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

윤정한

살아남은 금강초롱

현재 by 반야

매화. 일패기생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월루골에 있는 매화는 내로라하는 꽃을 가진 집안에서도 쉽사리 드나들 수 없는 공간이었다. 기녀마다 각각 한 칸씩 개인 방이 있는 기방은 한양뿐만 아니라 전국을 찾아보아도 매화밖에 없을 터였다.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매화는 낮과 밤이 구분되지 않는 공간이라 불릴 만큼 거센 등불이 달려 있었다. 길을 잃은 나그네들조차 매화가 보이면 마을의 중심이 멀지 않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말이 속담처럼 전해질 정도였다.

매화는 자시에 대문을 걸어 잠그고 사시에 다시 열어 손님을 맞이한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막내가 문을 열기 위해 가장 먼저 방에서 나왔고, 곧바로 들려오는 비명과 함께 사내아이 하나가 행수의 품에 안겨 들어오게 되었다.

 

옅은 보랏빛 저고리를 입은 아이를 기녀들이 둘러쌌다. 행수는 애 만지면 혼난다며 으름장을 놓고는 멀찍이 떨어져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얘 이름은 뭔데요?”

“정한淨漢. 맑은 은하수.”

“성은요?”

“그런 거 없다.”

“잘 생겼네. 왜 거뒀는지 알겠다.”

행수는 안경을 고쳐 쓰며 한숨을 쉬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시린 새벽에 꽃향기를 폴폴 내며 대문 앞을 버틴 저 아이를 차마 버리지 못하여 데려온 것이 과연 잘한 일일까. 밀려드는 걱정이 태산이었으나 잠시 제쳐두고 일단 무작정 키워봐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먹어야 했다. 저 맑은 은하수 같은 놈은, 다 뜻이 있어 버려졌을 테니까. 추운 가을을 이겨낸 저것이 버텨낼 세월을 지탱해 줄 어른은 되어줄 수 있어야 하니까.

 

정한은 순했다. 누이들과 단 한 번의 마찰도 없이 열세 번의 해를 보내면서 글을 깨치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갔다. 종종 심부름하며 용돈을 타 먹기도 하고 가끔 차려입은 채로 한양을 홀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항상 그러했듯 멀끔히 차려입은 채로 저잣거리를 나돌던 참이었다. 형판 대감이 지나간다는 소리에 일사불란하게 가장자리로 사람들이 모여 중앙에 길을 터주었다. 일렬로 고개를 숙인 백성들 사이에서 정한은 흘긋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백성을 발아래에 두는, 깔보는 듯한 저 눈깔로 어찌 한양을 돌보겠다고... 그의 꽁무니까지 노려보던 정한이 한순간에 인상을 찌푸렸다.

간혹 열병을 앓을 때 제 몸에서 살짝씩 나던 냄새가 저 형조판서에게서 강하게 나고 있었다.

‘...꽃내음이 이리 심한데, 아무도 코를 안 막네.’

어느 정도 형판이 멀어지고 나서야 주변 사람들이 서서히 몸을 움직여 다시 제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정한 또한 그 사이에서 튀지 않게 다시 제 갈 길을 걸어갔다.

 

“......행수.”

“오냐.”

정한은 행수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곱게 펴진 이불 위에 몸을 던져 이내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행수는 항상 밤마다 상을 펴고 장부를 정리했다. 평소와 달리 행수를 등지고 있던 정한이 한참을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행수는 내 성 알지? 내 꽃도 알거고....”

“뭐?”

“행수가 가려내는 사람들... 다 꽃이 있는 사람들이잖아.”

“.......”

“나 오늘, 형조판서를 길에서 봤어.”

정한이 이불에 있는 자수를 괜히 손으로 뜯어내며 애써 웃었다. 내 이름, 윤정한이겠네. 그치?

정한의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이 기어이 이불 위로 툭 떨어졌다.

행수는 말을 얹지 않았다. 마반인 새끼들은 너무 난잡하다고 할 때도, 나도 나중에 크면 꽃 냄새가 그렇게 퍼지냐고 물을 때도.

그리고 그냥 나 평생 이곳에서 누나들이랑 살면 안 되냐고 물었을 때도.

 

그 날 이후로 정확히 삼 년이 지나고, 정한은 통지서를 건네받았다. 지금이 하늘이 주는 기회구나, 라고 생각했다.

누이들에게는 긴 여행을 가볼까 한다는 편지를 하나 써서 남기고 매화를 떠났다. ...웬만해서는, 다신 돌아오지 않아야지. 매화 입구에 새겨진 커다란 매梅 문양을 만지작거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나빌레라

尹淨漢, 살아남은 금강초롱

견우직녀달 스무사흘

예전과 달리 매화가 조용했다. 내부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정한은 한숨을 크게 뱉은 후에야 겨우 대문에 손을 올렸다.

두리번거리던 정한은 결국 매화 뒤편에 있는 누이들의 방으로 찾아가야 했다. 간혹 귀한 분이 오는 날이면 다른 만남을 만들지 않기도 했는데, 그 전통이 아직도 이어져 왔나 보다. 저 멀리 방 한 칸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음악 뒤편에서는 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저... 누나.”

“어? 정한이다!”

누이의 외침 한 번에 다른 방에서도 모조리 튀어나왔다. 정한이 두리번거리며 가장 나이가 많은 누이를 찾았다. 그 또한 정한을 기다렸는지, 쓰게 웃으며 눈인사를 건넸다.

“대감은 어디 계셔?”

“가장 안쪽 방.”

“나, 조금 있다가 다시 올게.”

누이들에게 재빨리 손짓하고는 잔걸음을 재촉하며 그가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갈수록 심장이 느리게 뛰는 것만 같았다.

겨우 문고리에 손을 올리기도 전에 안쪽에서 열어젖혔다. 순간 시야를 가리는 불빛에 인상을 찌푸렸다.

“정한아!”

기분 나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와락 정한을 안았다가 제멋대로 떼고 그의 얼굴을 살폈다. 좆같았다.

“나를 알겠느냐?”

“네. 윤 대감 아니십니까.”

죽어라 쫓아오던 종이 쪼가리는 저를 버린 사람이 가족인 척 보낸 것이었다. 정중한 태도를 내세우면서도 날이 선 문체가 썩 기분이 좋지 않아 내내 무시하려다, 혹여나 나비들에게 해를 끼칠까 싶어 결단을 내리고자 나왔다. 정한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형판이 호탕하게 웃으며 그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불쾌함의 연속이었다.

 

상 위에 음식만 화려했다. 대감의 언행은 볼품없었으며, 그가 유일하게 빼내지 않은 듯한 기녀는 홀로 연주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기녀였음에도 정한은 혹여나 제 시선이 부담될까 싶어 일부러 외면했다. 형판은 식사 내내 쓸데없는 이야기만 해대더니, 막바지가 되어서야 겨우 하고픈 말을 뱉었다.

“내가 왜 너를 이곳에 불렀는지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정말 정한은 미칠 노릇이었다. 저를 버린 곳에 다시 돌아와 부른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여러 혼란스러운 일들 때문에 생각을 비우고자 기둥에 기대어 있던 중 날아온 지비부터 해서, 늦은 밤 꽃밭에서 어린 청룡들과 함께 있을 때조차 날아오는 지비까지. 정한의 도포 한쪽을 가득 채울 만큼의 종이 더미들이 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만히 듣자 하니, 소문으로는 네가 서당에서 꽤 영향력이 있다고 하더구나.”

“...아.... 그렇습니까?”

형판이 술병을 들었다. 그래도 어른이니, 제가 따르겠다며 손을 건네었으나 한잔할 테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정중하게 거절하니 이번에는 또 너그러이 넘어가 주었다. 원래 이리 유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온전한 문장으로 만들어지기도 전에 스스로 박살을 내 주었다.

“거, 뭐.... 계속 마법을 할 생각인가?”

“...네. 아마 그리할 것 같습니다.”

“그곳의 뜻을 따르면 이로운 일을 하느라 네 부를 쌓지 못할 테다.”

정한이 알기로는 금강초롱은 꽤 유서가 깊은 집안이었다. 적어도 제 위로 몇 대는 꾸준히 마법을 배워왔을 텐데. 이러한 발언을 하고도 한 치의 부끄럼이 없다는 점에 탄식이 절로 나왔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내가 왜 그 서당을 나오고 사헌부에 들어가 그리 개고생을 하며 대사구大司寇가 되었겠느냐. 금강초롱이라면 마법부에 들어갔어도 되었을 텐데 말이야.”

“.......”

“나는 마반인들도 숙청하고자 한다. 만약 낙화열병이 없었으면 내가 일으켜서라도 모조리 허투루 된 마반인을 없앴을 테야. ....아니, 이게 아니지. 아들아. 어떠하냐. 지금이라도 반궁에 들어가서 유학을 연구하고 나와 일반인인 척 부와 명예를 쌓아보는 것이.”

그래도 꼴에 천륜이라고 실실 웃어주며 반응을 해주었더니, 드러난 진심이 너무나도 헐거워서 이제는 비소조차 지어지지 않았다.

“싫습니다.”

단호한 정한의 말에 형판은 놀라 더 이상 아무런 음절도 뱉질 못했다. 더듬거리는 모양새를 보던 정한이 말을 이었다.

“서당에서 만난 친우들을 위해, 그리고 더 나아가 계속 태어날 마반인과 양반인들을 위해 의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법으로는 하잘것없는 인간들을 고치다 네 생이 끝날 것이야.”

“괜찮습니다. 애초에 버려졌던 삶을 누군가가 호의로 재생시킨 것이라.”

더는 말을 얹지 못하는 형판을 보던 정한이 픽 웃고는 금세 표정을 숨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판은 체면을 세우지 않고 덜컹거리며 따라 일어났다.

“그래. 네가 살아있단 것도, 서당에서 이름을 떨친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네가 감히 동백과 연을 맺었다는 소문 또한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 그래서 네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동백뿐만 아니라 서당 여러 꽃을 한 손에 쥐고 있을 네가 우리의 편에 선다면, 조선 팔도를 꽉 쥘 수 있으리라고. 그 또한 알려주고 싶었다.”

“...필요 없습니다.”

“네가 유일한 내 핏줄이다. 내 온전한 뜻을 외면하고도 살기를 바랐던 것이냐.”

소매에서 단검을 꺼낸 형판이 정한의 가슴팍을 향해 내리꽂으려 했다. 한순간에 일어나버린 일이라 문을 열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팔로 막기에 급했다.

“...!”

잠시 눈앞이 번쩍이더니 형판이 뒤로 나동그라졌다. 곁에서 가야금을 뜯던 기녀는 온데간데없고 푸르고 긴 머리를 가진 여인이 정한을 막아서고 있었다.

정한은 곧바로 알아차렸다.

청룡이었다.

몸을 바둥거리는 형판을 향해 한 번 더 빛이 번쩍였다. 기절한 듯 눈을 감은 그를 보던 청룡이 거세게 혀를 차며 정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제 번거로운 일은 일어나지 않을게다.”

“...아. 감사합니다.”

나오라는 듯한 손짓을 본 정한이 순순히 청룡의 뒤를 따라 나갔다.

 

정한이 누이에게 자초지종을 간단히 설명하고 나서 다시 매화를 떠났다. 누이들은 오랜만에 본 정한이 떠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으나, 정한은 그다지 오래 있고픈 마음이 크지 않았다. 애초에 떠나기로 한 곳이었고 윤 대감이 부르지만 않았으면 근처에도 오지 않았을 테다. 애써 거짓말로 말을 포장해 가며 다음에 또 오겠다는 약속을 한 뒤로 청룡이 먼저 가 있겠다고 전한 정자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어.... 이리 오실 줄 몰랐습니다.”

청룡은 그저 웃기만 했다.

“...사실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망종 때부터 몸에 변화가 생겨서 의심이 갔는데 오늘 아침에 확신이 섰습니다.”

“무엇을 보고?”

정한이 제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근래 찬이 하고 있던 과제를 곁에서 구경했던 덕분에 톡톡히 기억하고 있었다. 진시에 진청색이 도는 머릿결. 햇빛과 구별이 잘되지 않아 긴가민가하던 중이었는데, 오늘에서야 확답을 얻었다. 지금 제 앞에 있는 청룡과 비슷한 머리색이었다. 다른 오방신에 비해 옅게 드러나는 부분이라더니. 잘못 기록되어 있던 것이었다.

“제가 수장이 될 사람인 것입니까?”

“그래.”

“...홍지수와 함께,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청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더, 궁금한 것이 있느냐. 정한이 뜸을 들였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청룡을 볼 기회가 얼마나 더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청룡은 얼추 예상했던 것인지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홍지수와 다른 수하들을 데리고 정식으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면 더 만날 일이 없을거다.”

“.......”

“궁금한 것투성이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말이 없구나.”

“섣불리 알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감히 신의 힘을 빌려 미래를 짐작하게 될까 두려운 것이 첫 번째였고, 게다가 돌아가면 서당에서 저를 기다려 주는 백호 하나가 있으니 구태여 질문할 필요가 없단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그렇다면 이제 떠나야겠다.”

전에 지수에게 들었던 적이 있다. 의외로 신은 환생하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나서 지상에서 명을 다하면 그 순간 소멸해 버린다고. 그렇기에 대개 신들은 인간의 공간에 오래 있는 것을 꺼린다고 하였다.

청룡이 몸을 일으키기에 정한이 벌떡 일어나 그를 종종 따라갔다.

“...아, 조금 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어찌 끊어야 하나 꽤 고민했습니다. 여태 함께하지도 못했음에도 천륜이라는 것이....”

“아비 구실을 하지도 않았는데, 너는 천륜을 챙기느냐.”

“...아닙니다.”

청룡이 웃음을 찾는 듯했다. 덕분에 즐거운 경험이었다. 청룡이 정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목까지 오는 단발의 머리카락 사이로 작고 어여쁜 금강초롱이 생겨났다.

“이리 올곧고 단정한 금강초롱이라니. 귀하고 아름답구나.”

“.......”

“다시 보기 전까지, 꼭 잘 지내고 있거라.”

마지막 말을 끝으로 청룡은 푸른 비늘을 흩날리며 사라졌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