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4부 12

불길한 꿈

이해를 위해 지도가 필요할 거 같아서 그려봤어요


며칠 동안 사냥 대회를 위해 준비한 기사들은 아르모리크 산맥을 향해 행진했다. 행진이라고 했지만, 짐은 최대한 간소화해서 그리 거창한 행렬은 아니었다.

빠르게 아르모리크 산맥을 넘어간 기사들은 정화할 필요도 없는 깨끗한 대지와 그곳에서 노니는 동물들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들의 중심에서 시도폰이 외쳤다.

“다들 정신 차리고 천막부터 치도록!”

머리 두 개만 한 해머를 어깨에 이고, 이디스는 주변을 둘러보며 프라이에도 같이 왔으면 좋았으리라고 말했다.

옆에서 천막을 치던 아페는 동의하면서도 안절부절못하고 주위를 자꾸 둘러보았다.

“저하, 주위에 뭐가 느껴지시는 게 있으신가요? 불안해하시는 것 같아서요. 아니면 건강이 안 좋으시거나….”

이디스의 물음에 아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어제 꾼 꿈이 조금 뒤숭숭해서요. 보통 이렇게까지 흉흉한 꿈이면 예언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이건 예언 같지도 않고, 뭐라고 해야 할까…. 음, 제가 피곤해서 그런 거겠죠.”

그런 거라면 너무 무리하지 말라며 이디스가 아페를 도왔다.

천막이 완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도폰이 사냥 대회를 시작하겠다며 기사들을 모았다. 그는 기사들에게 규칙을 설명했고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외치며 대회의 개막을 알렸다.

기사들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고,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급조한 단상에서 내려온 시도폰이 아페를 먼저 말 위에 태우고 자신은 그 뒤에 올라탔다.

아페는 새빨개진 얼굴로 그에게 자신도 승마를 배웠으니 괜찮다고 말했지만, 시도폰은 말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대답했다.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페는 더 반박하지 않고 얌전히 안장을 잡았다.

‘어제 꾼 꿈은 말해야 할까? 아직 그게 예언인지 아닌지 모르는데 굳이 말하고 싶진 않아. 괜히 불안하게 만드는 건 싫은데.’

 


아페는 지난밤, 이유도 없이 뒤척이다가 잠들었다.

 

그는 꿈속에서 새하얀 세상을 보았고, 아무것도 없는 그 공간에서 발을 디딘 감각만이 생생한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고민하던 아페가 한 발짝 내딛는 순간, 새카맣고 조그만 무언가들이 무리를 지어 그의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놀란 아페는 다시 뒷걸음질 쳤고 뒤에서 들리는 둔탁한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뒤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뭐지?’

갑자기 주변의 온도가 낮아졌다. 아페는 본능적으로 제 어깨를 감쌌고 다시 앞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아페는 그 공허 속에서 메마른 마찰음을 들었다. 오래된, 낡은 목재끼리 비비는 듯한 불쾌한 소리에 아페는 귀를 막고 싶었지만, 그 소리는 짧게 끝났다.

곧바로 이어진 수상한 소리에 아페가 외쳤다.

“거기 누구 있나요?”

대답은 없었다. 누군가가 흐느끼고 있었고, 아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왜 울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당황하며 눈물을 닦던 아페는 제 손이 새까매진 것을 보고 놀라 얼어붙었다. 새카만 그것은 뱀처럼 꿈틀거리며 아페의 손을 타고 그의 얼굴을 뒤덮기 시작했다.

오싹한 감각에 아페는 그것을 떼어내려고 애썼지만, 아무리 반항해도 검은 뱀 같은 그것은 아페의 몸을 휘감아 올라오며 그의 시야를 가렸다.

점점 검게 가려지는 시야 속에서 아페는 하얀 빛줄기 몇 개를 보았고, 그것이 누군가의 비명과 함께 일시에 사라지자마자 잠에서 깼었다. 급하게 숨을 몰아쉰 아페의 옆엔 루카가 있었다.

루카는 아페가 평소에 일어나는 시각이 되어서도 막사에서 나오지 않아 걱정되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그에게, 아페는 악몽을 꿨다고 이야기하며 허겁지겁 일어났다.

루카에게 수건을 건네받아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낸 아페는 괜찮은 척하며 임시막사를 나갔다.

 


“분명 조심하라고 방금 말했는데!”

갑작스레 시도폰이 외치는 소리에 아페가 놀라서 어깨를 떨었다. 그러자 시도폰은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며 말의 속도를 높였다.

아페는 안장을 좀 더 세게 잡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저쪽, 기사 한 명이 쓰러져 있고 말은 흥분해서 날뛰고 있는 거 보이십니까?”

아페는 목을 빼서 시도폰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한 기사가 허리를 문지르며 누워있었다.

빠르게 그곳에 도착한 시도폰은 말을 진정시켰고 아페는 기사를 치료했다. 시도폰은 말의 고삐를 끌고 와 거기에 늘어진 기사를 얹었다.

“자네는 탈락이네. 사냥한 사냥감은 어디에 뒀나?”

“말의 허리에 매어뒀습니다. 면목 없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사는 서글프게 말을 끝맺으며 말에 실려 갔다. 시도폰은 막사에 도착해 그를 침상에 눕혔고, 루카에게 그를 보살펴 달라고 말한 뒤 그곳을 벗어났다.

막사 밖에서 기다리던 아페는 시도폰이 나오는 걸 보고 미소를 지으려다가 얼굴을 굳혔다. 시도폰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사이엔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단순히 찬바람이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어둡고 축축한 바람이 부는 느낌에, 아페는 몸을 움츠렸다. 그는 꼭 지금 상황이 전날 꾸었던 꿈 같다고 생각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집행자님? 이게 지금…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저도 느꼈습니다. 뭔가 이상해요. 남부에서 이렇게 악한 기운이 느껴질 리가 없는데…. 일단 대회는 중지하겠습니다.”

시도폰은 즉시 하늘로 불꽃을 쏘아 올렸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는지 기사들은 빠르게 시도폰을 찾아왔다.

인원 확인을 마친 솔라가 시도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창을 바르게 고쳐 든 시도폰이 기사들에게 말했다.

“방금 다들 느꼈을 거로 생각하네. 남부에서 이렇게 악한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는 건… 그곳에서 강력한 악마가 소환되었다는 것 외에는 생각할 수 있는 게 없어. 부상자와 이 소식을 전할 전령 외에는 모두 나와 함께 남부로 간다. 알겠나?”

“네!”

재빠르게 채비를 바친 기사들을 데리고 시도폰은 가장 가까운 게이트를 향해 말을 몰았다.

시도폰은 얼떨결에 말에 함께 탄 아페에게 힘을 빌려달라고 말했다. 바람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뜨기 힘들었던 아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게이트에 도착한 후, 시도폰은 아페와 함께 게이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걸 발견한 크로마가 외쳤다.

“잠시만요! 단장님과 저하 단 두 분이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신성력이 들지 않겠습니까? 저도 돕겠습니다.”

시도폰은 다가오려던 크로마에게 당장 자리에서 멈추고 말에서 내리지 말라고 명령했다.

“자네들은 자기 몸이나 지키게. 이런 상황에서 내가 모두를 지킬 자신은 없어. 솔라! 게이트가 활성화되면 모두를 이끌고 먼저 들어가게, 한 번에 남부로 도착할 테니 가장 가까운 제2 신전에 들러서 상황을 알아보도록 해.”

“알겠습니다. 두 분께선… 바로 뒤따라 오시는 겁니까?”

“최대한 그렇게 하겠지만, 이렇게 많은 신성력을 사용하고 바로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는 장담 못 해. 그러니, 빨리 들어가게!”

게이트가 푸르게 빛났다. 솔라는 명령대로 기사들을 이끌고 게이트 안쪽으로 들어갔고, 시도폰은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찬가지로 신성력을 들이부은 아페는 밭은 숨을 내뱉고 있었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른 시도폰은 아페를 끌어다가 말 위에 올려주었고, 잠시 심호흡을 한 뒤, 그 뒤에 올라탔다.

“저하, 눈을 감으세요.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그 말에 아페는 시도폰의 소매를 강하게 잡으며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게이트를 뛰어넘어 남부의 성벽까지 다다랐다.

게이트를 통과한 후 잠시 쉬기는 했지만, 두 사람 다 멀쩡한 상태로 돌아오진 않았다. 구토감을 참으며 말을 몰았던 시도폰은 이미 부서져 있는 문을 그대로 통과했다.

‘솔라가 그냥 부수고 지나간 모양이군.’

문이 부서졌는데 복구할 생각도 없이, 얼빠진 표정으로 성벽 위를 어슬렁거리고만 있는 병사들을 보고 시도폰이 혀를 찼다.

그의 품에서 아페는 여전히 속이 좋지 않은지 입을 틀어막고 있다가 시도폰이 다시 달리기 시작하자 간신히 눈을 떴다.

“괜찮으십니까? 저희는 제2 신전에 먼저 들를 겁니다. 거주민들은 놀라기만 했지 아직 악마의 영향을 받진 않은 것 같으니 이 사람들에게 뭔가를 물어봐도 모를 것 같군요.”

“잠시, 잠시만요. 바로 제3 신전으로 가면 안 되나요? 그곳에서 가장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데요.”

“저도 그곳으로 바로 가고 싶지만, 사태 파악이 우선입니다. 발원지는 다른 곳일 수도 있으니까요.”

“가장 가까운 곳부터 가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시도폰이 제2 신전으로 말머리를 돌린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신전에서 별 소득 없이 돌아온 솔라와 기사단을 마주했다.

솔라는 시도폰을 보자마자 바로 제1 신전으로 갈 것을 제안했고, 시도폰은 그곳으로 방향을 틀며 솔라에게 물었다.

“제2 신전에서는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나?”

“예. 제1 신전에서 발생한 악마들을 처리하느라 기사들을 투입했는데 그들이 돌아오지 않고 고군분투하던 중, 제3 신전에서 폭발하듯 강한 악기가 솟구쳐 올랐다고만 보고했습니다. 그것 외에는 아직 아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속사포로 보고한 솔라가 잠시 멈추더니 기침을 해댔다. 크로마는 그런 솔라에게 물병을 빌려주었고, 시도폰은 말고삐를 세게 쥐었다.

‘젠장, 쥐 떼가 창궐한다더니 거짓말이었나. 그런 사실을 뭐 하러 숨긴 거야? 처리할 능력도 안 되는 것들이.’

분노한 시도폰이었지만, 그는 이런 말을 해봤자 기사들의 사기가 떨어질 거로 생각해 말을 아꼈다.

‘생각해. 가까운 제1 신전을 들를지, 거길 지나치고 제3 신전으로 바로 갈지.’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아페가 솔라에게 물었다.

“이런 상황에 죄송하지만, 혹시… 왕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소식이 전혀 없었을까요?”

솔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 표정은 딱히 감정이 담기지 않았지만, 아페는 괜한 걸 물어봐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기사들은 자기들끼리 이제 어디로 가면 되냐고 웅성거렸고, 소란스러워지려던 그때 시도폰은 잠깐 숨을 들이마시고 큰소리로 외쳤다.

“바로 제1 신전으로 간다!”

‘마음 같아서는 제3 신전으로 인원을 나누어서 보내고 싶지만, 여기서 더 나뉘면 위험할 것 같으니까. 조금 늦더라도 확실하게 확인하고 가는 게 낫겠어.’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 도착한 제1 신전에서, 기사들은 할 말을 잃었다.

악마들은 이미 제압되었는지 사특한 기운은 바닥을 더럽히기만 할 뿐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지만, 기사들의 눈에 그것보다 먼저 들어온 것은 바닥에 늘어진 시체들이었다.

가장 먼저 말에서 내린 시도폰은 정화로 악한 기운을 걷어내고 나서야 그 시신들이 성기사와 왕국군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비위가 약한 편이었던 이디스와 몇몇 기사들이 애써 시선을 돌렸다.

그들을 뚫고 솔라가 앞으로 나섰다.

“솔라? 무슨 일인가?”

시도폰의 말에, 그제야 급하게 향하던 걸음을 멈춘 솔라는 피데이스를 찾으러 간다고 답했다.

“피데이스라니, 제3 신전에 있어야 할 사람을 왜 여기서 찾나?”

“비르-베리의 활동 때문에 제1 신전으로 집무실을 옮겼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사항은 아니어서 집행자께 직접 보고는 하지 않고 제게 사적인 편지로 전했던 내용입니다.”

“알겠네, 같이 들어가지. 그리고… 힘든 사람은 억지로 들어올 필요 없네, 안은 조용한 거 같으니까.”

솔라를 따라 신전으로 발을 들인 시도폰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굵은 덩굴로 칭칭 감긴 문을 발견했다.

본능적으로 피데이스가 이곳에 있을 거로 생각한 시도폰은 문고리를 잡지 않고 외쳤다.

“피데이스! 안에 있나?”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시도폰이 문을 불태우려던 그때, 문고리가 돌아갔다. 조심스레 열린 문틈으로 피데이스의 녹색 눈이 반짝였고, 그는 시도폰에게 밖은 어떻냐고 물었다.

“어떻냐니, 기사들이 왜 저렇게 죽어있는 건지 모르겠고, 왕국군은 왜 여기까지 온 건지도 모르겠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하하… 그 사람들이 잘 해냈나 보군요. 그러면 저는….”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피데이스가 쓰러졌다. 단단히 문을 붙들고 있던 덩굴이 사라졌고, 시도폰은 바닥에 닿으려던 피데이스를 붙잡았다.

아까 시도폰이 외치는 소리를 들은 솔라와 아페, 크로마가 그곳에 도착했고, 아페는 피범벅이 된 피데이스를 보자마자 상처 부위를 살폈다. 솔라는 시도폰에게서 피데이스를 받아 눕히며 그가 의식을 잃지 않도록 계속 말을 걸었다.

완전히 열린 문으로 들어간 시도폰은 안에서 풍기는 피비린내에 소매로 코를 가렸다. 뒤따라 들어간 크로마가 커튼을 걷자, 실내가 밝아졌다.

“크로마, 뒤에!”

시도폰은 그렇게 외치며 창을 휘둘렀다. 그 공격에 순식간에 튕겨 나간 이가 벽에 머리를 박고 땅으로 떨어졌고, 의식을 잃은 듯 축 늘어졌다.

왕국군 옷을 입고 있는 그의 몸 역시 상처투성이였기에, 크로마는 그를 쇠사슬로 포박한 후에야 상처를 치료했다.

“이제 괜찮습니다. 더 치료하지 마시고 힘을 아껴두세요.”

갈라진 목소리로 피데이스가 아페의 손을 밀어내며 말했다.

구석에서 다른 이들의 시신을 발견한 크로마는 한숨을 쉬며 기절한 왕국군을 들쳐멨고, 시도폰과 함께 그 방을 벗어났다.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똑바로 앉으려던 피데이스는, 도무지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솔라에게 기댄 채, 자초지종을 묻는 시도폰에게 대답했다.

“차분하게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저 자를 기둥에 포박해두기만 하고 당장 제3 신전으로 가세요. 지금 느껴지는 악한 기운은 그곳에서 시작됐습니다.”

피데이스까지 그렇게 말하니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시도폰은 기사 두 명에게 이곳을 지키라고 명령하고 남은 이들과 함께 제3 신전으로 향했다.

시내를 가로질러 신전으로 향한 시도폰의 심장은, 불안에 휩싸여 지나치게 빠른 박자로 뛰어댔다.

‘카리타스는 괜찮을까? 신전의 다른 사제들은? 거주관 사람들은?’

사실 다른 곳보다도 카리타스가 있을 제3 신전이 걱정되었던 시도폰이었지만, 동시에 그는 그곳을 외면하고 싶었다.

제1 신전에서 보았던 시신들, 그 장면에서 연상된, 여태까지 희생되었던 모든 기사의 말로를 떠올린 시도폰은 말고삐를 붙든 손에서 힘을 살짝 풀었다.

가고 싶지 않았다. 감당하지 못할 어떤 풍경을 마주할 것 같아서.

하지만 누군가가 시도폰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고 고삐를 쥐었다. 아페가 그에게 말했다.

“뭘 걱정하시는지 알아요. 하지만, 여기서 멈춰봤자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게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성녀께선 신전의 누구보다 강하세요. 저희가 도착할 때까지 버티실 수 있을 거예요.”

정신을 차리고 다시 힘주어 고삐를 잡은 시도폰이 속도를 높였다. 말이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도착할 때까지만 버텨줘.’

그리고 잠시 후, 신전과 거주관이 있는 언덕 아래에 도착한 기사들은, 자기도 모르게 속도를 줄였다. 가장 앞에서 그들을 이끌던 시도폰도 마찬가지였다.

흐린 하늘 아래, 마치 눈에 파묻힌 듯한 새하얀 언덕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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