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단편] ?의 사멸
<의문문을 만드는 문장부호 물음표(?)의 기능과 용례 변화에 대하여 논하시오.>
O :: 물음표(?)는 문장의 끝에 붙여 의문문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문장 부호입니다. 기능적인 역할 이외에도, 물음표는 흥미로운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과 사용이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음표는 다양한 유형의 질문을 구성하는 데 기본적인 역할을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문장 구조를 변경하지 않고 일반적인 예/아니오 질문을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은 올 거예요"라는 주어진 문장에 물음표를 덧붙여 "당신은 올 건가요?"라는 의문문으로 변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변화를 통해 작가는 정보를 얻거나 확인하고 설명을 명확히…
X는 문장 생성을 멈춘다. 그는 밀려드는 허탈감을 경험한다. 자신이 반나절을 고민하여 써낸 내용을 O는 단 5초 만에 답한다. X는 이 터무니없는 과제에 소모한 자신의 시간을 계산해본다. 처음부터 O를 사용했더라면, 지금쯤 X는 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실기 시험을 준비한다든가, 루틴(이었던) 운동을 마친다든가, 하물며 소개팅 상대와 약속을 잡는다든가 하는 일들 말이다. 이런 기초적인 사실관계 확인에 O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그저 시간 낭비일 뿐이다.
X는 스스로를 제법 양호한 학생으로 생각한다. 병결은 두어번 정도 있으나 무단으로 자리를 비운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들을 가치가 없는 강의도 충실하게 완주하는 편이며, 항상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강의 도중에 졸거나 딴청을 피우지도 않는다. 정보 보건 관리는, 그의 또래들 사이에서 “최고”로 여겨지는 직군들에 비해서 아주 높은 수준의 지성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X의 자부심은 사뭇 견고했다. 실은, X는 자신이 사회에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리라고 믿었다.
불결한 정보는 병원체와 같다. 이는 불특정 다수의 접촉을 통해 퍼져 나가며, 정보를 접하는 행위 그 자체로 전염되기에 감염 경로를 차단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게다가, 바이러스가 그러하듯이 정보도 변이한다. 텍스트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음성으로, 그것은 화소 아래 몸을 숨긴 채 사람들의 감각기관으로 스며들고, 뇌 속으로 침투해 연상 작용을 일으키는 모든 것을 감염시킨다. 단어, 상징물, 제스처, 심지어는 아주 간략한 감탄사까지, 정보의 감염으로부터 안전한 것은 없다.
21세기 말 정보 생태계는 불결한 정보를 배양하는, 그야말로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비위생의 극치였으며, 결국 그 어떤 전염병보다 참혹한 정보 역병이 창궐했다. 그 증상들, 공동체의 분열, 공공 신뢰의 상실, 계층 갈등과 양극화 현상은 지난 수 세기 간 인류가 이뤄 놓은 업적을 송두리째 위협하였고, 오로지 철저한 정보 방역과 보건 대책을 고안한 국가들 만이 그 혼란기를 살아남았다.
바로 그 정보 방역 체계의 확립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O’, 오로지 객관적인 사실 정보만을 제공하기 위해 설계된 생성형 AI 검색 엔진이다. O가 제공하는 정보들을 통하여 대중들은 비로소 한 세기 간 인류를 괴롭혔던 불결 정보의 범람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영웅들, O에게 입력되는 정보를 관리하는, 사명감과 봉사 정신으로 무장한 정보 보건의들은 불행히도 종종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히고는 한다. X는 그렇지 않다. X는 그들을 선망한다. X는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한다.
X는 바로 이 교육 현장이 그 진로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했기에, 자신이 가진 사명감만큼이나 그 교육자들 또한 엄격한 수준 유지를 보여주리라 기대한다. 강단에 올라설 명예를 얻은 인물은 학생들에게서 생산적인 결과물을 이끌어낼 의무 역시 지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생산성이 없는 과제물로 학생들의 시간을 낭비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백한 직무 유기다.
{ O는 철저한 정보 위생 필터링을 통해 언제나 객관적인 사실 정보만을 전달합니다. }
이른 오후의 일이다.
“교차 검증은… 데이터 분석의 가장 기본적인 절차입니다. … 지난 시간에는 코드의 밈화 현상을 각자의 분리된 영역에 한정하여 알아보았습니다만, 이번에는 복합 데이터의 형태로 나타난 밈에서 유해 코드를 식별해내는 작업을 해… 보겠습니다. 지금 스크린에 띄워드린 자료를 보시면…”
교수 Y는 언제나 종이로 된 수업 자료들이 부산스럽게 늘어놓는다. 본인 말로는 그 편이 강의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지만 글쎄, 수업을 듣는 입장에서는 별로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지극히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가 자료를 제대로 정리해오지 않은 날에는 원하는 부분을 찾느라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기까지 한다. 또, Y는 묵직한 파일 뭉치와 함께 문서용 카메라 스탠드를 항상 챙겨 다니는데, 그 구닥다리 장비를 강의실 스크린에 연결하는데 만 10여분이 걸린다. 수업이 끝나면 Y는 그 난장판을 도로 정리하면서 또 다른 10분을 지체할 테다. 본인의 편의를 위해서 성의를 버리는 교수는 봤어도, 과목에 대한 열정을 표현한답시고 지극한 비효율을 선택하는, 인지부조화가 온 듯한 불편을 추구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예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자료는, 정보 오염 국가에서 들어오는 입국 수속자들에 대한 추가 절차 규정에 대한 담론에서 발생한 이미지입니다. 해당 이미지의 청, 불결 여부를 판단해볼까요?"
X는 이미지를 보자마자 귓바퀴 뒤에 걸린 이어폰의 버튼을 누른다.
해당 이미지는 YYYY/MM/DD, NT 언론사의 시사 만평란에서 발췌한 것으로, ‘정보 보건’이라는 팻말을 든 인부들이 강제 수용소의 울타리를 고치는 묘사를 통해 입국 제한 규정에 대한 비판을 제기합니다. 이는 정보 보건법 재정 초기의 정치 지도자와 나치 독일의 강제 수용소 (혹은)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인종 수용 캠프와 연관성을 조직하는 반면, 정보 보건법의 필요성이 제기된 배경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정확한 문맥을 배제한 후 자극적인 연상물을 연결. 사실관계 곡해. 편향적인 관점 전달. 불결.
정보 보건의가 된다면 숱하게 하게 될 작업이다. 정보 보건 위원회의 판단 기준에 따라, 오류가 있거나, 사실을 곡해하거나, 유해한 코드-이를테면, 특정 계층, 인물, 공동체나 정체성의 우위를 드러내는-를 함유한 모든 정보는 불결 등급이 내려진다. 불결로 판정된 정보는 즉시 O의 정보 필터에 입력되고, O는 초마다 수 테라바이트 단위의 자료를 검증하여 동일한 코드를 포함한 모든 정보를 유통망에서 걸러낸다. 그렇게 O의 정보망 내에 오로지 정확한 정보인 청결 등급 만을 남긴다.
“다음 의제는 정보 위생 특별법 개정 과정에서 발생하였으며, 법안 폐기를 요청하는 국회 청원에 대한 참여 촉구문입니다. 함께 읽어보는 시간을 보내도록 합시다-…”
해당 이미지는 YYYY/MM/DD, 유명 SNS 플랫폼에서 발췌된 기록물로서, 유사한 법안을 선진 적용한 국가의 몇 가지 무고 사례를 특정하여 정보 특별법의 유해성을 주장합니다. 해당 발화는 정보 위생 특별법의 긍정적인 효력을 고의적으로 배제하고,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일부 사례를 보편적인 것으로 일반화합니다.
확증 편향, 법안의 적용 범위를 과대 해석함으로써 사실을 곡해, 불필요한 공포감을 조성함. 불결.
저런 말도 안 되는 선동 탓에 정보 특별법이 사실상 폐기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X는 새삼 정보 보건의 필요성을 실감한다. 대중은, 매우 유감스럽게도, 오염된 정보를 판독하는 능력이 없다. 안정된 삶이 돌아오자 대부분의 시민들은 정보 방역의 절차는 고사하고, 그 중요성조차 도로 잊어버렸다. 심지어, 일부 몰지각한 자들은 O의 안전망을 통제라고 부르고, 필터를 벗어난 정보의 혼돈을 떠돌며 그것을 자유라고 착각한다. 바로 저들 때문에 안전 정보망 안으로 끊임없이 불결 정보가 유입되는 것이다. 아무런 방역 조치 없이 데이터가 제멋대로 흐르도록 방치하면 대중은 삽시간에 정보 역병의 먹이가 되고 말 테다. 결국 대중을, 나아가 사회를 보호하는 책임은 보건의들에게 온전하게 지워진다. 정보 위생과 자기 보호 수칙을 철저하게 숙지한 이들 만에게 주어지는 자격인 것이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과제물을 온라인 클래스에 공개할 테니, 학생들은 제출 기한을 잘 확인하고 학기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느새 수업이 끝을 보인다. 학생들이 막 자리를 뜨기 시작한 참이다. Y가 급하게 모두를 불러 세웠다.
“아!”
“과제에 O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된 일이다.
교수 Y는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X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나름의 교육 철학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Y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가능한 많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만 지극히 비효율적인 수준에 머물 뿐이다. 교육자로서 이렇게 뒤처진 모습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힘들다. 본인의 주어진 강의 시간을 어떻게 소모하는지는 그래, 어차피 본인의 자유라지만, 그 철학으로 말미암아 학생 개인의 시간 소모까지 강요함은 솔직히 말해 과하다.
X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O가 생성해주는 내용을 화면에 옮겨 적고 제출 버튼을 누른다. 이 과제가 수면 루틴까지 방해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X는 귀 뒤편, 이어폰의 전원 버튼을 길게 누른다. 멜라토닌 분비 유도 음악이 관자뼈를 타고 흘러 들어오기 시작할 동안, X는 세안을 하기 위해 자리를 뜬다.
물음표(?)는 문장의 끝에 붙여 의문문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는 문장 부호이다. 기능적인 역할 이외에도, 물음표는 흥미로운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과 사용이 이루어졌다. 물음표는 약 1000년 전인 9세기경에 처음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역사적인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물음표의 기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학설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사람의 형상을 모방한 기호라는 설, 물음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Quaestio가 축약과 변화의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라는 설, 문장의 어미에 성조가 적용됨을 표기하는 발음기호가 변형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물음표는 문서를 통한 효과적인 의사소통과 독자들과의 관여를 가능케 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물음표의 기능과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면 글쓰기와 읽기를 통한 효과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물음표는…
“정보 위생 특별법 얘기 들었어? 재표결 들어간다고 하더라.”
정보 위생 유지 및 방역 수칙 위반자 처벌을 위한 개정안, 이하 정보 위생 특별법은 콘텐츠의 형식을 막론하고 직/간접적으로 O의 정보 안전망 내에 불결 등급 정보 유입에 기여한 것이 적발될 시 사법부로 하여금 형사 처벌을 집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입니다. 정보 위생 특별법과 관련된 의제가 의사 결정 위원회에 제출된 것은 현재까지 총 3회며, 8일 15:00 본회의에서 표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제라도 얘기가 나와서 다행이지. 왜 갑자기 다시 한데?”
지난 달 31일, 극장가를 중심으로 고의적인 정보 감염병 확산으로 인해 시민 사회의 불안감이 커졌고, 정보 위생 특별법을 통한 보다 효과적인 대응 방안의 필요성이 다시금 대두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정보 위생 관리 위원회가 직접적으로 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다시 허용하는 구 특별법의 복원을 중심으로 하는 개정안이 발의된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진작에 반대하지를 말았어야지.”
X는 한심함에 혀를 찬다. 보장된 안전을 걷어찰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지켜달라고 아우성이람. 별수 없는 일이다. 만성적인 판단 능력의 부족은 대중의 속성이니까. 이제라도 진전이 가능한 것이 다행인 거다.
“아는 형이 그 근처에서 일하는데, 확산 현황 봤어? 난리도 아니래.”
31일 극장가 정보 감염병 확산으로 인해 현재까지 142TB가량의 정보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감염된 정보는 방역 절차를 거쳐 약 88%가 환원되었습니다. 발견된 유해 코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공직자 희화에 의한 공공 신뢰 저하, 개인주의 행동 양식의 전파, 국가 의사 결정 기구의 기능 분열, 총체적 무정부 상태를 유발할 수 있는 가능성 등… 당국은 감염원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나, 관련자들의 협조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역학조사에 차질을 빚고 있는 현황입니다.
한마디로 난장판이다. 또 당직 보건의들만 혹사를 당하고 있겠지, 정말이지 극한직업이다. 감염된 정보만 골라내면 뭐하나, 감염원을 찾을 수가 없는 걸. 특별법이 가결된다면, 물론 실제 적용까지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저런 상황에 대해 다시금 공권력의 행사가 가능해진다. 보건의들의 권한이 늘어난다는 건 좋은 일이다.
“야, 특별법 통과되면 보건의 품도 같이 오르겠지?”
동기가 시시덕거리며 핸드폰을 두드린다. 녀석이 어젯밤에 올린 sns 포스트가 제 친구들의 이어폰을 통해 전송된다. A사의 고급 스마트폰을 자랑하는 내용이다. 성능과 디자인의 조화가 잘 어우러져 인기가 많은 제품이다. 부드럽게 깎여 있는 모서리는 미세한 돌기를 가져 손안에서 완벽한 그립감을 선사하고, 특수 처리가 된 액정은 손가락 표피에 지나친 자극을 주지 않으면서도 끈끈한 터치감을 구현해낸다. 화면에 산란되는 빛은 보석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명성에 견줄 만하다.
“죽이는데.”
“제법 비쌀 텐데, 돈은 어디서 났어?”
“할부했지. 딱 기다려, 졸업하고 취직해서 2년 안에 다 갚는다.”
“멋지네,
“야, 이것 봐 봐.”
또 다른 포스팅을 공유한다. 사진 속에는 신형 VR 헤드셋으로 보이는 세트가 뚜껑만 개봉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X는 그것을 즉각 알아본다.
S-GLAS 31은 S사에서 정식 발매한 최신 센서테인먼트 지원용 VR 기기입니다. 웨어러블 O 단말기 등에서 사용된 뉴럴링크 기술을 응용한 S-GLAS는, 단품 헤드셋 만의 구성으로 시각, 청각, 촉각, 후각, 공간 감각 등의 복합적인 자극을 전부 제공합니다. 지금 바로 S-GLAS를 구매하시려면…
“이걸 구했어?”
X는 약간의 시기심을 느끼며 다른 센서테인먼트 기기들로 검색어를 옮겨간다.
i-mmersion XII는 A사에서 발매한 센서테인먼트 지원용 VR 기기입니다. 전신 착용형 슈트와 헤드셋의 세트 구성으로 이루어진 i-mmersion은, 슈트 내에 주입된 전기 반응성 나노-젤을 통해 착용자의 신체에 직접적인 감각 자극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나노 젤의 추출을 위해 슈트를 고의적으로 파손하는 행위는 A사 소비 대응 정책에 의해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i-mmersion을 구매하시려면…
최신 센서테인먼트 기술에 세간의 이목이 끌리고 있는 모양이다. 이전까지는 기술이 제공하는 즐거움보다 불편함이 더 컸으나, 이 제품으로 마침내 단품 장비가 모든 서비스를 커버할 수 있게 되었으니 분명 업계에 지대한 혁신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센서테인먼트는 그야말로 정보 방역 시대의 미디어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발전상이다. 어떤 코드도 담기지 않은, 담길 수 없는 순수한 자극과 감각의 조화 말이다. 이토록 위생적인 엔터테인먼트가 또 어디 있는가?
“넌 어때, 요즘 재밌는 일 뭐 없어?”
질문은 X에게로 돌아온다. X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자신의 타임라인으로 들어간다.
“주말에 만나기로 한 애.”
X는 여성의 포스트를 공유한다. 본인의 사진을 찍어 올린 게시글이다. 꾸밈이 과하지 않아 첫인상은 제법 수수한 편이지만, 갸름한 턱선부터 큰 눈에 쌍꺼풀까지 미의 조건이라 꼽을 법한 조건은 전부 갖췄다. 스타일링으로 보아하건대 본인의 미를 가꾸는데 큰돈을 들이지 않는데, 걸친 블라우스는 가격이 있는 브랜드 제품이다. X는 상대가 제법 넉넉한 재력과 교양을 갖추었으리라 미루어 짐작한다.
“예쁜데.”
합리적인 수준의 반응이다.
“만나서 뭐하기로 했어?”
X는 리스트에 등록해둔 일정을 공유한다. 먼저 공연을 관람할 것이다. 이는 상대의 관심사에 따라 골랐다. 비록 공연 예술은 X가 선호하는 형태의 엔터테인먼트는 아니지만, 고전 뮤지컬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유명 극단의 작품이라고 하여 이번만큼은 기대치를 높게 잡을 것이다. 관람을 마친 후에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의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 고즈넉한 예약석을 제공하는 곳이다, 적당한 알코올과 함께 공연에 대한 감상을 나누기에 완벽한 조건이다. 모든 일정이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X는 후상황도 고려해볼 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가까운 숙박시설의 위치 또한 알아 두었다. 물론, 이는 동기들에게 공유할 필요가 없다.
“신경 좀 썼네.”
X는 그 말을 자신의 비교적 우수한 문화생활 소양에 대한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제 동기들이 자신들의 핸드폰 화면 속으로 도로 후퇴하는 모습을 만족감을 가지고 바라본다.
{ O는 정보 감염병의 위협으로부터 시민과 정보 사회를 보호합니다. }
교수 Y가 들어온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종이 뭉치와 문서 카메라 스탠드를 세팅하는 그가, 학생들을 돌아보며 조금 큰 목소리로 선언한다.
“오늘 수업은 특별한 활동을 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교수 Y는 능숙한 솜씨로 종이 뭉치를 팔락이며 그것을 책상 열 만큼의 덩어리로 나눈다. X는 그제야 뭉치가 오래된 자료들이 아닌, 새로 뽑아낸 청백색의 인쇄용지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교수는 각 열의 앞을 가로지르며 종이 뭉치를 분배한다.
강의실에 앉아있는 녀석들은 혼란에 빠진다. 반대편에 도착했을 때쯤, Y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유인물을 내려다보는 앞줄의 학생들을 향해 의아한 듯이 덧붙인다.
“뒤로 넘겨주세요.”
학생들의 손가락이 어색하게 움직인다. 한 장을 분리해내는 일조차 제법 버겁다. X는 눈을 휘둥그렇게 뜬 제 뒷사람에게 남은 뭉치를 넘기고는, 자신이 방금 받은 것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지면 위에는 흑백의 잉크로 일련의 발췌 데이터가 인쇄되었다. 블록체인도, 소스 코드도 존재하지 않는, 날것의 재생산된 정보다. 일종의 시험인가? X는 가장 위에 적힌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귀 뒤로 손을 가져간다.
“종이를 받은 학생은 지금부터 이어폰을 빼 책상 앞에 내려놓습니다.”
X는 귀를 의심한다. 그 뿐만 아니라, 강의실에 앉은 모두가 술렁거리며 교수를 올려 보고 있다.
“제출한 과제물을 보건대, 여러분이 O를 사용하지 않고 과제물을 작성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망설이는 동안, 교수 Y는 어서 하라는 듯이 강단 앞으로 걸어 나간다. 그는 마치 시범이라도 보이듯, 자신의 이어폰을 끈 채로 그것을 교탁 위로 성의 없이 내던진다.
“그래서, 오늘은 O의 도움 없이 텍스트를 분석하는 연습을 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종이에는 2020년부터 2030년 사이, sns에서 발췌한 주요 텍스트들이 인쇄되어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해당 텍스트의 청결, 불결을 판단해주시면 됩니다.”
X는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종이를 내려본다.
대통령이깻잎인데케이크를친구가5분의1잘라먹으려다가10분지나서폐기됐는데왜이런모습이너도우스워엄마도?당연함판단력진심ㄹㅈㄷ차라리우리똘이를청사로
온갖 줄임말과 유행어, 밈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난장판이다, 마치 외계어로 적힌 문장과 같다. 여기서 어떻게 정보를 추출한 단 말인가, 수십년도 더 된, 그것도 정보 방역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 시기의 텍스트를, 어떻게 O의 데이터베이스 없이 판독해내라는 건가?
“모르겠는 부분은 그룹 토의를 해도 좋습니다. O만 사용하지 않으면 됩니다. 시작해볼 사람 있나요?”
X는 제 주변 동기들을 돌아본다. 하나같이 텅 빈 눈들을 하고서 시험지를 응시한다. 물어본다고 도움이 될 턱이 없다. 저들이 가진 사전 지식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니까. X는 안간힘을 다해 텍스트를 분리해내기 시작한다. 대통령, 폐기, 판단력, 국회 등의 단어들이 먼저 시선에 들어온다. 정치성, 이 텍스트의 목적은 정치성이다. 그렇다면 다른 단어들 역시 정치성을 띌 것이라 가정한다. 그렇다면 케이크, 5분의 1등의 단어는 한정된 사회적 자원을 뜻하는 개념, 그러니까 파이와 동의어 관계에 있을 것이다. 이 텍스트는 정치 지도자의 결단력 부족을 성토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성적인 비판점을 식별할 수 없는 밈적 발화, 불결. X는 손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 그대로 말한다.
X는 교수의 응답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는 잠시간 침묵한다. 자신의 답변을 곱씹는 듯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는 지극히 짧고 불만족스러운 반응을 내놓는다.
“흥미로운 의견입니다.”
그리고는 다른 학생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것이다.
“다른 의견을 가진 학생은 없습니까?”
다른 의견? 다른 답안을 찾고 있는 것인가? 그 말은 자신의 답안이 틀렸다는 의미일 테다. 그는 다시 텍스트 안으로 집중한다.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이 있는가? X는 두 번째 문장에 집중한다. 똘이를 청사로, 청사라면 대통령의 집무실을 가리키는 단어일 테다. 그렇다면 작성자는 특정 후보자로 현재의 지도자를 대체하고자 하는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다. 분명 이 부분이 핵심이다. X는 손을 들어 올린다.
“-또한 작성자는 본인이 지지하는 후보자를 애칭으로 부르며 특정 정당의 우수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편향된 의견, 정치 지도자의 과도한 우상화, 불결 정보에 해당합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의 의견도 들어봤으면 합니다.”
X는 다시 손을 들어 올리지만, Y의 시선은 차갑게 스쳐 간다. X는 황당함과 모욕감에 열이 달아오름을 느낀다. 자신의 답변 기회를 박탈한 것이다. 왜? 내 답변이 또 틀렸나? 하지만 Y는 여전히 자신의 답변에 대한 어떤 피드백도 제공하지 않았다…
“수업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본인의 의견을 제출하지 않은 학생이 있다면 다음 주 이 시간까지 완료해 주시기 바랍니다.”
X는 시험지를 정리 중인 교수를 향해 다가간다. 그는 상대가 떠나기 전에 황급히 묻는다.
“교수님, 제가 제시한 분석이 정답입니까?”
“다음 시간까지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확인한 후에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X는 재차 질문한다.
“그렇다면 정답이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시험의 목적은 정답을 도출해내기 위함이 아닙니까? 목적이 달성되었다면 추가 답안을 수집할 이유가 없으니, 제가 제시한 답은 정답이 아니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 문제에 정해진 하나의 답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모든 의제에는 정답이 있고 그 이외는 불완전하거나 잘못된 답, 즉 오답입니다.”
“오, 꼭 그렇지는 않아요. 모든 담론은 대립 담론이 가능합니다. 그 타당성은, 글쎄요, 그것에 대해선 논의를 해볼 수 있겠으나, 결국 논제란 하나의 단정적인 결론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것이죠. X 씨가 제법 준수한 독해력을 보여주었음은 사실이지만, 다른 학생들이라면 X 씨가 놓친 정보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한 번에 모든 그림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천성이고, 그 부족을 우리는 담론의 기능을 통해 완성시키는-“
X는 일종의 격앙감에 사로잡혀 교수의 말을 끊는다. 물론, 여전히 예의 바른 어조를 유지하지만, 그는 더 이상 교수의 말장난에 응해줄 마음이 없다.
“교수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말씀하시는 현상은 O의 부재로부터 발생하는 일시정인 장애에 불과합니다. 바로 그 인간 인지능력의 결함을 대리보충 하기 위해 O가 존재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학생의 주장은, 그렇다면, O의 절대적인 필요성이군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는 주장이 아닌 명제를 논하고 있습니다. 어떤 조건 아래에서도 항상 참인 명제 말입니다.”
“어떤 조건 아래에서도 항상 참이라 함은, O가 제공하는 정보를 반박할 대립 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렇다면 그 주장을 지금부터 교차검증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질문을 하면, X 씨는 답해주시면 되겠습니다. 할 수 있겠지요?”
“예, 물론입니다.”
X는 빼놓았던 이어폰을 도로 꼽는다. Y는 X가 준비될 때까지 시간을 주었다. 부팅이 끝나고 가동 인사말이 들리자, X는 교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다가오는 일요일에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어떤 시위이고, 예정 시각은 몇 시인가요?”
이번 주 일요일, 이틀 뒤, 그러니까 8일, 광화문 광장, 시위, 예정 시각, 동선, 목적.
찾으시는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검색어를 다시 확인 해주시겠습니까?
X는 겉으로는 태연한 표정을 하고서 자신의 답을 말한다.
“교수님, 해당 날짜와 해당 위치에서 예정된 시위는 없습니다.”
“확실한가요?”
“예. 말씀하신 시간과 장소에 신고된 시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식적으로 신고된 일정이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건가요?”
교수 Y는 그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답한다. X는 잠시 말문이 막힌다.
“…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정표를 찾아달라고 한 것이 아니에요. 정식으로 신고하지 않아도 시위는 할 수 있지 않나요?”
“예, 하지만 그건 불법 입니다.”
“어쨌든, 사건은 실존할 수 있는 것이지 않나요? 합법 여부와는 관계없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 사건이 실제로 예정되어 있습니까?”
“예. 그렇게 생각할 정보가 있습니다.”
Y는 핸드폰 화면에 사진을 띄워 보인다. 바닥에 뿌려진 반들거리는 종이 전단을 촬영한 것이다. 검은 배경 위에, <정보 위생 특별법 재정 반대를 위한 시민 궐기대회>라고 적힌 붉은 글씨가 솟구치는 하얀 주먹들에 떠받쳐진다. YY/MM/DD 16시, O 메인 서버 건물 앞. 자유 시민 독립연대. X는 전단에 적힌 내용을 하나씩 뜯어본다. 적힌 단어들을 검색한다. 자유 시민 독립연대.
해당 명칭을 가진 시민 단체는 현재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민 궐기대회.
관련된 기록이 ----건 있습니다. 가장 최근 기록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정보 위생 특별법 철폐를 위한 시민 궐기대회>는 신 정부 수립과 정보 위생법 재정 직후 발생한 반대 시위로서…
O 서버 건물 앞, 16시.
해당 위치는 금일 약 14시경부터 17시경 사이 수도관 교체를 위한 안전 통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시민분들께서는 이 점 유의하시고 통행에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X는 가만히 O가 전달하는 내용을 듣는다.
그런 시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 전단 역시 거짓 이미지에 불과하다.
“왜 O는 시위가 예정된 사실을 알리지 않을까요? 만일 정말로 도심 한복판에서 불법 시위가 열릴 예정이라면, 더더욱 시민들에게 경고할 필요가 있는데 말이죠.”
X는 답을 알고 있다. 그는 단정적으로 답한다.
“왜냐면 그 사건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시하신 이미지는 가짜 정보입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지요. 하지만 전단은 일차적으로는 실물로, 이차적으로는 데이터 형태로 불특정 다수에게 이미 노출되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정보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며, 이미지에 노출된 시민들이 행동하여 실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 역시 존재하겠군요.”
가짜 정보에 감염된 불특정 다수의 문제적 행동, 정보 감염병의 증상.
“…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정보 감염의 발생 가능성이 있다면 O는 그 사실을 전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앞에는 이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물증이 놓여있습니다. 감염원이지요. 그럼에도 O는 그 사실을 전달하지 않습니다.”
X는 머뭇댄다.
“O가 고의로 시위에 관한 정보 자체를 필터링하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럴 가능성도 있지요…”
Y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눈으로 주변을 간단히 살폈다.
“정보로 포화한 사회에서는 정보의 부재 역시 의도성을 가지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 교수님, 죄송하지만 방금 발언은 다소 문제적인 것 같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그러한가요?”
“O는 특정 코드에 편향되지 않은 객관적인 사실 정보만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플랫폼입니다, 그런 O가 특정 의도성을 가지고 정보를 배제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은…”
“O의 목적은 ‘잘못된 정보’를 배제하는 것이지 않나요? 이는 충분히 의도성을 가진 것으로 느껴집니다만.”
“불결 정보의 존재를 의심하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오, 그렇지 않아요. 물론 가짜 정보라는 것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존재는 판단을 누가, 어떻게 내리느냐 에 달려있지요. 실제 정보의 참/거짓 여부와는 무관하게 말입니다.”
“교수님은 해당 시위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사실이라 판단하십니까? 그 정보의 출처는 어디죠?”
“제가 일종의 제보를 받았다고 가정합시다. 신원을 밝힐 수 없는 정보원으로부터 전달된 이미지입니다. 제가 그 정보원을 신뢰한다면, 시위가 발생할 것을 사실이라 주장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신원 불상의 정보원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습니까? 그가 가짜 정보를 전달할 의도가 있는지, 혹은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 교차 검증할 정보원이 없지 않습니까?”
“타당한 반론입니다. 그렇다면 X 씨, O에게 입력된 정보는 누가 선정합니까?”
“국가 정보 위생 관리 위원회입니다.”
“X 씨는 해당 정보 심사를 진행한 보건의가 누구인지 알 수 있나요?”
“정보 처리를 담당한 보건의의 신원은 데이터의 블록체인에 기록됩니다.”
“그 보건의가 정보를 심사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았나요?”
“… 아니요, 하지만 위생 관리 위원회는 국가 기관이며 전문가들에 의해 엄격하게 관리되는…”
“그렇다면 익명의 누군가가 선별한 정보와 별반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보건의는 이름도, 얼굴도, 실존하는지도 알 수 없는 신원 불상의 인물이지만 학생은 여전히 그를 신뢰하는군요. 마치 이름 모를 누군가가 저에게 전달한 제보처럼 말입니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그건 지나친 논리의 비약입니다. 정보 위원회는 오랜 시간 동안 정보 감염병으로부터 시민 사회를 보호해 온 이력이 있으며, O는 철저한 정보의 신뢰성 관리가 입증되어 현시점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상기하신 이유로 단순 불신하는 것은 노골적인 반지성입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O가 유일한 정보 제공의 창구라면, O의 신뢰성을 교차 검증할 정보원은 어딨나요?”
“그건…”
X는 답을 하지 못한다. 교수 Y는 생긋 웃고는 X를 지나쳐간다.
그날의 여가 루틴을 마칠 때쯤, 반박하지 못한 주장이 다시 X의 생각을 사로잡는다. O의 신뢰성을 교차 검증할 정보원은 어디 있는가?
정보 필터 관리에 참여하는 보건의 명단은 O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O의 정보망 바깥에서 만들어진, 검증 가능한 정보의 출처가 있냐는 질문이다.
정보 위생 관리법 2조 1-1항에 의거하여, O의 정보 필터를 통하지 않은 외부 정보 제공자는 병원체를 보유한 불결 정보일 위험성을 내포합니다. 이에 따라, 위생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 출처를 신뢰하지 않을 것을 권고합니다.
X는 두 정보의 출처를 비교해본다. 하나는 O, 다른 하나는 교수. 한참 동안 낮의 대화를 곱씹은 후에, X는 단 한 가지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그 정보는 Y가 직접 만들어낸 거짓 이미지다. 그렇다면, Y는 단순히 불결 정보를 신뢰하는 무지한 인물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정보 감염체를 흩뿌리는 정보학 테러리스트일 테다. 그 순간, X는 모든 의문이 풀리는 기분에 전율한다.
그토록 성실하면서도 미련한 태도, 앞뒤가 맞지 않는 시대착오가 모두 의도된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불결성을 검증조차 할 수 없는 구형 자료에 대한 의존과, 정보 위생 도구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무관심, 심지어는 낮잡아 보기까지 했던 그 태도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단 한 가지 목적, 정보 보건의를 육성하는 바로 그 현장에 숨어들어, 정보 보건이라는 개념 그 자체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정보 위생의 중추를 교란하기 위하여.
X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깨닫는다. 그는 보안청에 접속하고, 시민 민원 카테고리를 훑어보며 Y를 정보 보건법 위반 사례로 신고할지 국가보안법 위반 사례로 신고할지 고민한다. X가 마침내 민원 작성을 마쳤을 때는 이미 평소 수면시간이 훨씬 넘어 있다. O는 예정을 지나친 수면 루틴을 이제라도 시작할 것을 종용하지만, X는 한밤의 노고를 스스로 치하할 필요성을 느낀다. 더구나, 오늘처럼 고민이 많은 날은 적당히 피로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
X는 VR 헤드셋을 덮어쓰고 침대에 몸을 맡긴다. 그리고, 화려한 색채와 전기적 자극이 제공하는 안전한 쾌락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 O를 설치하고 자신을 보호하세요. }
“자리는 괜찮으세요?”
X는 어젯밤의 피로감에서 깨어난다. 그는 자세를 조금 고쳐 앉으며 난간 너머의 무대를 향해 초점을 맞춘다. 막 뒤편에서 부산히 움직이는 스태프들의 그림자가 이따금 어른거린다. X는 조금 더 나은 좌석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막이 오른다. 근사한 저택의 응접실을 묘사한 세트 위로 밝은 조명이 쏟아진다. 2층 난간에 걸린 사슴 머리 박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불안에 사로잡힌 남녀가 공허한 관계를 거닌다. 쿵쿵쿵, 불청객이 문을 두드리고, 그의 우렁차고 매혹적이지만 음흉한 목소리가 두 사람의 갈등 속을 파고든다. 불신, 배신, 불만, 갈등을 극한으로 몰고 가는 선정적인 말과 몸짓들이여, 관습을 비웃고 진리를 조롱하는 작가의 대리자들. X는 그들의 말에 사로잡힌다.
“알 사람은 다 알아요, 간부들도, 엔카베데도, 심지어 각하도 아실 걸요?”
여기 정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도록 함이 목적인 권위의 하수인들, 권위의 앞에서 실재와 허구는 제멋대로 조형 가능한 정보 덩어리로 환원되고, 틀에 굳혀 찍어낸 이야기가 진실 혹은 거짓이란 표지를 달고서 컨베이어 위를 흘러간다. 호외요! 호외! 각하의 암살을 작당 모의한 일당이 발각되었다고 하네! 입을 모아 돌을 던지는 무리는, 그것이 수조와 전기의자에서 기록된 이야기임을 알지 못한다.
O란 바로 그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던가? 누군가의 편의대로 만들어진 가짜 정보 말이다. 친구와 이웃과 가족이 한순간 애국자에서 반역자로 변하는 모습을 보라, 정보의 투명성이 확립되지 않았던 시기의 야만이다. 정보 감염자가 무고한 시민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권력자가 도리어 정보 감염병을 쥐고 휘두르며 대중을 훈육하고 통제하였던 지옥도, 그릇된 이상론과 유토피아의 환상에 사로잡힌 시민은 결국 자신의 목에 쇠사슬을 채우지 않았던가? 정보 위생학은 그 야만적인 시대로부터 인류를 계몽하였지 않았나?
남녀가 탈을 쓰고 있던 품위를 벗어 던지고, 제 삶을 침입한 불청객에게 여과 없는 폭력성을 쏟아낸다. 구타하고, 목을 조르고, 토막 내어 훼손한 후, 잠깐의 안도를 비웃으며 되살아나는 방문자는 고고하신 이들의 위선을 낱낱이 파헤쳐 조롱하고 꾸짖는다. 그들이 추구한 질서라는 건 거짓부렁 위에 세워 놓았으니 박약하기만 하여서, 아주 미세한 폭로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다.
“정보로 포화된 사회에서는, 정보의 부재 또한 의도성을 가지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돌연 메스꺼움이 밀려온다. 반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숙인 X는 구역질을 막기 위해 입을 주먹으로 틀어막는다. 현기증, 근원을 알 수 없는 구토 반사, 복부에서 느껴지는 불쾌감과 속쓰림, 사고의 정지. 감염병 초기의 전조 증상들? 아니, 그렇지 않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X는 들릴 듯 말 듯 한 양해를 통보하며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안색이 안 좋으시던데요, 공연 중에 갑자기 나가실 때…”
상대가 질문한다. 그의 눈빛에 걱정이 어려 있다. X는 상대가 자신의 건강에 대한 우려를 가졌음을 알아차린다.
“아, 아뇨, 괜찮아요. 문제없습니다.”
“무슨 일이셨나요? 아, 말씀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안 하셔도 괜찮아요. 그냥 걱정돼서 여쭤보는 거니까…”
어차피 상대를 이해시키기는 어려울 테지만, X는 제 속내를 토해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공연 내용 때문에 그랬지요.”
“공연이요?”
“네. 구역질 날 정도로 비위생적이고 불쾌했습니다.”
“음, 어디 가요? 지저분한 장면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배우들의 몸짓은 저속하고 전달 방식은 투박했어요. 각본 자체에 불결한 코드가 잔뜩 깔려 있는데, 그걸 감추기 위해 노력하더군요. 요란한 대사, 현란한 연출 등- 관객의 인지를 과부하 시키는 자극성을 동원해서…”
“코드라고 하셨나요?”
“코드, 예, 메시지, 의도성, 대표성, 원하는 데로 부르세요. 객관적 진실을 곡해하는 주관의 산물이죠. 온갖 무대장치를 써서 가려 두었지만 제 눈을 피할 수는 없어요.”
“아, 정보 위생을 공부하신다더니…”
상대는 말끝을 흐리며 제 음식을 향해 시선을 떨어트린다. X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맞아요. 전공자의 시선에서 보면, <한밤중>은 병리적인 코드로 가득해요. 권위를 비웃고 야만성을 조롱하는 듯하지만, 그 자체도 자유주의 서사라는 오만에서 비롯된 유물에 불과하죠. 이것이 문제적이다! 비판하라! 고 강요하는 모습은 권위적이기 그지없어요. 그러니 관객은 즐거움이나 쾌감이 아닌, 혼란과 불쾌감을 안고 극장을 나오게 되는 거예요. 이런 비위생적인 텍스트가 명작으로 칭송되며 공연을 이어 나가다니…”
“글쎄요, 그 불쾌감 또한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일부이지 않을까요?”
“바로 그거, 그 의도가 불결하다는 거라고요. 공연이란 엔터테인먼트이며, 엔터테인먼트란 관객이 보고 즐길 수 있어야 하는 매체이잖아요. 거기에 왜 고의적으로 불쾌감을 심느냐는 것이죠. 마치 다 된 음식에 일부러 비닐 조각을 잘라 넣는 것과 같아요. 비위생적일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만족감을 훼손하는 행위인 거죠.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창작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온갖 정보 병원체에 감염된 주장을 억지로 전달하기 위해서? 이건 테러예요. 정보학 테러.”
“그럼 X 씨에게 묻고 싶네요. X 씨가 말하는 ‘위생적인’ 엔터테인먼트란 무엇인가요?”
“그야, 센서테인먼트와 같은 순수 이미지 아니겠어요. 어떤 코드도 담기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색채와 소리, 감각적인 정보 값 말이에요.
“아하…”
미적지근하다. 그렇겠지, 상대의 부족한 문제의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정보 병원체가 들끓는 현장을 눈앞에서 보고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섭취하는 저 마비된 위생 관념을 보라. 평소의 미디어 소비 습관이 어찌나 불결할지는 굳이 분석하지 않아도 뻔하다. 주도권을 상실한 아젠다, X는 상대를 가여워한다.
식사가 끝났을 때, X는 이 만남이 저녁 약속 이상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다. X는 안도감을 느낀다. 이런 저열한 시민의식을 가진 인물과는, 몸은 고사하고 말조차 더 섞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럼에도, X는 여전히 정중한 태도로 귀갓길에 동행할 것을 제안한 자신을 칭찬한다. 물론, 상대는 거절한다. X는 그 사실에 또다시 안도감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X는 자신이 평소 걸어 다니던 길이 어찌나 불결한지에 대해 생각한다. 벽면을 뒤덮은 반사회적 그라피티와 이를 가리기 위한 새하얀 위생지를, 마구 긁어낸 포스터의 싸라기가 청테이프 접착제와 뒤엉켜 시커먼 때를 묵혀가는 모습을, 아스팔트 위에 눌어붙은 삐끼 더미 하며, 음란한 이미지가 마구 흘러나오는 홍보 전단지. X는 견딜 수가 없다. 그는 전단지를 잡아 찢는다. 밑창으로 바닥을 벅벅 긁어가며 벗겨낸다. 이는 위생을 위함이다. 철저한 정보의 청결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충실히 참여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이다. 왜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가? 친구도, 소개팅 상대도, 교수도, 왜 실천하는 것은 나 하나뿐인가? 왜 나만? 왜 나만??
X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종이 반죽을 움켜쥔 채, 씩씩거리며 가까운 쓰레기통으로 다가간다. 당장에 그것을 시커먼 구멍 안으로 쑤셔 넣으려는 찰나, X는 그 안에서 그것을 발견하고 만다. 검은 종이와 붉은 글씨, 그리고 솟구치는 하얀 주먹을.
<정보 위생 특별법 재정 반대를 위한 시민 궐기대회>
X는 마치 마라톤이라도 뛴 것 같은 기분으로 돌아온다. 아니, 완주는 하지 못했다. 숨이 차고 땀에 절었으며 물에 빠진 사람처럼 떨고 있지만 목표 달성의 만족감 따위는 없다. X는 씻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책상 앞에 주저앉는다. 손아귀에 달라붙은, 눅진한 검은색 전단을 간신히 뜯어낸다.
그는 자신이 눈앞에 둔 것이 무엇인지 O에게 질문한다. 돌아오는 응답은 없다. 아니, O는 무수하게 많은 답을 한다. 그는 1980년대 말부터 사용된 시민운동 포스터의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간 민중을 자극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상징물과 변화 양상을 나열한다. 이어 그 상징물들을 앞세운 시민 행동의 효과, 영향, 역사적 의의를 일일이 열거해 나간다. 이제 X는 그 검은 배경이, 붉은 글씨가, 하얀 주먹이 의미하는 바와 그것이 사용되어온 역사적 문맥, 변이한 기록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도, 아직도 이 전단을 만든 이가 누구인지, 이 정보 감염의 발원지는 어디이며 확산 방지를 위해 어떤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X는 여전히 그 사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아니, X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 이건 증거다. 이는 Y의 범죄가 사실임을 증명하며, 심지어 조직적인 활동 역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암시하기까지 한다. X는 O가 그것을 확인 해주기를 기다린다. 무수하게 나열된 카탈로그 안에서 자신의 앞에 놓인 종이가 역시 보건 당국에 발견되었으며, 대응이 이뤄지고 있음을 안심시켜줄 수 있는 정보를 찾아 헤맨다. 바로 그게 없는 것이다.
X는 이것이 얼마나 불의로운 일인지 고민한다. 여기 내 손 안에 파렴치한 정보 테러의 수단이 떡하니 들려 있지 않은가? 아무도 이걸 발견하고서 신고하지 않았단 말인가? 이게 시민 의식의 붕괴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차마 받아들일 수 없는 극심한 불의에 몸을 뒤틀며, X는 저 스스로가 용감한 시민이 되어 이 혼란에 마침표를 찍겠다 다짐한다. 그래, 그거다. X는 용맹하게 정보 필터 바깥의 광야로 뛰어나갈 것이다. 거기서, 이 흉계의 전말을 낱낱이 밝혀내어 하나도 빠짐없이 고발하게 될 것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영웅이 될 것이다. 공공 보건을 위한 의무를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이해하며, 또 충실하게 수행하는 책임감 넘치는 시민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경고
정보 필터는 정보 병원체에 대한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합니다. 별도의 정보 보건 조처를 하지 않은 일반 사용자가 정보 필터를 해제할 시 정보 감염의 위험이 높아 권장되지 않습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확인(Y) / 취소(N)
이미지를 검색 엔진에 집어넣자마자 X는 쏟아지는 정보들에 휩쓸린다. 끝도 없이 늘어나는 스크롤바 옆으로 텍스트, 음성, 영상, 사진, 기호와 이모티콘이 둥둥 떠다니는 짙고 탁한 오·폐수다. 마침내, 구정물 안에서 공모자들이 보인다. X는 손을 뻗어 건더기가 잡히는 대로 집어낸다. 뒤엉킨 텍스트를 하나하나 솎아내기 위해 화면 앞으로 얼굴을 끌어 붙인다.
독립연대 동지 여러분! 익일 집회를 무사히 진행하기 위한 주의사항을 전파해드리겠습니다. 첨부한 이미지 내용 반드시 확인하시고, 전부 숙지한 상태로 시위 참석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공지사항의 일종이다. 전단지와 같은 오브제를 이용한 안내문이 뒤따른다.
<시위 참가자 숙지사항>
1) 정보 위생 특별법 재정 반대를 위한 시민 궐기대회는 평화 시위 원칙을 준수합니다. 시위 행동 시 필연적인 통행 방해/소음 발생을 제외하고 어떤 형태로든 발생하는 공공 안전 위협 행위 및 기물 파손 행위는 전면 금지됩니다. 해당 기소에 대하여 독립연대 측에서 어떤 법적 지원도 제공할 수 없으며, 연대와의 연관성을 부정할 것입니다.
2) 진압 및 구금 과정에서 고의적인 기록 수단 파괴 및 개인 소유물 압수가 발생할 수 있으니 부차적인 기록 수단을 반드시 구비하시기 바랍니다. 정보 검열법은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았고 이전에 기록된 정보가 없는 정보 통신기기를 압수할 수 없으므로, 해당하는 구형 녹음 장비를 추천합니다.
3) 시위 현장에서 O와의 네트워크 연결 상태를 상시로 확인하시기 바라며, 연결이 유실되는 순간 가능한 빠르고 안전하게, 각자 현장을 이탈해주시기 바랍니다. 별도의 해산 신호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4) 현장 이탈 실패로 체포될 시, 묵비권을 행사하며 아래 연락처로 연락 바랍니다. XXX…
파렴치한 공모다. 정보 감염 행위를 발생시키는 동시에 보건법을 회피하는 방안을 공유하고 있다. 자극적인 단어로 피해 의식을 유발하고 자신들을 피해자화, 부정한 연대 의식을 형성하는 공모의 현장 그 자체다. 불결, 불결, 불결!
특히 X는 그 두 단어, 진압과 구금이라는 단어에 분개한다. 공공장소에서의 정보 감염병 확산 시도에 대한 적법한 공무 집행 절차를 어찌 이렇게 자극적이고 편향적인 단어로 호도할 수 있는가? X는 두 단어를 잇는 흐름을 타고 들어간다. 그들이 어떤 프로파간다와 거짓 서사를 통해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함이다. 그래, 틀림없다.
사람들이 고함을 치며 뛰어다닌다. 고주파 스피커가 지대를 휩쓸며 묵묵한 백색 소음을 섞어 넣는다. 흔들리는 화면 속에서, X는 바닥으로 마른 모래처럼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을 본다. 머리를 감싸 쥐고, 몸부림치며, 온갖 체액을 쏟는다. 연이어 다가오는 방패의 벽이 바닥을 뒹구는 사람들을 짓뭉갠다. 얼굴 없는, 장갑을 낀 검은 손이 방벽을 비집고 나와 붙들고 끌어당긴다…
이건 거짓 영상이다.
흔들리는 화면과 불분명한 초점은 정물의 디테일이 드러나지 않도록 교묘하게 위장한 촬영 기법일 뿐이며, 질감도 색채도 없는 건조한 검정 덩어리는 그래픽의 저열한 수준을 감추기 위한 영악한 선택이다. 이 화면 속 모든 것이 연출이고 조작이다. 저 과장된 폭력의 묘사를 보라, 저 악의적인 공권력의 악마화를 보라, 저 편의적인 촬영자의 존재를 보라, 보란말이다! 스스로가 설립해둔 서사와의 일관성조차 어긋나지 않았는가! 조작임이 너무나도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가?
이 악의적인 선전물을 보고서도 아직 O의 필요성을 의심하는가? 이 영상이 무지한 대중의 눈앞에 뿌려질 순간의 파란을 가늠조차 할 수 있는가? 그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한 목소리로 외칠 것이다, 국가가 우리에게 폭력을 가한다고! 바로 이런 질서 전복 세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공권력은, 철저하게 신뢰를 잃고 바닥에 떨어져 분쇄되고 말 것이며, 혼돈에 집어삼켜진 대중은 거짓과 거짓으로 서로를 물어뜯으며 자멸한다! 아아, 우리는 그렇게 다시 정보 역병의 암흑기로 추락할 테다!
X는 파국의 환상 속에서 깨어난다. 마치 열병을 앓은 듯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샘 솟는다. 페이지를 수십 번 새로 고치고, 정보 필터가 다시 충실하게 제 기능을 하고 있음을 확인한 후에서야 그는 마음을 놓으며 뒤로 물러앉는다.
아니, X에겐 여전히 그것이 보인다. 정보 필터의 무결한 방벽을 향해 밀려오는, 더러운 촉각과 부속지를 뻗어대며 꿈틀거리는 거짓 정보들이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보인다. 이미지가 선명하게 인화된 눈꺼풀을 손바닥으로 벅벅 문지르나 소용이 없다. 전공인으로서 매우 몰지각한 행동을 하였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X는 자신의 만용을 후회한다. 정보 감염병의 독성을 만만하게 여긴 어리석음을 비판하고 또 비판한다. 그 누구보다도 정보 병원체 대응법을 잘 알고 있는 그조차도, 결국 감염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가볍다. X는 스스로의 생각을 되짚으며 그리 판단한다. 그에겐 여전히 병리적인 코드를 판별할 분석력이 남아있고, 조작을 알아채는 직관 또한 마비되지 않았다. 그래, 이런 가벼운 정보 감염병 증상은 아주 기본적인 자가 치료 절차를 통해 치료할 수 있다. 이는 정보 판독의 기초로, 0단계로 증명되어야 할 수순, 그러니까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다.
X는 내일 예고된 현장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예정된 수도관 교체 공사 현장을 보며 승리를 만끽할 것이다. 그러면 이 역겨운 감염병은 씻은 듯이 사라지리라.
X는 전단지에 예고된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시간과 장소를 숙지한 후, 수면 루틴은 까맣게 잊은 채로 잠을 청한다.
X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다.
이동식 무대 위에 확성기를 든 형상이 서 있다. 그가 눈앞의 하얀 건물을 향해 구호를 외친다. 무대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위대는, 선창자에 맞추어 일제히 함성을 쏟아붓는다. 시위대가 두른 반다나, 그들의 얼굴을 뒤덮은 페이스페인팅, 손에 들린 팻말, 부대끼는 플래카드에 마치 불타듯 한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위생, 방역, 보건이 있어야 할 자리에 통제, 검열, 독점이라는 단어들이 자리 잡았다. 이토록 무분별한 텍스트의 왜곡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X는 이성을 잃은 감염자들의 무리를 보고 있다. 흑사병을 피해 교회로 몰려들었다가 스스로 몰살당한 암흑기의 우민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공공 정보 보건의 분명한 위협, 저들은 지금 즉시 격리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왜 O는 저들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가?
X는 두 번, 세 번을 거듭하여 O에게 질문을 던진다. 먼저 본사 앞의 시위대에 대하여 묻는다. 그다음에는 일대의 정보 감염 위험 요소에 대하여 묻는다.
해당 위치는 금일 14시부터 약 17시까지 수도관 교체 작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시민분들께서는 통행을 삼가시고 안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해당 위치는 금일 14시부터 약 17시까지 수도관 교체 작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시민분들께서는 통행을 삼가시고 안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해당 위치는…
거짓 정보. 사실이 아닌 정보로 잘못된 위험 요소 조장, 정보 감염 위험 요소의 정확한 전달 실패, 이는 중대한 방역 수칙 위반에 해당한다. 불결.
O는 철저한 정보 필터 관리를 통해 언제나 객관적인 사실 정보만을 전달합니다.
거짓 정보. 정보 수신자를 불확실한 위협에 노출한다. 불결.
O는 정보 감염병의 위협으로부터 시민과 정보 사회를 보호합니다.
공포감을 조성, 실제 의도를 은폐하고 집단의 인상을 미화한다. 불결.
O를 설치하고, 스스로를 보호하세요.
우월의식. 특정 집단 혹은 이상에 편향된 공동체를 조장한다. 불결.
불결한 정보뿐이다. O를 구성하는, O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대전제 자체가 거짓이다.
X는 시위대가 위로 치켜든 핸드폰을 본다. 촬영 중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행동을 촬영하여 정보망으로 투기한다. 정보 필터는 저들의 외침 하나하나를 찾아내어 침묵시킬 것이다. 어떤 것도 O의 정보망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이 사건은, 불결 정보로 뒤섞인 혼돈 속을 떠돌 것이다. 실재와 허구를 구분할 수 없는 거대한 데이터 반죽…
해명하라, O, 스스로를 변호해보란 말이다.
…
익명성 뒤로 몸을 숨긴 정보 보건의들아, 만일 당신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부디 증명해달라. 부디 납득할 수만 있는 텍스트를 달라. 읽을 수만 있다면, 알아들을 수만 있다면 믿을 테니, 제 아무리 불결한 정보라 하여도 받들어 올릴 테니 간곡히 부탁하건대 제발 단 하나만이라도, 부디 진리를, 진리를!
…
왜 답이 없는가? O는 어째서 침묵하는가? 그토록 수많은 거짓말을 해온 끝에, O는 왜 발치에 엎드려 구걸하는 자를 외면하는가?
… 아니, 그렇지 않다. X는 돌연 핸드폰을 꺼내 상단을 확인한다. 신호 없음. 와이파이도, 셀룰러 데이터도, 그제야 X는 자신과 일대의 모두가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격리되었음을 깨닫는다.
요란한 호각과 함께 괴수가 몸을 움직인다. 권위가 길러낸 걸신들린 흉물이다. 고주파의 포효로 사람을 일격에 주저앉히면, 금속과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외피가 전진한다. 희생양에 닿은 겉껍질은 옆으로 벌어지며 전극침과 갈고리 손으로 무장한 부속지를 드러내고, 무력화된 먹잇감을 무자비하게 집어삼킨다. 길목이란 길목은 모조리 틀어막은 괴수는 서로와 마주쳐 합쳐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X는 홀린 듯이 핸드폰 카메라로 현장을 겨눈다. 화면 가득히 괴수의 모습을 담는다. 그러자 괴수의 부속지가 X를 붙든다. X는 자신의 손에서 핸드폰이 비틀려 뽑힐 때까지 촬영을 멈추지 않는다. 흉물이 괴성을 지른다. 꺾고, 때리고, 바닥으로 내리 누른다…
X는 차가운 방에 앉아있다. 수사관이 들어온 문을 제외한 모든 면이 블랙 미러로 도배된 방이다. 무늬 하나 없는 딱딱한 책상에는 녹음기만이 얹혔다. X는 공허한 눈으로 건너편을 응시한다.
“영상 찍다가 잡혀 왔다면서요?”
X는 대답할 필요가 없다. 수사관이 원하는 모든 정보는 이미 그의 앞에 적혀 있다.
“이봐요, 정보 보건을 공부한다는 학생이라면서 그걸 찍고 있으면 어떡해요?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방역 수칙 몰라요? 감염된 정보는 어떤 방식으로든 재생산하거나 보존, 전달하지 않는다. 이거 요즘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거야, 이거는.”
그렇지 않다. 정보 방역 수칙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잊혔다. 이를 잊게 만든 건 당신들이다.
수사관은 X의 침묵에 손을 쳐들고 몸을 뒤로 걸친다. 그는 혀를 쯧쯧, 차고는 고개를 젓는다.
“아무튼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학생 오늘 큰일 날 뻔했어요, 무슨 일 있었는지 알아요? 폭동이야 폭동. 감염병 걸린 폭도들 때문에 크게 다칠 뻔했다고요.”
아니다. 그들은 시위대였다. 물론 그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경사는 폭도를 보았다. 그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사실이다.
“현장엔 어쩌다가 나와 있었어요?”
X는 눈을 내리깔았다. O를 둘러싼 거짓말, 시위, 전단지, 그리고 Y의 질문에 대해서, X는 사실만을 말할 의무가 있다. 이는 정보 보건의 신성한 원칙이다. 물론 그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X는 또 다른 감염자이자 폭도가 된다.
“변호사를 불러주세요.”
“학생, 지금 정보 방역 수칙 위반으로 입건될 수도 있는 상황이에요. 알고 있어요?”
“변호사와 함께 이야기하겠습니다.”
“변호사고 나발이고 당장 보건당국 불러서 학생을 넘길 수도 있는 일이라고. 내 말 들려? 학생!”
그 말은 거짓이다. X는 자신이 촬영물을 어디에도 유포하지 않았으므로 방역 수칙 중대 위반에 해당하지 않으며, 따라서 단순히 감염 정보와 접촉하는 행위만으론 법적인 책임을 지거나 기소, 구속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함을 알고 있다.
“제 변호사에게 대신 말씀하시죠.”
“하아…”
수사관은 잇속으로 욕지거리를 하고는, 눈을 치켜 뜨며 X를 노려보며 물었다.
“… 연락처 불러요.”
“XXX-…”
경찰청에서 돌아온 X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전단지를 구겨서 버리는 것이었다. 연이어, X는 컴퓨터에 들어있는 모든 데이터를 지웠다. 검색 기록은 여전히 O의 사용자 데이터베이스에 남아있겠지만, 정보 특별법 통과 이전의 위반 행위는, 이를 통해 습득한 정보를 유포하지만 않는다면 구속 대상이 되지 않으리라. X는 안전할 수 있다. 적어도 한동안은.
“그 얘기 들었어? 광화문 얘기.”
“어쩐지 요즘 불안하더라니, 원인이 뭐래?”
“요즘 세상 무섭네.”
“야야, 이거 봐봐.”
“얼마짜리야?”
“하… 졸업하고 5년 안에 산다. 내가.”
“야, 너 주말에 소개팅 어떻게 됐어?”
X는 가만히 제 동기들을 올려다본다. 누구도 자신의 답을 기다리고 있지 않다. 각자의 핸드폰 화면 안에 시선을 고정하고서, 다음 주제를 찾아 헤맬 뿐인 이들. X는 따라서 시선을 거둔다.
“별로였어.”
“뭐야, 별일 없었어?”
“재미없네.”
“들어봐, 내가 내일 누굴 만나기로 했는데…”
X는 여전히 교수 Y의 질문을 고민하곤 한다. 본인에게 답을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불행히도 X는 교수 Y를 다시 보지 못했다. 그는 갑자기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이유를 답해주지 않는다. 마치 대답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처럼, O를 한번 누르고, 그대로 지나간다.
“Y 교수님 어디로 가셨는지 아시나요?”
교수 Y는 OO 대학 정보 보건의학과 소속의 교수로, 정규 계약기간이 종료되어 지난 9일 직위해제 되었습니다. 이상의 내용은 개인정보에 해당하므로 제공해드릴 수 없습니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다면 개인 연락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자택 전화번호는…
거짓. X는 전달 중지 버튼을 누른다. 방금 다음 문장이 떠올랐다.
질문이란 상대에게 정보의 전달을 요청하는 것이며, 물음표란 묻는다는 행위를 표지 한다. 그러나 의문문에 따라 정보 전달이 완료되었다고 하여 질문의 기능이 만족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정보의 접수는 질문이라는 행위를 촉발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질문의 과정은, 접수한 정보에 상반되는 답이 있는지 되묻고, 무엇이 더 타당한가의 여부를 판단 내릴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렇다면 질문이란 진리를 확인하는 행위가 아닌 진리를 의심하는 행위이며, 물음은 궁극적으로 진리가 존재하지 않음을 인지할 때 비로소 제 기능을 달성한다. 진리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마주하는가? 물음의, ?의 기능적인 사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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