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XIV(夢)

숲 속에서 피는 꽃

2895자 / ⚠️칠흑 5.0 속 어느 날

봄은 길다 by 바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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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린에게 파노브 마을은 그야말로 신세계였으리라. 이렇게 공동체를 꾸린 모습을 직접 마주하니, 에오르제아에서 모험을 다니며 이따금 마주쳤던 비에라족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한창 높다란 나무에 있는 광장에서 해먹에 앉아, 하늘에 닿을 듯 뻗어있는 나뭇가지의 잎이 바람에 닿는 소리를 들으며 올려다보고 있던 때였다.

“그렇다면,”

별안간 야슈톨라가 입을 열었다. 엘린을 포함한 동료들은 일제히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당신 이마에 있는 보석도 특별한 의미가 있으려나요?”

야슈톨라는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엘린을 ‘보고’ 있었다. 그의 말이 동료들을 이끌듯 모두 또다시 고개를 움직여 엘린, 그의 미간을 쳐다보았다. 그런 주목을 한 몸에 받는 본인은 정작 떨떠름한 분위기였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아, 이거요⋯?”

엘린은 차분하게 앞머리를 들춰 가려져 있던 푸른빛의 보석을 조심스레 손끝으로 쓸었다. 세 자매 중 맏이이자 이 마을의 수장 아르메에겐 그 머리색과 잘 어우러지는 붉은 보석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보석도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쭉 붙어있었다. 세수를 해도, 심지어는 수시로 하늘 높이 뛰는 용기사의 기술을 연사했을 때도 끄떡없었다. 마치 마법으로 붙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왔는데 지금 의식하기 시작하니 갑자기 신선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엘린은 자신이 이마에 보석을 달고 태어난 것은 아닌지까지 생각이 닿았다)

그렇다면 제 이마에 보석을 붙인 자는 과연 누구일까. 하여 또 다른 생각의 가지를 뻗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전에 자신을 둘러싼 호기심 넘치는 눈빛들도 거두는 것이 먼저라 판단했다.

“⋯글쎄요. 기억이 나지 않네요. 정말 오랫동안 붙어있던 것만은 확실해요. 뭘 해도, 이렇게 다른 세계로 건너와도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그 보석이 당신 안에 잠든 기억을 이끌어줄 초석이 되어줄 수 있겠어요.”

음… 그런가요? 엘린은 야슈톨라 특유의 자신 있는 표정을 보며 쑥스럽게 웃곤 앞머리를 정리했다. 전송 마법의 여파인지 이 세계로 건너왔을 땐 뒷머리가 모조리 끊겨 왠지 머리가 가볍게 느껴졌었다. (그때의 수정공은 자신의 마법에 의아해했고, 묘하게 미안한 눈치였다) 조속히 그가 엘린을 크리스타리움으로 안내한 뒤 솜씨 좋은 주민에게 부탁해 그의 머리를 다듬게 되었지만, 머리의 주인은 앞머리와 옆머리만은 그대로 놔두도록 부탁했다. 언젠가, 정말로 만나게 된다면—어쩌면 자신은 그들을 끝까지 몰라볼 수도 있겠지만—이 머리로 자신을 알아보기를 쭉 바랐다. 이후 새벽의 동료와 하나둘 재회했을 때 다들 놀랐던 이유는 여럿 있었겠지만 (누군가에겐 1년 만에, 또 누구는 3년, 심지어는 5년 만에) 다른 세계에서 재회한 ‘빛의 전사’가 별안간 머리를 싹둑 자른 채 나타나서였으리라. (이런 소동 때문에 함께 생긴 콧대의 하얀 문신은 순식간에 묻혀버렸다. 어느 누군가의 ‘자기는 바로 알아봤었다’고 우쭐해하는 모습엔 다들 흐뭇하게 웃고 끝내는 정도였다)

“엘린은 설산에서 왔다고 했지. 아무래도 환경이 험준하니 이 수호자들과 비슷하게 마을을 꾸렸으려나.”

“어쩌면 하나의 가족이 부족 그 자체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독립하여 에오르제아로 넘어온 이들로부터 전승된 사료가 존재는 하지만, 종족의 생활상은 줄글만으로는 알 수 없는 법이니까요.”

“후후, 이렇게 대단한 분의 가족이라니⋯ 왠지 가슴이 뛰어요!”

‘새벽’의 동료들은, 대부분이 샬레이안의 현인들답게 각자의 추론에 빠졌다. 엘린은 자신의 개인사에 모두가, 그리고 1세계의 민필리아도 흥미롭게 이야기꽃을 피워내는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 속에서 중심이 된 엘린은 눈을 핑핑 굴리며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크리스탈 브레이브가 생기고 얼마 안 되어 돌의 집에서 등불을 피워놓고 다함께 시간을 보낼 때, 그는 ‘가족의 기억을 되찾고 싶다’는 이유로 모험을 시작하였다 말했다. 제 7재해로 인한 기억 소실 현상은 막 성장을 끝낸 어린 엘린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주었고, 마침 그는 모두와 떨어지고 난 후였기에 처음 5년간은 혼자서도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몸에 익은 수렵을 해왔다고 했다. 그렇기에 활동 범위가 설산에 한정되었던 자신은 순록고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손질할 수 있는지는 알았어도 길에서 난 풀이 먹을 수 있는 것인지 구분하진 못했다고 모험 중간중간마다 즐거운 눈빛으로 말했다. 현재 알려진 인간형 종족 중에서 가장 오래 사는 동시에 ‘새벽’에서 세 번째로 어린 그에게 동료들은 전략에 대한 조언과 함께 자신들과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도왔다. 덕분에 엘린은 시린 얼음에 데였던 아린 마음을 서서히 녹일 수 있었고, 모두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그래서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요….”

“역시 우두머리의 표식 아닐까?”

“자신의 가족을 구분하기 위함일까요… 어쩌면 에오르제아에서 영웅이 푸른 빛을 발하며 활동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수도 있겠군요.”


등등, 엘린을 넘어 ‘비나 비에라’의 생활에 대한 가설이 가설을 업고 꼬리를 물며 몸집을 불리던 때였다.

“앗 근데… 보석으로는 더 드릴 정보가 없어요. 저도 아직은 기억이 안 나기도 하고….”

문득 엘린이 고개를 기울이며 묻자 이내 작은 웃음소리가 숲을 타고 흘렀다. 이 모든 대화의 시작점이었던 ‘마녀 마토야’는 꼬리를 살랑이며 모두에게 넌지시 말했다.

“그럼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할까요. 너무 많은 정보는 머릿속을 어지럽히니까요. 숲의 공기로 마음을 가라앉혀봅시다.”

“네…. 다들 감사드려요. 이렇게나 열심히 얘기해주시고.”

“가족은…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소중한 존재니까요. 꼭, 찾으실 수 있길 기도할게요.”

엘린은 순간 눈을 크게 뜬 채 멈춰서 민필리아를 보았다. 잠시 그가 건넨 말에 담긴 힘을 느끼며 눈을 끔뻑이다가 미소와 함께 고갤 끄덕였다.

“…고마워요.”

세상은 아직 혼란하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마음속에서 두껍게 묶인 실타래가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 듯한 감상을 얻은 휴식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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