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연과 고찰 (00) (23.10.22 재업)
리메이크합니다!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려요!/리메이크 1화|23/10/22 재 리메이크. 최근화 고러시 내용 모름 주의.
듀얼.
고대 이집트에서 행하던 재판을 기원으로 만들어진 게임.
세상의 시작이며, 하나의 세상을 나누었던 계기.
고대의 소년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미소 지었다. 일곱 번의 시간이 일곱의 세상을 만들어, 본래의 세상에서 완전히 떨어져 새로운 세상을 만든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여덟 번째의 시간이 여덟 번째의 세상을 만들고 있었다.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만족스럽다. 드물게 감정을 완전히 드러내며 즐거운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년은 미세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파라오, 이제 가실 시간입니다! 멀리에서부터 달려오는 충신의 부름이 들려왔다.
“…그래, 다녀오마.”
작은 한숨과 함께 가볍게 인사한 소년은 황금으로 장식된 의자에서 일어나 자신의 앞을 확 제쳤다. 소년의 움직임을 따라 새하얗게 찢어진 공간 너머를 잠시 응시하다가, 소년은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뎠다. 소년의 시야에 자리 잡고 있던 사막의 풍경이 일렁이며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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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넘어서 소년이 도착한 곳은 푸근한 분위기의 평범한 방이었다. 소년은 익숙하게 이동해 왔지만 오랜만에 방문하는 것처럼 생경한 눈으로 벽을 장식한 액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누군가가 선배! 라 부르며 달려들어 소년을 확 끌어안았다.
“쥬다이?”
소년이 주변의 기척을 짚어내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소년이 상대방의 이름을 급하게 부르자 갈색 머리의 상대- 쥬다이가 소년에게서 떨어져서 방긋 웃어 보였다. 소년의 얼굴 또한 그 웃음에 화답하듯 부드러워졌다.
“넵!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템 선배!”
“오랜만이군. 기계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이번엔 현세에 있다가 온 모양이지?”
“오, 역시 정확하세요! 더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 일찍 와 있었어요. 심심했는데 선배께서 오셔서 살았어요! 선배는 웬일로 지금 오셨어요?”
“쉬라고 밀려났다고 할까… 빨리 가라고 하도 재촉하길래 밀려났다.”
“밀려나셨다고요? …엇, 그럼 지금은 일 좀 줄어들었나요? 최근에 엄청 바쁘셨잖아요.”
쥬다이는 눈을 크게 깜빡이고는 물었다. 가장 최근에 명계에 다녀갔던 이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현세에서 돌아왔다는 그가 가지기엔 미묘한 질문인 것도 사실. 이건 또 무슨 생각일까 고려하며, 태양신의 이름을 가진 소년은 지그시 쥬다이를 바라보았다. 무슨 맥락인지는 몰라도 진심으로 물었던 것인지 쥬다이는 그 시선에 열렬한 눈으로 소년을 마주 바라보았다.
아, 진실한 걱정이었구나.
소년, 아템은 작은 깨달음에 살짝 눈꼬리를 접어 웃었다.
“네가 중간에 와서 도와줬잖아. 그런데 무슨 걱정을 다 하지?”
“네? 그거야, 그때 다 못 했으니까 그렇죠! 그거 계속 쌓이잖아요.”
“그래도 덕분에 많이 줄었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다시 한번 그땐 고마웠다.”
존경하는 선배의 감사에 쥬다이는 걱정이 가득하던 얼굴에 놀라움과 즐거움을 한가득 띄웠다.
감사 표현 하나에 이렇게까지 반응하다니. 아템이 새삼스럽게 제 과거를 되돌아보고 있는 것은 눈치채지 못한 채, 쥬다이는 크게 뜬 갈색 눈을 반짝 빛내며 어설프게 웃었다.
“아… 아하, 아하하… 벼, 별거 아니었는걸요!!”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도 아템은 귀여운 직속 후배를 사랑을 담아 바라보았다. 쥬다이는 영 부끄러운 듯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눈빛을 바꿨다.
“아무튼, 그래서 한동안 하우스에 오지도 못하셨잖아요. 모두 그렇지만 유우기 선배랑 유우토가 특히 아쉬워했었어요. 제가 굳이 명계까지 갔던 거 그거 때문이라고 말씀 드렸었나요?”
“그래서였나? 어쩐지 웬일로 기특한 짓을 다 한다 했더니.”
“웬일이라뇨! 저 유우키 쥬다이, 선배님들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하는 사나이입니다. 근데 끝까지 못 도와드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진짜 줄어든 거 맞나요?”
자신을 어필하던 당찬 목소리가 한순간에 불신을 품었다. 하우스에 들어오는 '주인공' 중에서도 가장 아템의 상황을 체감하고 있는 쥬다이로서, 아템의 말이 이런 류에선 믿을 만한 것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당연한 경계였다. 마찬가지로 그 사실을 잘 아는 아템이 느긋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전염병으로 인한 일은 확연히 줄었지. 지금 일은 전쟁이 아직 안 끝나서 불안정하고.”
“…아, 전쟁….”
“너도 전쟁 때문에 일찍 들어온 것 아닌가?”
“맞아요. 죽은 자가 꽤 된다고 들었는데… 저희 시간에서도 이제 거의 안 쓰는 걸 왜 다시 들고 나타난 건지 원.”
“일으킨 국가의 지도자에게 그리 해서 얻을 이익이 있었나 보지.”
아템은 싸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앞을 내다보았다. 고대 왕국의 파라오로서 전쟁 자체는 이해 못할 것이 아니었지만, 그의 시간에서도 전쟁은 분명 옹호받을 것이 아니었다. 재산의 피해를 유발하는 점까지는 그렇다 쳐도 병사와 민간인의 피해를 부른다는 것은 절대 그저 넘길 수 없었다.
하물며 그런데, 인구도 훨씬 많고 고려해야 할 사안이 많은 현대의 현세에서 전쟁이라니.
차게 얼어붙은 파라오의 얼굴을 본 쥬다이는 키득 웃었다. 전쟁을 일으킨 녀석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죽어서 평안하지는 않을 터였다. 사후의 세계를 지배하는 태양신에게 제대로 찍혔으니까.
“…이런 얘긴 그만하지. 오랜만에 만나는 거니까.”
피곤한 듯 목덜미를 만지며 아템이 제안하자 선배의 말만은 곧이곧대로 듣는 쥬다이는 방긋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노한 신을 바로 앞에 두고 있는 것도 별로였고, 그 말대로 너무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과로하지 말라고 하려던 의도가 분노를 일으키는 것만은 사양이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나쁘진 않았지만 대화 나눌 거리는 많았다. 아템은 쥬다이의 존재에 놀라서 잠시 미뤄뒀던 여덟 번째 세상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여덟 번째가 왔던데. 알고 있나?”
“아, 봤어요. 세 명이고, 처음으로 여자아이가 있더라고요.”
쥬다이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 평온함에 넘어갈 뻔한 아템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말하는 것이 소문을 들었다거나 느꼈다는 것보다는 '보았다'에 가까웠다.
“만나본 건가?”
“차원 사이로 몰래 봤어요! 지난번에 갔다가 시간 관리하는 분께 지금 여기 있으면 안된다고 쫓겨났거든요. 오늘 온댔는데, 선배 오신 거 말고는 아직 아무도 안 왔-, 선배?”
아템이 갑자기 어딘가 멀리를 곧게 응시하는 것을 본 쥬다이가 의아한 낯으로 그를 불렀다. 잠깐만. 쥬다이의 부름도 듣지 못한 채 계속해서 그곳을 바라보던 아템은 무언가 확신한 얼굴로 짤막하게 말하곤 성큼 나아갔다.
곧장 그를 따라 방을 나선 쥬다이는 나오고 나서야 느껴지는 인기척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저 멀리 보이는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아니, 기척 못 느끼는 건 또 오랜만인데. 그러고 보면 귀여운 후배들이 무슨 연구 성과를 실험해 보겠다고 언급했던가.
쥬다이는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자랑스레 웃었다. 유벨과 섞인 자신의 기감을 막아내다니, 굉장한 성과이지 않은가! 물론 선배께는 안 먹힌 모양이지만, 신을 막는 건 불가능하니 이상하지 않았다. 벽을 잠시 둘러보며 자랑스러운 후배들을 떠올리던 쥬다이는 1층에서 느껴지는 아템의 존재감을 따라 난간을 잡고 뛰어내렸다.
한편, 큰 보폭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뿐 서두르지는 않고 있던 아템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귀에 익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얼마 전에 '이야기'를 시작했던 아이들의 목소리. 여덟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상대가 누군지 확인도 안 하고 아이 특유의 높은 목소리에 자리를 박차고 나온 터라 이제야 문밖의 아이들이 누군지 확인한 아템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밀번호를- 유세이가 안 알려준 건가. 아직 연락 수단이 잡히지 않았겠지. 하고, 아이들이 문밖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는 이유를 추론하면서.
“슬슬 먼저 들어가도 되지 않을…까? 겉보기엔 그냥 집인데.”
“음! 주인의 허락 없이 남의 집에 함부로 발을 들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오.”
“으응… 상당히 고민되기는 하는데, 이 집 되게 위험한 기능이 많은 것 같아. 기다리는 게 맞지 않을까? 근데 유우히, 벨 눌렀어?”
“어? 눌렀던 것 같은데?”
“벨이 무엇이오?”
“아, 집에 있는 사람을 밖에서 부르는 용도의 기기야. 저걸 누르면 돼.”
“음, 그렇다면 안 눌렀소만.”
“뭐어?!”
유쾌한 대화에 작게 웃은 아템은 현대의 옷으로 차림새를 바꾸는 것과 동시에 문을 벌컥 열었다. 문밖에서 대화를 나누던 세 명의 인영이 깜짝 놀라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오, 작다. 어느새 다가온 쥬다이도 웃으며 세 명의 어린 후배들을 내려다보았다.
“누, 누구세요…?”
“…음, 안녕. 만나는 건 처음이구나.”
용기있게 던져진 떨리는 질문에 아템은 눈을 굴리다가 인사했고 쥬다이는 그저 웃어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 선배는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후배가 선배의 이름을 맞추게끔 하는 것은 쥬다이와 유세이가 인사도 안 했는데 이름을 부르며 인사해서 생겨난 하우스의 사소한 전통이었다.
다행히 소개가 없어도 둘이 누구인지 깨달았는지, 셋 중 유일한 여자아이가 화들짝 놀라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유아무, 왜 그래?”
“혹 저들이 누군지 안 것이오?”
막내가 있어서 다행이네요.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한 다른 둘을 보며 쥬다이가 아템에게 속삭였다. 아템은 눈에 띄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두 오빠들을 타박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저들이라니. 예의를 지켜야지, 유디아스. 죄송해요. 유디아스가 아직 잘 몰라서…”
“아니, 신경 쓸 것 없어. 그리 긴장하지 않아도 된단다.”
“맞아 맞아. 긴장하지 마, 아가야. 우리 그런 건 별로 신경 안 쓰는 문화거든. …아, 그래도 선배님들께는 예의 잘 지켜야겠지? 본인들께선 신경 안 쓰시지만 존경하는 분들께 예의 없이 행동하는 건 좀 그렇잖아. 그런 아이들은 나나 우리 선배님 신하들이 확하고,”
“쥬다이.”
“네에~”
“…혹시 아템 선배님이랑 쥬다이 선배님 맞으신가요…?”
여자아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쥬다이의 이름이야 방금 아템이 불렀으니 알 수 있었겠지만, 현대의 복장을 하고 있던 만큼 아템과 유우기는 구분하기 꽤 어려웠을 텐데. 아템은 살짝 미소 지어 긍정했고 쥬다이는 오, 정답! 이라고 활기차게 외치며 아이의 물음에 답했다.
다만 그 활기참도 잠시, 둘의 이름을 들은 세 명의 얼굴은 한순간에 긴장으로 가득 찼다. 물론 첫 번째 시간과 두 번째 시간의 대선배들―그것도 온화하다는 유우기가 없는― 앞에서 긴장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므로 아템과 쥬다이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바로 편하게 대한다면 더 놀랐을 것이다.
이런, 처음 만나면 맨날 이런다니까. 작게 중얼거린 쥬다이가 어색하게 목덜미를 매만졌다. 딱딱하게 굳은 후배들을 지그시 바라보던 아템은 우선 들어오라며 후배들을 집 안으로 이끌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 후배들을 앉혀놓은 아템이 고민에 빠졌다. 긴장한 후배를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제대로 긴장한 후배는 유우야와 유우가밖에 없었다. 나머지야 뭐… 다들 그런 성격들이니. 쥬다이를 짧게 바라본 아템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불필요한 고민을 끝냈다. 파트너가 유우가와 처음 만났던 때를 참고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너희, 이름은?”
“선배님, 좀 더 친절하게! 아가들 겁먹어요!”
“……이름은 어떻게 되니?”
아템은 바로 그거라는 듯이 엄지를 척 올리는 쥬다이를 보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대선배들의 유쾌한 모습에 작게 웃은 여자아이가 오빠들을 툭툭 치곤 입을 열었다.
“오도 유아무라고 합니다. 유우히의 쌍둥이 동생이고, UTS의 사장이에요.”
“오, 오도 유우히, 유아무의 오빠입니다!”
“유디아스 벨갸라 하오. 잘 부탁드리오.”
“유디아스, 더 공손하게!”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만 하는데 이렇게 시끄럽다니, 세 명이라선가? -하고 생각하던 아템은 유우마를 떠올리곤 그 생각을 뒤로 넘겼다. 다시 생각해보니 한 명의 소란함을 세 명이 하고 있으니 오히려 조용한 편이 아닌가 싶었다. 다섯 번째의 형제들이라거나, 여섯 번째의 아이라거나. …음. 역시 소란한 부분은 넘겨도 좋을 것 같다.
쥬다이가 만족스럽게 웃는 것을 애써 모른 척 넘긴 아템은 여덟 번째의 세 명의 후배들을 살폈다. 셋 다, 그중에서도 유아무는 제법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래도 한 번 보는 게 백 번 듣는 것보다 나으니.
쥬다이는 저를 향한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굳이 숨길 필요를 못 느낀다는 듯한 아템의 눈과 마주 보고 웃었다. 아하, 네~ 라고 말하듯 잠시 경례 자세를 취한 쥬다이는 많이 친한 듯한 대선배님들을 신기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세 명의 후배를 보았다.
“유아무가 우리 이름을 맞췄으니까 우리도 소개할게. 난 유우키 쥬다이. 두 번째 시간의 '주인공'이었어. 지금은 여러 곳을 다니면서 여행하고 있어서 하우스엔 잘 안 오고… 음, 카드의 정령을 볼 수도 있어. 너희에겐 안 보이겠지만 이쪽에 유벨이라는 녀석이 있지.”
“우와…”
“너희 정령도 보이기는 하는데, 아직 이야기에 전부 나오지는 않았으니까 조용히 있을게. 앞으로 잘 부탁한다!”
“저희도 잘 부탁드려요!”
“응, 응~. …아, 그리고 유디아스… 넌 선배님들껜 공손하게 말해라?”
싱글싱글 웃는 얼굴에 기묘한 한기가 돌았다. 제 시간이 끝나고 벌써 여섯 번의 시간이 지난 만큼 막대해진 존재감에 눌린 갓 나온 '주인공'이 흠칫 몸을 떨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소!”
“쥬다이.”
“아, 저야 그렇다 쳐도 선배님들께 말 놓는 건 못 봐준다고요. 선배는 반말 듣는 거 익숙하지도 않으시면서.”
“그건 그렇긴 하지만… 딱히 중요하진 않지.”
“그래도!”
정말이지…, 좋아해 주는 건 고맙지만 애들에게. 쥬다이의 강경한 의사에 곤란하다는 듯이 미간을 매만지던 아템은 잠시 쥬다이에게서 시선을 돌려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유디아스에게 예의를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를 능숙하게 설명하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유아무를 보니 굳이 더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여, 아템은 작은 한숨과 함께 쥬다이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쥬다이는 밝은 얼굴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에, 어리다니깐. 다른 후배들은 전혀 동의하지 않을 것을 속으로만 생각하며―온 세상에서 오직 둘만 그렇게 생각한다.―, 아템은 기가 찬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는 저를 보는 아이들에게 시선을 내렸다.
“그럼… 내 차례지. 짧게 소개하고 끝내마. 난 아템, 첫 번째 시간의 '주인공'이었고 지금은 명계의 파라오로서 존재하고 있다. 잘 부탁한다.”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드립니다.”
“…우와, 진짜 엄청 줄이셨네요.”
“이 정도면 충분하니까.”
어색하게 웃는 쥬다이에게 가볍게 대답하고, 아템은 잠시 고민에 빠진 듯 턱을 괴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고 과거엔 인간이었으나, 지금은 인간이 아니니 분명 당부해둘 것이 있을 텐데… 자신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지금까지는 유우토나 유세이나, 아니면 파트너가 다 미리 말해줬어서 잘 모르겠다. 깊은 고민에 빠진 아템을 작은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저… 아템 님.”
“…아, 선배라고 부르면 돼. 왜 부르지?”
“네, 선배님. 혹시 조금 전에 유아무가 이름을 맞췄으니 소개한다고 하셨던 게 무슨 의미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질문을 한 건 계속 잘 말하던 유아무가 아니라 유우히였다. 눈은 잘게 떨리고 있었지만 질문하는 목소리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서 단단했다.
내심 그를 가장 걱정하고 있던 아템이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유우히와 시선을 맞췄다.
“'하우스'의 전통이란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시간의 너희 선배들은 '이야기'의 특성상 만나기 전부터 우리를 알고 있었거든.”
“오…”
“그래서 만났을 때 소개하기도 전부터 나와 파트너를 불렀지. 그때부터 후배가 선배의 이름을 맞추기 전엔 이름을 말하지 않기로 했단다.”
아, 물론 못 맞춘 선배도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돼. 아템은 장난스레 윙크하며 겁먹은 유우히를 달랬다. 온갖 걱정을 다 하고 있던 유우히가 그제야 얼굴을 밝게 펴며 웃었다. 동생과 유디아스에게 돌아간 유우히가 방금 들은 정보를 전파해주는 것을 보며, 아템은 작게 웃고는 다시 아까의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런 그를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던 쥬다이는 잠시 눈을 데굴 굴리다가 아템의 팔을 톡톡 건드려서 시선을 제 쪽으로 돌렸다. 선배들의 이름을 한 번에 맞출 작전을 짜느라 열심인 막내들을 가리키며, 쥬다이는 씩 웃었다.
“선배, 미리 일러둘 거 생각하고 계셨죠?”
“…아, 응. 어찌 알았느냐?”
“에이, 선배 일인데 척하면 척이죠. 그리고 명계 말투 나오고 계세요.”
상쾌하게 윙크하는 쥬다이를 본 아템이 허,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하우스의 후배들에게와 다른 곳에서 하는 말투가 다르다는 것은 말해준 적도, 보여준 적도 없는데- 능청스럽게 구는 게 참.
“네게는 상관 없다만… 네게 전지의 능력은 분명히 없을 텐데. 언제나 신기하구나. 뭐 숨기는 능력이라도 있는 건가?”
“아하하! 그렇게 띄워주시면 민망한데요… 그냥, 저야 선배님들에 대해선 뭐든지 알죠. 열심히 보고 있고, 조사도 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선배를 숨기는 게 가능할 리가-, …놀리시는 거죠.”
“이런, 들켰나.”
“ …흠흠. 아무튼, 저 알아요. 그거 제가 유세이랑 유우토에게 말해 줬었어요.”
물론 아템은 쥬다이가 저희에 대해 어떻게 그리 잘 아는지 알고 있었다.
사랑하고 아끼는 상대에 대해선 언제나 궁금해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법. 가장 처음의 후배가 그만큼 저희를 좋아하고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와 그의 파트너는 언제나 쥬다이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처음 생겼던 후배에 대한 애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다른 후배들에겐 미안할 정도로 쥬다이를 특히 아끼기도 했다.
…다만, 아끼는 것과 평소의 성격을 모르는 것은 별개다. 아템은 평소 쥬다이가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챙겨주는 것은 선배인 자신들과 바로 밑의 후배인 유세이밖에 없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 유세이는 몰라도, 유우토에게는…? 차가운 인상의 얼굴에 미약하고 장난스러운 불신이 깃들었다.
“네가 먼저 알려줬다고?”
“아 물론 걔네가 먼저 물어봐서, …? 아니, 제 이미지 어떻게 된 거예요??”
“글쎄, 널 아끼지만 평소 태도를 모르는 건 아니라… 평소 모습을 돌아보는 걸 추천하마.”
평소… 물론 선배님들이랑 윳세 말고는 안 챙기긴 하지만, 그래도 아끼는데?? 과격하게 기억을 되짚는 쥬다이를 보다가, 아템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예정보다 빨리 왔군. 쿵쿵거리는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쥬다이의 시선 역시 돌아갔다.
“저 왔습니다.”
쾅 소리와 함께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온 건 붉은 헬멧을 벗어든 뾰족한 머리를 한 남자였다. 여덟 번째 후배들의 시선이 뒤늦게 날아왔다.
그 얼굴을 마주 본 아템과 쥬다이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렸다.
“어서 와.”
“아기들아, 쟤 누구게!”
“오랜만입니다. 근데 그거 이번에도 합니까?”
“우리 때문에 생긴 전통이니까 끝까지 가야지!”
“그렇습니까. …점점 어려지는군요.”
쥬다이의 기운찬 대답에 대강 대답한 남자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인간-인 듯한 남자아이가 눈을 빛내며 저를 보는 것을 뚫어져라 보다가, 남자는 몸을 숙여서 아이들과 시선을 마주했다.
유우히가 들뜬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웃었다.
“너희가 여덟번째- 이번 아이들인가.”
“네! 오도 유우히입니다!”
“오도 유아무에요. 유우히의 쌍둥이 동생입니다!”
“유디아스라 하오!”
“그래. 선배님들께 이미 전통에 대해 들었을 것 같다만… 내가 누군지 알겠나?”
“유세이 선배님이시죠!?”
계속해서 눈을 반짝이던 유우히가 바로 손을 들고 대답했다. 우와, 윳세 처음 본 유우가같아. 쥬다이의 중얼거림에 아템이 소리 없이 긍정했다. 어째 공돌이들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있는 것 같다. 아템은 눈을 미세하게 크게 뜨고 유세이를 보던 유사쿠를 떠올렸다.
“맞아. 난 세 번째 시간의 '주인공'이었던 후도 유세이다. 보통 여기 안 계신 선배님 한 분과 다섯번째 시간의 너희 선배 중 한 명과 함께 너희를 신경 쓰고 있으니, 혹시 필요한 거나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 찾아오도록 해라.”
“네!”
“유아무… 라 했지. 넌 좀 도와줄 수 있나? 여자아이가 온 건 처음이라, 나름 준비해두긴 했지만 네가 확인해다오.”
“네! 맡겨주세요.”
“너희 둘은 따라올 건가? 난 상관 없다.”
“따, 따라갈게요!”
“소, 소인도!”
후배들을 익숙하게 이끈 남자, 유세이는 이내 그들을 구경하던 아템과 쥬다이에게 다가왔다. 설명이 필요한 것들 알려주고 돌아오겠습니다. 짧은 보고에 두 선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을 잠시 바라본 유세이가 아템을 불렀다.
“선배님.”
“왜?”
“유우기 선배님께선 오늘 열심히 안 하면 야근일 것 같다고, 조금 늦는다고 하셨습니다. 오는 길에 유우가와 다섯번째의 형제들을 봤고요.”
“…역시 그런가. 알려줘서 고맙다, 유세이.”
“아뇨. 그리고, 웬일로 일찍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뵈니 좋습니다. 오늘은 오래 계시는 겁니까?”
“고마워. 별일이 없으면 오래 있을 것 같아.”
“선배님 쉬라고 떠밀리셨대. 난 더 있으면 휘말릴 것 같아서 왔고!”
놀라우리만치 날카로운 타이밍에 끼어든 쥬다이가 멋들어지게 손으로 경례하듯 브이를 만들었다. 쉬라고 떠밀리셨대, 쥬다이의 말을 곱씹어본 유세이가 미세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또 어떤 파란만장한 후담(後談)을 살고 계시는 겁니까.”
“엥, 별로 그렇진 않아.”
“언제나와 같을 뿐이다만….”
“선배님들과 저희 후담 좀 비교해 보시죠.”
“학생들 후담이랑 어른들 후담을 비교하면 못 쓰지!”
“그리 말하면 할 말이 없는데.”
“휴…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다른 반응의 두 선배를 어이없다는 듯이 흘겨보던 유세이가 후배들을 데리고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눈치 살피다가 유세이를 따라 졸래졸래 따라가는 막내들을 보며, 아템과 쥬다이는 피식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 어미 새와 병아리들도 아니고.
같은 생각을 한 것을 알았기에, 둘은 서로를 보며 다시 한번 웃었다.
“선배, 저랑 같은 생각하신 거 맞죠?”
“그래. 유세이는 정말이지 후배들을 잘 챙긴다니까.”
“그러니까요! 근데 아무리 조용히 있었다고 해도 세 명이 없으니까 조용하네요. 아까 온다던 다섯 명은 언제 와요?”
“…오. 역시 네 타이밍은 굉장한걸.”
쥬다이의 발랄한 질문에, 아템은 잠시 멈칫하더니 씩 웃었다. 아템이 말한 직후 문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특유의 기계음이 저 멀리 현관 쪽에서 들려왔다. 그 멀리에 있는 걸 어떻게 들은 건지, 언제나처럼 그걸 잘도 듣고는 오! 하고 눈을 빛내는 쥬다이에게, 아템은 입술을 당겨 웃어줬다.
“지금이다.”
rct 올리는 건.. 진짜 오랜만이네요.
주인공들 다 모일 때까지 쓰려다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이쯤에서 잘랐습니다… 한 네 시리즈 모였나요. 다음화에서 나머지 여덟 시리즈 주인공들도 다 올 것 같습니다.
❅지난 0화에서와 같은 사항
• 일본어로 장음표기되는 캐릭터(유토, 유고 등)는 유우~ 로 명시됩니다. 유사쿠, 유디아스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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