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온라인 게임은 무법지대
2화
“키에에엑!”
요란스러운 괴음. 그 순간, 몬스터의 몸이 폭발하며 빛의 파편이 흩어져갔다. 약 12시간. 미궁구역에서 몸을 맡긴지 벌써 그만큼 지났다. 그러나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24시간…. 아니, 그 이상도 던전 안에 있을 수 있다.
마린은 게임광이었다. 흔히들 ‘고인물’ 그 이상, ‘썩은물’이라고 부르는 그런 부류.
빛을 받으면 수평선에 걸쳐진 바다 같은 색을 띄는 머리카락. 날카로운 인상. 그녀는 소드 아트 온라인에서 몇 되지 않는 여성 유저였다. 이 게임에 갇혔을 때도 그녀는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갇혔어, 그래서 뭐? 마린에게 게임은 일상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현실에 충실한 편이 아니었다.
늘 혼자, 벌이 좋은 필드에서 경험치와 콜을 벌고, 효율 좋은 퀘스트를 찾으러 다녔다. 데스 게임이든 아니든, 해야 할 일은 변함이 없다.
대낫의 날을 거두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몹이 더이상 나올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다른 플레이어보다 한발 더, 솔로로 앞장선 탓인지 마린의 앞은 늘 미지 투성이었다. 그러나 아무렴 상관없다. 그녀는 소드 아트 온라인이 정식 출시하기 전에 이미 이 세계에 발을 들인, ‘베타 테스터’였으니까. 전부 아는 정보다. 몬스터의 패턴, 퀘스트의 내용도 꿰뚫고 있다. 어려울 게 없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따라올 플레이어도 없다. 렙업 효율을 올리기 위해서 다른 심층 구역을 찾는 편이 빠를 것이다.
마린은 빠르게 뛰었다. 미궁구역 내부에서 몹이 리젠될 떄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남았지만, 시간을 1분 1초라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몇 시간 전에 지나쳐 왔던 구역을 지나쳐 가려 한 그때.
퍼억!
“…!?”
마린의 발에 무언가 걸렸다. 돌부리치고는 푹신한 감촉. 불안한 느낌에 그녀는 빠르게 태세를 정비하고 멈춰섰다. 대체 뭐에 걸렸던 건지, 살펴보자 그건…… 사람이었다. 새까만 옷을 입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기절한 건가? 이 미궁구역 한복판에서? 그게 사실이라면 위험한 상황이었다. 다가가서 말을 걸어볼까, 싶었지만 SAO에서 의식을 잃으면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대로 놔두기엔 찝찝했지만, 그렇다고 뭘 어찌 할 수가….
“으, 으윽…….”
의식을 잃은 게 아니었다. 작게 신음을 흘리던 그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자세히 보니 HP가 조금 줄어 있었다. 아마 마린이 걷어찬 탓이리라.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잘 살아 있으니 이제 상관 없겠지…. 떠나려던 그때.
“저기.”
“……?”
조용했던 통로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린은 저도 모르게 멈춰섰다. 고개를 돌리자 쓰러져 있던 행인은 새까만 눈동자로 마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시선을 회피했다.
“궁금한 게 있어.”
“…….”
“어떻게 하면 강해져?”
마린이 대답하지 않았는데도 일방적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마린은 그 사람을 슥 훑어보았다. 경장비에 어깨에 걸친 한손검. 자신과 같은 솔로 플레이어임은 확실했다. 그런데 뭐지? 그 뚱딴지같은 질문은.
“…레벨업을 해야지.”
“응. 어떻게 하면 돼?”
“몬스터를… 잡아.”
대체 무슨 대답을 기대하는 걸까. 마린은 다시 그대로 뒤를 돌려 했다.
“많이 잡으면 돼?”
“일단 시간을 쏟아 부어야지.”
RPG는 시간이 곧 힘이다. 시간을 많이 쓴 사람이 강하다. 마린은 베타 테스터인 덕에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법도 아는 것이다.
“시간을……. 그럼.”
멈출 줄 모르고 쏟아나오는 질문 공세에 마린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사람이랑 대화를 나눈지 너무 오래 되어서, 대화는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저 앞까지 간 건 당신 혼자야?”
“……그래.”
“그렇구나.”
시간을 쓰면 되는구나. 몇 마디 중얼거리더니 무어라 더 말을 잇지 않은 채 몸을 휙 돌렸다. 마린 입장에서는 얼떨떨했지만, 대화는 끝난 거겠지? 애초에 이걸 대화라고 부를 수 있나.
수수께끼의 그 사람은 던전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괜찮을… 아니, 알아서 하겠지.
빠르게 텔레포트 게이트로 이동한 후, 마을에서 한참 벗어난 필드에서 사냥을 시작했다. 베고, 찌르고, 또 찔렀다. 소드 스킬은 전부 꿰고 있었기 때문에 스킬 사용에 어려움도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필드에 나타났다.
“그래 새끼야, 그래서 웅이 그 병신을 한 손으로 걍….”
“조빱이네.”
남자 무리가 무장을 한 채 들어왔다. 마린은 그들을 흘깃 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쪽도 이제 글렀다. 갈수록 혼자 편히 사냥을 할 수 있는 곳이 사라져 갔다. 저들을 무시하고 계속 사냥을 이어갈까 생각하던 도중…….
“어, 거기 언니. 혼자야?”
남자 무리가 거들먹거리며 다가왔다. 중앙에 있던 키가 큰 남자가 주머니에 손을 구겨 넣은 채 실실 웃었다.
“안되지~. 여자가 혼자 위험하게. 그러다 다치면 어떡해.”
“그래그래, 우리랑 같이, 어때? 겸사겸사 술도 마시고.”
마린은 수많은 게임을 하며 여성 플레이어라고 집적대는 남자들을 질리도록 봐 왔다. 그때마다 단호한 태도를 보여 왔건만, 이런 족속들은 언제쯤 사라질까. 마린은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필드를 벗어나려 했다.
“저기요, 아무리 그래도 무시하면 어떡해, 응? 우린 어차피 같은 신세잖아. 이 좆같은 게임에 갇힌. 안 그래? 서로 돕고 그래야지.”
현실이라면 모를까, 이런 협박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그래봤자 초기 장비면서.
“아~… 이 언니, 비싼 척 하네.”
“혹시 뭐, 그런 겁니까? 페미?”
이 사람들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여전히 이곳이 현실 세계인줄 알고 있다. 자신들의 권위적인 행동이 전부 먹힐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곳에서 강함은 스테이터스와 레벨이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다 들어줄 필요도 없다. 마린은 뛰어서 이곳을 벗어나려 했다.
“여기까지만 하고 돌아갈까?”
“좋아좋아, 응?”
그때 다른 파티가 필드에 들어왔다. 남자 둘에 여자 셋이었다. 아는 얼굴이었던 건지, 남자 무리는 마린에게서 관심을 돌렸다. 단순한 놈들이다. 그 중 한 명, 벼색 머리의 금색 눈동자의 소녀만이 마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분위기가 안 좋은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마린은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 자리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마린은 미궁 구역에서 살다시피 했다.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이 싫어 후드 망토를 뒤집어쓰고. 부질 없어. 전부 부질 없어. 믿을 건 내 실력 뿐이야.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창을 휘둘렀다. 모든 게 평소와 같았다. 한가지 다른 건….
‘저 사람, 어제도 있었어.’
흑발의 투블럭을 한, 그 사람의 존재. 착실히 최전선을 따라오고 있었다. 볼 때마다 누워 있거나 멍 때리고 있을 뿐이었지만. 마린에게 말을 걸 생각은 없어 보였다.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상관 없지만, 묘하게 시야에 걸리는 게 거슬렸다.
마린은 그저 앞으로 나아갔다. 끊임없이 몹을 베며 최전선을 장악했다. 그 사실은 틀림 없었다. 자신은 언제나 앞에 있었다. 그 누구도 마린을 쫓아올 수 없었다. 게임광을 넘어서 전투광처럼 보일 정도로.
“밥은 먹고 있어?”
어느날은 말을 걸어왔다.
마린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밥을 먹을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이 얼마나 편한가. 몸에 무리가 오지도 않는다. 허기를 조금만 참는다면.
“잠은?”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
“잠은 자야 돼.”
대화라고 부를 만한 이야기가 둘 사이를 오간 적은 없었으나, 확실한 건 이 사람은 엄청난 마이페이스라는 것이다. 마린과 비슷하게 사람과 대화를 나누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하더니 그 사람은 품에서 빵 한 조각을 꺼냈다. 말라버린 흑빵이었다. 그걸 꺼내 와앙 한 입 물더니 오물오물 씹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마린은 조금 동요했다. 밥을 안 먹은지 사흘을 넘긴 상태였고, 맛없어 보이는 빵일지라도 먹을 것을 눈앞에서 본 게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마린은 고개를 휙 돌려 다시 미궁구 안쪽으로 걸어갔다.
…배고프다. 오늘은 돌아가서 뭐라도 먹을까. 전투 도중, 그런 헤이한 생각을 이어가던 그때. 마린은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마린은 천천히 다가갔다. 몹은 아니었다. 그것은 문이었다.
“……이건, 설마.”
약 2주만에 보스방이 발견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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