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ard Day to Die

A Hard Day to Die 3

PITA BREAD by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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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지명,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 약간의 뱅상 포함

사무실로 돌아오니 정희찬의 책상에 다섯이 달라붙어 있다. 슬그머니 뒤에 서자 제일 키 큰 놈 둘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길을 터준다. 아까 봤던 프레젠테이션 파일의 2페이지 버전 PDF를 그림파일로 변환시키고 있었다.

"뭐하냐?"

"재석이 형이 준 파일 만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왜 만지냐고."

쓸모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는 데다 열받게 생긴 거. 그림파일로 변환하자 미리보기로 무지개를 배경으로 한 보노보노가 보였다. 전영중 그 새끼는 회의 전에 자료 검수도 안 하나?

"아, 기다려 보세요. 이게 다 사인이거든요?"

"무슨 사인?"

"전하 없는 사이 약속한 게 있나이다."

이거 직장 내 왕따 그런 거야? 진재유마저 타박 없이 정희찬이 하는 걸 두고보는 모습에 성준수는 소외감을 느꼈다. 팀장은 허름한 사무실에서 먼지 쓸고 출장 다니며 고생했는데 편하게 사무실에 앉아 저들끼리 재밌었나 보지?

정희찬이 두 번째 그림파일을 열어 색을 만진다. 그림들이 까맣게 타들어 가면서 새하얗던 배경화면 구석에 모자이크 무늬가 점점 짙어진다. 확대하니 누가 봐도 명백히 QR코드인 것 하나가 박혀있었다.

"무지개 보노보노의 꽃말은 숨겨진 링크죠."

"처음 듣는데."

"아, 님. 농담한 거 가지고 따지다니 센스 없음."

이 새끼들이 진짜. 성준수가 몸을 일으키자 김다은이 한 발짝 물러난다. 그 사이 핸드폰으로 큐알코드를 찍은 정희찬이 파일을 다운받고 다시 컴퓨터로 옮긴다. 짜잔!

"역시 재석이 형, 보통 의리가 아니라니까."

함구령이 내려진 온전한 자료가 펼쳐졌다.

두 러시아인 다음에는 그들과 같이 입국한 중국인 가이드 한 명의 인적 사항이 적혀있었다. 빠르게 페이지를 넘긴다. 3일 전 입국 날부터의 행적. 장물의  이동. 테러 당시 사용한 총기 리스트. M240, QBZ-191, QLU-11.......

"저거 중국산이제?"

"네. 중공군 제식소총이랑... 유탄발사기?"

모델명을 검색한 정희찬이 질색한다. 미친. 전쟁이라도 할 참이었나.

"앞 페이지로 가봐."

3분할된 행적조사 페이지에서 진재유의 손이 한 곳을 가리켰다. 같은 비행기를 탄 것 외에 만난 적 없는 중국인과 러시아인은 어제 단 한 번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동선이 겹친다. 그리고 사건 당일, 중국 대사관 방문.

"누가 봐도 이놈이네."

직원을 버려서라도 숨기고 가야 했던 놈. 엄밀히 말하면 정보부장이 버린 거니 부서가 다른 해외 6팀은 버려졌다고 말할 수 없다. 대신 정보가 차단되어 고생깨나 할 뻔했지만. 지나치게 유능한 정보 4팀이 만든 자료를 보고 기겁해서 함구령을 내렸을 모습이 선했다.

"이놈, 자세히 따봐라. 주변까지도."

"맡겨만 주십쇼."

"중국은 이쪽 파는 걸로 하고, 러시아는 아는 통 있어?"

성준수에게 모여드는 시선이 하나같이 부정적이다. 있을 리가. 그것도 중국에 줄 대고 있을지도 모르는 마피아를 상대로?

이럴 줄은 알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해외 다른 팀의 도움이라도 받아볼까 싶은데 정치적으로 얽힌 일이라 도움을 줄지 알 수 없다. 정보부장이 손 털었으면 해외부장에게도 어떻게 외압이 갔을지 모르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함에 이마를 짚는데 기상호가 손을 들었다.

"저, 비슷한 건 있는데요오......."

"비슷한 거?"

"러시아에서 사업하느라 그쪽 사정 좀 아는 분이 있는데, 함부로 도움받기는 쪼오끔 곤란한 그런 사이라......."

사업을 하는 사람이 러시아 마피아 사정을 알아? 대체 무슨 사업이길래? 게다가 기상호가 말꼬리를 질질 끄는 걸 보니 절대 정상적인 루트는 아니다. 불안함에 구태여 묻지 않는데 한 명만은 생각이 달랐다.

직접 기상호의 귓바퀴를 잡아 이 팀에 처넣은 성준수가 얼굴을 구겼다. 저건 공무원 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옛날 버릇 못 고치고.

"뭔데? 말꼬리 늘이지 말고 자신감 있게 말하라니까."

"병찬 형한테 연락해 보죠."

"야, 미쳤어?"

성준수가 소리 지르자 기상호가 김다은 뒤로 숨는다. 힝, 거봐요. 내 이런 반응일 줄 알았다. 그러니까 말 안 할라 그랬는데.

"아니, 박병찬은 왜 러시아에 가 있어?"

"거기서 새 사업 한다던데요. 그, 에어비앤비?"

중국에서 무기 밀매하고 밀입국 알선하던 놈이 그새 러시아에 자리 잡고 앉아 숙박업을? 진짜 미친놈인가?

미친놈이 부지런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면 박병찬을 보라. 그 성격에 재미 삼아 숙박업을 하더라도 작게 했을 리가 없다. 당연히 숙박업만 했을 리도 없고. 뭘 어떻게 했길래 마피아 동향까지 파악하고 있어? 물론 이전의 행적이 있으니 짐작은 간다. 중국에서 하던 사업이 털리고는 러시아에서 비슷하게 밀매, 밀입국 그런 것들을 했겠지..

박병찬과의 짜릿했던 만남이 기억난 성준수가 쌍시옷이 들어간 단어들을 주워섬기는 동안 공태성이 혀를 차며 기상호의 뒷덜미를 잡아 김다은에게서 떼냈다.

"너 아직도 박병찬이랑 연락하냐?"

"아니에요! 저 여기 들어오면서 번호도 싹 갈고 이사도 했잖아요. 근데도 어떻게 알고 먼저 연락하데요."

진짜 또라이네. 기어코 공태성마저 감탄하고야 만다. 그냥 바꾼 것도 아니고 이쪽 기관을 통해서 바꾼 건데 그걸 뚫고 또 연락해?

"안 내켜도 일단 만나보기는 해야 할 것 같아요."

"왜?"

"안 만나주면 쳐들어오겠대요."

"러시아에 있으면서 어떻게 쳐들어와?"

물론 러시아에서 한국까지 최단 거리로 따지면 비행기로 두 시간만에 올 수 있다. 그러나 박병찬이 쳐들어오겠다고 말했다면 무게가 좀 더 달라진다. 그 미친놈은 하겠다 마음만 먹으면 미사일을 타고서라도 날아올 놈이었다.

"그 형 지금 한국 왔대요."

"망했네."

이제는 두 손으로 제 머리를 감싸 쥔 성준수 대신 진재유가 말했다. 머릿속에 만나주지 않는다고 국정원 건물에 박격포를 박아버리는 박병찬의 모습이 너무나 잘 그려졌다.

성준수는 오늘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영중은 이틀째 휑한 침대를 보다 문에서 먼 쪽에 꾸물거리며 누웠다. 킹사이즈 침대를 독차지하는 호사도 누릴 수 있지만 역시 같이 자는 사람이 있는 쪽이 더 좋았다. 자고 있으면 들어오겠지. 그런 기대를 해본다.

성준수가 화났다고 외박할 사람은 아니다. 정말, 지독하게 바빠서 쪽잠을 자가며 일하고 있겠지. 손 떼라고 명령이 내려온 이상 자신도 도울 방법이 없다. 오합지졸 여섯 명이 머리 싸매봤자 뭐 얼마나 좋은 수가 나온다고. 답답함에 옆으로 눕는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11시부터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어제도 자정을 지나 겨우 잠들었다 악몽에 두시쯤 깼다. 네시까지 뒤척이다 세 시간은 잤나........ 오늘은 좀 일찍 자야 몸이 나아질 텐데. 준수가 컨디션 관리 잘하라고 했는데. 잠금이 걸린 핸드폰 화면만 쳐다보다 눈을 감는다. 잠들기 전 핸드폰 사용은 숙면에 안 좋다고 잔소리하던 누구가 생각나서다.

중국공산당이랑 엮인 마피아를 무슨 수로 진정시킨다고. 다 때려잡아 해결하나? 동네 양아치도 아니고 브라츠바 규모다. 소탕할 화력을 지원해 줄 리 없고, 해준다 한들 도시 하나를 이 잡듯이 태워야 하는데 그러면 전쟁하자는 거지.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전영중은 두서없이 떠오르는 단어들을 하나하나 주워 주머니에 넣고 단단히 묶는 상상을 한다. 아, 하지만 성준수가....... 기껏 묶어놓았던 주머니가 터지고 만다.

왼쪽 어깨가 묵직한 느낌에 돌아눕는다. 슬쩍 손을 뻗어본 옆은 여전히 비어있었다. 한번 더 확인해 볼까 말까, 고민하다 참지 못하고 눈을 떴지만 침대의 반은 채워지지 않은 그대로다. 그새 새카만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최저 밝기로 해둔 전자시계의 빛에도 아려왔다. 1:14 AM. 성준수는 아직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도 들어오지 않는다...... 가 될지는 모르겠다.

식사는 제대로 하고 다니나. 굶고 다니는 녀석은 아니지만 근육이 잘 붙는 몸이 아닌지라 끼니를 걸렀다가 근육이 빠질까도 걱정이다. 그놈의 걱정. 새카맣게 뒤엉킨 실타래가 두개골 안에서 끊임없이 몸집을 불리는 느낌이다.

눈이라도 감자. 눈만 감고 있어도 몸은 어느 정도 회복한다더라. 이것도 누가 해준 말이었다. 하여간 걱정 많은 새끼. 맨날 내 다크서클 놀려대더니 제 눈은 판다가 된 것도 모르고. 침대가 기분 좋게 출렁인다. 아무 생각 하지 말라고 이마를 짚어주던 손. 쉽게 체온이 올라가는 몸을 식혀주던 바람. 자. 속삭이는 소리가 꿈처럼 닿는다. 밥은....... 생각으로만 했는지, 입 밖으로 내었는지 모르겠다. 뺨에 닿은 손등이 웃는 것처럼 잘게 움직였다. 먹었어. 더 자. 부드러운 섬유 냄새가 난다. 잘 말려서 개어둔 옷의 냄새다.

"성준수?"

퍼뜩 잠에서 깬 전영중이 간밤에 만난 사람의 이름부터 불렀다. 옆자리. 구겨져 있다. 시계. 10:52 AM. 이게 그건가? 개꿀잠?

"왜?"

그리고 어젯밤 꿈에서 본 사람.

모로 누워 눈만 끔벅이던 전영중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불러놓고 아무 말 안 하는 놈에게 다가가 협탁에서 종합비타민을 꺼내 입에 물려주고 물병을 내민다. 꼴깍 삼킨 전영중이 뒤집어진 머리를 털었다. 오, 준수네.

"정신 차려."

"어, 응....... 어떻게 온 거야?"

"내가 내 집도 못 와?"

"아니, 엄청나게 바빴잖아."

"그렇긴 한데."

성준수가 시계를 가리킨다. 10:54 AM SAT.

"나도 주말엔 쉬어야지."

"그렇지."

맞지. 주말엔 쉬어야지. 멍하니 대답하는 전영중에게서 자아가 느껴지지 않았다. 손가락을 딱딱 부딪쳐 집중시킨 성준수가 제 왼손을 들어 올렸다. 화이트골드의 반지가 웬일로 손가락에 끼워져 있다.

"나갈 준비해. 오랜만에 데이트나 가자."

"......뭐?"

멈춰있던 뇌에 갑자기 혈액이 돈다. 그러고 보니 성준수는 이미 외출복 차림이다. 양복이 아닌 캐주얼한 재킷에 머리는 왁스까지. 그 귀한 풀세팅 성준수(w/ 커플링)!

"10분 준다."

"아니, 알았, 뭐, 잠깐만!"

갑작스러운 시간제한에 일단 침대 밖으로 튀어 나간 전영중이 화장실로 들어가다 말고 도로 나왔다. 풀세팅한 성준수랑 10분 만에 비슷한 퀄리티로 맞추라고?

"30분!"

"아이씨. 알았어, 30분."

참지 못한 웃음이 터져 나오며 침대에 풀썩 눕는다. 상의를 벗어 던지며 화장실로 들어간 전영중이 목걸이부터 풀어 반지를 약지에 끼워 넣었다.

거울 속의 남자가 바보같이 웃고 있었다.

데이트는, 정말로 데이트였다. 제 앞에 놓인 브루스게따, 바질페스토 파스타, 디아블로 피자, 크림 프로슈토 뇨끼, 와규 스테이크를 보고 전영중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오늘 생일인가? 지났는데. 고백하나? 이미 사귀지. 준수가 왜 이렇게 잘해주지? 데이트니까.

"와인 시킬까?"

"점심부터 술은 좀. 저녁에 먹자."

완전한 거절은 아니다. 그것만으로 만족하며 전영중은 브루스게따 하나를 집어 들었다. 반년간 붙어있긴 했지만 데이트는 간만이다. 업무로 붙어있는 것과 데이트는 다르니까. 혹여나 일이 틀어질까 노심초사할 일도 없고, 의견 차이로 싸우지 않아도 된다. 아, 준수 이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닌데.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정도는 물어도 되지 않을까? 참견 말라는 말이 돌아오면 참지 못하고 뾰족하게 대답할 것 같다. 파스타를 돌돌 말던 손이 멈춘다. 간만에 하는 데이트인데 망쳐버리면 어떡하지.

"전영중."

"응?"

"밥이나 먹어."

"응."

바로 앞에 들이밀어진 얇게 썬 스테이크에 자연스레 입을 벌린다. 미디엄으로 구워진 고기를 오물거리며 야무지게 말아놓은 파스타도 한 입. 성준수 가라사대 밥이나 먹으란다. 그래서  밥이나 먹기로 했다.

데이트코스는 식상했다. 식당에서 밥 먹고 카페로 이동한다. 필요할 때 외엔 별말이 없었다. 출근해도, 퇴근해도 붙어있었으니 시시콜콜한 이야기야 그동안 다 주고받았다. 떨어져 있던 요 이틀간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묻지 않는다. 그저 손을 맞잡고 성준수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최근에는 없었던 여유라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라지 하나랑 시그니쳐 에그 크림 라테 아이스 라지사이즈요."

자연스레 제 몫까지 주문한 성준수가 지갑을 꺼내려 손을 푼다. 그게 싫어 억지로 잡고 미리 꺼내두었던 카드를 내밀었다. 별. 피식 웃고 만 성준수가 진동벨을 받아 카페 2층으로 올라갔다. 신사동 구석에 자리한 카페는 비교적 한산해 2층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 두 테이블에...... 기상호?

성준수는 이미 손을 놓고 그 테이블로 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뭐야, 설마, 아니지 준수야?

"여기서 다 만나네."

"아, 예에, 팀장님 데이트 중이신가 보네요. 아이고, 우째 또 이런 우연이! 하하!"

우연 같은 소리 하네. 어색해서 뚝딱거리는 기상호만 봐도 우연이 아니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디 성준수가 우연히 후배 만났다고 살갑게 앉아 담소나 나눌 사람인가?

엉거주춤 일어나려는 기상호의 손을 옆에 앉은 사람이 꽉 잡아 누른다.

"상호, 어디가. 오랜만에 만났는데 앉아있어."

"밑에 내려가서 커피 좀 받아와라."

"아직 진동벨 울리지도 않았잖아."

"기상호."

전영중이 있는데도 굳이 기상호에게 진동벨을 내민다. 엉덩이만 들고 엉거주춤 서 있던 기상호가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그래도, 지금은 이쪽이 상사라서요오....... 새끼, 자신감 있게 말하라니까. 겨우 손을 빼낸 기상호가 진동벨을 받아 1층으로 사라지자 성준수가 그 자리에 앉고 반대편 자리에 턱짓한다. 저기 앉으란다.

"오랜만이네요, 박병찬 씨."

"준수는 여전히 싸가지가 없네. 선배한테 '씨'가 뭐야?"

"범죄자는 선배로 안 쳐서요."

평화로웠던 데이트가 막 박살난 전영중은 두 사람의 기 싸움을 말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조합이야. 기상호에 박병찬? 박병찬 대위? 전영중은 가까스로 한숨을 참으며 성준수의 맞은편에 앉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처음부터 성준수의 계획이었다. 전영중의 취향대로 차려입은 것도, 다정한 분위기에서 점심을 먹은 것도. 칠렐레팔렐레 녹여놔서 아무 생각 없이 따라오도록.

씨발. 어떻게 나한테 이래, 준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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