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다, 헤아리다.
도원괴이담6
낫낫하다. 천도량이 여량에게 지닌 첫인상이었다. 사르라니 녹아내리는 밀색 머리칼이 잘 어울렸다. 전반적으로 색감 제각각인 이들 사이에서 무난해서 눈에 드는 축이라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첫인상이라는 놈은 결국 선입견이고, 심지어 그와 대화 한 번 나눈 적이 없다면 편으로 시작해서 견으로 끝나는 놈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천도량은 남하는 재밌는 것은 다하는 것이었으니 분란의 싹이 되는 이 흥미진진한 행위를 하지않을 이유또한 없었다. 한마디로- 천도량은 타인의 첫인상을 확정적으로 단정짓는 면이 있다. 붕대인지 뭔지로 눈을 가린 요괴의 성정을 단지 '순하다'에 박아둔 이유도 그때문이었다. 그를 믿은 탓에 결과는 확실하고도 명확한 패배다. 무엇에 대한 패배냐 묻냐면 마땅히 모든 것에 대해 논論하는 일의 패배라고 할 수 있었다. 어우, 틈에서 말하는 연습만 했나봐. 틈에서 틈 비집는 연습만 했는지 허점이 있으면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 그 능력이 가히 달변가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도량은 그때서야 시선을 바꾸었다. 서무인이 맞나봐. 말을 잘하는 일은 청랑인의 일이지 않냐고? 천도량의 답변은 여량의 답변이 어딘가 호쾌한 구석이 있다였다. 이겨먹자는 승부욕은 강하지 않다 자부하고 살았다. 세상만사 한치 앞도 모른다고, 누군가의 주둥이를 때려보겠다는 심보가 들어찰 줄은 몰랐다. 심지어 영락없이 보이지 않을 줄로만 알았던 시야가 트였단다. 그럼 대체 언제나 이길 수 있나. 연륜 넘치는 요괴의 농을 분간할 수 있을 때쯤이면 천도량도 연륜이 쌓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해보였다. 당장은 요원한 일이다.
그쯤에서야 천도량은 시장에서 잡는대로 잡히는 이의 자세가 되었다. 여량이 별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논조를 기워맞추는 경지에 도달했으니. 평범하게 시야가 차단된 줄도 모르고 어림짐작으로 맞춘 답에, 과연 요괴여서 그런가보다고 답한 것이 첫번째였다. 그러다 천도량도 지지않고 반격을 했는데 부부는 삼세의 인연이라는데. 우리 혹시...? 당황한 낯이 아직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물론 그후에는 반응이 제일 재밌는 이라 좋다느니 하는 반격을 받았지만. 천도량은 그때에 가서는 그마저도 즐거웠다. 편하게 여긴다는 말의 다른 형태로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남들 앞에선 얼마 뽑내지 않았던 시문도 드러낸 것일게다. 그의 어미는 신분치고는 여염집과 같은 실력을 지녔으며, 실력에 비해서는 세상의 기준에서 이상하리만치 순수하게 즐겼다. 천도량이 책보고 아무자나 골라 지은 시에도 웃음소리가 경쾌하게 굴러다닌 일화가 쌓여있었다. 하여 천도량은 가끔 들춰서 혼자 짓고 말뿐으로 그닥 즐기는 편이 아니다. 혼자 즐기면 재미 없잖은가. 그렇다고 타인과 시문으로 교류하자니 그보다 재밌는 일이 많은데 굳이 싶어, 미뤄두었다. 그런 애매하고도 지지부진한 사정을 거쳐 딱 맞는 기회가 찾아오자 옳다고 내보인 것이다. 그러니 답가가 왔을 때야 놀랄 수밖에. 그도 정성스럽고 진심이 담긴 답가였으니. 이 거친 느낌의 시문또한 아껴야 당위에 들어맞았다.
어깨 잡은 손 위로 천도량의 손이 겹쳤다. 절교는 무슨. 평생 안 놔준대도. 자자, 보자. 물결때문에 임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지? 이 얼마나 좋은 시상이야. 아님 내 눈물에 잠겨 듣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지. 어찌됐든 백이면 백 좋다고 할걸? 뻔질한 낯과 과장스러운 몸짓은 덤이었다. 그걸 제한다면 천도량이 답가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리라.
"아! 우린 답가를 나눈 사이니까, 마음껏 웃어도 돼~."
근데 진짜 웃지는 않을 거지? 내 말은 조소하지 말란 소리야. 순수하게 웃어주길 바라! 천도량은 말도 안되는 부탁과 함께 밀색 머리 위로 올라앉은 도화꽃잎을 털었다. 차분한 음색이 공간을 메웠다. 도화꽃잎 살랑살랑 바닥으로 떨어지듯 한들거린다. 무엇을 그리는지, 평소보다는 퍽 차분함이 따랐다.
"사랑시라고 했어도... 그렇잖아. 임은 꼭 연인이 아니어도 좋아."
"난 어머니가 보고싶은데, 너는?"
늦었습니다... 편히 스루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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