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온라인 게임은 무법지대
1화
던전에 살아있는 시체가 있다.
어디서부터, 누가 시작한 건지 모르겠지만, 모든 플레이어 사이에 퍼지게 된 소문이 있었다. 살아있는 시체라는 말만큼 모순적인 게 없지만, 이는 사실이었다. 특정 시간에 던전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면, 똑같은 사람이 통로에 쓰러진 채 있다는 것이다. 플레이어 커서는 뜨기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이고 NPC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도 섬뜩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난 실제로 봤다?”
“뭐? 말도 안돼. 슈크림은?”
남녀가 삼삼오오 모여 한 술집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 둘은 중장갑, 여자 둘은 비교적 가벼운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엄청난 화젯거리라도 되는 것마냥 이야기를 부풀렸다. 주목을 받은 슈크림이라는 여자아이는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글쎄, 우리 파티는 아직 심층부까지는 못 들어갔잖아.”
“그러니까. 한번 가서 보고 싶다.”
남자가 술잔을 기울이더니 허세 좋게 들이켰다. 그 모습에 여성 몇 명이 박수를 쳤고, 분위기가 달아올라갔다. 그건 슈크림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같은 파티로 레벨대는 비슷하게 5에서 6 정도 됐다. 만나게 된 계기는 길거리 먹자 골목의 NPC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눈이 맞아서.
…이곳이 아무리 게임 속 세계라 해도 인간관계는 현실과 다를 바 없었다. 슈크림은 요 몇 주간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1층 보스는 언제쯤 발견될까?”
“이 좆같은 게임에 갇힌지 벌써 2주가 넘었는데 아직도 못 찾았단다. 게임 강국 한국 맞아?”
“그르니까 말이야. 야, 이참에 우리가 찾으러 가자.”
도끼를 든 남자가 호쾌하게 말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분위기. 도끼 남자는 주변을 슥 둘러보더니 머쓱하게 웃었다.
“뭐야, 왜들 이래? 우리도 그리 약한 편은 아니….”
“새끼, 누가 뭐래? 그냥 생각하던 거야. 꽤 나쁘지 않은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슈크림은 주먹을 꾸욱 쥐고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무모해, 제발 이 신호를 알아채 줬음 하는 바람에서. 그러나 남자라는 생물은 여자가 바라보면 오히려 더 허세를 부리고 싶은 법이다.
“이 오빠가 힘 좀 써볼까? 까짓거, 던전 탐색이야 늘 하던 거니까.”
“좋다, 좋다. 오빠야가 지켜줄 거지?”
“고럼고럼.”
슈크림은 속으로 절규했다. 말도 안돼, 아직도 이 게임을 정말 게임처럼 생각하는 거야? 이곳은 소드 아트 온라인이다. HP가 0이 되면 정말 죽는 세계란 말이다. 술에 취해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건 아닐 테다. 이 세계에서는 취하지 않으니까.
“저,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정해 둔 안전 라인을 넘어서는 건 좀…….”
“괜~찮아, 슈크림! 이 방패, 안 보여, 엉? 이걸로 너한테 접근하는 몬스터들은 확!”
팔을 붕붕 휘둘렀다. 어우, 이러다 한 대 맞겠어. 슈크림은 몸을 슥 숙였다.
“정해졌으면 내일 아침… 아니, 오후에 출발하자. 숙취 때문에 좀 자야겠어.”
“지~랄하네. 숙취 같은 건 없잖아.”
“아, 좀. 더 자자고.”
슈크림이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처음부터 이런 헐랭이 같은 파티에 들어오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류의 온라인 게임은 여자가 흔치 않아서, 남자들이 냅두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거절을 잘 못하는 슈크림이 얻어 걸린 것이다. 하지만 게임이 게임이 아니게 된 그날 이후, 좀 더 전문적으로 공략에 임하는 파티에 들어가야 하는 걸까, 몇 차례 고민에 빠졌었다. 그러나 자신은 게임을 잘 못 하는데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남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는 것 밖에 없으니까.
다음날, 슈크림을 포함한 다섯 명이 미궁 구역에 진입했다. 오후 3시면 공략하기엔 매우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너무나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풍차도시 카를라인을 지나 미궁탑에 도달하고, 평소처럼 순조롭게 탐색을 진행하던 그때였다.
“이상하군, 몹이 리젠이 안 되네.”
“누가 여길 지나갔었나 봐.”
“좀 더 안쪽으로 가 보자.”
슈크림은 반대하려 했지만, 남자 둘의 기세가 너무 거칠었다. 처음 보는 구역에 들어서자 어둠이 한층 더 짙어졌다. 슈크림은 긴장하며 메이스를 똑바로 고쳐 쥐었다.
“…어?”
앞장서서 탱킹하던 남자 한 명이 멈춰섰다. 나머지 여자들은 “뭐야뭐야, 무서워.” 같은 반응을 보이며 남성들에게 달라붙었다.
“저기, 저 까만 거 뭐야?”
남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엔 무언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문듯, 슈크림은 한 소문을 떠올렸다. 시체가…
“저, 저거 아니야? 소문의 그….”
“이런 씨발!”
새까만 물체는 사람이었다. 던전 끄트머리에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남자 둘과 여자 둘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실제로 보니 확실히 섬뜩했다. 엎드려 있는 것도 아니고, 바르게 누워 있는 모습이 기괴했다. 슈크림은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재수 없네. 아오!”
남자는 공포를 폭력으로 극복하려 했던 건지 검을 드러누워있는 사람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대로라면 저기 누워 있는 사람인지, 시체인지를 걷어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슈크림이 뒤를 따랐다.
“잠깐! 아무리 그래도….”
“어휴, 비켜 봐, 좀. 저것 때문에 요즘 던전이 흉흉하잖…….”
남자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슈크림은 뒤를 돈 채라 보지 못했지만 바르게 누워 있던 사람이 몸을 슬금슬금 일으켜 섰기 때문이다. 남자는 입을 뻐끔거리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으아아악!”
남자와 일행이 그대로 줄행량을 치는 바람에 슈크림은 그제서야 뒤를 돌아 보았다.
새까만 머리카락. 빛 한 점 없이 새까만 눈동자. 이에 뒤지지 않는 까만 옷차림. 외견만으로도 압도되는 느낌을 받은 슈크림이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다 쿵, 넘어졌다.
“아, 으, 아아…….”
“…….”
곱슬기 있는 투블럭 머리. 겉으로만 보면 성별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중성적이다. 그 사람은 한참을 우두커니 넘어진 슈크림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검을 뽑아들었다.
잠깐, 진짜야? 뽑힌 검신의 끝이 번뜩이는 것을 본 슈크림이 바들바들 떨었다. 지금 여기서 슈크림을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만일 여기서 공격을 당해 HP가 0이 되면…. 사망하게 된다.
“사, 살려주세요…!”
흑발의 수수께끼의 인물이 검을 치켜들더니, 앞으로 돌진했다. 슈크림은 눈을 질끈 감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슈걱! 뒤쪽에서 무언가 베이는 소리. 그 직후 몬스터가 폴리곤 파편이 되어 사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정체불명의 인간은 슈크림을 해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를 지켜 주었던 것이지. 등 뒤에서 접근하는 몹을 가볍게 베어 넘겨 주고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몇 시?”
“ㄴ, 네…?”
“몇 시?”
“오, 오후 다섯 시 반… 일걸, 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여성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흑발의 투블럭 소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표정을 일관하더니 슈크림에게 다가갔다.
“소리 때문에, 어그로 끌렸어.”
“아, 아아… 아까 그.”
일행 중 한 명이 소리를 지르며 도망간 탓에, 주변 몹들에게 어그로가 끌렸던 모양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몹은 나오지 않았기에, 투블럭 소녀는 검을 검집에 집어 넣었다.
“돌아가, 위험해.”
“아니, 저기… 당신이야말로 위험하게 왜 던전 한복판에 누워 있던 거죠?”
“…….”
그녀는 말없이 자신이 누워 있던 곳을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그곳은 세이프티 존이었다. 미궁 구역이 일부만 존재한다는 안전 구역. 그곳에 있으면 몹에게 공격당할 일도 없었다.
“그럼, 자고 있었을 뿐…?”
“응.”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죠…?”
“쭉, 여기서 잤어.”
슈크림은 입을 떡 벌렸다. 소문이 시작된 건 약 일주일 전이다. 그렇다는 건, 일주일 동안 이 사람은 미궁 구역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이런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서, 쭉….
“왜 그런 무모한 짓을…….”
슈크림의 말에 흑발의 소녀는 동굴 안쪽을 가리켰다.
“저 앞으로 먼저 간 사람이, 그렇게 하면 효율이 좋다고.”
“…당신보다 앞서나간 분이 있다는 뜻인가요?”
“응, 그런데 아직 못 따라잡았어.”
어이가 없다. 그런 미친 짓을 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했다니. 일반적인 게임이라면 게임광이구나, 싶었겠지만 여기서는 진짜 죽을 수 있는데. 무섭지 않은 걸까?
슈크림은 우선 이 사람을 데리고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우선 나가요. 여기 있다간 위험해져.”
거절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의외로 순순히 슈크림이 이끄는 대로 밖으로 빠져나왔다.
두 사람이 미궁구역 밖으로 빠져나오자, 입구 앞에서 쩔쩔매는 남녀 네 명을 발견했다. 그들은 언성을 높여 다투고 있었고, 그 바람에 슈크림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씨발, 니가 들어가라고… 니가 가자고 했잖아!”
“먼저 토낀게 누군ㄷ…… 어, 슈!”
남자들이 먼저 슈크림을 발견하고는 달려갔다. 그러자 문득, 까만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고는 멈칫했다.
“슈, 슈크림… 다행이다. 이, 이 사람은?”
“……아까 누워 있던 사람이야.”
“살아 있었어!?”
“야, 새꺄. 말이 되는 소릴 해. 여기선 죽으면 가루처럼 사라지는데.”
흑발 투블럭 소녀는 네 사람이 티격대는 걸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슈크림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하, 스트레스 받아. 도망간 사람이 언성이나 높이고 있고. 걱정하는 척이나 하고. 다 똑같은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생각도 곧 거기서 그쳤다. 그러자 그때.
“무서웠어?”
정적. 목소리는 투블럭 소녀의 것이었다. 중저음의 맑은 목소리가 다섯 명의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잠재웠다.
“…뭐, 뭐라고요?”
“무서웠어?”
“하, 저기요, 그게 무슨…….”
“무서울 수 있어. 죽을 수 있으니까.”
진중한 목소리에 다섯 명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마치 말 그 자체에 거대한 힘이 실린 것 같았다. 압도되는 이 감각, 슈크림의 착각이 아니었다.
“조심해. 무서울 땐, 어깨에 힘을 빼도 돼.”
말 자체는 달래는 것 같았지만, 실상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로지 진실만을 전하기 위한 것처럼 담담했다. 남자의 표정이 점점 험악해져갔다. 슈크림은 웃음을 터트리고 싶었다. 그렇게 허세를 부려대더니.
그 후 돌아가는 길에 남자와 일행은 조용해졌다. 슈크림은 그들의 뒤를 따르면서 새까만 차림새의 사람에게 고개를 돌렸다.
“혼자인가요?”
“……혼자야.”
“파티는 왜 맺지 않으시는 건가요?”
“파티… 전에 맺었어. 하지만 다들 금방 나가.”
기분 탓인지 시무룩한 어투였다. 표정은 그대로인데.
“…실례지만 레벨이 몇인가요?”
“11.”
“……!”
생각한 것 이상으로 고레벨이었다. 하루 죙일 던전에 쳐박혀 있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슈크림도 나름 퀘스트를 진행하고, 노력해서 경험치를 얻은 결과가 레벨 6인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 건지 물어봐도 되나요…?”
여전히 표정은 덤덤했지만, 아까처럼 빠르게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주지 않았다. 슈크림은 괜한 질문을 했나 싶었다. 그러나….
“보스 잡아야지.”
“그건 그렇죠.”
“그래야, 모두가 살아.”
너무나 간단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슈크림은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 자리에서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데스 게임이 시작되고 처음엔 다른 이들처럼 절망했었다. 평범한 생활, 어렵게 유지해온 일상이 단숨에 무너져 내렸으니까. 그녀는 이곳이 거짓된 가상 세계라는 사실을 회피하려고 했었다. 게임을 클리어해야 탈출할 수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으니까. 무려 100층이나 되는데, 무사히 클리어해서 현실로 돌아간다 한들 한참 뒤일게 분명했다.
모든 게 두루뭉술하게 느껴졌다. 탈출에 대한 희망도, 현실을 직시한다는 행위도.
그런데…….
“그러니 난 싸울거야.”
결연했다. 슈크림은 그 한 마디를 듣자 속이 울렁거리는 듯한 멀미를 느꼈다. 나도 이렇게 단호하게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섭지 않아요? 여긴… 무법지대예요. 법이랄 게 없다고요. 우리가 알던 세상과는 완전 다른 것 같아서, 전.”
“응, 죽이지 않으면, 죽어. 여긴 그런 곳이지.”
“그래요, 그러니까.”
“그렇지만 더 무서운 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야.”
약간 곱슬거리는 흑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슈크림의 연갈색 머리색도 따라서 흔들렸다.
“그러니 싸운다. 게임이든, 아니든. 무법지대이든, 아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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