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두 발짝

상호태성

페일 펜슬 by 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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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 던져진다. 태성은 그 볼이 길게 빠졌다는 걸 짐작한다. 퉁, 소리와 함께 튀어 오른 농구공은 운 좋게도 직선에 가깝게 위로 올라갔고 이어 림으로 쏙 빠졌다. 옆에서 다은이 상호를 띄워주기 위해 여전히 등신 같은 컨셉으로 말하며 팔꿈치로 상호를 툭 쳤지만 상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제대로 받아주지 못한다. 기상호는 요즈음 항상 저랬다. 혼이 빠진 것처럼 넋이 나가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집중하질 못했다. 그래도 연습 시합을 한다던가 경기가 있을 적에는 그나마 정신을 차리니 감독님은 크게 혼내기보다는 종종 뒤로 불러내어 무슨 일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 모습을 걱정하여 몇몇 이들이 말을 걸었으나 상호는 컨디션이 안 좋다는 말로 일관했다. 그러니 다들 말 얹을 것이 없다. 태성은 며칠 전 감독님이 기상호를 불러냈던 일을 기억한다. 잠깐 물이 다 떨어져서 가위바위보로 가져올 사람을 정했고 태성이 당첨되어 모두의 물통을 들고나와 물을 받고 돌아오던 참이었다. 말소리가 들렸고 그것에 무슨 일인가 가보니 감독님과 상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용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딱딱한 벽과 바닥은 소리를 조금도 흡수하지 못했고 태성은 귀가 조금 좋은 편이었다.

"상호 니, 아직도 그만둬야겠니 뭐니 하는 건 아니제?"

"걱정마시래두요. 저 이제 농구 잘 하는 거 알아요."

"근데 와 그러는데. 넋이 빠져가지고 집중 하나도 못하고 있지 않나."

"...죄송해요. 진짜 빨리 고칠테니까..."

농구를 그만둬야겠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태성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우리한테 말도 안 했나. 당장 가서 따지고 싶었는데 또 생각해보면 이젠 아닌 거 같아서 말하기는 그런가 싶기도 하고. 그러는 와중에 둘이 대화를 마무리하고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혹시나 들은 티가 나지 않도록 좀 기다렸다가 들어갔다. 가지러 간 게 얼만데 지금 오냐는 타박에 괜히 성질을 내는 척 하며 상호를 살폈으나 상호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공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공태성의 입장에서 기상호는 어려운 사람은 아니었다. 일단 자기보다 어렸고 말은 또 나름 고분고분하게 따랐으며 급할 때 저 찾는 꼴을 보면 기상호도 나름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구나 싶었기 때문에, 오히려 꽤 편한 사람에 속했다. 특히나 쌍용기 이후에는 전보다 살갑게 대하기도 해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공태성에게 기상호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대하기엔 어렵지 않았으나 그 속을 아는 것은 어려웠다. 기상호는 말이 많지 않았으나 김다은과 헛소리를 할 때 외의 말을 들어보면 생각이 많았다. 공태성 자신도 평균의 남자애들에 비하면 생각이 꽤 많다고 생각하지만 기상호는 정말로 생각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생각을 내놓는 일은 잘 없었다. 지금도 그랬다. 기상호는 이제 그 많은 생각이 티가 나는데도 입을 다물었다. 선배들은 이미 어련히 알아서 한다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신경쓰지 않으면 된다는 건 알고 있다. 근데 공태성은 그게 잘 안됐다. 공태성에게 기상호는 조금 묘한 애였다. 희찬이처럼 애가 밝고 멘탈이 강하거나 김다은처럼 매사에 적당할 줄 알면 모를까 기상호는 묘하게 그러지 못하는 애였다. 특히나 제 앞에서 그리 속앓이를 해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 속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도 못하면서 괜스레 신경이 쓰이고 조금이라도 털어놓아 편해졌으면 했다.

그러나 공태성이 아직 눈치채지 못한 거. 공태성은 기상호랑 좀 안 맞다. 공태성은 기상호가 편했지만 기상호는? 공태성을 제 팀원으로 인정하고 정을 주었으나 공태성이 예뻐하는 방식은 솔직히 기상호랑은 안 맞았다. 공태성이 기상호를 챙겨주겠다며 자꾸 말을 걸고 이 햄한테 털어놓으라고 하고. 까까 사준다며 끌고 다니고. 진짜 안 맞았다. 기상호는 그냥 혼자 좀 생각하고 싶은데 공태성은 가만두질 않았다.

결국 기상호는 성질을 내고 만다.

"내한테 신경 쫌 그만 써요. 진짜 귀찮다고요."

원래라면 어디서 형한테... 라며 뭐라고 할 텐데 그런 말을 하면서도 웅얼거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공태성은 차마 뭐라고도 못했다. 쟤는 뭐 성질을 내면서 저러냐. 꼭, 전의 경기 때 생각나게. 그래서 공태성은 한참 어물거리며 그 앞에 서 있다가 알았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돌아섰다. 화가 나진 않았는데 묘하게 서운해서, 근데 그 서운함에는 어쩐지 화가 나서 공태성은 괜스레 마음이 심란해졌다.

나도 모르겠다. 혼자서 잘 하던 애인데 저러다가 괜찮아지면 사과를 하던가 없는 셈 치거나 하겠지. 공태성은 일찍 자리에 누웠다. 서운함이 가시질 않아서 공태성은 괜히 기상호가 있을 쪽을 등지고 누웠다.


기상호에게 귀찮을 만치 다가가던 공태성이 이제는 근처에도 안 가니 주변 사람들 다 알만하다는 얼굴로 쳐다봐서 공태성은 기분이 나쁘다가도 자기가 그렇게나 귀찮게 굴었나? 싶어서 또 신경이 쓰였다. 이쯤 되면 자신이 왜 이렇게 신경을 쓰나 싶기도 했다. 쟤가 애도 아닌데, 내가 이렇게 챙겨야 하나. 근데 생각해보면 16살이면 애 아닌가. 애지... 참나. 근데 공태성은 동생이 있어 본 적이 없어서 다루는 방법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김다에게도 물어봤지만 이럴 땐 말해줄 때까지 냅두는 게 답임. 따위의 도움 안 되는 말이나 했다.

이쯤 되니 선배들도, 김다나 희찬이도 기상호에게 별다른 말을 안 했다. 감독님도 입 꾹 다문 녀석을 공연히 다그치며 들을 생각은 없으신지 더 이상 불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기상호는 여전히 넋이 나간 얼굴로 공이나 던졌다. 다들 그런 상호에게 익숙해졌다.

근데 연습 경기를 세 번째 정도 하고 나니 공태성은 자신이 왜 이렇게 신경을 쓰는지 깨달았다. 경기 때는 안 그랬는데 연습 경기 때는 기상호가 자신을 잘 안 불렀다. 예전이라면 급할 때 냅다 저를 부르던 녀석이, 부를 타이밍이다 싶어 뛰어가고 있을 때 눈을 마주치고 입까지 벌린 녀석이 머뭇거리는 걸 봤다. 공태성은 일단 기상호가 놓쳤던 상대 포가의 볼을 블락해낸 뒤 기상호를 쳐다봤지만 기상호는 고개를 돌린 채로 김다은과 실없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뭔데 대체? 공태성은 짜증이 난다. 솔직히 쌍용기 전까지 기상호가 자기에게 다른 사람처럼 살갑게 굴지 않는다는 자각은 있었다. 근데 우리 이기고 나서는 엄청 잘 지냈잖아. 매일 까까 사달라고 보채고 오늘 저녁 뭐 하면 안 되냐고 치대고. 그 후로 김다은과 별 희한한 장난을 칠 때도 기분이 괜찮으면 어울려주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저 좋다는 강아지처럼 굴었지 않나. 제가 좀 거기에 틱틱 거리긴 했어도 결국 다 해주고 그랬는데.

기껏 좀 친해진 것 같은 애가 거리를 두니 공태성은 이제 화가 났다. 영문도 몰라서 더 그랬다. 공태성은 이제 연습도 안 빠지고 연습 경기를 해도 최선을 다하면서 야간 자율 연습에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참석을 했다. 이제 준수햄과도 관계가 꽤 좋아져서 숙소의 분위기가 위기로 넘어가는 일이 잘 없었다. 근데 대체 뭐에 삐꾸가 나서 내한테 이러는데?

공태성은 울컥 화를 내고 싶다가도 결국 그것을 삼켰다. 말하고 싶으면 말하겠지. 말하라고 닦달을 해대도 말 안 하고 싶은 걸 억지로 하는 타입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안다. 진짜 나중에 말 하기만 해봐라... 공태성은 이를 갈았다.


날씨가 선선하니 가을로 들어가는 초입의 시기. 평소와 같은 날에 변화라곤 내내 공태성에게 말 한마디 따로 걸지 않던 기상호가 편의점에 같이 가자며 공태성을 불렀다. 공태성과 기상호의 미묘한 기류는 이미 알대로 안 상태라 시선이 집중 되었다. 공태성은 한순간 가지 말까?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곧 지워내고 일어났다.

지상고 근처 편의점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운동부 남자애들이라면 왕복으로도 20분이 안 걸릴 정도였다. 하지만 기상호는 말 없이 편의점을 지나쳐 걸었고 공태성은 그 옆에서 보폭을 맞추어 조용히 따라갔다.

여전히 공태성은 기상호의 속이 가늠이 안 갔다. 분명 대화를 하려고 끌고 나온 걸 텐데 기상호는 입을 꾹 다물고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찔러볼까 말까. 공태성은 제가 기상호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게 좀 어이가 없었으나... 어떻게 생각해보면 형이 동생 챙기는 건 당연하지 않나. 따위의 생각으로 합리화를 하며 계속 힐끔거리기만 했다.

기어코 편의점을 지나쳐 동네 한 바퀴를 거의 돌았을 때, 돌아가는 길에 있는 농구 코트 앞에서 기상호는 멈추어 섰다. 공태성도 같이 멈추어 선다. 기상호는 이제 고개를 들었지만 여전히 공태성을 쳐다보지는 않았다. 공태성은 그런 기상호를 가만히 쳐다봤다. 속은 몰라도 결심한 건 해내는 애였다. 멈추어 섰으니 말을 하려는 결심이 섰을 테다.

그런 짐작을 긍정하듯 기상호의 시선이 올라와 공태성과 시선을 마주한다. 그렇게 기다리게 만들어놓고 미안한 기색은 전혀 없이 오히려 책망하듯 쳐다보는 시선에 공태성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그래보는데?"

"햄, 서울 가지 마요."

"응???"

그러곤 대뜸 이상한 소리를 한다. 서울? 갑자기? 경기 하면 가겠지. 아님 나중에 졸업하고 대학 가면 가겠지. 근데 그게 지금 왜 나와?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듯이 분위기를 잡아놓고 영 엉뚱한 소리가 나오니 공태성은 약간 허망해진다.

"솔직히 햄 성격 더러웠을 때 받아준 거 다 우리다 아니에요?"

"ㅁ, 뭐?"

"어디서 삔또 상해가꼬 분위기 망칠 때도 다 받아줬는데..."

"아니, 인마. 니 미칬나???"

"우리한테 그래 놓고 다른 학교에서 부른다고 홀라당 가는 거 좀 치사하지 않아요?"

"? 아, 아!"

공태성은 그제야 기상호가 왜 이러는지를 깨닫는다. 웬 서울 타령인가 싶더라니. 쌍용기를 우승하고 나서 공태성에게는 서울 쪽 소재지의 고등학교에서 스카우트가 왔다. 혹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지상고도 멋지고 지금의 감독님도 정말 신뢰 가는 사람이지만 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솔직히 스카우트까지 온다고 하니 자연스레 어깨가 으쓱이기도 했다. 그래서 좀 오래 고민했었다. 진짜 주변 사람 다 떼어놓고 이게 내한테 좋을지 아닐지.

근데 한편으론 의아하다. 정작 고민하고 있을 때 가장 아무렇지 않은 반응을 보였던 건 기상호였다. 김다은이나 정희찬은 물론이고 선배들 또한 혹여나 가냐고 괜스레 신경 쓰는 와중에는 별 반응이 없더니 이제 와서 이런다고?

인마 진짜 어렵네... 공태성은 이제 혼자서 앞담을 하고 자빠진 덜떨어진 동생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손을 뻗어서 그 부슬부슬한 머리통을 꾹 눌렀다. 윽, 소리를 내던 기상호는 공태성의 손을 탁 쳐낸다. 답지 않게 거친 반응이었다. 하지만 공태성은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머리를 꾹 누르며 말했다.

"마, 상호."

"왜요..."

"니 아까부터 쌉소리만 하는데"

"쌉소리가 아니라 내는..."

"뭘 말하고 싶어가 그러는데?"

공연히 말이 돌았다. 기상호는 그러지 않는다. 준수햄 앞에서도 할 말은 하는 녀석이었다. 나를 무서워하지도 않는 주제에 했던 말을 계속 주워섬기는 꼴부터 자기 할 말 못 찾고 빙빙 도는 게 보였다. 그리 멍청하게 구는 게 어울리는 놈도 아니면서 그랬다. 그래서 공태성은 말한다.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냐고.

손을 떼면 기상호가 고개를 들어 공태성을 쳐다봤다. 놀란 것 같기도 했고 어쩔 줄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공태성은 어쩐지 그 모습이 자신이 뭘 말하고 싶은지 여전히 모르는 것 같았다. 공태성은 우습게도 이 순간 기상호가 훤히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꺼내놓는 법이 없는 그 속이 어떨지 짐작도 못했는데 지금의 기상호는 마냥 어리게 보였다. 그래서 공태성은 웃으며 그 머리를 가볍게 토닥여주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기상호의 얼굴은 계속해서 여러 감정을 띄운다. 끝에서는 깨달음을 얻은 얼굴이다. 그럼에도 기상호는 바로 말하질 못했다. 공태성은 솔직히 인내심이 좋지는 못했으나 이제 닦달해내는 것이 기상호에게 별로 효과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건 알았다. 그래서 가만히 기다려주고 있으니 기상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전, 저는..."

"어, 니는."

"...이제 저도. 햄이랑 농구 하는 거 엄청 재밌었다고요. 가지 마요. 저랑 계속 농구 해요. 고작, 고작 2년 남았는데."

하여간 생각이 많은 놈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그리 크지도 않은 머리통에서 항상 치열하게 생각하는 녀석이다. 그런 주제에 제 마음에는 대부분 박했다. 그게 얼마나 티가 안 나는지 공태성도 근래에 겨우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런 녀석이 제가 서울에 간다는 것에 대체 어디까지 생각이 닿은 건지.

애초에 그 제안을 거절한 지는 오래되었다. 다만 주변 팀원들이 니 안 갈끼제. 하면서 신경 써주는 꼴이 좋아서 괜히 말을 안 해놨더니 이 녀석이 혼자 땅굴을 판 모양이었다. 정작 말리던 팀원들은 이제 안 가나 보다 하고 신경도 안 쓰고 있는데.

"상호."

"...네."

"내 서울 안 간다."

"...네?"

"감독님한테 안 간다고 말한 지 오래다. 니는 왜 혼자 삐꾸내는데?"

"아, 안 가면 안 간다 말이라도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말 없으면 안 가나보다 하는기지. 다른 사람들은 이제 관심도 없더만 니 혼자 우물파고 있었나?"

"나, 나는 햄이 가버리는 줄 알고..."

"으이구... 니는 생각 많은 게 문제다."

공태성은 익숙하게 기상호의 목에 팔을 두른다. 힘주어 당기면 켁, 소리를 내면서도 기상호는 얌전하게 끌려왔다. 착각을 한 게 쪽팔렸던 건지 아니면 속았다는 생각에 화가 나는 건지 붉어진 얼굴로 씩씩거리는 꼴이 못내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속이 훤한 녀석이었나 싶어 신이 나다가도 이렇게 놀리다가 삐져버리면 곤란하니, 괜스레 젖살이 덜 빠진 볼을 쿡쿡 찌르며 말했다.

"내랑 농구 하는 게 그래 재밌나."

"...됐어요 진짜. 내 괜히 걱정했다. 시간 돌려줘요."

"내가 느그들 두고 어디 간다고... 그 2년 동안 같이 할라니까 화 풀어라."

목이 잡힌 와중에도 기상호는 고개를 들어 공태성을 올려다본다. 공태성은 그 시선과 마주했다. 진짜냐는 듯이, 의심과 불신이 가득 넘실거린다. 와중에도 공태성은 기대를 읽어냈다. 공태성은 언제나 제게 쏟아지는 호감에는 민감했다. 근데 이만큼일 줄은 몰랐다. 쌍용기를 거치고 많이 가까워진 건 알았지만, 이만큼이나 저를 기꺼이 여기는 줄은 몰랐다.

고작 2년이라니. 공태성은 구태여 묻지 않았다. 그럼 그 2년 동안 네 옆에 내가 있는 걸 상상했느냐고 물었다간 아마 부끄러워서 저를 뿌리치고 도망갈지도 모르니까. 목에 두른 팔을 풀고 어깨를 토닥여주니 얌전하게 기대있는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했다. 아, 앞에서 온갖 욕을 들었는데 고작 농구 같이 하자는 말에 기분이 풀린다. 공태성은 자신이 너무 단순한 걸까, 생각했지만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슬슬 바람도 많이 찹다. 들가자."

"네..."

기상호가 먼저 공태성의 손을 잡는다. 공태성은 손을 살짝 올려 기상호의 손목을 잡고 끌었다. 남자끼리 하기엔 좀 징그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어리광 비슷한 것을 부릴 때마다 공태성은 기상호에게 약하게 굴었다. 문득 생각한다. 만약 다른 고등학교로 가야겠다 마음을 먹은 뒤 기상호가 이래 굴면 홀라당 넘어가 줬을지도 모르겠다고. 어지간히 나는 애들에게 약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공태성은 앞서 걸었다. 기상호는 늦지 않게 그 보폭을 따라갔다. 여전히 기상호의 보폭에 맞춘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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