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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skwood 제이크 드림주 (미완)

장르연성 by 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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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창 밑에 별거 없음 끽해야 간단프로필 정도?? 제이크 등장하는 데까지 쓰지도 않았음


“아름답네요.”

“…그런가요.”

“네! 저길 좀 봐요!”

그 무렵 나는 반복되는 가을에 지쳐 있었던 것 같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을 맞으면서 나는 모든 것을 죽음과 연결짓는 습관을 들였다가 꾸역꾸역 고치기를 수차례 반복했고 종국에는 모조리 포기했었다. 별 볼 일 없는 부지를 칭찬하려 애쓰는 여성의 목소리를 나는 대충 들어넘겼다. 기껏해야 그녀가 묘사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는 희게 바른 시멘트와 축축하고 비린 낙엽 냄새, 그것도 아니면 재미없게 멀리 뜬 하늘과 비쩍 마른 나무 몇 그루가 전부였다. 강마른 사람들의 무릎마다 덮인 담요가 펄럭거렸다. 왜바람이 분다는 뜻이었고, 달리 말하면 여자가 자기 겉옷을 벗어 주겠다고 유난을 떨거나 다른 사람들이 레이싱을 하듯 서두르는 틈바구니에 끼어 나를 끌고 잰걸음으로 돌아가리라는 뜻이었다. 가끔 안개비가 흩날리는 것도 같았으므로 나는 들어가자는 그녀의 말에 반대하지 않았다.

멀쩡한 다리와 링거 몇 개를 달고 나는 짐짝처럼 휠체어에 실려 질질 끌려다녔다. 경로를 선택하되 선택하지 않은 채로. 그런 중대한 선택권은 나에게 없었다. 몇 번 얼굴이 바뀐 간병인이 ― 역시 내 거취에 대해 말을 얹을 처지는 못 되는 사람들이다 ― 내 호의를 사려 애쓰며 떠드는 걸 나는 언제나 듣는 둥 마는 둥 흘려들었다. 처음에는 그게 곤욕이었어서, 간병인의 입을 닥치게 하기 위해 별짓을 다 했다. 카디건을 여미며 당장에라도 얼어 죽을 것 같은 척이라든가 별안간 발작이 다시 시작된 척을 하면 그네는 안절부절못하며 휠체어를 당장 돌려 병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걸 몇 번인가 반복하고서야 나는 차라리 밖을 돌아다니는 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늘은 지루할지언정 막혀 있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위를 바라보는 일이 많았으므로 그것이 누구에게보다 중요했다. 오랜만에 밖에 나가, 입김을 뿜으며 그게 내 머리 위에서 흩어지는 모습을 한참 관찰하는 내게 간병인은 측은한 시선을 보냈다. 웃기는 일이었다. 나는 단지 흰색이 그리워서 거기 멈춰서 있던 게 아니었다.

“가면 몸을 좀 닦아 드릴게요.”

“지금 말고 나중에, 잘 때 해 줬으면 좋겠는데.”

“안 돼요, 어차피 잠드신 다음에 해 봤자 바로 깨실 거잖아요.”

“…알겠어요.”

여자는 엷게 웃고, 습관처럼 치마를 두 번 턴 후 다시 휠체어를 밀었다. 흐트러진 그녀의 긴 갈색 머리칼이 자꾸 눈에 밟혔다. 그녀는 언제나 머리를 모두 빗어넘겨 헤어 클립으로 고정하곤 했지만 가을바람에는 별 도리가 없어서 산책에서 돌아올 때면 매번 저렇게 산발을 했다. 구태여 관찰하고자 하지 않아도 그런 것들은 퍽 단순하게 눈에 담겼다. 나는 돌아오는 내내 담요 아래로 발을 동당거리면서 괜히 장난을 쳐 대다가 하마터면 담요를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여자는 별말 없이 웃었다. 그리고 모포를 그러모아 품에 꼭 붙든 나를 일인용 병실에 처넣은 뒤 스팀 타월을 가지러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나를 맡는 간병인들은 24시간 내내 나와 붙어 있는 게 원칙이었고, 일정한 기준을 만족하면 갈아치워 졌다. 내게 내 가족에 관해 언급하는 것. 아주 기초적이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항들에는 해당하지 않았지만 간병인들은 누구에게 배우기라도 한 듯 꼭 내게 ‘아버지’ 같은 쓸데없는 단어를 발설해서 쫓겨나곤 했다. 어쩌면 내게 질렸을 때 말하면 좋을 금기어라고 들었을는지도 모른다. 별 볼 일 없는 여자애에게 매달려 아첨하는 데 이골이 난 부류임에도 떠날 정도라면 내가 많이 지루했던 모양이었다. 다행인 점은 내가 어느 정도 그걸 원해서 퉁명스럽게 굴었다는 점이었다. 조금 낡은 미디 기장의 치마를 입고 다니는 여자가 오기 직전에 날 맡았던 건 남자였는데, 내 병실에 최단 기간 ― 3일이었나 ― 머물렀다. 안 그래도 성별이 달라서 ^시중을 들^기 곤란했던 차에 내가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화가 났던 것이다. 그는 회사 기밀이 모조리 털린 지금 시기에 짐짝처럼 연명하는 나마저 마음대로 안 움직여 주면 내 아버지가 얼마나 속상하시겠느냐는 말로 나를 계도하려고 했다. 나는 그가 보는 앞에서 휴대폰을 들고,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아버지께 ‘사내 메신저가 해킹당했다고 새로 온 간병인이 그러던데 사실인가요’라고 대놓고 물어봄으로써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어쨌거나 그들은 내가 정을 붙이기 전에 적당히 떠났다. 같은 계절을 한두 개, 길면 두어 개 나와 가볍게 공유하고서 내 어깨에 두었던 겉옷을 주워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플레어스커트 밑단을 바라보지 않는 습관을 새로 들였다.

나쁜 소식들은 빨리 퍼진다Bad news travel fast고, 간병인에게 입단속을 아무리 열심히 시켜도 내 귀에 내 집안 이야기는 제법 자주 넘어왔다. 아버지가 기어코 불임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진단은 이미 예견된 바 있었는데, 그는 정말 기적적인 확률로 여자애를 하나 만드는 데 성공하고서 그 어떤 관계로도 제 유전자를 더는 남기지 못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는 외동이었고, 아버지의 회사는 당신 성을 달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가 만들어낸 유일한 아이는 유일한 승계권자가 되었다. 비실한 생식세포 탓에 선천적으로 약한 장기들을 달고 태어난, 어쩌면 아버지를 똑 닮아 후사를 볼 일이라곤 없을, 내가.

첫 십여 년간 나는 잔병치레를 했어도 크게 발병하는 일 없이 일상을 버텼다. 그러나 가문의 주치의는 내가 열여섯이 되는 해 가을 아버지와 딸에게 좋지 않은 소식을 각각 하나씩 쥐여 주었다. 진단을 받고부터 그는 현대 과학을 반쯤 불신하게 된 한편 자기와 닮은 애를 어디서 하나 주워 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소여Sawyer 그룹은 후계자에 관해 그 존재 외에는 밝힌 것이 없었다. 요컨대 그가 적절한 대체품을 찾는 즉시 나는 후계자 지위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회사 경영에도, 아버지의 인정이나 사랑에도 미련이랄 것이 없었으므로 내 처지를 받아들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 얼굴에는 쓸모없는 쓸쓸한 감상은 한 점도 없었다. 다만 익숙한 사명社名이었던 탓에 회사의 행보가 내 기억에는 조금씩 더 오래 남았다. 이를테면 정경유착 같은 거. 아무도 문병을 오지 않는 병실은 내가 아무것도 몰랐던 척을 하기에 최적의 공간이었다. 병실 문에 붙어 있는 이름표가 이블린 S.Yveline S.에서 다른 무언가로 바뀌길 기다리는 내내 누구도 소여 그룹의 비리를 내게 묻지 않았다.

내게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온 것은 의사가 ‘차도를 더 지켜보자’고 딱 백 번째 얘기했던 늦가을의 일로, 앞선 서너 번의 가을이 아주 고요해서 나는 계절을 대부분 잊은 후였다.

으레 장기입원 환자는 보험사와 시끄러운 분쟁을 거치고 간병인이 갈아치워 지듯 주기적으로 쫓겨나는 법이었으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물론 그건 내 뒤에 소여 그룹이 있어서였다. 그들은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 조건으로 식당 웨이터들처럼 팁들을 두둑하게 챙겨 받았다. 내 체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팁을 받는 주기는 더 여러 번 돌아왔다. 그들은 내 상태가 나아지길 바라지 않았고, 나는 그들이 의학과 돈 사이에서 균형을 몹시 잘 잡는다는 사실을 검진 때마다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곤 했다.

다시 말하자면, 한나 던포트든 토마스 밀러든 심지어는 하느님이든 간에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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