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aris
07
하이엠스의 망토가 펄럭이며 사야의 시야를 가렸다. 멀리 날아간 불꽃이 터지며 강한 섬광을 냈다. 하이엠스는 한 팔을 올려 빛을 살짝 가리면서도 시야를 가리지는 않았다. 이 정도로 끝날 거였다면 처음부터 이런 일을 만들지 않았을 거다. 이런 상황에서도 하이엠스는 한 손을 뒤로 넘겨 사야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샤,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삼촌….”
“아픈 곳 있어?”
“으응, 아니. 난 멀쩡해.”
사야는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울컥, 감정이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고개를 저었다. 경계하는 상황에서도 시선만은 뒤로 힐끔하는 자상한 삼촌의 모습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았다. 실제로 멀쩡하기도 했고.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데리고 나가고 싶은데, 상황이 그러지만은 못할 거 같네.”
“왜? 다 쓰러트린 거 아니야?”
“원래였으면 그랬겠지만 저 녀석은 좀 특수해.”
하이엠스의 시선이 다시 정면으로 향했다. 저 멀리 폭발의 여파로 복도가 무너지고 광장이 되어버린 공간 속에서도 꿈틀거리며 일어서는 인영이 보였다. 화악, 꿈틀거리는 인영이 한 순간 무너졌다가 다시 인간의 형체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사야가 보지 못하게 여전히 망토로 가린 채로 하이엠스가 말을 이었다.
“재조립. 저 녀석의 능력이야. 무엇이든지 부수고 다시 만들어낼 수 있지. 그건 자기자신도 마찬가지라서 웬간한 상처는 쉽게 수복할 수 있어.”
몸이 원래대로 돌아온 카른은 땅에 떨어진 가면을 주워들었다. 달칵, 다시 그것을 낀 카른은 피처럼 붉은 눈으로 하이엠스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가 울림을 가지고 사방으로 퍼졌다.
“깜짝 놀랐어. 역시 너답다면 너답네, 아미토. 어린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상부도 물어뜯던 건방진 개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어.”
“그 때하고는 수준이 다를 거다. 내 소중한 아이를 건든 죗값은 치러야 할 테니까.”
소중한 아이. 그 말 한 마디에 사야의 마음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제 앞에 가려진 망토를 꼭 쥐었다. 누군가가 소중히 여겨준다는 것.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벅차오르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그것이 아무리 위급한 상황에서라도 말이다. 저 멀리서 카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때하고 수준이 다른 건 너뿐만이 아니야.”
무너지지 않은 복도까지 걸어나온 카른이 벽 위에 손을 올렸다. 하이엠스는 동시에 몸을 뒤로 돌려 사야를 끌어안고 반대편 벽을 향해 도약했다. 콰드득! 벽이 무너지더니 곧 가시의 형태로 벽들이 솟아났다. 하이엠스는 벽을 밟고 몸을 회전시켜 벽에 부딪히는 무수한 가시들을 피했다.
“으악!”
“샤, 조금만 참아!”
사야를 끌어안고 솟구치는 가시들을 디딤대 삼아 움직이던 하이엠스가 마침내 땅으로 내려서면, 카른과의 사이에는 벽들이 완전히 허물어져 있었다. 넓게 펼쳐진 공간에서 사야를 내려놓으며 하이엠스는 카른을 경계했다. 파스스슥, 가루로 무너져내리는 잔해물들 사이로 하이엠스와 카른의 두 눈이 마주쳤다. 카른의 눈매가 휘어졌다.
“네 사랑스러운 조카를 지키면서 얼마나 잘 싸울 수 있을까?”
“하! 연구실에 처박혀 있던 너에 비하면 훨씬 낫지.”
“분명 나 혼자라면 그렇겠지. 잊었나 본데 난 생명공학자야.”
딱! 카른이 손가락을 튕기자 커다란 굉음과 함께 땅에서 거대한 형체가 튀어나왔다. 딱 봐도 지난번에 보았던 큰 덩치를 가진 인간보다도 더 거대한 덩치였다. 하이엠스는 그것이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아보았다. 저것은 실험체다. 인간을 재료로 삼아 만들어낸 괴물. 정의내릴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샤, 이거 두르고 있어.”
“여기에 무슨 효과라도 있어?”
하이엠스는 자신의 망토를 벗어 사야에게 둘러주었다. 사야는 그것을 꼬옥 쥐었다. 하이엠스는 몸을 우둑 풀면서 자신의 몸에 불꽃을 피워올렸다. 그러고는 씨익 웃으며 사야를 돌아보았다.
“내가 어디서든 너를 지켜줄 수 있는 부적이야.”
그 말에 사야는 더욱 꼬옥 망토를 쥐었다. 사야의 둥근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어준 하이엠스는 정면을 돌아보았다. 후우, 뜨거운 열기에 하얀 김이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그어어!”
팟! 그가 재빠르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20M 이상의 거리를 좁힌 하이엠스는 괴물의 앞에 나타나 그의 힘줄들을 베어냈다. 허나 괴물은 쓰러지지 않고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그 또한 고개를 숙여 피한 하이엠스는 괴물을 향해 손가락을 튕겨 불꽃을 쏘아보냈다.
‘지금이 기회!’
카른은 사야를 노려보며 손을 펼쳤다. 그대로 땅을 향해 손을 내리려는 순간, 그의 눈앞으로 하이엠스의 손이 나타났다. 콱! 목을 틀어쥔 손이 그대로 땅으로 카른의 몸을 처박았다.
“커헉!”
카른이 신음을 뱉었다. 하이엠스의 뒤로 괴물의 주먹이 날아왔고 하이엠스는 백덤블링으로 그것을 피했다. 카른에게로 주먹이 날아오는 순간, 카른은 펼친 손을 그대로 괴물의 손과 닿게 해 거대한 주먹을 분해해버렸다. 피가 낭자해질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순식간에 부서진 신체들이 다시 모여들면서 주먹을 이루고, 카른의 손과 괴물의 주먹이 맞대진 모양새가 되었다.
그 사이를 또 파고든 하이엠스가 단검을 휘두르면 카른은 괴물의 팔 뒤로 몸을 숨겼고, 괴물의 힘줄을 또 다시 베어내면서 하이엠스는 흉터를 남기고 뒤로 물러섰다.
“하여튼 얍삽한 건 여전해.”
“네가 할 소리야?”
카른은 괴물의 팔에 생긴 상처를 보며 웃었다. 단검으로 베어낸 자리에 그을린 자국이 남아있었다. 덕분에 상처가 그 상태로 아물어 재생이 늦어지고 있었다. 그래봐야 자신이 만들어낸 애완 괴물은 금방 회복하겠지만, 그 짧은 사이를 치고들어올 정도로 하이엠스의 속도는 빨랐다.
“역시 그냥은 안 되겠네. 너를 상대하는데 힘만 세고 무지성인 괴물을 이용하는 건 어렵지. 차라리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사야샤를 상대하는데 적합한 녀석들이라서 말이야.”
카른은 괴물의 팔 위로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제 손으로 무너뜨렸다. 손 안에서 괴물의 잔해들이 맴돌았다. 그것을 점차 자신이 흡수하기 시작했다. 카른의 등 뒤로 푸른 피부의 손들이 생겨났다. 평범한 인간의 것보다 두꺼운 손은 총 여섯 개였다. 그것이 마치 커다란 날개처럼 카른의 등 뒤로 펼쳐졌다.
“너를 상대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겠지?”
카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펼쳐진 그의 손이 땅을 짚으며 카른의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거미를 보는 기분이었다. 하이엠스는 그 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꽉 쥐는 주먹 속에서 지금껏 한 번도 나지 않았던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샤.”
“…사야샤!”
몸을 흔드는 감각에 사야샤는 천천히 눈을 떴다. 선배의 형상이 보였다. 그의 얼굴은 무언가를 감지한 듯 다급했다.
“벌써 깰 때가 됐나. 으음~”
사야샤가 몸을 편히 펴지 못하고 고개만 까딱이며 몸을 풀었다. 팔을 비롯한 몸 곳곳에 붕대가 감겨 있었고, 약물도 주입한 듯 고통이나 피로감이 아까보다는 덜했다. 사야샤는 한결 괜찮은 몸 상태에 만족하며 자신을 깨운 선배를 보았다.
“무슨 일이야? 치료 다 돼서 깨웠어?”
“아니. 아까부터 조금 떨어진 거리기는 한데 강한 진동이 감지됐어. 아마도 하이엠스가 아닐까 싶어서.”
“흐응, 우리 자기가 싸우고 있단 말이지. 그렇다는 건 샤를 발견했다는 걸 테고.”
펄쩍, 옆에서는 그렇게 움직이면 안 돼라고 잔소리했지만 사야샤는 오로지 하체 힘만으로 점프하여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씨익 웃으며 선배를 돌아보았다.
“안내해! 샤샤의 가족이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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