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

입추(1)

서늘한 바람

현재 by 반야

타오름달 이레, 진시辰時

지수가 손바닥을 펼쳤다. 어느덧 진시 辰時였다. 자고 있던 저를 새벽에 깨워 누각에 데리고 온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정한은 짓궃은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마법 같은 장면을 보여줄게.”

“장난치지 마.”

“...진짠데.”

토라지는 듯한 말투를 뱉은 정한이 진청색 머리칼을 흩날리며 지수에게 다가갔다. 지수가 답지 않게 뒷걸음질 쳤다. 잠시, 두 눈에 물방울이 맺힌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너,”

“마법 같지?”

“미쳤어?”

“…….”

“미쳤네….”

곧이어 다시 머리가 푸르게 변할 것 같았다. 지수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가가 그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따끔거리는 부분을 매만지던 정한이 뭐하냐고 물었으나 지수는 듣지도 않고 제 머리카락을 백색으로 만들어 뽑아냈다.

지수는 곧장 주작 침소로 향했다. 허옇고 푸른 머리카락을 받은 승철은 그것들을 바닥에 패대기치고 머리를 박았다. ...울어? 순진한 정한의 질문에 승철은 그저 앓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해가 들어오는 곳에 흩어진 머리카락들이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와, 내 비늘 날아간다. 실없는 소리를 하던 정한의 입은 지수에 의해 틀어막혔다.

지수가 좀 일어나보라고 힘을 써도 승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가 떼를 쓰면 아무리 힘을 줘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한참을 실랑이하다 결국 몸을 일으켰다.

“...많이 놀랐을 거 알아.”

“.......”

“당연한 말이겠지만... 수백 년 살아야 하는 우리는 끝까지 네 곁에 있을 테니까 너무 많은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

생각 정리가 끝나면 언제나 그러했듯 누각에 오라는 정한의 말을 듣고도 승철은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사시巳時

“뭐 해.”

“...침소 정리요.”

승철이 고개를 드는 찰나에 승관이 오전 강의를 듣고 침소에 돌아왔다. 승철이 황룡 도포를 이불 삼아 벌러덩 뒤로 누웠다. 찬은 곧장 공부를 하러 갔다고 했고, 승관은 책상 앞에 앉아 이것저것 뒤적이는 중이었다. 승관은 눈을 질끈 감으며 서책들을 책장에 꽂았다.

“갑자기 왜 해?”

“며칠 동안 수업이 없잖습니까. 어느 정도 구분해서 정리를 해둘까 싶어서요.”

“...오방식시 때문인가?”

오방식시五方式試란 동서남북 영수들을 상징하는 구슬을 서당의 4년 황룡들이 숨겨놓은 후 생원들이 본인 침소의 구슬을 찾아내는 작은 축제였다. 황룡들은 사흘 동안 본인의 침소의 구슬을 숨기고 그 후 나흘 동안 생원들이 찾아내는 것이다. 도술을 배우기 시작하는 4년 생원부터는 참여할 수 없기에, 구슬은 대개 4년 황룡들이 숨기게 된다.

“사형이 해야 하는 일 아니에요?”

승관의 말 승철에은 한참 동안 답이 없었다. 문득 조용해져 뒤를 돌아보니 승철이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새 잠에 들었나 싶어 얼굴을 가까이하자, 승철이 눈을 번쩍 떴다.

“그래, 내가 해야지. 황룡 아니더냐.”

순간 커다란 그 눈에 홀려서 들어갈 뻔했다. 승관이 놀랐다며 승철을 밉지 않게 흘겼다. 이럴 때 보면 장난치는 모양이 정한과 비슷했다. 승철이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이제 슬슬 나가야겠다. 어디 갈 거야?”

“어, 조만간 꽃밭에 갈 것인데….”

승관의 눈동자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

“...곁에 있어 드릴까요..?”

승철은 그런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 결국 웃음이 터졌다.

“어린 생원들이 주작 구슬을 찾지 못하게, 꼭꼭 숨겨야지.”

“...네. 조심히 가세요....”

승관의 말이 끝나자 승철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다.

 

어둠이 깔린 밤, 서운관이라고 적힌 문패 앞에 서 있었다. 아무도 없어 온통 불이 꺼진 관청에는 무관 하나 없었다. 눈앞에 노란 나비가 팔락이며 서운관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희미하게 보이는 나비를 따라 들어가니 한 문관이 부들거리며 다급히 다가왔다. 나비가 눈앞에서 흩어졌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문관이 제 옷깃을 잡고 구구절절 매달리기 시작했다. 나, 내가. …사람을 뜯어먹는 요괴. 그를 보았네. 나, 어떡하는가? 요괴, 요괴를 보았, 는데. 괜찮은, 건가?

 

오시午時

찬은 온종일 집중하질 못했다. 꿈이 너무 찜찜했다. 서책을 보아도 글이 읽히질 않고, 붓을 들어도 글이 써지지 않았다. 순영의 배려로 무예를 구경할 수 있었던 덕분에 생각을 정리하고자 무예 터에 놀러 갔으나,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결국 멍하니 하루를 보내다 어영부영 무예를 끝마쳐 무기고에 목검을 옮겨야 했다.

“괜찮아?”

“...예?”

“무슨 일 있어?”

주저앉아 무기를 정리하던 찬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와르르 무기가 제 앞에 쏟아지는 것을 준휘가 전부 받아주었다.

“순영이 검을 제외하면 전부 목검이긴 하지만, 많이 무거우니 조심해야지.”

“죄송합니다.”

“...이건 죄송할 일이 아닌데…. 무슨 일 있지?”

무기고를 닫고 준휘가 얼굴을 가까이했다. 새까만 눈동자에 비치는 것이 오로지 찬 하나뿐이어서, 빨려 들어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늘한 준휘의 손가락이 찬의 입꼬리 위에 닿자마자 가차 없이 위로 당겨졌다. 억지로 입꼬리가 올라가 웃는 표정이 되었다.

“무예를 할 때도 표정이 좋질 않았으니…. 평소엔 날아다녔으면서.”

“...죄송,”

“그거 쓸 때가 아니래도. 말하기 싫어?”

찬이 우물쭈물하자 준휘는 괜히 강박을 주기는 싫다며 무예 터를 빠져나가려고 몸을 돌렸다. 다급히 뒤따라온 찬이 덥석 준휘의 팔목을 잡았다.

“...그냥, 별거 아닙니다. 꿈을 꿨어요.”

“근데, 왜 이리 안색이 안 좋아?”

“단오제가 열린 날, 구미호 하나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렇지. 한동안 벽보를 붙여두었으니.”

“한 무관께서 요괴를 보았는데 어찌하냐며 제게 매달렸습니다. 서운관에 계신 분 같았어요.”

“오…. 서운관..?”

“네. 한문으로 쓰여 있었는데 바로 읽혔어요. ...노파심일까 싶어 말을 선뜻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꿈이니까….”

준휘가 찬의 머리를 헝클었다. 소심하게 팔을 들어 머릿결을 정리하는 찬을 가만히 내려다본 준휘가 찬을 이끌고 누각으로 향했다. 안에 얼음 결계를 쳐둔 것인지, 살짝 열린 틈 사이로 찬 바람이 느껴졌다. 정한의 결계는 웬만한 사람이 아니고는 열 수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찬은 열지 못하는 차가워진 문에 슬쩍 손을 얹으며 말했다.

“왜.. 이곳에….”

“기우인지 아닌지는 확인해 보면 알지!”

찬이 제대로 말의 뜻을 이해하기도 전에, 준휘가 어깨를 으쓱이며 문을 벌컥 열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정한이 찬을 맞이해 주었다.

 

나빌레라

立秋(一), 서늘한 바람

 

타오름달 여드레, 축시丑時

준휘를 통해 찬의 이야기를 들은 정한은 하루 종일 고민하더니 순영과 지훈을 누각으로 불렀다. 순영은 청천벽력 같은 부탁을 듣자마자 얼어붙어 입을 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저희보고 가라는 거예요?”

“응. 부탁 좀 할게.”

“저희 둘이 가서 알아보고 오면 되는 거죠?”

정한이 고개를 저으며 멀뚱멀뚱 바라보는 순영과 지훈에게 반듯하게 접힌 종이를 던져주었다.

“찬이 꿈이었으니까, 우리 침소 막내들도 데리고 가.”

“….”

“왜 그렇게 봐?”

진심이에요? 지훈이 종이를 펼치니 서운관이 있는 관청의 지도가 나왔다. 정한은 원우가 힘들게 훔쳐 왔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위험할 텐데….”

“감투 꼭 쓰고 가고.”

순영이 표정을 굳힌 채로 도포를 걸치고 청룡 침소로 향했다. 이레나 되는 휴일 덕분인지 생원들은 자러 가지 않고 서당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승관과 찬도 침소 안에서 노닥거리고 있기에 둘을 데리고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지훈이 한 개씩 탈을 쥐여주었다. 일찍이 정한에게 말을 들었던 것인지, 지훈이 꿈을 좇으러 간다고 하니 곧바로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당 입구 앞에 서서 문을 열려고 하자 순영이 지훈의 팔목을 붙잡았다.

“감투.. 다 써야 하지 않나. 세 개밖에 없어.”

“그냥 가자. 내가 안 쓰면 돼.”

“걸리면 옥에 가는데 어딜 그냥 가려고.“

문 앞에 있던 찬의 뒤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덜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 몸이 움직이질 못했다. 저절로 열리는 문 앞에 익숙한 인물이 서 있었다. 할멈! 승관이 웃으며 부르자, 할멈은 입술에 손가락을 얹었다.

“목소리 낮춰.”

“...여긴 어떻게 계시는 겁니까?”

“니들 목소리 따라와 봤지.”

할멈이 넷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아직도 바싹 굳어있는 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 놈을 위해 감투를 주러 왔지.”

작은 연기가 몽실몽실 생기며 할멈의 손에 검은 탈이 하나 올려졌다.

“넌, 네 능력을 너무 믿지 말아라.”

“...”

“아무리 잘난 능소화라도 독각의 힘이 무한정 펼쳐지는 것은 아니니.”

할멈이 지훈의 손에 얹어주고 서당 문을 열어주었다. 감투를 쓰고 나서라는 할멈의 말을 듣고 덜그럭거리며 순영과 찬에게 먼저 감투를 씌워주고 남은 둘도 감투를 썼다. 할멈은 감투를 쓴 넷이 보이는지, 전부 서당에서 나간 후에 뒤따라 나와서 정한이 쳐두었던 결계와 똑같이 친 후에 홀연히 떠나갔다. 지훈은 할멈의 흔적을 눈으로 따라가다 묘시卯時가 되면 관원들이 출근하러 올 터이니 서둘러야 한다는 순영의 말을 듣고 나서야 시선을 거두었다.

 

서당에 남은 다른 나비들은 약속한 것처럼 꽃밭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오는 길에 한솔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꽃밭에 들어온 명호가 들고 있던 작은 함을 열어 지필묵을 꺼냈다. 화려한 무늬의 붓을 쥐고는 먹을 묻히지도 않고 종이에 가져다 대자, 형형색색의 줄이 그어졌다.

“저번에 알려주셨던 그 도생법圖生法, 쓰는 거예요?”

“...저번에? 아, 민규랑 있을 때?”

접때 민규와 둘이 꽃밭에서 그림을 그릴 때도 한솔이 찾아와 곁에서 지켜보았던 것이 기억났다. 홀로 침소에 있는 것이 쓸쓸해 나왔다는 한솔을 위해 민규와 명호는 종이 속에서 생명이 움직일 수 있는 마법을 알려주었다. 용케 기억하고 있었구나. 명호가 내심 뿌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림 속에서, 생명체가 움직이는 마법...”

“응. 알려준 대로 잘 기억하네. 하는 법도 기억 나? 해볼래?

명호가 붓을 선뜻 건네주었지만 한솔은 고개를 저었다. 혼자 침소에 있을 때 해보았지만 방만 어질러질 뿐 생명체를 만들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그건 기억이 잘 안 나요. 제가, 손으로 익히는 것이 느려서….”

붓의 끝부분을 보며 시무룩해하는 한솔의 행동이 묘하게 석민과 닮았다. 한솔과 있을 때면, 항상 석민과 함께였던 순간이 포개졌다. 그리 나쁜 기억이 아니었기에 덤덤히 수면위로 올라온 기억을 받아들였다.

“망각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하셨지. 당연한 이치 아니겠어?”

다시 알려주겠다며 한솔의 손에 붓을 쥐여준 뒤 손을 겹쳐 잡고 알려주었다. 집중하느라 조용해진 한솔을 흘긋 본 명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염라대왕과 저승사자는 모든 것을 기억한대.”

“왜요?”

“...어...”

“염라는, 지은 죄에 맞는 벌을 내려주고 그 혼이 다시 태어나 다른 죽음을 맞이하여 왔을 때도 그자를 기억해 내야 하니까.”

원우의 목소리였다. 보통 서당을 나서고 이틀 정도 후에 들어왔는데, 오늘따라 유독 일찍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홱 돌려 그를 보니 머쓱한 듯 웃으며 어색하게 인사했다.

“신과 관련된 자들은 전부 포함이야. 수하의 수장과 신령도 그러하니까.”

“언제 오신,”

“어? 형! 되게 일찍 들어왔네?”

“...어.”

뒤따라온 듯 버드나무 가지를 헤치고 꽃밭으로 들어온 민규를 본 원우가 말을 하려다 티 나게 얼버무렸다. 멀뚱멀뚱 바라보는 셋을 보더니, 피곤한 눈으로 곧장 돌아가 보겠다며 몸을 돌렸다.

평소보다 말이 빨랐고, 걸음과 행동도 빨랐다. 곧바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민규가 명호와 한솔을 흘끗 보고는 원우를 따라 다시 꽃밭에서 나갔다.

“형 잠시만...!”

“사자使者는 죄인이 아니더냐!”

“...!”

원우의 마음속에 억눌러두었던 무언가가 터지는 느낌이 들어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꽃밭과 서당 사이, 어두운 텃밭에서 둘의 시선이 교차했다.

“죄를 지은 혼을 모시는 주제에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서당을 돌아다니니, 내 어찌 이를 곱게 볼 수가 있겠는가. 홍월천에 있던 놈이라고 해도, 그것이 별수 있겠느냐, 이 말이다.”

아마 원우가 매주 쇠날 서당을 나서는 것을 고깝게 여기는 생원 중 하나겠지. 저런 말을 하는 생원 또한 꽃무릇과 비슷한 수준의 명망 높은 집안 자제일 것이다.

“죄인을 모신다고 으스대는 집안이라니. 아무리 꽃무릇의 전가라고 하여도, 분명 콩가루가 되어 곧 사라질 집안 아니겠느냐? 독각처럼 한평생 모시는 것도 아닐뿐더러, 속죄하고 저승으로 돌아가면 이승에서 사라질 사자를 보살핀다는 자가 황룡의 수호를 받으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닌다니…. 수치스럽지도 않은가?”

“형. 저런 말 듣지 말고,”

원우의 동공이 확실하게 흔들리는 것이 티가 났다. 민규가 듣지 말라는 듯 양손으로 원우의 두 귀를 막으려 했으나 매몰차게 쳐내고 빠져나갔다.

“맞습니다. 전가의 인물이 모시는 분은 죄를 지은 저승사자이지요.”

“...! 꽃, 꽃무릇...”

“하지만 그 사실이 현재 생원들에게 해를 끼쳤습니까? 혹은, 서당에 문제가 발생하기라도 했습니까?”

멀리서 들었을 때부터 취기가 느껴지긴 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확실해졌다. 온통 붉은 도포를 입고는 거나하게 술상을 차린 모양이었다. 주작은 누구보다도 선하고 인간을 위한다더니. 그래서인지 저승사자는 안중에도 없었나 보다.

생원들은 잘못을 모르는 표정으로 기세등등하게 원우를 쳐다보았다. 손에 쥔 감투에 힘이 들어갔지만, 도포에 가려져 원우를 제외한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허구로 이루어진 말을 쉴 새 없이 뱉어대고, 행동 또한 품위 하나 지키지 않고 거친 것이... 혹여나 저승에 가게 되면 시왕이 혀 위에서 갖고 놀기 딱 좋아하겠습니다.”

“이 무슨, 무례한!!”

“생명력과 양기가 넘쳐나는 주작도, 죽음이 두렵긴한가 봅니다.”

상을 엎을 기세로 주먹으로 쾅 내리친 생원이 벌떡 일어나 원우의 앞에 우뚝 섰다. 기어이 원우의 눈에서는 얇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처 떨쳐내지 못한 분이었다. 그런데도 그와 마주친 시선을 피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살짝이라도 건드리면 깨질 것 같은 원우를, 민규는 안절부절못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승에서만 신을 모셔 온 당신께서 어찌 감히 사자의 죄를 어림짐작하려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승에서 기억을 지운 채로 다시 이승에 올라와 인간의 죽음을 모두 머리에 박아넣는 저승사자입니다. 겨우 스무 해도 넘기지 못하였으면서, 대체 어느 누구에게 무엇을 보고 들으며 일생을 보냈길래........”

말문이 턱 막혔다. 결국 뒷말을 이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감투를 써야 했다. 홀연히 사라진 원우에, 주작 생원은 허공에 대고 소리를 쳐야 했다. 그제야 민규는 밖으로 나와 주작 생원과 얼굴을 마주했다.

“언행이, 거치십니다. ...하하, 남들이 다 알만한 꽃을 품은 분이 어찌....”

“모란... 다 듣고 있었던 건가.”

“예. 꽃무릇이 모란과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황룡도 아니고 저승사자를 모시는 것도 아닌 제가 감히 한 말 얹어보겠습니다.”

“…….”

“말을 아끼십시오. 사자뿐만 아니라, 독각을 포함한 모든 신에 대해서도 다시는 입에 담지 마세요. 타인에게는 그저 죄인의 혼일 뿐이지만, 아무 기억도 가지지 못한 채로 수많은 혼을 달래 저승으로 인도하는 자가 겪을 고통은 감히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머릿속에 새겨두셨으면 합니다. ...모란이자, 바다의 경고입니다.”

민규가 겁도 없이 주작 생원의 어깨에 손을 얹어 툭툭 쓰다듬었다. 비소를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가 이를 바득 갈면서도 감히 모란에는 비비지 못할 것을 알아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규는 기어이 그 답을 듣고 나서야 원우가 있을만한 곳으로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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