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한 낙원
시베라이트 평전 - 인간의 시간으로, 초등학생 고학년 시기에.......
교실의 분위기가 흉흉했다. 학우들 모두 똑같은 이야기를 엿들은 것이다. 하티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시베라이트는 학급 반장이었다. 그는 선생님을 모시고 오겠다는 핑계로 교실을 빠져나가, 교무실로 향했다. 아이들은 시베라이트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안 하려고 했다. 시베는 엿듣기 대장에 고자질쟁이니까요! 그게 아이들의 이유였다. 들키지 않을 정도로 교무실 문을 빼꼼히 열었다. 교무실엔 없었다. 그럼 상담실. 상담실의 커다란 유리창은 알록달록한 시트지로 가려져있었다. 상담실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사람이 있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사용중 표지판에 불이 들어와있으니까. 그러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방음벽 때문일 것이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사용중 표지판의 불이 꺼졌다. 시베라이트는 문득 겁이 나 계단층으로 숨었다.
그럼 잘 생각해보렴, 하티.
선생님의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하티의 대답은 없었다. 대신 계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시베라이트는 하티가 자신과 곧 만나게 될 것을 알았다. 숨어있다가 들키는 것 보다 자연스럽게 만난 척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시베라이트는 계단을 내려가는 척 했다.
하티! 교실에 없어서 찾으러 나왔어.
하티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다 들었지? 넌 엿듣기 대장이잖아. 부모님한테 고자질할거리를 찾기라도 한거야?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상담실에 있었단 말도 안 했는데 “엿듣지 않았다” 고 얘기했잖아. 문 틈으로 다 들렸어?
시베라이트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하티에게 그런 의심을 받는다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다.
맞아, 너 엿들으려고 했어. 그런데 하나도 안 들렸어. 하지만, 하티,
우리 어머니들 나쁜 사람 아니야.
하티가 그렁그렁한 눈을 슥슥 닦았다. 그리고 시베라이트를 지나 계단을 올라갔다. 하티는 며칠 동안 결석했다. 시베라이트의 어머니들은 이유를 알고 있는 눈치였지만, 시베라이트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티가 어디 아픈게 아닐지 걱정되는걸요?
시베라이트가 발을 툭툭 차며 눈을 반짝였다. 어머니들은 이러면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시베라이트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시곤 했다.
네가 알 일 아니다.
어머니께서 화내듯 말했다. 그런 어조로 말하는 것은 몹시도 이례적인 일이었기에, 시베라이트는 약간 겁에 질렸다. 다른 어머니가 시베를 달래주면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하티 아픈게 아니에요?
얘야, 시베……. 어른들의 일이란다. 캐묻는건 좋은 습관이 아니에요. 내일 학교 가야지, 잘 자렴.
자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시베라이트는 그래도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에겐 필살기가 있었다. 엿듣기 말이다. 어머니가 나가고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시베라이트가 문을 살짝만 열었다. 어머니들이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두 분이 모두 들어가고, 잠시 있다 시베라이트는 살금살금 방을 나왔다.
아이만 불쌍하게 됐지.
그렇게 생각하지 마, 그 아이도 물들었을지 누가 알겠어.
시베라이트는 자신을 지나쳐 계단을 올라가는 하티에게 소리쳤다.
그래서?
하티는 입을 댓발 내밀고 시베를 쳐다보았다. 시베라이트가 다시 소리쳤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네 입으로 듣고싶어. 엿듣는게 아니라!
아는거 아니야?
아냐! 아니, 어쩌면 알고 있는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 친구잖아. 우리 저번에 커플 인형도 샀잖아.
우정 인형이라니까.
하티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다시 시베라이트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놀러가듯이 운동장으로 나갔다. 당연하게 그네에 앉았다. 말 없이 그네만 앞 뒤로 움직였다. 두 개의 진자가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겹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어긋나있었다. 하티가 입을 열었다.
우리 부모님, 감옥 갔대.
뭐?
평소처럼 어머니들은 늦으셨고, 하티는 밥을 데운 뒤 숙제를 하면서 밥을 먹었다. 어머니들이 보시면 둘 중 하나만 하라고 혼냈겠지만 지금은 어머니들이 없는 신나는 시간 아닌가. 하티는 어머니들이 조금 더 늦으면 그동안 취침 시간 때문에 보지 못했던 드라마를 볼 생각이었다. 그 드라마에는 무려 남자 배우가 나왔다…….
하티, 문 열어! 당장!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하티는 깜짝 놀라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엄마?
하티!
하티는 어머니의 비명에 놀라 문을 열었다. 긴장해서 오래 걸렸다. 눈물이 터져나왔지만 하티는 이제 고학년이었기 때문에 어른스럽게 참았다. 문이 열리자, 어머니는 쏟아지듯 들어와 하티를 껴안았다.
엄마, 다른 엄마는?
어머니는 답하지 않았다. 황급히 하티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세상에서 제일 다정하게 뺨을 쓰다듬어주었다.
네가 굴종이란 단어의 뜻을 알게 된다면…….
그리고 경찰들이 왔다. 하티의 목소리가 떨렸다.
경찰들이, 엄마를 끌고갔어.
그럼 다른 어머니는?
다른 엄마도 며칠 뒤에 잡혔대.
왜?
하티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시베라이트도 코를 훌쩍였다. 하지만 경찰이 나쁜 일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의 하지만, 하티의 어머니들은 정말이지 좋은 분이셨다. 어릴 때 자주 하티의 집에 간 적 있었다. 하티가 시베라이트네 집을 한번 방문한 뒤로는 다신 초대해주지 않았지만.
학교에, 학교에 못 가게 했어. 경찰들이. 뭘 조사해야한대서.
그것도 충격이었다. 하지만의 하지만의 하지만, 하티는 모범생으로 상장도 받은 학생이었다. 물론 공부를 잘하진 못했지만, 개근상을 받은 아이였다. 하티는, 그러니까, 모범생이고, 경찰들이 잡아갈 이유가 없는 친구였다.
잘 모르겠어.
시베라이트가 중얼거렸다. 하티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두.
근데 네가 모르면 안되지 않아?
반 1등도 모르는데 내가 알 수는 없어.
그런데…….
시베라이트는 궁금하던 것을 꺼내놓았다.
넌 그럼 이제 누구랑 살아?
하티의 어머니들은 가족들이 없었다. 지류에 가족들을 두고 이 곳으로 왔다고 들었다. 시베라이트는 상상해봤다. 어머니들이 없는 상황의 자신을……. 사실, 집안일 중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었다.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용돈은 누가 준단 말인가?
혼자 살고 싶으면 혼자 살아도 된대. 대신에 사는데 문제 없게 보호사들을 보내줄거래…….
아니면,
선생님이 말했다.
기관에 가는 방법도 있단다. 운이 좋으면 위탁가정을 찾아 갈 수 있을 것이고. 기관이 좋으면 거기서 어른이 될 때 까지도 살아도 된단다! 나는 이 쪽을 더 추천해.
기관을요?
그래. 아마 그 곳에서 교육을 받으면 새로운 방향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거야.
선생님. 우리 엄마들이랑은 다시 못 살아요?
선생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건 꾸며낸 것이었다. 하티는 요 며칠간 그걸 많이 겪었다.
안타깝지만, 하티의 어머니들은 큰 죄를 저질렀어요. 아마 하티가 어른이 될 때 까지는 못 만날거란다.
무슨 죄요?
하티는 아직 이해할 수 없어.
아뇨!
하티가 벌떡 일어났다.
아뇨, 저도 이해할 수 있어요! 공부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이해해볼 수 있어요! 사전도 찾아보고, 검색도 해보면 되니까요.
선생님은 서글픈 미소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티는 멈춰버린 그네를 발로 까닥이며 움직이다 땅을 박찼다. 그네가 위로 솟구쳤다. 시베라이트는 점점 높이 올라가는 그네를 보다 하티의 귀에 들릴 정도로 크게 물었다.
그래서, 넌 보호사랑 기관 중 뭘 선택할거야?
그네는 답이 없이 숨가쁘게 오르내렸다. 그리고 그네가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 하티는 겁도 없이 그네에서 뛰어내렸다. 모래밭 속에 하티의 발이 깊게 박혔다.
몰라.
하티가 신발에 들어간 모래를 털어내며 말했다. 시베라이트가 그네에서 일어섰다.
이거 어때?
뭐가.
도망가는거야.
어디서?
몰라.
두 사람은 마주 쳐다보다 키득거리며 웃었다. 시베라이트와 하티가 다시 손을 잡고 학교로 걸어갔다. 시베라이트는 머릿 속이 아이디어로 팽팽 도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계획은 이래. 일단 대형 수송 도약선을 타고 멋진 곳으로 가는거야.
멋진 곳? 어디?
여긴 리프잖아, 멋진 곳은 어디든 있을거야.
응, 그렇지. 그리고?
네가 거기서 자리를 잡고 멋진 집을 지으면, 어머니들도 오해가 풀려서 너를 만나러 올거야.
하티는 활짝 웃었다. 시베라이트는 어머니들의 지갑을 훔쳤다. 그리고 옷장 속의 보석함을 열어 귀걸이도 한 쌍 훔쳤다. 하티에게 하나를 주고, 자기도 하나를 가질 생각이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한쪽 귀에 귀걸이를 걸고 만나기로. 하티는 활짝 웃었다. 시베라이트는 어머니들의 지갑에서 돈을 빼 수송 도약선의 표를 사려고 했다.
어머,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어딜 가려고?
매표원이 창 너머에서 친절하게 물었다.
혹시 멋진 곳이 어딘지 아세요?
시베라이트는 이렇게 큰 허브는 처음이라 살짝 긴장했다. 늘 국가에서 지원해준 개인 수송기를 탔기 때문이다. 하티는 시베라이트를 쿡 찌르고는 제법 어른스럽게 물었다.
저희 여행가려고 하는데 어린이가 살기 좋은 멋진 곳을 가보려고 하거든요. 학교 숙제에요.
그래? 멋진 곳? 돈은 있니?
시베라이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머니들의 지갑에서 뺀 돈을 몽땅 건네주었다. 매표원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다시 온화한 미소를 띄웠다.
우리 친구들, 일단 표 발급받기까지 시간이 걸리니까, 저 가게 앞에서 기다릴까요?
두 사람은 신나서 활짝 웃었다. 손을 마주 잡고 매표소가 보이는 가게 앞에서 표가 나오길 기다렸다. 시베라이트는 손을 펼쳤다. 귀걸이가 한 쌍 빛나고 있었다. 흰색 보석이 둥글게 달려있었다.
자. 이제 너 멋진 데 가면 나랑 만나기 힘들거잖아. 마지막 우정 아이템.
시베라이트가 귀걸이 하나를 줬다.
비싸보여.
훔쳤지.
너, 어머니들한테 혼나는거 아니야?
저쪽에서 경찰들이 왔다. 하티가 굳었다. 시베라이트는 하티의 손을 꼭 붙잡아주었다.
귀걸이 훔쳐서 왔나봐.
시베라이트가 겁에 질려서 속닥였다. 하티는 입을 꾹 다물고 천천히 다가오는 경찰들을 노려보았다. 자수를 하면 양형이란게 줄어든다고 들었다. 시베라이트는 주춤거리며 귀걸이를 내밀었다. 경찰들은 귀걸이를 무시하고 시베라이트와 하티를 데려왔다. 시베라이트가 훔친 수많은 돈은 어머니들께 바로 전달되었다. 시베라이트와 함께.
하티……. 하티는 어디로 가요?
시베라이트가 보호소에서 경찰과 함께 어디로 가는 하티를 보며 다급하게 물었다. 경찰은 잘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시베라이트는 귀가했다. 어머니들은 시베라이트의 행동에 몹시 실망하며 5일간 외출 금지령을 내렸다. 시베라이트는 외출금지가 풀리자마자 하티의 집으로 가봤지만, “임대” 딱지만 붙어있었다. 시베라이트는 그 이후로 하티의 집을 찾아가지 못했다. 이사를 간 까닭에서였다. 이유? 뻔했다. 하티 때문이었다.
하티같은 집 애랑 놀게 한게 우리의 실책이었어.
시베라이트는 그 이후로 안방에 귀를 대지 않았다. 이사간 뒤, 하티에 대한 소문을 들으려 했지만, 허브에서 있었던 가출 소동 이후 전학을 갔다는 얘기만 알 수 있었다.
안녕.
시베라이트가 놀라 책을 떨어뜨렸다.
누구…….
건장한 남자였다. 남성 각성자는 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시베라이트는 의아한 눈으로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아. 기억 못하나.
무슨-,
시베라이트의 눈이 그의 귀에 닿았다. 어머니의 귀걸이었다. 확실히 기억했다. 그건 시베가 훔쳐본 적 있는 것이었으니까. 시베라이트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