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4부 15화

그날의 진실

“메릭이… 죽었다니요. 그게 무슨.”

출정한 지 이틀 뒤, 메릭은 시신으로 돌아왔다. 카리타스는 보고를 받고 비틀거리며 영안실로 향했다.

‘말렸어야 했어. 그 사람이 뭐라고 하든 무시하고 성하께 빌어서라도 그 사람이 못 가게 해야 했는데.’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 커튼으로 창문을 가려둔 영안실엔 굳게 닫힌 관들이 누워있었다. 사제의 안내에 따라 어떤 관에 도착한 카리타스는 조심스레 들어 올려진 관의 뚜껑 아래에서, 메릭의 무기를 발견하고 손을 들었다.

“그만, 그만 들어 올리세요.”

차마 얼굴을 볼 용기가 없었던 그가 고개를 젓자, 사제는 다시 관의 뚜껑을 닫았다. 카리타스는 아무것도 반사해내지 못하는 눈이 자신을 보고 있을까 봐, 미동도 없이 닫힌 입 사이로 들리지 않는 원망이 새어 나올까 봐 두려웠다.

그의 죽음은 명백히 자신의 탓이었다. 제 호위 기사이니 데려갈 수 없다고 버티면 어떻게든 구할 수 있었을 테니까. 죄책감이 카리타스의 몸을 짓눌렀다. 눈물을 간신히 참아낸 카리타스는 베일을 더 아래로 당겼다. 그는 먹먹해진 목소리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꼼꼼하게 쳐진 커튼 사이로, 한낮의 햇살이 기어코 내리쬐어 관에 쓰인 메릭의 이름을 빛냈다. 사람들의 움직임 때문에 떠올랐던 먼지들이 천천히 가라앉았고, 카리타스는 들어올 때보다 느린 발걸음으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복도를 걷는 그의 뒤에선, 악마 숭배자가 붙잡혀 제1 신전으로 후송되었고, 남은 악마들도 소탕되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누군가의 보고가 이어졌지만, 카리타스는 지금 그런 걸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멍하니 고개를 끄덕인 그는, 홀로 남은 방에서 서성이다가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메릭이 죽었어. 나한텐 이제 아무도 없어.’

슬펐지만 아까는 간신히 참아내야 했던 눈물이 이제는 흐르지 않았다. 애도의 마음도, 죄책감도, 가지는 것조차 죄스러운 기분이었기에 카리타스는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 듯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시신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시도폰이 각성했을 때 보았던 참혹한 광경에 비하면, 영안실의 관에 잠들어있는 시신은 아주 준수한 편이었다.

‘그래도 죽었다는 사실은 똑같아. 그때… 가지 말라고 말렸어야 했는데. 이대로 가면 다신 못 보게 될 줄 알라고 협박이라도 했으면 가지 않았으려나.’

이제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후회였지만, 카리타스의 생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나 때문에 당신이 죽은 거지?’

누구도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악마를 탓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으니 카리타스는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다. 자신이 악마가 나타나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기사가 투입되는 일도, 일손이 모자라 메릭이 끌려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신이 알려주지 않은 게 아니라, 제 능력이 부족해서 그걸 듣고도 몰랐던 거라면? 카리타스는 조각난 기억 속에서 혹시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열심히 머리를 굴렸지만, 도저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성녀님.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카리타스가 허리를 세웠다. 낮은 목소리로 무슨 용건이냐고 묻자, 시종은 메릭의 아버지가 찾아왔다고 알렸다. 카리타스는 저도 모르게 손을 힘주어 말아쥐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문이 열리고, 회색빛 머리의 남성이 시종을 따라 들어왔다. 차와 다과가 나올 때까지 남자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다가 시종이 그에게 더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묻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성녀님께 긴히 말씀드릴 것이 있으니 나가주게.”

시종이 카리타스의 눈치를 보자, 카리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조심스레 닫히고, 남자는 찻잔엔 손도 대지 않은 채 카리타스를 노려보듯 바라보았다. 결국,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카리타스였다.

“니스 백작, 아드님의 일은 유감스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악마에 대항하여 순직한 것이니 신께선 그를….”

“아무것도 모르시는군요.”

백작은 카리타스의 말을 잘랐다. 의아한 얼굴로 카리타스가 그에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니스 백작은 종이 두 장을 그에게 내밀었다. 조심스레 그것을 받아서 읽어내려간 카리타스는, 그것을 다 읽었을 때쯤 떨리는 손을 멈추지 못했다. 다시 종이를 받아든 백작은 그것을 난로에 던져 태워버렸고, 차가 식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아이는 첫째가 아니라 재산도, 직위도 물려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였으니…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배웅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무탈하시길.”

“…그대도 조심히 돌아가세요.”

초면에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상대의 안위를 걱정해본 적은 없었다. 카리타스는 자리를 치우러 온 시종이 의아한 눈으로 테이블을 보는 것을 무시하고 생각에 잠겼다.

니스 백작은 교황이 의도적으로 메릭을 사지로 보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가 카리타스에게 보여주었던 것은 메릭의 편지와 그 편지에 대한 니스 백작의 답장이었다. 두 편지를 주고받은 시기는 메릭의 출정이 결정되기 일주일 정도 전이었다.

‘존경하는 아버지께’로 시작된 메릭의 편지는, 귀족다운 구구절절한 인사말과 안부로 이어졌다. 본론은, 자신, 그러니까 메릭 본인이 카리타스를 사랑하게 되어서 도저히 교황을 도울 수 없겠다고 털어놓는 내용이었다. 메릭은 편지로 아버지를 설득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교황의 권력을, 왕당파가 견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그래야 교황이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카리타스를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회유할 것이라고.

카리타스는 그 부분을 읽고 눈물을 흘렸지만,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서둘러 다음 장의 니스 백작의 답장을 읽은 카리타스는, 보안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두 장의 종이를 돌려주고 싶지 않았다. 백작의 답장은 간단했다. 네가 그러길 원한다면, 나는 너의 편이 되어줄 것이라고.

단 하나의 문장엔 어떤 미사여구도 없었지만, 진심과 사랑만으로 가득한 편지는 메릭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두 편지를 읽기 전까지 카리타스는 메릭이 어떤 마음으로 출정을 다짐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을 곤란하지 않게 하기 위함인 줄 알았는데, 메릭은 그가 짐작한 것보다 더 큰 사랑을 자신에게 주고 있었다.

‘그런데 난 그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게 두려워서 제대로 보지도 않았지. 좋은 곳으로 가기만 빌어줬고, 나서줘서 고맙고 미안했다는 말조차 안 해줬잖아.’

당장 그를 보러 영안실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메릭의 아버지가 다녀간 직후, 카리타스가 메릭을 보러 간다면 교황은 니스 백작을 의심할 수도 있었다. 아니, 이미 의심하고 있을 테지만, 그 의심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질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었다.

‘밤에, 아무도 모르게 가자. 일찍 잔다고 말하고 몰래 나가는 거야.’

카리타스는 떨리는 손을 맞잡았다. 그는 그저 밤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업무를 처리했다. 교황이 그를 불러 위로의 말을 건넸을 땐 의심을 피하려 적당히 슬퍼하는 척했지만, 그 속은 이미 새카맣게 문드러져 있었다.

“참, 사건이 일단락되었으니 임시로라도 호위 기사를 붙여드리려고 합니다. 나오시게.”

의아한 얼굴로 카리타스가 고개를 돌리자, 문 옆엔 오드샤가 서 있었다. 오드샤는 붕대를 두른 얼굴로 떨떠름하게 카리타스에게 인사했고, 마찬가지로 어색한 기분이 들었던 카리타스도 짧게 인사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복도를 걷는 동안, 하늘은 빠르게 어두워졌다. 노을이 긴 그림자를 바닥에 비추고, 소란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는 조용한 복도를 짙은 주홍색으로 물들였다.

카리타스는 방에 도착해 문을 열고는, 오늘은 저녁을 거르고 일찍 잘 테니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오드샤에게 명령했다.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그를 보고 있던 오드샤는 속으로만 한숨을 쉬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메릭을 잃은 카리타스에게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리라.

방으로 들어온 카리타스는 누가 자신의 동태를 살필까 싶어 커튼을 치고 침대 안으로 베개를 밀어 넣었다. 미리 잠옷으로 갈아입고 밤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카리타스는, 취침 점호 소리를 듣고 문 옆에 쭈그려 앉았다.

‘보름달이 떠서 다행이야. 작은 등불이라고 해도 순찰하는 사제한테 들킬 수 있으니까.’

물론 신전의 길은 전부 외우고 있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카리타스는 속으로 침착하라고 외치며 사제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조심스레 문을 연 그는 멀어진 사제의 뒤통수를 확인하고 다시 문을 닫은 뒤, 재빨리 영안실로 향했다.

분명 최대한 조용히 달리고 있는데도 자신의 발걸음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급하게 뛴 탓인지 심장이 요동쳤고, 달빛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비추어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었다.

‘아무도 없지?’

영안실에 도착한 카리타스는 소리가 나지 않게 천천히 그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영안실 특유의 낮은 온도였다. 겨울이라 외부도 춥긴 했지만, 영안실은 시신의 부패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한겨울에도 냉방 기구를 켜두었기 때문이었다. 카리타스는 갑자기 폐부로 들어오는 찬 공기에, 기침이 나오려던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커튼이 거두어진 창문으로 달빛이 스며들어 줄지어 누워있는 관들을 비추었다. 열린 문의 반대편엔, 순교한 사제들의 영혼을 천국으로 이끌고자 기꺼이 지상에 강림했던 천사의 동상이 미소짓고 있었다.

카리타스는 그 미소가 오늘따라 원망스럽다고 생각하며 조심히 문을 닫았다. 그러자 영안실은 온전히 침묵에 잠겼다. 살아있는 사람이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체감한 카리타스는 떨리는 손을 맞잡았다.

‘아까 이쯤에 있었던 것 같았는데. 메릭 드 니스….’

알파벳 순서대로 줄지어 있는 관을 지나치며 꼼꼼히 훑던 카리타스는 ‘L’ 열에서 멈추었다.

‘레너드(Leonard)…는 렌이잖아. 언제, 왜?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갔는지, 그의 관 위에는 편지가 놓여있었다. 실례인 것을 알았지만, 카리타스는 손을 뻗어 그 편지 봉투의 한 귀퉁이에 적혀있는 발신인의 이름을 읽었다.

‘코지가 왔었구나. 왜 여기까지 오는데 나한테 연락을 안 했던 거지? 그 일 때문에 나한테 실망해서 그런 건가? …당연한 일이었네.’

카리타스는 시도폰에게 메릭과의 교제 사실을 알리기 전, 코지에게 먼저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 코지는 절대로 시도폰에게는 진실을 밝히지 말라고 했지만, 카리타스는 그를 배신하고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고 말았다. 편지를 제자리에 놓아둔 카리타스는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렌의 안식을 기원했다.

‘가자.’

‘L’ 열 바로 다음이 ‘M’ 열이라 그의 발걸음은 점차 느려졌다. 마침내 메릭을 찾아낸 카리타스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관이 놓인 위치는 절묘하게도 달빛이 잘 드는 곳이었다. 덕분에 카리타스는 관 뚜껑의 홈을 찾아 비교적 수월하게 관을 열 수 있었다.

달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관이 열렸고, 천천히 그것을 밀어낸 카리타스에겐 메릭의 검과 손, 상체가 먼저 보였다. 악마와 싸우느라 더럽혀진 상태 그대로였다. 시신을 땅에 묻기 직전에 그것을 정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 이건 그리 놀랍지 않았다.

차갑고 어두운 관에서 꺼림칙한 기운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여기까지 관 뚜껑을 밀어낸 카리타스는 메릭의 죽음을 다시 확인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싸워야 했다.

‘괴롭겠지만, 봐야지. 나 때문에 죽은 사람이라면 내가 책임지는 게 맞아. 메릭, 늦어서 미안해요.’

관을 붙든 손은 천천히 움직였다. 카리타스는 여태껏 봐온 기사들의 죽음을, 유가족이 찾아와 슬퍼했던 모습을 떠올렸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안타깝기만 했던 일이 이제는 제 일이 되었다. 누군가가 들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어느새 머리 한구석으로 밀려났다. 카리타스는 으레 유가족이 관 속의 기사에게 말했던 것처럼 중얼거렸다.

“메릭, 내 말이 들리나요.”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관의 뚜껑이 바닥에 놓였다. 완전히 열린 관 속에서 메릭은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다. 창백한 안색은 달빛처럼 서늘했고, 눈동자는 본래의 색을 잃어버린 듯 탁해져 있었다. 크게 뜨인 눈과 마찬가지로 다물리지 못한 입, 그리고 혈액이 고여있는 귀가 카리타스의 시선을 끌었다.

‘이상해. 이건 고통스럽게 죽었다기보다는 놀라서 죽은 것 같잖아. 귀는 왜 다친 거지? 갑자기 큰 소리를 들을 일이 뭐가 있다고?’

추모와 애도의 마음은 순식간에 공포로 바뀌었다. 그는 다급히 메릭의 얼굴에서 눈을 떼고 상체의 혈흔을 유심히 살폈다. 쥐 떼의 형태로 소환된 악마가 낸 상처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길고 얇은 상처였다.

‘그리고 상처의 크기에 비해 흘린 피의 양이 적은 느낌이야. 죽은 몸에다가 대고, 피를 내기 위해 칼로 찌른 흔적…인가.’

하체 쪽은 별다른 상처가 없는 대신, 무릎 부분에 흙이 묻은 흔적이 있었다. 이것만으로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카리타스는 소매에 넣어뒀던 부싯돌과 나뭇가지를 꺼냈다. 콘피테오르를 사용해 이곳을 밝힐 수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는 그것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몇 번을 실패한 끝에 카리타스는 겨우 불을 붙일 수 있었다.

‘감이 좋은 사람이라면 신성력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그래, 그래서 사용하지 않는 것뿐이야.’

불이 붙은 가지를 관 근처에 들이댄 카리타스는 하체에서 상체로 불빛을 움직여가며 꼼꼼히 시신을 살폈다. 그러다 머리 주변의 관 바닥이 유난히 어둡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귀에서 흘러나온 피가 저기까지 흘러간 건가? 확인해봐야겠어.’

조심스레 불을 끈 카리타스는 떨리는 손을 뻗어 메릭의 후두부를 만져보았다. 단단한 머리뼈가 만져져야 할 곳이 카리타스의 손을 따라 안쪽으로 패이듯 들어가 버렸다.

“머리뼈가 부러졌어.”

카리타스는 이 감각이 끔찍하다고 느끼면서도 손을 뗄 수 없었다. 누군가가 메릭의 머리를 뒤에서 가격했다. 머리뼈가 골절될 정도로, 아주 세게.

“누가 당신을 죽였나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카리타스는 메릭의 시신을 놓아주지 않고 질문했다. 후두부에 닿기 직전까지 떨리던 손은 이제 더는 떨리지 않았다. 달빛이 다시 두 사람을 비추었다.

메릭의 눈을 감겨준 카리타스가 그를 다시 눕혔다. 정갈하게 모인 손과 감긴 눈을 보면 메릭은 깊은 잠에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살해당했다. 악마가 아닌 같은 인간, 그것도 사제의 손에.

‘민간인들은 사태가 일어난 지 이틀 만에 전부 그곳을 버리고 도망쳤어. 불량배라고 하더라도 거길 들어갈 정도로 배짱이 있는 놈들은 없을 테지.’

결정적인 증거는 따로 있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 카리타스는 후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손을 뻗어 축성 주문을 거꾸로 외우자, 메릭의 몸에서 하얀 기운이 빠져나왔다. 카리타스가 축성을 걸기 위해 사용했던 신성력이었다.

‘악마가 공격했다면 축성은 소모됐을 거야. 단 한 번이라도 공격했다면… 그런데 이렇게 그대로 돌아왔다는 건, 나가자마자 제대로 전투도 못 해보고 같은 사제에게 살해당했다는 건가.’

카리타스는 검은 피가 묻은 손으로 그대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이용당한 메릭이 불쌍했고, 순진하게 교황에게 속아 넘어간 자신이 우스웠다. 메릭이 왜 죽어야 했을까? 답은 간단했다. 자신의 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보고 있던 시도폰이 아니라고 외쳤지만, 이것은 과거의 기억일 뿐이었다. 그는 그곳에 개입할 수 없었고, 악마는 이 광경을 외면하지도 못하게 그를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악마는 물었다.

두 번째 질문이다. 등불이여, 네 정인의 호위 기사는 인간에게 살해당했다. 그걸 알게 된 성녀도 제정신이 아니겠지.”

“카리….”

“결국, 가장 악한 건 악마도 아니고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인류의 역사 이래, 가장 청렴한 집단이라는 성직자들이 이런 짓을 했는데, 그대는 아직도 인간의 편을 들 것인가?”

비록 움직이거나 기억에 개입할 순 없었지만, 소리는 마음껏 칠 수 있었다. 시도폰은 기사들에게 명령할 때처럼 배에 힘을 주고 외쳤다.

“닥쳐라, 그딴 식의 유혹은 통하지 않아! 어디까지 얽혀있든 나는 그들이 받아야 할 죗값을 치르게 할 거다. 거기에 네놈의 의견 따위는 필요 없어.”

“이렇게 악한 인간들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니,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미련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중얼거리던 악마는 시도폰의 입까지 막아버렸다. 어떻게든 소리를 내보려 했지만, 성대에서 울린 소리는 굳게 다물린 입안에서 계속 맴돌기만 할 뿐이었다. 시도폰은 이제 정말 꼼짝없이 카리타스의 행동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용했던 영안실에서, 카리타스는 웃었다. 동상의 미소보다 훨씬 요란한 웃음이었지만, 그 웃음소리엔 기쁨 대신 비참함이 담겨 있었다. 교황은 정말로 자신을 고립시킬 생각이었다. 홀로 된 자신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었을 것이다.

‘메릭이 얼마나 거슬렸을까? 끄나풀이랍시고 뽑아놨더니 그 역할은 제대로 못 하고 오히려 내 편을 들고 있었으니….’

너무 웃어버린 나머지, 카리타스는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비틀거리다가 누군가의 관을 걷어차고 나서 그는 겨우 제자리에 섰다.

‘또 누가 죽을까? 누굴 죽이려고 할까? 남은 내 편이라고는 시도폰밖에 없을 텐데.’

헤일로 전 기사단장의 사망 당시, 카리타스는 그 관 속에 누워있는 사람이 시도폰이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당시엔 시도폰이 악마에 의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떨었지만, 메릭의 시신을 직접 마주하니 생각이 바뀌었다.

‘시도폰이 교황이나 교황의 뜻을 잇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다면, 나는 그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카리타스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는데, 그 애를 지키려면 난 어떻게 해야 해?”

[어떻게 하긴, 그 애가 죽기 전에 먼저 그 녀석들을 죽여버리면 되는 거지. 우리와 함께하자,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줘.]

기이한 목소리가 카리타스에게 속삭였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여럿인 것 같기도 했고, 하나인 것 같기도 했으며, 성스러우면서도 간살스럽기도 했다.

“너희는 누구야?”

[너와 네 동료가 …라고 불렀던 것들.]

“잘 안 들려.”

[이쪽으로 와줘. 그래, 그렇게 더 가까이….]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카리타스가 발걸음을 옮겼을 때, 영안실 밖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이곳으로 똑바로 향하던 발소리는 입구에서 잠시 멈추더니 천천히 그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달빛이 구름에 가려졌고 카리타스 또한 어둠에 잠겼다.

초를 들고 영안실로 조심히 발을 들인 이는 얀이었다. 그는 우연히 그 주변을 순찰하다, 카리타스가 관을 걷어찬 소리를 듣고 문을 연 것이었다. 혹여 시신들이 문소리를 듣고 잠에서 깰까 봐, 얀은 신경 써서 문을 닫았다. 초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영안실 내부를 순찰하던 얀은 마침내 발견하고 말았다.

동상 아래에 서 있는 성녀와

산산이 부서지는 천사의 동상을.

하늘 높이 치솟는 새하얀 자작나무와

반대로 땅을 뒤덮다시피 뻗어 나가는 붉은 뿌리를.

그리고,

뿌리보다 붉은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는 누군가를.

“[왜 날 그런 눈으로 봐? 이상한 건 내가 아니야, 너희였어. 아니 한때는 우리였다고 해야 맞나?]”

“아… 아아.”

마구잡이로 떨리던 얀의 손에서 초가 떨어져 내렸다. 얀은 그대로 뒤돌아 영안실의 입구로 뛰어가려 했으나, 문은 이미 빽빽한 나무로 막혀있었다.

절망스러운 눈으로 그가 다시 뒤를 돌아봤을 때, 붉은 눈은 바로 그의 뒤에 있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그래 당연해, 내가 진실을 알려줄게.]”


궁금한 게 있는데

동상 아래에 서 있는 성녀와

산산이 부서지는 천사의 동상을.

하늘 높이 치솟는 새하얀 자작나무와

반대로 땅을 뒤덮다시피 뻗어 나가는 붉은 뿌리를.

그리고,

뿌리보다 붉은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는 누군가를.

요 부분 연출말이에요…. 저 모양이 나을지

동상 아래에 서 있는 성녀와 산산이 부서지는 천사의 동상을.

하늘 높이 치솟는 새하얀 자작나무와 반대로 땅을 뒤덮다시피 뻗어 나가는 붉은 뿌리를.

그리고, 뿌리보다 붉은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는 누군가를.

요게 나을지 고민됨. 이게 한글 편집화면에서는

요렇게 되거든요. 의견이 궁금합니다.

+)

이렇게도 가능함. 어라 이게 제일 괜찮아 보이는..?

*tmi) 그저께 외전으로 시도카리 뽑보하는 거 쓰고 ‘우와 정력 다 털림 ㄷ’ 이러고 있었는데, 오늘 이거 쓰고 이거지예~~함. 스릴러가 좋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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