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레일: 글

[스텔츄린] 사막

리트머스 by 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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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셔터를 누른다. 남자의 목에 걸린 노란색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메롱을 한다. 남자는 카메라의 혀를 들추어본다. 모래 알갱이로 가득 찬 사막의 모습이 담겨 있다. May I have your attention, please. 선글라스를 낀 가이드가 손뼉을 친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낸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남자는 계속해서 사진을 찍는다. 남자는 사진이 인화되어 나오는 것을 기다린다. 관광객들이 남자의 옆을 뛰어간다. 남자는 몸을 돌려 관광객들이 뛰어간 방향을 바라본다. 사막 구석에 오래된 지프차가 세워져 있다. 모래에 덮인 지프차 바퀴의 철체가 모래 알갱이와 함께 햇빛을 반사한다. 아이들이 지프차에 기어오른다. 차 안에 탄 아이는 핸들을 마구 내리친다. 아이가 입으로 내는 빵빵 소리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인다. 낡은 지프차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다. 남자는 사진을 찍는다. 지프차 루프와 보닛에서 흰 모래가 우수수 떨어진다. 사금이 떨어지는 지프차 안에서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인화되어 나온다. 등 뒤에서 가이드의 손뼉소리가 들린다. 어른들은 차창을 두드리며 아이들을 부른다. 아이들이 지프차에서 빠져 나온다. 관광객들은 손에서 모래를 털고 가이드 쪽으로 걸어간다. 지프차에서 모래가 후둑 떨어진다. 남자는 지프차의 운전석에 올라탄다. 피부에 와닿는 공기가 건조하다. 남자는 차체를 더듬는다. 딱딱하고 아늑하다. 남자는 카메라에 손을 댔다가 다시 뗀다. 물에 잠겼을 때라면 찍을 가치가 있었을텐데. 이곳 우유니 사막은 오래 전엔 호수였다. 지금은 사막이 되어 버렸지만, 이곳도 한 때는 소금물에 가득 차 있었다. 사막이 되기 전 이곳에 왔더라면, 아쿠아리움처럼 물 속에 잠긴 지프차를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자가 숨을 내쉰다. 건조한 지프차 안 공기에서 모래들이 들썩인다. 한 손으로 턱을 괸 남자는 다른 손으로 핸들을 건드린다. 경적을 누른다.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남자는 지프차가 굴러간 적은 있었을까 생각한다. 남자의 손에 모래가 묻어난다. 하얀 모래 알갱이가 까끌하다.

 

마주잡은 어머니의 손이 까끌하다. 퇴근한 여자는 어머니의 병실로 간다. 인공호흡기를 단 채 잠을 자던 어머니는 여자의 발자국 소리를 귀신같이 알아챈다. 여자는 어머니의 침대 옆 간이침상에 앉는다. 어머니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여자 쪽으로 몸을 돌리려 한다. 여자는 어머니의 손을 잡는다. 어머니의 얼굴에 주름살 꽃이 핀다. 여자는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잠에 든다. 아침이 되면 여자는 우두둑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깬다. 몸을 일으킨 여자는 눈이 부셔 손으로 눈가를 가린다. 여자의 옆에서 색색대는 어머니의 숨소리가 건너온다. 여자는 창가로 다가선다. 색바랜 블라인드에는 대추야자가 늘어선 오아시스가 그려져 있다. 여자는 구슬이 알알이 박힌 모양의 체인을 당겨 블라인드를 내린다. 조식 식판이 들어온다. 간호사는 익숙한 손길로 여자의 무릎 위에 식판을 내려놓는다. 여자가 숟가락을 든다. 잘 먹겠습니다. 여자는 어머니를 본다. 눈을 감은 어머니가 자는지 깨어있는지 알 수 없다. 간호사가 어머니의 링거액을 빼낸다음, 새 영양제 링거와 연결시켜주었다. 오랜만에 같이 하는 식사다. 병원 미역국은 언제나 싱겁다. 목에 미역이 걸린 여자가 컥컥거린다. 의사가 들어와 차트를 넘긴다. 다 괜찮네요. 어머니 금세 나으실 거예요. 7년째 들은 말에 여자는 네, 하고 대답한다. 다행이네요, 하는 덧붙임은 사라지고 없다. 여자는 의사의 차트를 흘겨다본다. 차트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을 것이었다. 7년째 바뀌지 않는 검사를 굳이 할 필요는 없었다.

어머니의 생이 끝나던 날, 여자의 삶은 시작되었을까.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날, 여자는 우유니 사막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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