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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판타지14 / 에메히카

키워드 : 다정한, 장난스러운, 에메트셀크에게 화관 씌우기

글자수 : 2,300자

 

픽시들은 노는 것을 좋아하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그들에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흥미로운 요소를 갖춘 데다가 놀아달라고 조르면 머뭇거리다 결국 터를 잡고 놀아주는 르네는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녀는 오늘도 픽시들에게 둘러싸인 채 풀밭에 드러누워 마구 간지럼을 태워지고 있었다. 르네도 지지 않고 손을 휘저어 픽시들의 비행을 방해했지만 그녀의 힘을 자각하고 있어서인지 조심스러운 행동이었다. 픽시들은 르네가 봐주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겁도 없이 영웅에게 덤비며 즐거운 웃음소리를 냈다. 르네 역시 픽시들의 짓궂은 장난에 난감해하면서도 간만의 유치한 놀이가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러다 픽시 하나가 꽃을 따다 르네의 귓바퀴에 꽂아주었다. 노느라 발개진 그녀의 얼굴과 하얀 꽃이 그림처럼 잘 어울렸다. 르네가 쑥스러운 듯 머리를 만지자 픽시들은 그녀의 주변을 돌며 여기저기 꽃을 더 꽂아주었다. 아까처럼 간지럼을 태울 때보다 이것이 더 간지러워서 르네는 풀밭을 한바탕 굴러다녔다. 하나로 단단하게 묶은 머리가 헝클어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에메트셀크는 코웃음을 쳤다. 정말 바보 같은 여자였다. 이곳저곳에서 부탁하는 것을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받아주느라 정신없이 바쁜 주제에 심지어는 '놀아달라'는 부탁까지 들어주고 있었다. 그였더라면 픽시를 마법구에 가두어 나무뿌리 깊은 곳에 묻어주고 다시는 귀찮게 굴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픽시가 그대로 나무의 양분이 되든 간신히 기어 나오든 그의 알 바가 아니었다. 더 이상 그녀를 지켜보다가는 괜히 군소리를 듣겠구나 싶어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그의 역할은 그녀를 감시하며 자질을 확인하는 것이지 이런 시답잖은 일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무의 굵은 가지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저 시끄러운 픽시의 소리가 사라지면 다시 감시할 생각이었다.

그런 에메트셀크의 얼굴 위로 자잘한 꽃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그는 '다 된 놈'이니만큼 꽃가루 알레르기 같은 건 없었지만 이건 충분히 거슬릴 만한 일이었기에 눈을 번쩍 떴다. 어느 겁도 없는 픽시족이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가 싶었다. 그때 나무 아래에서 쾌청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재채기 같은 건 안 해? 재미없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나무 아래에는 풀밭을 뒹굴던 르네가 서 있었다. 얼마나 신나게 놀았던지 옷 군데군데에 풀물과 꽃물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손빗으로 정리하며 웃었다.

“뭐하긴. 심심해 보여서 놀아주는 거지.”

“그건 네가 저 파리들에게 해주는 거겠지.”

“공평하게 픽시 아이들도 놀아주고 당신하고도 놀아줄게.”

“그것참 공명정대한 영웅 나셨군 그래?”

아무리 비꼬고 날 선 말을 뱉어도 르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어째서인지 아까 풀밭을 굴러다닐 때보다 더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는 머리를 다시 묶고는 높게 뛰어서 가지를 붙잡고 그 위에 걸터앉았다. 에메트셀크가 누워있던 가지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에메트셀크는 그 반동보다는 르네의 행동에 놀랐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뭐하긴. 심심해 보여서…… 아, 이 대화 아까 하지 않았어?”

그러더니 이게 대단한 농담이라도 되는 양 또 한 번 소리 내 웃는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넋이 나간 에메트셀크의 머리 위로 화관 하나가 올라갔다. 아까부터 르네의 손에서 빙글빙글 놀아나던 것이었다. 픽시들과 함께 만들었는지 꽤 세심하고 복잡했다. 그녀는 턱을 괸 채로 에메트셀크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와, 꽃이 너무 예쁘다!”

“무슨…….”

“왜? 당신을 예쁘다고 해줄까 봐서?”

그렇게 말하는 르네의 표정은 감히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정해서 할 말을 잃게 했다. 귓바퀴를 쓸어 넘기는 산들바람 같았다. 그녀는 에메트셀크에게 준 화관을 한 번 만지고는 “버리지 마.” 하고 속삭였다. 그러고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가지에서 뛰어내렸다. 그녀는 다시 픽시들과 속닥거리며 풀밭으로 향했다. 에메트셀크는 곧장 화관을 벗었지만 그것을 내다 버리지는 않았다. 그저 다시 드러누워 가슴 위에 올려두었을 뿐이다.

버리지 못해. 에메트셀크는 입 밖으로도 감히 내뱉지 못 할 말을 속으로 삼켰다. 그는 화관의 잎사귀를 만지작거리다가 손톱 끝으로 조금 찢고 말았다. 그러자 꽃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만큼 괴상한 식물들로 화관을 만들어 건네던 사람이 떠올랐다. 인상을 팍 찌푸리는 에메트셀크의 머리 위에 얹어주면서 똑같이 ‘버리지 마.’ 라고 속삭였었다. 그에 비하면 이 화관은 아주 정교하고 예뻤다. 그 여자의 솜씨인지, 픽시의 솜씨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화관을 버릴 수 없었다. 같은 기억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기억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에메트셀크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 화관을 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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