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ERA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무도회 드레스를 구매하느라 월급 탕진하게 된 테트라

전쟁이 마무리가 되었고 어수선한 분위기에 어느 귀족 능력자가 남은 능력자들을 초대하는 무도회를 열었다. 어느 세력이든 무소속이든 쓸모없는 능력자든 최상급 능력자든, 전국 각지에 있는 능력자들이 초대되었고 그 중 테트라도 초대를 받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너무 많아! 예법이나, 의상이라든가, 함께 있어야 할 파트너 라든가 고민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일단 무도회 드레스라는 게 집에 있을 리 만무했다. 아니, 그 전에 무도회 라는 것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일 년에 한 번 가는 본가의 보여주기식 원피스 정도는 있지만 무도회의 예법에는 맞지 않았고, 급하게 정보를 모아보려 했지만 무도회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가 쉽지는 않았다. 패션 잡지를 읽어도, 귀족의 예법 사전을 읽어봐도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일단 급한대로 시내에 평소에도 멋져 보이던 의상실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기로 한다. 처음엔 그저 의상 대여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허둥지둥, 우물쭈물 하던 사이 테트라의 신체에 맞는 대여가 가능한 드레스는 이미 품절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의상을 새로 만들기로 한다. 상담하고보니 무도회 드레스에는 의상 뿐만 아니고 구두나 악세사리 등 필요한게 한 둘이 아니었다. 마침 쇼윈도우에 걸려있는 드레스들이 이쁘기도 하고, 상담하고보니 테트라의 니즈를 잘 파악하는 것 같아 취향에 맞게 디자인도 잘 해 줄 것 같고… 우리 가게에서 드레스를 맞추는 게 처음이니 잘 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고민 끝에 평상복을 입고 무도회에 갈 수 없으니 큰 맘 먹고 한 벌을 짓기로 했다. 몇 달 치 월급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렸지만.

그 다음은 파트너를 정해야 하는데…. 소설 속에 보면 다 남자가 청하던데, 테트라의 주변 능력자들 중에는 그렇게 친분이 있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남자라면 더! 본인에게 파트너 권유 할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소거법을 해도 없다!

…릭 톰슨씨에게 먼저 권유해볼까? 하지만 릭 톰슨 씨는 나를 모를텐데. 내가 말을 걸면 깜짝 놀라겠지? 라고 생각 중에 있는데, 이미 릭 톰슨은 파트너 정해졌다며 뒤에서 수다쟁이 아가씨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미 늦었구나. 흠, 그럼 헤나투 교수님…? 라고 계획 세우면 카페 앞 헬리오스 회사 사람들이 나와서 헤나투 교수님이 누구누구씨 에게 파트너 신청했다더라.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제서야 아, 의상이 먼저가 아니고 파트너가 먼저여야 했구나, 라고 괜히 아쉬워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아는 사람…… …루드비히? 이라는 이름이 스쳐지나가는데 동시에 그의 비웃음도 떠오르며 아… 하고 탄식하게 된다.

‘세상에. 레이디가 먼저 파트너 신청이라뇨. 게다가 저에게? 그렇게나 사람이 없나 봅니다?’

라며 비꼬는 말이 귓가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아 괜히 울컥해진다. 그러자 곧 뒤에 앉아있는 수다쟁이 아가씨들이 마치 테트라의 생각을 읽고 있다는 듯, 빛 능력자 루드빅도 누구누구에게 파트너 신청했다더라. 어머~ 둘이 잘 어울리네. 라는 궁금하지도 않았단 이야기도 들려온다.

아, 이미 다른 분한테 파트너 신청 했구나. 괜히 멋쩍어진다. 왠지 기분도 가라앉아버렸다.

의상만 맞추면 이 고민은 절반 날려버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고민거리는 늘어난 것 같아 심란한 표정으로 길을 걸었다. 꽤 복잡한 마음으로 걸어서 그런가, 산책이라기엔 꽤 후미진 곳까지 와버리게 되었다. 이쪽으로 쭉 가다 보면 라이샌더가 있는 서커스장이지. 그러다 뒤에서 테트라 님! 하는 밝은 목소리에 돌아보니 라이샌더가 있었다.

“테트라 님, 기분이 안 좋아 보여요~ 무슨 일 있어요?”

표정에서 그렇게 티가 났나? 걱정하는 표정으로 테트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라이샌더는 외발자전거 묘기도 보여주고 저글링도 하는 모습에 귀여워 그만 웃어버렸다.

“나도 무도회 초대를 받았는데…”

라는 말이 나오다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라이샌더에게 고민거리를 털어낼 건 아닌 것 같아서,

“라이샌더, 혹시 무도회 파트너는 정했어? 아직 안 정했으면 내 파트너가 되어줄래?”

결국 테트라 본인이 파트너 신청을 해버린다. 아, 혹시 화이트 클라프와 파트너면 어쩌지? 그걸 먼저 물어볼걸. 그것도 그렇지만, 난생 처음 있는 무도회도 레이디가 먼저 신청한다니 조금 울컥하기도 하고. 곧이어 라이샌더는 눈 동그랗게 뜨며,

“아앗~ 제가 테트라 님에게 먼저 신청 하고 싶었는데요! 단장님이 이런 건 제가 먼저 말 하라고~”

하고 울상을 짓는게 귀여워 또 웃어버렸다. 어쨋든 문제거리였던 의상이나 파트너, 다 정해져서 마음이 놓였다.

*

…… 라고 생각했지만, 의상으로 몇 달 치 월급이 모조리 빠져나가 버렸으니 쫄쫄 굶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 그랬지. 사람은 가난해지면 가장 먼저 취미. 그 다음으로는 식사를 빼버린다고. 하루에 한 끼, 그것도 일 하면서 먹는 간단하고 저렴한 점심 샌드위치가 고작이었다. 퇴근 이후 저녁 식사를 위하여 가게에 가는 것도 멈췄고, 그저 집에 있는 재료들로 대충 요리해 먹거나 가끔은 그것마저도 굶으면서 다이어트도 되고 잘됏네, 라며 행복회로나 돌리고 있었다. 그러기를 며칠, 퇴근길에 웬일로 식당에서가 아닌 길거리에서 루드비히을 마주쳤다.

“요즘 저녁에 잘 안 보입니다?”

“저녁마다 식당에서 저 찾고 다녀요? 여기에 식당이 한두 군데에요? 어떻게 알고요. 엇갈렸나 보죠.”

배고파서 예민의 최고치가 되어버렸다. 안 그래도 이제 막 퇴근했고 배고프고 몇 일 내내 내가 무얼 위해서 왜 이러고 있나 생각이 드는데 간만에 만난 이 헌터는 참으로 눈치 없게도 이 사람은 볼살이 들어간 겁니까. 초췌해진 겁니까? 눈 뜨고 볼만한 곳도 없었는데 더 못생겨졌다느니 속을 긁는데 배고프고, 피곤하고. 이제는 화낼 기운도 없어서 무시하고 지나치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오늘은 자리 좀 채워주시죠. 의뢰 겸 저녁 데이트가 있었는데 바람 맞아버려 예약해 둔 레스토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멈칫. 이게 무슨 소리야?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랑 데이트가 있었다는 것도 울분이 치솟는데. 그 펑크난 자리를 본인이 대신 가주는 것도 혈압이 오르는데. 그래서, 뭐야, 본인이 식당 예약한 자리를 나보고 채워달라고? 뒤돌아서 빽. 소리를 지르려고 했는데 입에서 나온 말은,

“어쩔 수 없네요. 안내하세요.”

뭐, 그 쪽 봐줄 만한 거라곤 얼굴뿐이었는데 까이기도 하는군요? 라고 말하면서도 정말 신기해했다. 이 사람도 약속이라는게 펑크가 나기도 하는구나. 상대방은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루드비히를 깠지? 하는 생각도 들고. 혼자 쫑알쫑알 대며 큰 시내로 나오니 루드비히가 말 한 식당 앞에 가니 입구에서부터 정말 미친 소리가 나올 정도로 근사한 곳이었다. 이런 근사한 곳을 이 복장으로 들어가도 될까? 본인은 지금 이대로 들어가도 되나 안 되나 창피한 고민에 놓여있는데, 옆에 이 헌터는 아무렇지 않게 테드 파워즈로 예약했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며 먼저 들어가는 루드비히를 보고 쫄래쫄래 따라 들어간다. 그래, 본인은 비싼 정장 입고 다닌다 이거지. 눈 딱 감고 얼른 식사만 하고 나와야지. 라며 머리를 굴려봤지만, 하필 코스요리라서 더 체할 것 같은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긴장되는 환경에 분명 비싸고 맛있는 밥인데도 아무 맛도 못 느끼겠고, 주변 인테리어는 너무나 고급스럽고 주변 웨이터들은 식사를 체크하는지 적당한 때에 음식이 끊임없이 차려지니 그야말로 귀한 곳에 누추한 분이 온 느낌이었다. 디저트가 나올때 쯤 둘 사이에 사이퍼들의 초대받은 무도회 이야기가 나왔다.

“…그 쪽도 파트너 정했다면서요?”

“뭐, 마음이 맞는 사람입니다.”

라는 대답에 또 속이 끓어올랐다.

뭐? 마음이 맞는 사람?

그날은 진짜 체해서 밤새 고생하게 되었다.

이후로도 루드비히과 자주 마주쳤는데, 약속이 펑크 되었다는 둥 예약된 가게에 자리 좀 채워달라는 둥 알아봐야하는 가게가 있는데 같이 가 달라는 둥 덕분에 여러 가게를 방문해 보게 되었다. 어느 날은 동양풍의, 어느 날은 세련된, 어느 날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게를. 하나같이 다 귀족들만 갈 법 한 근사한 가게였다. 그렇게 몇 번 더 밥을 얻어먹으면서 평소에 의뢰나 데이트 같은 건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하는구나… 그리고 생각보다 루드비히은 꽤 까이는구나… 하는 데이터만 쌓여가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식사 할 사람인데 왜 매번 저렴한 식당에서 마주친거람. 이 인간은 남에게도 얼마나 재수 없게 굴었으면, 하고.

*

무도회 당일. 의상실에 가서 확인한 옷은… 본인이 원한 디자인은 분명 좀 더 이렇게, 저렇게… 노출이 없는 평범한 예쁜 드레스였는데. 막상 자신을 기다린 건 어깨가 다 드러난 푸른색의 실크 드레스였다. 디자인 의뢰서도 꺼내서 러프를 보니. 어머, 누락되었네. 라며 웃어 보이는 디자이너 선생님이다. 지금부터 머리 셋팅하고 화장해야 해서 시간 빠듯한데. 요즘 이게 유행이에요~ 라며 어물쩍 넘어가려는 디자이너 때문에 웃음기도 사라졌다. 유행이고 자시고 안 어울린다고요…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면 디자이너가 아닌 원장이 달려 나와 자신이 최선을 다해 꾸며주겠다고 한다. 다른 준비된 의상을 입자니 본인이 원하는 디자인도 아닐뿐더러 주문한 의뢰가 아깝고, 재가봉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듯한 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옷을 입어야 할 수밖에 없었다. 환복, 세팅, 화장. 마지막으로 드레스와 어울리는 아름다운 구두를 신고 거울 앞에 서니 난생처음 입어보는 드레스와 꾸며놓은 자신이 비춰지는 거울을 보며 완전히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곧, 더는 감상할 틈도 없이 이동할 시간이다. 의상실에서 나오니 앞에서 대기하던 마차의 문이 열리며 턱시도를 입은 라이샌더가 마중 나온다.

“우와, 테트라 님! 너무 근사해요~!”

“라이샌더도 너무 멋지다!”

의상실 앞에서부터 에스코트 받으며 마차에 올라타고 우리 같이 춤도 못 맞춰봤는데 큰일이네? 그래도 난 집에서 책이나 비디오 보면서 연습은 했는데 그게 맞을까 모르겠어! 라며 이동하는 마차 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마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듯 서서히 멈추고 라이샌더가 먼저 내려서 또 엣헴, 하며 에스코트를 해 주는데 아까와 다르게 키가 커져있는 것이다. 둘의 키 차이라도 의식이라도 했는지 안 그래도 평소에도 본인보다 작은 라이샌더 였는데 지금 구두를 신은 본인보다 커져있어서,

“라이샌더, 얼굴은 귀여운데 키만 너무 커져서 조금 웃겨.”

라는 말에 원래대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주니 또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초대 받은 무도회장은 정말 거대했다. 전 세계 능력자들을 초대할 정도니 그만한 거물이겠지. 건물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커다란 정원도 있었으며 거대한 분수대도 있었고, 홀에서는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길목마다 멋진 예술품들도 보였고,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은 화려해서 이따 먹어야지 하며 눈독 들이게 되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사람들도 얼추 다 모였는지 주최자 대리인의 축사도 있었고 사람들의 박수소리에 자연스럽게 무도회가 시작되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커다란 홀 가운데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 그리고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자주 보던 매거진과 가십지에서 본 웬만한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아 신기했다. 이전에 공성전에서 잠깐 함께 한 사람,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 그런 사람들이 카드리유, 컨트리 댄스, 미뉴에트, 왈츠, 포크댄스를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음악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자리로 돌아가는 사람들, 이어서 더 춤추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을 구경하는 중 많은 인파 속에 춤을 추고있는 루드비히도 보였다. 그리고 그의 파트너로 함께 온 여성. 몇일 내내 그의 파트너는 누구일까 상상했던 상대를 바라보자 예전에 누군가 말 했던 대로 틀린 말이 아니었다. 홀린 듯 계속 쳐다보게 될 정도의 미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아주 잘 어울리는 페어였다. 마치 모델인지 키도 크고 몸매도 좋아 보였으며 아름다움 그 자체인 사람. 저 정도는 되어야 저 사람 옆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한참 루드비히의 페어를 바라보니 라이샌더가 우리도 같이 춤 추자고 손을 내밀어 줘서 엉겁결에 홀 가운데로 들어오게 되었다. 엉망이지만 춤도 추게 되었다. 다행인지 도중에 들어가게 되어 짧았던 왈츠의 노래가 끝나니 이 다음은 어린 능력자들을 위한 폴카였는지 빠르고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고 금세 분위기가 풀어졌다. 폴카라면 어렸을 적 마을 축제에서 췄던 기억이 있어 무겁고 긴 드레스와 높은 구두를 신은 것도 잊은 채 라이샌더와 신나게 춤을 췄다. 폴카 마저 끝나고 분위기는 미뉴에트로 바뀌어 다시 어른들의 무대로 돌아가는 듯 했다. 음악이 몇번이나 바뀌었을까? 매 음악을 라이샌더와 함께 춤을 추며 즐겼다. 마지막으로 폴카를 즐긴 후 자리로 돌아가자 어린 능력자들이 한곳에 뭉쳐 만남의 장을 마련했는지 라이샌더도 신나게 합류해 그 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했고 차마 어린 능력자들과 같이 있기엔 정신이 없던 테트라는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무리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코르셋 때문에 숨은 차고, 어깨와 허리는 펴야 하고, 구두 때문에 다리는 아프고, 어깨는 드러나니 신경 쓰이고. 잠시라도 몰래 숨을 돌릴만한 장소는 구석만 한 데가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세상에 능력자들은 이렇게 많았는데 새삼 본인은 아는 능력자가 별로 없었구나, 같은 생각을 하면서 인파 속을 바라보니 어느새 옆에 누군가 다가온 기척이 느껴졌다. 아, 편하게 숨을 장소로는 딱이었는데. 아쉬워하며 자세를 고쳐잡으니,

“어두운 곳이 익숙합니까?”

라며 익숙하고 재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봐도 뻔한 루드비히가 내려다보고 있겠지. 자리가 자리인 만큼 신경 쓰던 표정이 한순간 무너져선 올려다봤다.

“듣기에 썩 좋은 말은 아니네요. 어두운 곳이 익숙하다뇨?”

“아닙니까? 여태까지 능력도 들키면 안 될 것처럼 숨기며 살았고, 지금도 이렇게 숨어있지 않습니까?”

맞는 말인데 반박은 못하게 저 말투 봐. 아니 할 수는 있는데. 그게 왜 어둠이냐면서 나는 그냥 평범하게 살라는 교육받으면서~ 반박하면 또 긴 말싸움이 되겠지. 아니, 내가 싸움 걸려는 게 아닌데 저 쪽이 먼저 시비를 터니까!

“또 시비 걸려고 온 거예요? 그래요, 조금 힘들어서 몰래 쉬려고요. 별 볼 일 없으면 가던 길 가세요.”

“빛은 어두운 곳에서 더 빛나는 법이니, 이 곳이 제가 있어야 할 자리 같군요.”

“그러니까, 왜 굳이 여기에서 빛나려고 하냐고요. 지금 그 쪽이 있어야 할 자리는 파트너의 옆자리일 텐데요.”

“당신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 파트너인 그녀도 지금은 그녀의 일이 있어서요.”

어떻게 저렇게 한 마디도 안 져? 씩 웃어버리는 모습에 더 재수 없다고 느껴졌다. 테트라도 뒤 끝 있어서 본인의 파트너한테나 가라고 말에 가시를 팍팍 넣어 한 말인데 이 헌터한테는 딜도 안 들어간 모양이다. 카운터를 친 건지, 똑같이 맞받아치는 말도 재수 없고 일단 저 능글거리며 웃는 얼굴도 재수 없다… 주먹 꽂고 싶다… 아니, 참아야한다… 나는 사회인이고 지성인이며 어른이고… 아니, 이 사람도 어른인데 대체 왜… 생각이 들 때 쯤, 무도회의 다음 곡이 나오는지 왈츠의 전주곡이 흘러나왔다.

“계속 혼자 있다간 바람맞은 능력자라며 뒷이야기라도 나올 것 같으니 뭐라도 해야겠군요. 한 곡 추겠습니까?”

라며 손이 건네졌다. 허구한 날 바람 맞았으면서 능력자들의 눈길은 또 두려운가 봐? 라고 비웃을 뻔했는데, 그렇다는 건 본인에게도 똑같은 상황 이라는 뜻일 테니까. 테트라는 눈 앞에 보이는 내밀어진 손을 잡았다. 라이샌더와 함께 췄던 왈츠는 즐거웠는데, 이 헌터와 추는 왈츠는 왜 이리 긴장이 되는지. 연습했던 대로 움직이고 있는 게 맞나, 자꾸 틀리는 것 같아 주변에 사람들이 저 하급 능력자 좀 봐. 춤 마저도 엉망이잖아. 라는 것 같은 환청만 들리고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지려고 하는데 루드비히가 눈치챘는지 강하게 리드해 주니 스탭과 박자만 맞추면 될 정도였다.

사실 밤마다 비디오 틀어놓고 연습해보고 무도회 교재에 나온 유명한 무도회 음악 리스트 자료 모아서 혼자 연습했는데도 실전이랑 다를 수밖에.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는지 루드비히는,

“ 춤 연습을 덜 했나 봅니다?”

“…내가 왜 이런 걸 연습해야 하냐고요….”

저 쪽에서는 그냥 던진 말일 텐데 괜히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더 빨개진 채 중얼거렸다. 이윽고 이번이 마지막 왈츠 무대였는지 음악이 끝나자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나왔고, 음악은 잔잔한 음악으로 바뀌면서 배경음악처럼 연주가 시작되었고 다들 자리로 돌아가는 듯 했다. 마침 루드비히는 자신의 파트너와 눈이 마주쳤는지,

“제 파트너가 볼 일을 마쳤나 보군요.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테트라는 휴, 큰 실수는 없었던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중이었다.

“이렇게 꾸며놓으니 조금은 볼 만하군요.”

아직 맞잡은 테트라의 손을 들어 손등에 입을 맞춘 후 떠나버린다. 아직 홀에 테트라만 남겨두고 떠난 건 신사로서 무례한 일이었지만 그런 건 지금 테트라한테는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뭘? 한 거야? 지금? 아니? 어? 정신 못 차리고 있는데 마침 라이샌더가 옆에 와서

“루드빅 님과의 춤 너무 멋졌어요! 테트라 님, 소질 있어요~!”

라며 물개박수를 치며 정신이 나가버린 테트라를 이끌고 돌아와 주었다. 이후 무도회는 만남의 장, 대화의 장이 되어 시끌벅적한 분위기였고 이어 자선경매도 진행되고, 또 각각 테이블에서 카드게임, 보드게임까지 하는 평범한 파티……

…였는데 테트라는 뭐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영혼이 나간 상태였다. 그저 신난 라이샌더에게 이끌려서 가는 대로 하하 호호 사회인 미소 지으며 자리 지킬뿐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른지 모르겠다. 무도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마차에서 라이샌더가 건네준 손을 잡고 내리며,

“조심히 들어가세요, 테트라 님! 함께 간 무도회 정말 즐거웠어요…!”

“라이샌더, 오늘 내 파트너 해줘서 정말 즐거웠어. 고마워.”

“…다음번에는 제가 꼭 먼저!”

말 만이라도 고마워. 서로 행복한 얼굴로 헤어지곤 하숙집으로 올라와 문을 닫자마자 그제야 제대로 뭐지?! 하며 묵혀둔 감정을 꺼내며 실컷 당황하는 것이다. 주저앉아 문에 기대 대체 뭐였지?! 하고 머리를 감싸 쥐며 다시 기억을 꺼내본다. 꿈을 꾼 걸까, 내가 무도회에 가서 화려한 것들만 눈에 담다가 정신 못 차리고 신기루를 본 걸까. 아니 그 사람은 왜 그렇게, 그런, 손등에 왜 그렇게, 왜? 한동안 입 맞춰진 손등만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주말 내내 속 머릿속은 엉망인 상태로 지내다가 내린 결론은 남들 보는 시선 때문에 결국 본인 멋진척 하려고 연기한 거라고. 나는 이용됐네 어쩌네…

그래도 손을 먼저 내밀어서 춤을 추려고 했던 순간부터 헤어지면서 정중한 인사를 했던 그 순간까지 솔직히 나쁘지는 않았었지, 라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겠지.

1

한동안 저녁에 안 보이던 테트라를 쫓고 쫓아보니 저녁을 안 사먹더라. 굶더라. 지켜보니 그닥 해먹는것도 없더라. 다이어트인가? 그러기엔 영 아닌 것 같음. 하지만 매번 추적하던 루드빅이라면 알겠지. 언제나 퇴근 후 식사하러 다녔는데 요즘들어 곧장 집으로 갔다는 걸.

루드빅은 과연 바람난 약속이 맞을까?

2

가끔 멀리서 훔쳐보면서 스탭 연습하는 테트라를 보며 웃었을지도. 얼만큼, 어떻게 연습했는지 알 지도.

3

사실 무도회는 전쟁종결 이후 남은 사이퍼 정보교환이나 세력 눈치싸움이나 어찌되었든 좀 섬뜩한 모임이었을건데 어린 능력자나 눈치없거나 정보가 적은 사이퍼한테는 그저 호화롭고 즐거운 무도회였다는게 설정기반이었다.

무도회 끝나고 돌아가는길에도 사상자 있었을 것. 그 이후에도.

루드빅의 파트너도 헌터로써 같이 정보 캐러 간거고.

초대받은 무도회 때문에 드레스로 월급 탕진하는 키워드에서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로 끝나는 루테라 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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