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루드] 어떤 악당이 다정하라 말하니,

열 중 다섯이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한다면

줄글 by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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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세상이 좋았다.

그러나 다정하기에 이 얼마나 어려운 세상이던가.

하늘을, 보다 정확히는 허공을 밟고 건물을 내려다보던 바루드는 머리카락이 바람을 타고 기분 좋게 이마를 스치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줄곧 건물에 고정돼 있던 시야가 닫히며 집중이 흐트러지자 그제야 목이 뻐근한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너무 오랫동안 한 자세로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유가 생긴 참에 스트레칭이나 해볼까. 그리 마음먹고 뒤로 천천히 고개를 당기며 눈을 뜨니 새파란 하늘이 바다처럼 펼쳐졌다. 가을의 끝 무렵과 겨울의 초입 그 사이쯤 있는 계절의 솜씨인지, 7층 건물보다 높은 곳인데도 여전히 높이 있는 구름이 거품처럼 떠다녔다.

그리고 그런 바루드의 발밑에서 지금 막 7층 건물이 무너지는 참이다.

숨길 필요 뭐 있으랴. 유유자적 허공에 서서 혼비백산한 사람들을 관조 중인 그의 작품이다. 나름 치밀하게 설계한 보람이 있어 단번에 폭삭 무너지지 않고 차근차근 골조가 무너지고 있었다.

각자 나름의 용건을 해결하고자 건물을 방문한 사람들은 난데없는 재난에 재깍 대처하지 못한 채 어떻게 된 영문이냐며 겁에 질린 소리만 키우고 있었다. “그러면 안 될 텐데….” 아비규환 속에서 바루드는 가증스럽게도 염려를 담은 목소리로 들려오는 비명에 하나하나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살려달라는 비명에는 “나도 사람이 죽는 건 바라지 않아.” 안심이라도 시키듯, 화재라도 난 거냐는 물음에는 “아니, 아니. 그럴 리가…. 그건 너무 위험하지.” 노래 부르듯. 어느 한 마디 그들에게 닿을 수 없음에도 말이다.

“…….”

바루드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이토록 ‘안전한 사고’를 만드는 것도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었다. 폭발이나 화제 없이 건물을 무너뜨리는 일이 쉬운 줄 아는가…. 물론 이번 경우에는 쉽긴 했다. ‘지우개’ 능력자의 협조를 얻어 철근 몇 개만 지워버리면 됐으니까. 많이 없앨 필요도 없었다. 공사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는지 이미 건물이 자체적으로 빈약한 철골 수를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철근이 열다섯 개만 더 있었어도 이렇게 손쉽게 악당에게 건물을 내어줄 필요는 없었을 텐데. 돈 몇 푼에 안전을 팔아넘긴 셈이다. 이 재난이 꼭 바루드의 탓만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물론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루드는 보기 드문 양심 있는 빌런이었기 때문에, 정말로 건축사에게 책임을 돌릴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철근을 지워달라고 부탁한 것은 자신이니. 그냥 이건… 우스갯소리 정도?

잠시 딴생각에 빠져있던 사이, 드디어 바루드가 염원하던 소리가 들려왔다.

“노약자! 특히 아이 먼저! 불안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래야 다 같이 빨리 나갈 수 있어요!”

누굴까. 목소리만 들어봤을 땐 그 또한 청년 여성인 듯했다. 바루드는 좀 더 가까이 내려가 건물 벽면에 발을 붙이고 수직으로 섰다. 시선만 살짝 틀어 창문 안 풍경을 훔쳐보니 이 칸은 아니었다. 내부를 살펴보니 이곳은 사무실인가. 이미 사람들이 빠져나갔는지 텅 빈 채로 문만 열려 있었고… 옆 칸으로 성큼 걸어가 다시 안을 들여다보니 역시나 탈출하느라 열린 문 너머로 사람들을 인솔하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아, 저 사람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시꺼먼 눈에 기이한 빛이 들었다. 그가 만들고자 한 영웅, 선하고 용감한 이웃.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구조자… 소돔의 열 명의 의인.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창세기 18:23-26

멸망한 죄의 도시 소돔. 그렇다면 그는 신이 되어 징벌하고자 하였는가.

아니, 바루드는 오히려….


화마가 휩쓰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계기는 작은 담배꽁초 하나. 도대체 누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담배를 피웠던 것인지, 그리고 함부로 꽁초를 버린 것이지. 사실 범인을 색출해 내기도 무색한 일이었다.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마시오. 사방에 붙은 주의 문구를 알면서도 누구든 무심코 저지르는 일이었으니까. 누구나 범인이 될 수 있었고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으며 하필 그날 번진 불이었을 뿐.

원망을 하려거든 얼마든지 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당시 바루드, 그러니까 아직 ‘이반'이라는 이름을 쓰던 소년에게 가장 간절했던 생각은-

‘누군가 제발 도와줬으면 좋겠다.’

11세.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린 나이의 아이가 불길 속에서 해봤자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그저 무서웠고,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했다. 타닥거리며 튀는 불씨를, 눈과 목을 따갑게 틀어막는 연기를, 피부에 닿아 화끈거리는 열기를, 무너지는 잔해를 피하고 또 피하기 위해….

혼자였으면 차라리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노력해 봤을까? 11세. 참으로 어린 나이지만, 아직 유치원도 안 들어간 어린아이들 사이에서는 의젓한 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조숙하게 자라버린 탓에 길러진 책임감이 아이가 더 어린아이를 챙기게 만들었다. 울어 젖히다 연기를 마시고 컥컥대는 동생들을 어르고, 달래고, 손을 잡고 이끌어 그나마 불길이 덜 번진 곳에 모으고. 절대 혼자 움직이면 안 된다고 단단히 단속한 후 다시 책상 밑에 숨은 아이를 부르러, 의자에 깔린 아이를 구하러, 걸음마도 서툰 아이를 데리러….

밖에서는 계속해서 어른들의 소리가 들렸다. 소방차는 대체 언제 오냐는 채근, 지금이라도 들어가서 아이들을 구해오겠다는 원장님의 역정, 지금 들어가면 위험만 늘어나니 양동이라도 찾아보라는 타박. 불타오르는 책장이 넘어가는 와중에도 그런 소리를 희망 삼아 바루드는 기다렸다. 하지만 언제까지? 사이렌 소리를 혹여 놓치기라도 했던 건 아닐지 아무리 귀를 기울여 봐도 사람들의 고함과 우지끈 부러지고 타닥타닥 타오르는 소리만 들려왔다.

길었다. 너무도.

그 와중에 창문 너머로 자주 와서 일을 거들던 봉사자가 불길에 주춤대다 뒤돌아 도망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과연 원망이 한 점도 없었는지에 대해선 이미 너무 오래된 일이라 바루드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마 기억하는 것보다 깊게 절망했었으리라 짐작할 순 있다.

그리고 그와 대비되게 겉옷을 벗으며 뛰어오던 사람이 얼마나 빛이 나고 거대해 보였는지도….

그 사람은 동네에서 유명한 얼굴이었다. 불량 학생, 날라리, 양아치, 문제아… 뭘 갖다 붙여도 수식되는 골칫덩이. 툭하면 주변에 시비를 걸고, 싸우지 않는 날이 없고, 길 가다 함부로 침을 뱉는 데다 아이들이 지나갈 때면 괜히 인상을 쓰며 으름장을 놓던 무서운 형. 멀리서 발견이라도 하면 마주칠세라 일부러 길을 돌아가고, 어른끼리 모이면 혀를 쯧쯧 차며 험담 아닌 험담을 하던 대상.

소중한 사람이 갇힌 것도 아니었는데, 그 사람은 무슨 용기로 말리는 사람을 전부 밀치고 반쯤 탄 건물에 뛰어들 수 있었을까? 아마 본인도 그 답을 모르리라.

쿵쿵,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어린아이들의 힘으로는 열 수도 없던, 그 전에 뜨거워서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던 방문이 발길질 몇 번에 나가떨어졌다. 그동안 문이 닫혀 그나마 불이 덜 번졌던 것인지, 훅 들어오는 열기와 함께 불꽃이 날름거리며 몸짓을 키웠다,

“이리 와!”

“저보다… 저보다, 아이가 먼저 나가야 해요!”

“썅, 너도 앤데 뭔 소리야!”

“계단을 못 내려가는 애들이 있어요!”

“이 씨발 진짜.”

남자는 습관적으로 욕설을 내뱉더니, 그럴 시간도 아까웠는지 성큼성큼 뛰듯이 걸어오며 달라붙는 불을 쳐냈다.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들어온 탓에 벌써 여기저기 울긋불긋 화상이 잡혀 있던 것이 기억난다. 남자는 가장 어린아이 둘을 양팔에 한 명씩 안고 걸을 수 있는 아이들을 윽박질러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다가 표정을 왈칵 일그러뜨리며 뒤돌아보았다. “화재 대피 요령대로 하고 있어! 금방 다시 올 테니까!”

이때 같이 탈출했으면 불 앞에서 몸이 굳는 한심한 습관은 안 생겼을까? 하지만 남아있는 아이들을 두고 먼저 나갈 수 있었다면 진작에 탈출했을 것이었다. 이반은 남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순서를 미뤘고, 바루드가 떠올리기에도 당시 선택할 수 있는 ‘만약’은 없었다. 설령 있다 한들 이미 지나간 일이니, 무의미한 가정이었다.

열기, 빛, 매캐한 연기, 타는 냄새. 이제는 공기를 연료 삼아 아예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는 불 속에서 이반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며 몸이 굳었다. 칼칼해지는 목, 폐까지 들어차는 뜨거운 공기, 찌르는듯한 고통이 느껴지는 피부…. 남은 아이들을 최대한 가까이 끌어모아 웅크리듯 납작 엎드린 이반은 최선을 다해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떠올렸다. 화재 시 대피 요령. 물에 적신 손수건 등으로 입을 막고 최대한 바닥으로, 비상구를 따라… 아니, 호흡부터 멈춰야 하던가? 물에 적신 손수건도, 이미 아래까지 꽉 채운 뜨거운 공기도, 비상구까지 갈 수도 없이 막혀버린 길도. 준비 없이 맞닥뜨린 상황에서 이론으로만 배운 대피 요령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이대로 죽을지도 모르겠다. 기둥이 바로 옆으로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에는 그런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짧았다. 자신을 구하러 금방 오겠다 약속한 사람이 있었기에.

정신을 잃기 전, 아득하게 사이렌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았다. 다시 불길 속을 헤치고 올라와 헐떡이던 남자의 모습은 흐릿해진 시야로도 명확하게 기억한다. 불꽃이 눈부셨던 건지, 아니면 그 사람이 눈부셨던 건지는 지금까지도 구분하지 못했다.

그날, 이반을 포함한 아이들은 전원 무사히 구출되었다. 큰 화재에 비해 사망자는 한 명도 생기지 않아 뉴스 한 줄로 끝난 사건이었다.

사건은 종결됐지만 사람은 계속 삶을 산다. 건물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이반을 비롯한 소수의 아이들은 잠깐동안 병원 신세를 졌고(아이들이라 회복도 빨랐다), 퇴원 후 임시나마 재건된 보육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불량학생이자 날라리, 양아치, 문제아는 마을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한껏 추켜세우며 칭찬을 하고, 동네 상인들은 물건을 사면 덤을 얹어주었다. 학교를 통해 용감한 시민상도 받았다던가. 경미한 화상만 치료하고 일찍이 보육원으로 돌아와 있던 다른 아이가 전하는 말로, 처음에는 으스댔다던 남자는 이반이 퇴원한 시점에는 이미 쏟아지는 관심과 친절에 얼굴이 시뻘게져서 도망 다니고 있었다. 이반도 원장님의 보탬으로 음료 선물 세트를 한 박스를 들고 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영문도 모른 채 쥐어박히긴 했지만(“애새끼가 벌써 철이 들어!”) 어쨌든 자신이 구한 아이가 무사한 모습을 보고 다행이면서 뿌듯해하는 표정이었다.

몸이 회복하고 천천히 사고 당시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며, 이반은 잠자코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늘어났다. 불길 속에서 마냥 도움만 기다리던 막막함과, 기적처럼 나타난 구조자를 보고 느꼈던 안도와, 기타 부정적이기에 굳이 들추지 않고 묻어둔 감정들을 차근차근 정리해 보며 깨달음을 얻어갔다. 사람은 평소 모습이 어떻든 중요한 순간에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구나. 인간의 다면성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원래는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성선설에 대한 얄팍한 이해였다.

시야가 넓어졌다. 무심코 지나가던 거리에, 혹시나 곤란한 기색의 사람은 없는지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크게는 갑작스럽게 쓰러지는 사람, 사소하게는 길을 헤매는 사람부터 단순히 지쳤을 뿐인 사람까지. 일상에 닥친 불행 속에서 이반은 도울 수 있으면 도왔고, 능력이 없다면 도와줄 사람을 기다렸다. 어떤 사람은 금방 곤경에서 벗어났고, 어떤 사람은 끝내 도움을 얻지 못했다. 이반은 깊이 연민하고 마음을 쓰며 자신을 비춰 공감했다. 더 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 도움을 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당장만 해도 탈수로 사람이 쓰러졌는데, 자신이 생수를 사 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치지 않았는가….

‘돕고자 하는 한 사람만 있어도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다.’

자신이 살 수 있던 것처럼.

‘그러나 그런 사람이 가까이 있어야 해.’

작은 재난도 누구에게는 위급해 당장이 아니면 안 됐다. 잠깐 늦어지는 찰나만으로도 이미 늦어버릴 수도 있다. 가까이, 그러니까 지나가는 사람 열 중 다섯만 주변에 사려 깊고 다정할 수 있다면.

이반은 오랫동안, 곱씹어가며 생각했다. 문제아 형은 왜 그때 우릴 구해줬을까? 상황이 위급했기 때문이다. 본인이 나서지 않으면 누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용기를 부추기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의 고난을 외면할까?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사람은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이 많았다. 이반 자신도 겪어보기 전까지는 이렇게까지 주변에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또한 어렵기 때문이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할애해 두려움과 마주한다는 사실은 상상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한 번 용기를 내는 경험을 한다면 다음은 쉽다. 이제는 더 이상 문제아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건실해진 형은 툴툴거리면서도 선행을 베풀기 시작했다. 화재 난 건물에 뛰어드는 것에 비해 노인의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일은 손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많은 생각이 이반의 머릿속을 채웠다 빠지기를 반복했다. 이반은 의문을 그냥 넘기는 대신 스스로 답을 구할 때까지 고민을 거듭하며 반복했다. 오래, 아주 오래.

마침내 소년의 의문이 답을 구했을 때, 하나의 세계가 완성되었다.

바루드가 원하는 것은 좀 더 친밀하고 다정한 세상. 내 곁에 있는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세상. 다른 사람의 일에 발 벗고 나설 따스함과 용기가 모두에게 어렵지 않은 세상. 그래서 누구나 덜 외로울 수 있는 이상. 누구나 타인에게 작은 영웅이 되어줄 수 있는 유기적인 구성. 한 사람이 무너져도 두 사람이 손을 잡아 일으켜 줄 수 있는 그물 같은 구조.

의인 50명으로 인해 도시의 운명이 갈린다면, 선량한 사람이 한 사람 늘어날 때마다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지겠지. 연약한 이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즈려밟혀 사라지는 일이 줄어들겠지….

열, 백. 아니, 천 명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선한 본성을 마주한다면.

선은 빛나기 마련이니 필히 주변을 이끌리라. 그리하여 그 곁에 있는 이들이 같은 길을 걷고, 그들이 또 등불이 되어 주변을 밝히리라. 그렇게 점차 퍼져나간다면 어느 순간에는 그의 이상이 헛된 망상이 아니리라….

소돔에 의인이 열 명이 될 때까지.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그것이, 빌런 바루드라는 존재가 세상에 나타나게 된 이유였다.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라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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