걸.

선생님.

성인이 되던 해, 아이가 울며 앞으로 나왔다. 새벽제비는 그가 여자를 만났음을 직감했다. 최대한 침착하게, 새벽제비는 폭신한 잔디밭에 아이를 앉히고 담요를 둘러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아이의 옆에 자신이 앉았다. 아이는 코를 훌쩍이느라 말을 하지 못했고 새벽제비는 아이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그 여자를 만났구나, 얘야.

새벽제비가 말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줄 생각이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반대할 생각이었다. 아이는 머뭇거리다 말했다.

사실은, 네, 저를 주기적으로 찾아오셨어요.

그건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새벽제비는 트로이메라이를 쳐다보았다. 트로이메라이도 전혀 몰랐다는 듯 위아래로 동동 떠다닐 뿐이었다.

제가 열 다섯살이 되었을 때 부터.......

괜찮아. 하지만 위험한 짓은 하지 않았나보구나.

네. 저의...... 어...... 머니, 니까요.

아이는 그리고 입을 다물었다. 다시 그 아이가 입을 열었을 땐, 엄청난 부탁을 꺼냈다.

저, 리프로 돌아가고 싶어요.

새벽제비는 리프가 어딘지 물었다. 푸른 피부를 가진 동족이 어디서 지구로 도착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가 무척 적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선했고....... 개중은 승천자가 되었고....... 새벽제비는 그 날 그들이 리프라는 국가에서 떨어져나온 자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이는 새벽제비에게 지도를 주었다.

리프의 지도도 선봉대에게 줬나?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까마귀는 잠시 생각했다. 새벽제비의 날카로운 말에 깊게 베여 아무것도 못 한 것을 기억했다.

나는 리프의 요원이 아니지만, 이건 중요한 문제다. 그 지역은 너희...... 어쩌면, 우리들에게서 숨겨진 지역으로.......

걱정마라, 까마귀. 지도는 완전히 파기되었어. 선봉대는 그 지도가 있는지도 모른다.

파기?

내용 이전에, 내 마음이 그러지 말라고 시켰어. 그건 내 자식의 유품이기도 했거든.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새벽제비.

까마귀가 쏘아붙였다.

나는 늙었고, 말은 종종 두서없이 들리기도 한단다.

새벽제비가 부드럽게 받아쳤다. 그의 귀에는 아이의 비명이 들렸다.

그래서 요양보호사를 부른거야. 널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슈. 내가 화를 냈던건, 네가 너만 생각하고 있어서야.

선생님, 저 어떡해요,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죽은 사냥터지기를 붙잡고 있었다. 뒤에는 사냥터지기의 동료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아이가 만났던 이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 여자는 일찌감치 죽은 지 오래였다. 리프의 사상범으로, 인공자궁을 허락받지 못한 예비 부모였다. 여자는 자궁을 훔쳤고,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남몰래 자라는 동안 사냥터지기는 여자를 죽이고 아이를 만나왔다.

얘야. 그 시체에서 떨어져. 아직 초입이다, 지구로 돌아간다.

아이가 리프에 도착했을 때, 사냥터지기가 서있었다. 아이는 기쁘게 외쳤다.

어머니!

사냥터지기는 자동소총을 들이밀었다. 아이는 살고싶었다. 사냥터지기의 말에 온순히 움직이다, 망가진 인공자궁이 쌓여있는 곳에서 사냥터지기의 총을 뺏으려고 했다. 오발 사고도 아니었다. 아이는 사냥터지기의 발을 걸었고, 사냥터지기는 인공자궁에 머리를 박고 그대로 죽어버렸다.

가야 해, 어서 움직여!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쩌면 움직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새벽제비는 그가 가장 잘 하는 것을 했다. 모든 것을 뒤에 두고 달려 도망치는 일. 새벽제비는 까마귀의 음성이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딘지 어설펐다.

맞아....... 어쩌면 이건 이기심이다. 아니, 이기심이지.

까마귀는 새벽제비의 침대맡에 무릎을 꿇고 그의 턱을 가볍게 잡아 자신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움직였다. 새벽제비는 기꺼이 움직여주었다.

병원을 찾아놨어.

그런데 까마귀, 나는 수없이 보호자였다. 아이들과 가족의 연을 맺으려 하진 않았지만 뜻대로 되진 않았지. 어쩔 때는 부모로, 어쩔 때는 선생님, 어쩔 때는..... 새벽제비....... 난 그 수많은 호칭 속에서 이기적이었다. 너라도 그럴 것이다, 까마귀.

한 번 만이라도 이타적일 수는 없는거야? 그냥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살아가는거야. 그것 만으로도 나한텐 큰 위안이 돼....... 고스트를 잃은 수호자라고 모두 피동적인 자살을 꿈꾸지는 않는다고!

요상하게도 그는 발각되지 않았다. 아니, 그쪽에서 놓아준 것일 수도 있지. 그에게는 이제 지도 한 장이 남았다. 아이의 포대기에 있었던 지도. 사냥터지기는 그 지도를 미끼로 아이를 낚아올렸다. 그리고 새벽제비는 도망쳤다. 새벽제비는 자신의 얼굴에서 까마귀의 손을 떼냈다. 그리고 그 손을 포갰다.

얘야, 힘들면 오지 않아도 된단다.

까마귀의 표정은 모욕감으로 일그러졌다.

아이야....... 너의 머리칼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면.

지고한 사랑이었으나, 그만큼 잔인하였다. 까마귀는 손을 털고 벌떡 일어나 크게 발소리를 내며 나갔다. 거칠게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새벽제비는 생각했다. 그와 자신간의 관계는 절대, 자식같은 이를 보는 늙은 수호자여야한다고.

카테고리
#기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