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명헌│당하면 끝! 사랑 범벅이 돼
Love Rocket!!
림에 튕겨 나온 공이 자연스럽게 포인트 가드의 손으로 들어가고, 코트 위 하얀색은 그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그를 에워싼다.
3학년이 떠난 뒤에도 문제없이 존프레스 전략을 써먹기 위해 2학년과 1학년을 주축으로 새롭게 세워진 장벽은 바람을 탄 거센 파도처럼 상대 팀 포인트 가드를 집어삼킨다. 틈을 내주지 않기 위해 부딪치는 9번과 13번이 상대의 색을 압도했다. 공 하나에 세 명이 움직이면서 마찰음은 전보다 시끄러워지고, 상체끼리 치고받는 둔탁한 소리가 점점 격해진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또렷한 욕설.
“기분 나쁜 새끼.”
승패가 확실할 정도로 점수 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굳히기 전략으로 들어오는 존 프레스가 얼마나 짜증 나는지는 같은 포인트 가드 포지션에 위치한 이명헌이 제일 잘 알았다. 의식하는 것보다 먼저 튀어 나가는 욕설은 그 어떤 찬사도 대체할 수 없는 칭찬이 된다는 것도. 이를테면 기분 나쁜 새끼, 농구 좆같이도 잘하네. 같은 거. 실제로 어느 정도 체력 훈련을 마치자마자 존프레스 전략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정우성은 농구를 욕 나오게 잘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상대 포인트 가드의 입에서는 좀 더 다른 말이 나간다. 기분 나쁜 새끼, 산왕에서도 처맞는단 소문이 여기까지 들리는데.
그렇게까지 농구가 하고 싶냐?
그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압박을 이기지 못한 공이 튕겨 나온다.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현철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낚아챘다. 그때까지도 묵묵히 지켜야 할 자리를 지키던 정우성은 곧바로 공을 향해 내달린다. 정우성은 귀가 밝아서,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집중력이 밑 바닥칠 정도로 약하다는 걸 아는 이명헌은 조용히 그 뒤를 따라 달렸다. 자신은 단 한 번도 집중력으로 지적받는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저거 괜찮은 거 맞냐.”
후반전 마지막 3분을 남기고 상대 팀 요청으로 들어간 작전타임,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신현철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 지나치지.”
2학년이 된 지도 꽤 시간이 지나면서 신현철과 함께 상황과 전략에 따라서 번갈아 쓰이는 식으로 코트와 점점 가까워지던 정성구가 대답했다. 옆에서 듣고 있으려니 나까지 짜증 나던데. 심판은 못 들은 척하는 건지 뭔지. 신현철을 대신해서 다시 코트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그는 불쾌한 표정으로 상대 팀 벤치를 바라보았다. 귀가 밝아도 집중력이 좋을 수 있었다. 언제 리바운드 콜이 떨어질지 모르는 센터는 사실 코트에서 누구보다 귀 기울이고 있는 포지션이었다.
“심판은 그냥 가벼운 신경전이라 생각하는 거겠지. 벤치에서는 아예 안 들리고.”
정성구의 말을 거드는 건 김낙수였다. 말마따나 벤치에 있던 젊은 감독은 간단한 전략 브리핑─계속 존프레스로 공략한다─을 끝낸 뒤, 남은 시간을 정우성의 개인 코칭에 쏟고 있었다. 그걸 이상하게 여기거나 특혜로 보는 사람은 없다. 입학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1학년에게는 그럴 가치가 차고 넘쳤다.
“그러니까 이런 건 심판이 제지해야 하는데, 어딜 보고 있는 거냐고.”
정성구가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번갈아 가며 코트에 투입되는 2학년 센터들을 통해 대충 사정을 파악하던 최동오는 쓰게 웃은 채 그의 등을 두드렸다. 답답해하는 그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선수 중 가장 발언권이 센 3학년들은 자칫 감정싸움으로 크게 번질 일에 나서는 대신 묻고 가길 택했고, 이런 상황에서 2학년이 의지할 건 심판밖에 없었기에.
“대체 정우성한테 어떻게 깨졌길래 저러는 거냐.”
크게 한숨을 내쉰 정성구가 말했다.
“그러게.”
제일 먼저 주제를 꺼낸 것 치고는 조용하던 신현철이 그제야 대답했다.
“정우성이 저거, 입방정 때문에 적을 만들긴 해도 본인이 직접 밟아서 싹을 안 남기는 타입이잖아.”
평소 정우성과 티격태격하는 듯─사실 일방적인 다툼이긴 했다─ 보여도 그를 제법 잘 알고 있다는 게 묻어나오는 말이었다.
“하긴, 지금도 멀쩡한 거 보면 쟤는 상대를 아예 기억 못 할지도.”
김낙수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정우성을 보며 말했다. 도진우와 함께 서 있는 그는 어깨를 크게 들썩이며 유니폼을 끌어올려 땀을 닦다가도 감독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하시는 말씀을 잘 듣고 있다는 신호였다. 동글동글하게 생긴 듯, 코트 위에 들어설 때면 날카로워지는 눈빛은 빛을 쫓는 것처럼 또렷했다.
하여튼 건방진 놈. 김낙수를 따라 그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두던 것도 잠시, 신발끈을 고쳐 맨 신현철이 작게 혀를 찼다. 선발 대회를 앞둔 연습 경기 중, 지나치다 싶은 정도로 모욕을 듣는 1학년 막내 편을 들다가도 그 1학년 막내의 평소 행실을 괘씸하게 여기는 등 답지않게 이리저리 헤맸다. 한 번이라도 정우성과 같은 코트를 뛰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혼란함이었다.
“아, 그거 말인데.”
거기서 목소리를 낸 건 최동오였다. 무언갈 알고 있는 듯한 말투에 시선이 금방 몰린다. 상대방의 더티 플레이에 덩달아 험악해져가는 벤치 분위기에 알게 모르게 땀 흘리던 최동오의 표정이 곤란해진다.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던 그가 마저 말을 이었다.
“상대 팀 포인트 가드가 중학교 때 우성이랑 같은 팀이었다네.”
마지막으로 신발끈의 매듭을 조이던 신현철의 손이 멈춘다. 상대방의 행태에 앞장서서 열 내던 정성구가 미간을 찌푸리고, 혀를 찬 김낙수가 팔짱을 끼고서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뜻하지 않게 그들의 의문을 해소하게 된 최동오의 얼굴 위로 씁쓸한 미소가 번진다.
정우성의 중학 농구 시절이 그닥 밝지 못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패스가 믿음이 아니라 기계적인 반응으로 나온다든가, 기강은 잡아도 구타는 없다는 말에 좋아하긴커녕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라든가, 곱상하게 생긴 외모와 다르게 꽤나 험하게 굴렀다는 게 짐작되는 대목은 말고도 차고 넘쳤다. 그걸 메운 건 누구도 아닌 정우성 본인이었다.
산왕의 코트가 조금 익숙해지자마자 부족한 팀워크고 사회성이고 뭐고 언제 그랬냐는 듯 메꿔버리는 걸 보며 최강 중에서도 최강이 모였다는 산왕의 꼭대기조차 부족해하는 놈답다고 여겼다.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유망주 후배에서, 자만감의 영역을 침범한 지 오래인 자신감으로 가득 찬 건방진 후배로 변하기까지는 3개월도 걸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산왕 2학년에게, 상대 팀 포인트 가드는 땅속에 영영 묻혀 있을 줄 알았던 정우성의 중학 생활을 끄집어내어 코앞에서 보여주고 있던 것이다.
“어쩔 거야.”
불편한 침묵을 깨는 건 신현철이었다. 물음표와 함께 약속한 것처럼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몰린다. 정우성보다도 먼저 산왕의 코트와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 주제에, 이 대화에는 한 번도 끼지 않은 사람이었다.
“뭐가, 뿅.”
이윽고 이명헌이 대답했다. 그는 신현철의 옆에 앉아서 마찬가지로 농구화의 매듭을 체크하고 있었다.
“정우성이, 어쩔 거냐고.”
“결정하는 건 내가 아니라 감독님, 뿅.”
맞는 말이었지만 상황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었다. 다 알아들었음에도 일부러 답답하게 구는 게 이명헌답다면 답다. 다 알아듣다 못해 상황을 완벽히 이해한 게 드러나는 능청이 얄궂게도 느껴졌으나 누구도 그것을 명쾌하게 꼬집지는 못한다. 책보다 농구공이 가까운 게 당연한 사람들의 한계라기보다도, 이명헌의 행동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음을 알아서였다.
“상대 팀 때문에 흔들리면 교체하는 거고, 아니면 계속 뛰는 거지.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다, 뿅.”
수건으로 얼굴을 닦던 이명헌이 덧붙였다. 타이밍 좋게 휘슬이 울린다. 그럼 난 들어간다, 뿅. 그런 다음에는 가장 먼저 일어나 코트로 걸어 들어갔다. 말과 행동 사이에는 조그만 오차도 없다. 상황적으로 매몰차던 말에 비하면 객관적으로 맞는 말이긴 했다. 그 객관을 따지는 모습이 지나칠 만큼 정이 없어서 문제였지.
“가끔 명헌이는 진짜로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점점 멀어지는 9번의 등을 보던 최동오가 어딘가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명헌이 정말로 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정우성을 믿는 거겠지. 상대가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다른 건 몰라도 농구에 한해서는 본받을 만해. 마찬가지로 이명헌이 정말로 냉혈한 로봇이 아니라는 걸 아는 김낙수가 말을 이었다. 속에 있는 것을 털어내듯 숨을 쉰 정성구가 묵묵히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고, 땀을 식힌 신현철은 뒤이어 코트로 들어가는 13번을 바라보았다. 코트 위의 이명헌이 정우성을 믿는다면 벤치에서 더 할 말은 없었다. 정우성은 교체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이명헌이 주는 믿음이었다. 그렇게 76-53이라는 압도적인 점수 차로 시작되는 마지막 후반전 3분, 산왕은 1분을 남겨두고 교체 카드를 써야만 했다. 교체한 것은 9번. 원인은 상대 팀 포인트 가드에 대한 오펜스 파울이었다.
그때까지 이명헌의 누적 파울은 3회를 넘지 않았으나, 몸이 부딪치는 과정에서 팔꿈치로 상대 팀 포인트 가드를 찍어버린 산왕의 선수는 의도와 상관없이 코트에 더 있을 수 없었고, 이명헌은 언제나 그렇듯 주먹을 들어 심판의 판정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종료 휘슬이 불릴 때에도 코트 위에 남아있던 정우성은.
*
규칙과 규율이 엄하기로 소문난 산왕이 좋은 학교라고 불린다면 그건 아마 엄격한 규칙과 규율 속에서도 열의만큼은 무엇보다도 자유롭기를 허락하기 때문일 거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 문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체육관 앞에 선 이명헌은 생각했다. 나무 바닥에 고무 밑창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풀벌레의 공백을 채운다. 한쪽 어깨에 더플백을 메고 기숙사로 돌아갈 준비를 끝낸 이명헌은 이내 체육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정우성이 웃옷을 벗은 채 림 앞에서 뛰고 있었다. 빠르게 공을 드리블하다가 급정거하듯 라인 앞에 서서 슛을 던지는 모든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수만 번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이미 완성되어있는 동작이었다. 그럼에도 정우성은 아직 갈고 닦을 게 남은 사람처럼 슛을 던졌다. 손끝을 벗어난 공은 확신을 대신하는 궤적으로 림의 그물을 통과한다.
“잘하네, 뿅.”
공이 바닥에 부딪히는 것보다도 먼저 이명헌이 말했다. 공이 림에 가까워지는 순간에 등을 돌려, 서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농구공을 주우러 가던 정우성이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공기가 꽉 찬 고무공이 튕기는 소리는 그다음에 울렸다.
“연습도 과하면 독이다, 뿅. 적당히 하고 들어가.”
트레이닝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는 등, 각 잡고 서 있는 낮의 모습과 달리 묘하게 자세가 삐딱한 이명헌을 보던 정우성은 티 나지 않게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시간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오직 농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체육관에도 벽걸이 시계쯤은 있었다. 그런 정우성이었기에, 시간이 이렇게 되도록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을 알았다. 정확히는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오늘 마지막에 왜 그랬어요?”
고개를 살짝 아래로 숙인 정우성은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이명헌보다 키가 컸지만, 골격 자체는 그리 두껍지 못했던 상대 팀 포인트 가드는 가격당한 눈썹 부근이 찢어지며 이명헌과 함께 코트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그거, 저 때문에 그런 거 맞죠.”
물론 정우성은 이명헌이 일부러 상대를 가격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이명헌은. 그랬기에 더더욱 상대방을 다치게 할지도 모를 만큼 거칠었던 그의 플레이가 궁금했다. 그곳에 묻어있는 분노가 궁금했고, 인텐셔널 파울은 당연하고 테크니컬 파울이 선언되었어도 묵묵히 받아들였을 이명헌의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는 너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데, 뿅.”
이럴 때까지 뿅뿅뿅뿅. 그런 미약한 투덜거림도 잠깐이었다.
“이제 와서 뭔가 거슬리는 건 아니고요. 그냥, 어쩔 수 없이 중학교 때가 생각나서요.”
근처에 벗어둔 윗옷을 주워 든 정우성이 순순히 털어놓았다. 내가 먼저 물었으니, 선배가 먼저 대답해야 하는 거 아니냐 물을 깡이 없기도 했거니와 이런 주제를 굳이 피하거나 숨길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였다. 그때 걔네들이 뭐 때문에 그렇게 화났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고,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는데요. 말을 잇던 정우성이 잠시 머뭇거렸다. 이명헌은 바로 그런 부분이 사람 속을 긁는 거라 생각했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그렇게까지 농구가 하고 싶냐는 말이 자꾸 남아서.”
정우성은 자신의 발밑에서 세로로 길게 그어진 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그냥 관둬도 이상하지 않긴 했어요. 아빠가 먼저 농구 그만두지 않겠냐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말 다 했죠, 뭐. 그래서 그때는 진짜로 농구가 시시하기도 하고, 지겹기도 했는데요.”
거기에 일부러 농구화의 밑창을 끌어 불쾌한 마찰음을 내던 발끝이 서서히 멈춘다.
“결국 여기 계속 서 있네요.”
이명헌은 그런 정우성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이제와서 농구를 그만두겠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닌데, 새삼 내가 이렇게까지 농구를 좋아했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그게 좀, 쪽팔리기도 하고. 마당에 골대 생긴 뒤로 그렇게까지 농구로 신났던 기억은 없던 거 같은데. 이상하네, 정말. 하하. 선배가 봐도 좀 이상하긴 하죠?”
“아니.”
어색한 농담으로 말을 마무리하자마자 나온 대답에 정우성의 고개가 번쩍 들린다. 마찬가지로 대답하자마자 고개를 돌려 상대의 시선을 피한 이명헌이 얼마 못 가 소리 나게 한숨 쉬었다. 공기가 빠져나가는 듯한 소리는 체념을 설명했다. 같은 고등학생이 맞는지 의심되던 특유의 침착함이 깨지는 귀한 장면이었다.
이상한 곳에서 잡생각이 많아서,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집중력이 밑 바닥칠 정도로 약하다는 걸 아는 이명헌은 그가 쓸데없는 고민을 한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이후로는 그렇게까지 신난 적 없다 말하는 정우성은 자신이 농구에 대해 말할 때, 농구와 함께 있을 때, 마룻바닥의 틈을 가로지르는 선이라고는 베이스라인 속 페인트 존과 슛 라인밖에 없는 체육관에 서 있을 때, 그곳에서 승리를 확신하고 달릴 때 본인이 어떤 모습인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 같은 색깔에, 같은 학교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다른 숫자로서 그 옆에 있던 이명헌은 한 번도 놓쳐본 적 없는 순간이었다. 코트의 안에서도 밖에서도 똑같이 잔잔한 눈이 깜빡인다.
“그냥, 그렇게 농구를 사랑하니까 네가 잘하는 거겠지 싶은데, 뿅.”
정우성이 소리 나게 숨을 들이켰다. 계속 서로를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있었음에도 이제야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가슴 근처가 스스로가 느껴질 만큼 부풀었다.
“선배, 진짜 저 걱정해서 그랬던 거였어요?”
그곳에 담긴 벅참을 겨우겨우 터트리지 않고 물었다.
“그것보단 모르고 떠드는 게 짜증 나서.”
이명헌이 더플백의 어깨끈을 고쳐 매던 것도 잠시, 얼마 못 가 그것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옷과 수건, 개인 농구공이 들어있을 가방이 묵직한 소리를 내고, 한결 가벼워진 이명헌은 근처에 굴러다니는 농구공을 주워들었다. 그것을 튀기며 걷는 것으로 가볍게 몸을 푼 그는 라인 앞에서 슛을 던졌다.
“산왕에 구타가 어딨냐, 뿅.”
산왕은 학년 간에 위계질서나 군기, 1학년이 겪은 부당한 일을 쉬쉬하며 넘어가는 등 명문이라는 이름 아래에 떳떳하지 못한 부분은 있었으나 단순히 시기 질투로 사람을 패던 놈들과 같은 수준으로 묶일 만큼 질 낮고 저열하진 않았다. 공이 그물을 통과하면서 마치 파도가 치는 듯한 철썩이는 소리가 체육관을 울린다.
“아! 그러니까요. 제 말이 그거예요.”
그 뒤를 따라붙는 건 정우성의 들뜬 목소리였다. 신난 것을 더는 숨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이명헌은 정우성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귀띔해준 게 신현철임을 확신했다. 내년이면 주전이 될 게 확실한 센터가 자신을 어떻게 분석하고 해석했는지는 알 길 없었으나, 정우성을 정상 궤도로 돌려놓고자 하는 뜻이 맞았다면 다른 건 별로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슛을 쏘기 위해 림에 가까이 가면서 애매하게 좁혀진 거리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근데요, 사랑하니까 잘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거 같아요.”
이제야 좀 땀이 식고 추워졌는지 허겁지겁 옷을 입고서 널브러진 공을 주워가며 눈치껏 주변을 정리하던 정우성이 돌연 몸을 멈추고 말했다. 남은 건 그를 챙겨 숙소로 돌아가는 일뿐이라 생각했던 이명헌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 멋모르고 함부로 뱉었다간 미움받기 좋은 말이었다. 사랑은 감정이지 재능이 아니었다.
“저만 그런 거 아니잖아요.”
이명헌의 침묵에도 정우성이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선배들도 농구를 사랑하잖아요.”
그래서 다들 그렇게 잘하는 거고. 말을 마친 그는 해맑다고 표현해도 손색없을 얼굴로 웃었다. 이명헌은 정우성의 시선이 향한 곳을 알았다. 그의 시선은 산왕에 닿아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산왕 또한 농구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것을 담아내는 정우성의 시선은 달랐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농구에 산왕까지 포함하여 보고 있는 것이다. 신현철이나 정성구에 비하면 훨씬 눈을 마주치기 편한 정우성에게 거대하다는 말은 그닥 어울리지 않음에도, 때때로 이명헌은 그말만큼 정우성을 담아내기에 완벽한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게는 농구를 사랑하는 그가 거대했다. 마음 맞는 다섯과 뛰는 코트가 즐겁고, 떠나기 싫은 마음은 이명헌 역시 같았으나 그의 애정만큼은 영원히 따라잡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앞으로도 제가 걱정되면요, 패스해주세요.”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이어지는 말에 이명헌이 되물었다.
“선배가 주는 패스 받으면 그냥 즐겁거든요.”
최대한 많은 공을 품에 끌어 안는 식으로 철제 바구니에 옮겨 담던 정우성이 말했다. 여태까지는 선배가 잘하는 가드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요.
“근데 농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패스라서 그랬던 거 같아요."
저랑 보는 게 같은 거죠. 정우성이 크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공통점을 찾은 게 진심으로 즐거운 목소리였다. 그가 다시 챙겨 입은 티셔츠에는 제가 입고 있는 티셔츠와 똑같은 영어가, 똑같은 파란색으로 적혀 있었음에도 그랬다. 농구공을 정리하는 그와 어쩌다가 눈이 마주치면 히죽 웃었다. 상대 팀의 추격을 자신의 선에서 동점 골로 끊어버릴 때마다 그가 보이던 웃음이었다. 한 살 더 많은 2학년 선배를 뿌듯하게 여기며 자랑스러워하는 건방짐이었음에도 차마 미워할 수 없게 만들고, 팀을 승리에 가깝게 만드는 유능한 포워드, 그 이상으로 눈에 담게 만드는 불필요한 순간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못하는 이명헌은 비로소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쫓는다면 그건 그 사랑이 아름답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일까.
답을 내는 대신에 허리를 숙이고 상대가 미처 줍지 못한 농구공으로 손을 뻗었다.
“얘네한테 애칭이라도 붙여 줘야겠다, 뿅.”
“뭣이! 아직 저도 딱딱하게 부르면서!!”
아예 쪼그려 앉는 식으로 바닥에 가깝던 정우성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명헌은 커다란 동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근데 그래도 좋아요. 선배가 특이한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불만인지 수긍인지 모르는 게 중얼중얼 나온다. 뭐가 좋은 건데. 누구처럼 하나하나 옮기는 대신에 서 있는 곳에서 바구니로 던져 넣는 식으로 뒷정리를 해결하던 이명헌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글쎄요, 형이랑 같은 걸 사랑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냥 기분 좋은데요. 그 외에도 멋대로 쓴 비품을 정리하던 정우성이 간단하게 말했다. 뒤이어 그의 손에 들려 비품실로 사라지는 철제 바구니를 보던 이명헌이 다시 바지 주머니로 손을 넣었다.
“우성이면 되나.”
“네?”
비품실 벽 너머로 사라지던 동그란 정수리가 용수철이라도 달린 것처럼 튀어나온다.
“딱딱하게 부르지 말라며, 뿅.”
“그럼 저도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몇 번 눈을 깜빡이던 정우성이 곧바로 대답했다. 하핫, 이건 너무 건방졌나? 죄송해요. 마지막에 파울 그거, 저 대신 화내준 거잖아요. 그게 솔직히 좀, 감동이었어서. 예상 못 한 말에 이명헌이 솔직하게 놀란 티를 내면 정우성이 멋쩍게 덧붙였다. 저 까불고 건방지게 굴려던 거 아니에요. 알죠? …현철 선배한테 말 안 할 거죠? 그런 가련한 물음은 다음이었다.
“마음대로 불러라, 뿅. 그런다고 뭐 바뀌는 것도 아니고.”
이명헌은 저도 모르게 어깨에 들어간 힘을 의식적으로 빼며 대답했다.
“…정말이죠, 명헌이 형?”
“그래. 그러니까 이제 돌아가자, 뿅.”
“네! 좋아요!”
여기서 더 늦으면 그땐 진짜 혼난다고, 달래듯 말할 것도 없이 빠르게 정리를 마친 정우성이 짐을 챙겨 뛰어나온다. 바닥에 떨어진 더플백을 들어서 매는 것으로 그보다 더 빠르게 채비를 마친 이명헌이 순식간에 치고 나가는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체육관을 나서면 겨울을 앞둔 공기가 차갑게 달라붙었다. 밤바람에 금방 앞서 뛰던 하얀 옷자락이 펄럭인다. 명헌이 형! 빨리 와요!! 상대가 있는 쪽으로 몸을 돌린 뒤, 아예 뒤로 걸어버리던 정우성이 활짝 웃었다. 같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이는 신뢰와 애정이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뒤를 따라 걷던 이명헌이 자리에 멈춰 섰다.
사람은 모두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 당장 밤하늘에 찍힌 별을 보고도 생각하는 게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곳에 서 있다고 해서 같은 것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농구는 정우성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런 정우성의 삶 역시 농구로 이루어져 있을 테니. 이명헌은 기꺼이 정우성과 같은 것을 사랑하기로 했다.
계절의 끝을 알리는 겨울이 가까워진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거대할 애정을 향해 걷다보면 온몸이 사랑으로 절여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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