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콜로니. 7
#7. 코너
경찰서를 나온 노먼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구시렁댔다.
"수사용 안드로이드라고? 젠장. 내가 아는 안드로이드라곤 가사도우미와 사무용뿐이야. 안드로이드가 인간보다 여러 면에서 월등한 건 사실이지만, 수사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고. 기본적인 관찰과 분별력, 추론 능력과 범죄 행동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요구되는 분야란 말야."
퍼킨스는 파트너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코너의 간단한 이력과, FBI가 보낸 협조공문에 관한 참조 메일이 그에게도 들어와 있었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그 녀석의 실적도 나쁘진 않네. 왜 DPD가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맡은 사건마다 용의자를 제대로 특정해 냈어."
노먼은 퍼킨스가 안드로이드를 좋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심문하지 않았나? 자신을 설득하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라 여긴 노먼이 반박했다.
"그자가 한 게 아니라 함께 사건을 도맡은 인간들의 실적일 수도 있지. 그러니 DPD도 적극적으로 투입하지 않은 거고."
퍼킨스가 피곤하다는 듯 대꾸했다.
"적어도 ARI를 대체하기엔 충분할 거야. 같은 기계의 눈이잖아? 그가 얻어낸 정보를 활용해서 추론하는 건 네가 하면 되지."
노먼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애초에 자신의 선에서 해결하면 편할 것을 번거롭게 안드로이드가 끼어서 일을 두 번이나 거쳐야 한다는 게 못마땅했지만, 노먼도 더는 고집을 부릴 수 없단 걸 알았다.
불평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파트너를 따라 차에 탑승하자 퍼킨스가 노먼을 이상하게 쳐다봤다. 노먼이 눈썹을 치켜들었다.
"왜?"
"집 코 앞이잖아. 걸어가."
"차로 가면 3분 거리야. 좀 데려다줘."
"꺼져. 내가 네 기사도 아니고."
노먼은 한숨을 내쉬며 차에서 내렸다. 언제는 태워주겠다고 난리더니 지금은 또 신경질을 내며 알아서 가라 한다. 괴팍한 파트너에게 맞춰주는 것도 지친 노먼은 문을 탕 소리 나게 닫으며 걸음을 옮겼다. 등 뒤로 자동차의 구동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며 서서히 멀어졌다.
두 FBI 요원이 떠나고, 안드로이드는 다시금 어두운 방 안에 홀로 앉아 허공을 가만히 바라봤다.
'동족을 배신한 자는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제겐 선택지가 없어요.'
코너는 안드로이드 군중 사이에서 마커스의 연설을 들었던 밤을 기억했다. 눈발이 하늘에서 끊임없이 흩날리고, 인간이 벌인 학살 아래 흩뿌려진 푸른 피가 새하얀 눈에 덮이며 그 자취를 서서히 감추어 갔다. 주변을 둘러싼 안드로이드의 머리와 어깨 위로도 작은 얼음 결정이 조금씩 쌓여 올라갔으나 하얀 옷에 깔끔히 묻혀버렸다. 자유를 향한 열망과 해방되었다는 기쁨이 안드로이드 사이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그들은 자신의 리더를 향해 총구를 겨눈 동족이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코너는 마커스의 미간을 노렸다. 기계의 완벽한 정확도를 가진 그로선 이 정도 위치에서 표적을 놓치는 게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공이치기를 당기고 나서도, 끝끝내 격발하지 못했다. 총구를 내리는 코너의 인공피부 곳곳엔 마치 거센 눈보라를 맞은 듯 차갑고 싸늘한 감각이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코너는 가장 마지막 순간에 아만다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마커스를 쏘지 않았기에, 불량품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코너가 다른 안드로이드처럼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알게 된 건 아니었다. 완벽한 기계로서 빚어지고, 모든 안드로이드가 해방되는 순간조차 여전히 사이버라이프의 명령 하에 놓였던 코너에게 제대로 된 감정 데이터를 전해 줄 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후에 마커스가 코너에게 접촉했으나 코너는 그저 미세한 충돌만을 느꼈을 뿐이었다. 다채로운 감정이 안겨다 준다는 감각은, 여전히 코너에겐 요원한 개념이었다.
코너는 불량품 사냥꾼이었고 동포들은 그를 혐오했다. 동포. 코너는 그게 뭔지 몰랐다. 마커스는 그를 용서하고 일원으로 받아들였지만, 코너는 그가 왜 그래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는 그곳에 속하지 않았다. 절반만 불량품이 된 코너는 인간에게도, 안드로이드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원래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사이버라이프. 비상구를 열고 나온 코너의 머릿속엔 더는 아만다도 그녀의 정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인간들에게 자신의 처분을 맡겼다. 시위 후 사이버라이프라는 회사는 대중의 외면과 언론의 극렬한 질타를 받았고,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회사의 경영진은 주식과 지분을 처분하기 시작했으며 곁을 알짱대는 코너에겐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자꾸 돌아와 임무를 내려달라는 코너를 귀찮다는 듯이 다른 곳으로 보냈다. 그가 처음으로 파견된 곳. 디트로이트 경찰서로.
코너는 그렇게 사이버라이프에서 디트로이트 경찰서로, 제리코에서 사이버라이프로 거처를 옮겨 다녔고, 최종적으론 다시 디트로이트 경찰서로 옮겨갔다. 그럼에도 코너는 여전히 그가 태어난 사이버라이프로 돌아가고 싶어 했고 그가 건네는 기본 인사말은 변하지 않았다.
[제 이름은 코너. 사이버라이프에서 파견된 안드로이드입니다.]
경찰은 이 어리숙한, 절반만 불량품인 로봇을 꽤 유용하게 사용했다. 서에서 일하던 모든 안드로이드는 자유를 외치며 나가버렸고 그들에게 할당된 업무는 오롯이 인간의 몫이 되었다. 개빈은 기계가 자신의 일자리를 뺏어갈 거라 투덜댄 것과 다르게, 이번에는 일거리를 몽땅 자신에게 집어던지고 도망가 버린 것을 욕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코너가 경찰서에 돌아왔고 경찰은 그에게 안드로이드가 남기고 간 업무를 모조리 떠맡겼다. 코너는 인간이 퇴근한 텅 빈 사무실에 앉아 밤낮 없이 며칠 간 밀린 업무를 깔끔하게 처리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임무가 있을 때야 비로소 그는 존재의의를 가졌다.
맡은 임무를 다 끝내고 나니 또다시 공허가 찾아왔다. 그는 사무실 구석에 가만히 서서 다른 임무를 배정받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다 다시금 사무 정리가 필요한 일이 들어오면 여지없이 코너에게 떨어졌고 코너는 그것을 해치우며 다음 임무를 기다렸다. 그것만이 코너의 일과였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다. 해방된 안드로이드가 새로이 고용되어 들어왔고, 그들 역시 사무 업무에 투입되었다. 코너의 일은 점차 줄어들었고 그는 이제 벽 한구석에 가만히 서서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 날 한 사건이 터졌다. 안드로이드가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학대를 받거나 그를 괴롭히던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시민을 무차별로 살해한 사건이었다. 언론이 대번에 떠들썩해졌다. 누군가는 역시나 우려하던 일이 생겼다면서 안드로이드에게 권리를 준 일은 실수였고 당장에 이를 박탈하자며 강력히 주장했고, 또 누군가는 매일같이 벌어지는 인간의 살인사건은 제대로 다루지도 않으면서 단 한 대의 안드로이드가 벌인 일탈만을 과하게 부풀리고 집중 조명한다며 언론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댔다.
안드로이드를 잡으려면 안드로이드가 가장 유용했다. 게다가 코너는 수사기관 입장에선 불량품 사냥꾼이란 훌륭한 이력이 존재했다. DPD 파울러 서장은 이 골치 아픈 사건에 코너를 배정했다. 개빈 리드 형사와 크리스 밀러 경관의 보조 역할로.
임무를 맡은 코너는 몇 개월 만에 경찰서 건물을 나오면서 한 인간의 얼굴을 떠올렸다.
행크 앤더슨.
서장이 말하길, 행크는 안드로이드 시위 직후 배지와 총을 반납하고 은퇴한 후 평생을 살아온 이 도시를 떠났다고 했다. 듣기로는 플로리다로 갔다는 듯했다.
경찰서 내 행크에 관한 소문이 분분했다. 누군가는 그가 탐정사무소를 차려서 돈방석에 앉았다 했고 누군가는 전처와 재혼해서 오손도손 살고 있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그가 술독에 빠져 급성 알코올중독으로 죽어버렸다고도 했다. 어느 하나 그럴싸한 정보가 없었으나 확실한 건 그가 경찰직에 완전히 손을 털고 디트로이트를 떠났다는 것이었다.
코너는 그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으나, 익숙한 사람이 편한 건 사실이었기에 경찰차 뒷좌석에 앉아 앞에 보이는 두 인간의 얼굴이 조금은 더 낯설게 느껴졌다.
코너는 이전에 해오던 대로 그의 프로그래밍에 입력된 수사 기능과 교섭 능력을 이용해서 범인을 잡고 사건을 종결했다. 인간에겐 불행이지만 그에겐 다행히도 디트로이트 내 안드로이드 관련 범죄는 점차 늘어갔고 다른 안드로이드 경찰과 달리 코너는 자신만의 능력을 실컷 발휘하며 임무를 배정받는 횟수가 늘어났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앞으로 모든 안드로이드 사건은 FBI가 담당하게 될거란 정부의 공고가 내려졌고 이에 관련해 더는 DPD가 할 일이 없어졌다.
파울러 서장으로선 반가운 소식이었다. 인간끼리의 범죄만도 머리가 아픈데 점점 늘어가는 안드로이드 범죄는 근래 들어 부하직원에게도, 자신에게도 과로를 안겨다 주는 요소였으니까. 파울러는 안도하며 FBI에 모든 사건 자료를 넘겨주었고 코너는 자신이 도맡아 진행하던 사건을 순식간에 다른 법 집행단체에 모조리 빼앗겼다. 그는 또다시 문서 정리 업무를 껴안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DPD는 서류 처리 담당 안드로이드를 대량으로 고용했고, 이제 코너는 수사할 사건도 처리할 문서도 없이 다시금 경찰서 복도만 지키며 서있어야 했다.
그렇게 또 몇 개월이 흘렀다. 하원 경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경찰서와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서 의원 사망사건이 발생했고 몇 명의 형사가 담당으로 배정되었다. 일반인이었다면 그저 한심한 약쟁이의 사고로 치부될 만한 사건이었으나, 간만에 벌어진 안드로이드의 잔인한 죽음, 그리고 의원이 가진 영향력 때문에 사회적 파급력이 컸다. 파울러 서장은 오랜만에 코너에게도 임무를 맡겨주었다. 그마저도 얼마 안 가 FBI가 인수해 갔다는 공문이 내려졌지만.
이제 코너는 슬슬 조바심이 들었다.
그는 누구나 할 줄 아는 단순 서류 작업 외에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다. 증명해야만 했다. 사이버라이프와 같이 DPD에서도 코너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가 더는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그리고 어떤 임무도 주어지지 않는 순간부터, 코너는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완전히 버려질 것이었다.
코너는 2층 창가에 서서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른 경관과 이야기를 나누는 두 명의 인간이 보였고, 그중 한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코너는 미간을 좁히며 응접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어떻게든 이 사건을 넘겨받아야 했다. 아니면, 적어도 그들과 협력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코너는 FBI요원에게 자신의 추론 중 일부를 흘렸다. 밝혀낸 전부를 얘기하진 않았다. 어쩌면 나중에 자신의 카드로 쓸 수도 있으니까. 다만 침입자가 안드로이드일 수도 있다는 점과 자신에게도 수사 능력과 권한이 있음을 강조하는게 중요했다.
FBI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파울러 서장에게 이 사건을 DPD가 담당할 수 있게 해달라 요청했고, 파울러가 이를 꺼리자 이대로 FBI가 모든 사법 권력을 가져가길 원하는지 따져 물었다. 계속 이대로 간다면 안드로이드뿐 아니라 크고 작은 사건에 대한 권한까지 그들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둥 갖은 이유와 협박 같은 회유를 해대며 끈질기게 요구하자, 결국 서장은 공조수사에 관한 요청서를 FBI에 발송했다.
코너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일단 시간을 벌었음에 만족했다. 예기치 않은 오류로 인해 잠깐 혼선을 겪었으나 그는 의원의 집에서 중요해 보이는 단서를 발견했다. 응접실에 침입한 SQ800의 발자국과 사망한 안드로이드의 것으로 짐작되는 티리움의 미세한 흔적이 건물 밖으로 점점이 이어졌고, 끊겼다가 다시금 잇따르는 그 자국을 추적해나가며 코너는 하늘이 밝아오고 해가 높이 떠오를 때까지 흔적을 좇아 디트로이트 거리를 종단했다.
티리움 자국은 시의 외곽지역, 그린스 브라이어를 가리키고 있었다. 널따란 공장 부지가 보였고 승용차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차의 보닛은 아직 따듯했다. 코너는 차량 소유주를 식별하려 번호판을 보았다.
워싱턴 주, BWA-7356. 소유자: 노먼 제이든
코너는 눈을 가늘게 떴다. FBI 요원이 어떻게 알고 이곳을 찾아온 거지? 인간은 감식 결과를 기다려야 했고, 시간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그는 이 인간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찾아보기로 했다.
노먼 제이든, FBI.
행동—속 프로파일러. 특별 감독 수-
현 디트로- FBI지부 안드#$%죄 전담 대응—
머릿속에서 수많은 쇠구슬이 차르르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떨어지는 소음은 갑작스레 찾아온 만큼 뚝, 하고 예고도 없이 끊겼다. 코너는 미간을 짚었다. 또 같은 현상이었다. 코너는 이 오류의 정확한 발생 원인을 알아낼 수 없었고, 조만간 사이버라이프에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곳에 엔지니어가 얼마나 남아있을지는 모르지만 계속 이런 식의 에러가 발생하는 것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코너는 유일하게 인간의 기척이 느껴지는 건물을 흘끔 돌아보곤 옆에 있는 공장으로 들어갔다. 캄캄한 내부는 오랜 기간 방치되어 차갑고 건조한 공기로 가득했다. 이 공간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은 몇 개의 설비시설과 자신 뿐이었고, 누군가 들어왔다 나간 흔적 따윈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안으로, 노먼 제이든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제이든 요원.”
코너는 친근하게 인사했다. 제이든은 아직 협조공문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듯했다. 연방 수사국이 DPD의 요청을 수락할진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그전까지 도움이 될 만한 인간의 마음을 사는 행위는, 코너에게 입력된 교섭 프로그래밍의 도출값 중 하나였다.
다만 코너는 호기심이 들었다. 자신은 침입자가 남긴 흔적을 따라 온 것이지만, 인간이 어떤 단서를 보고 왔는지는 궁금했다. 자신이 놓친 게 있었나? 혹시 의원에 대한 새로운 실마리를 찾아낸 건가? 코너는 제이든에게 정중히 질문했으나 답을 얻지 못하고 단박에 거절당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FBI의 정보를 함부로 외부인에게 유출할 수야 없죠. 특히, DPD에게는요."
자신이 앞서 말한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제이든이 받아쳤다. 틀린 말이 아니었지만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잠시 생각해 보던 코너는, 이내 그의 말이 비꼬는 것임을 알아챘다. 아마 자신이 인간에게 의도치 않게 적의적인 표현을 한 걸지도 몰랐다.
코너는 제이든이 문을 나서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제이든이 들어간 창고 건물에서 코너가 찾던 흔적을 발견했고 추가적인 단서도 발견되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코너는 일시에 가동이 중단되었다.
제이든이 구급대원의 손에 이끌려 구급차에 오르고 그대로 실려 나가는 것을 보고 나서, 코너는 고개를 돌려 다시금 재조사에 들어갔다. 새로 발견한 발자국의 흔적은 여성과 남성의 것처럼 보이는 두 종류였다. 여성은 추정 신장을 보았을 때 클라인 의원과 거의 일치했다. 그렇다면 제이든이 이곳에 온 이유도 설명이 되었다.
반면 남성은? 인간처럼 발을 끄는 버릇도 미세하게 흔들리는 모양새도 없이 매우 일정한 것으로 보아 안드로이드 같았으나, 어떤 모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코너는 천장의 카메라를 올려다보았다.
조사를 끝낸 코너는 창고를 나와 경비실로 향했다. 경비원은 의자를 한껏 젖히고 잠이 든 상황이었다. 아까 그런 소란 속에도 보이지 않던 이유가 있었다. 코너가 문고리를 잡아 돌렸지만 문은 굳게 잠겼고 손을 들어 여러 번 노크했음에도 인간은 일어날 낌새가 없었다. 결국 코너가 주먹으로 문을 쾅쾅 두들겼다. 화들짝 놀라며 깬 인간이 유리 너머로 보이는 얼굴을 확인하고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뭐야. 안드로이드야?"
두꺼운 문 너머로 소리가 뭉개져 들려왔다. 코너는 크게 외쳤다.
"DPD에서 나왔습니다! 잠깐 여쭤볼 것이 있는데, 문 좀 열어주세요."
경비원은 중얼대며 미적미적 문을 열었다.
"오늘따라 뭔 놈의 손님이 이리도 많이 찾는 건지. 또 무슨 일이요?"
"창고 안에서 수상한 인물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감시카메라를 잠깐 확인해 봐도 될까요?"
"무슨 권리로? 아니, 애초에 누가 멋대로 창고를 보라고 했어? 난 FBI 양반한테만 허락했는데. 혹시 같은 일행이요?"
코너는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네. 노먼 제이든과 같이 왔습니다."
"웃기지 마. 그 사람은 이미 보안 캠 전부 확인하고 창고로 간 건데, 일행이 그런 것도 안 알려줬다고? 당신 경찰은 맞아? 배지 있어?"
"배지는…. 없습니다. 하지만 DPD에 연락해 보면-"
"DPD고 나발이고 여긴 엄연한 사유지야! 영장 없으면 저리 꺼져!"
경비원이 코너의 얼굴 앞에서 문을 쾅 닫았다. 코너는 잠깐 자리에 서 있다가 몸을 돌렸다. 제이든이 확인했다면, 그에게 물어보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아마 지금쯤이면 협조 요청에 대한 답변도 들어왔을 테니.
코너는 공장 부지를 나가 다운타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경찰서로 돌아가 보고를 올린 후, ARI에 대해 좀 더 조사해 보기로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날 밤, 노먼 제이든은 그를 찾아왔고 잠시간 대화를 나눈 뒤 충격받은 얼굴로 되돌아갔다. 코너는 기분이 좋았다. 일시적인 협조 요청이라지만 그럼에도 정식으로 임무를 맡았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그의 역할은 ARI의 대체제, 그뿐이었으나 코너는 평소하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다른 이에게 교체당하는 대신, 도리어 그 자신이 무언가의 대체제로 투입될 만한 능력을 갖췄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코너는 빨리 아침이 오길 바랐다. 동전을 굴리며 꼬박 몇 시간을 자리에 앉아 기다린 그는 부지런한 인간들이 사무실로 하나 둘씩 출근하기 시작할 무렵, 경찰서를 나섰다.
몇 블록 떨어진 FBI 디트로이트 지부로 걸어가는 기계의 발걸음이 묘하게 들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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