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린

[빈린] 여름밤의 약속

[오마카세 타입] 갬이님이 신청하신 글커미션

written by. @saniwa_jeyeon CM

 

 

 

 

 

 

 

 

 

여름밤의 약속

 

 

 

 

 

 

 

 

 

 

알타이르, 데네브, 베가. 별들이 만드는 대 삼각형이 하늘에 자리하고 있던 여름밤.

 

가정초대회가 있었던 체이서 저택은 늦은 시간까지 낮처럼 밝았다. 가정초대회라고 하기에는, 체이서 가족과 절친한 사이인 이브넘 가족만 초대된 단촐한 모임이었지만, 그 준비는 많은 사람을 초대하는 모임 못지않았으므로, 가정초대회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음악을 나누는 모임으로 시작한 가정초대회는 해가 떨어지자 술과 안주가 곁들어진 어른들의 편한 모임으로 변했다. 부모님을 따라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하며 꺄르륵 거리면 아이들은 배제되어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는 뜻이었다.

 

“누나, 안 자?”

기분 좋은 바람이 드나드는 창가. 달빛도 별빛도 환하게 방안을 비추어왔다. 창가에 서 있던 여자아이, 린다 이브넘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비니, 하고 목소리의 주인의 애칭을 불렀다. 비니, 제 이름을 불린 빈센트 체이서가 천천히 방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너야말로 안 자?”

 

“모처럼 누나 왔는데 자기 싫어.”

 

“내가 자고 있으면 어쩌려고?”

 

“그럼 방에 돌아가서 자야지. 내일 일찍 일어나서 누나 배웅하려면.”

 

무슨 남자애가 이렇게 순하고 말도 예쁘게 한담. 졸리긴 한 듯, 빈센트는 손으로 눈을 비비며 방구석에 자리한 소파에 앉았다. 빈센트의 옆에 앉은 린다는 저보다 어린 동생같은 남자아이가 귀여워서 뺨에 쪽쪽 뽀뽀를 해주었다. 린다의 입맞춤을 받은 빈센트가 기쁜 듯 배시시 웃었다. 빈센트는 말만 예쁘게 하는 게 아니었다. 하얀 피부와 반짝이는 초록빛 눈동자를 가진 인형처럼 예쁘게 생긴 남자아이였다. 린다는 이따금 빈센트가 정말 친동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찍 안 일어나도 될 걸. 어른들 내일 늦게 일어날 게 분명해.”

 

히히, 웃으며 빈센트가 린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체이서 부부나 이브넘 부부나 평소에는 그러지 않았지만 함께 있으면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는지, 술고래가 되곤 했다. 그들은 술도 친구도 너무 좋은 나머지 가족끼리 모임을 할 때면 만취하는 경우가 잦았다. 빈센트도 이브넘 가족이 저택에 오는 날은 와인 창고가 거덜 나게 되는 날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도 모두 점심 무렵에나 눈을 뜰 것이다. 언제나 더 자고싶어하는 빈센트를 깨우는 부모님이 늦잠꾸러기가 되는 날이기도 했다.

 

 

 

“어른들은 술이 그렇게 좋은 걸까?”

 

“맛은 별로 없던데.”

 

“먹어봤어?”

 

“궁금해하니까 아빠가 한 모금 줬어. 엄청 썼어. 누난 먹지 마.”

 

그 맛이 떠올랐는지 빈센트가 혀를 살짝 내밀고 얼굴을 찌푸렸다. 빈센트는 표정으로 그가 와인을 마시고 어떤 기분이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달했다. 린다는 잘 알겠다는 듯, 나는 안 마셔야지-먼 미래에, 그녀는 와인병을 안고 소파에 길게 누워있기를 좋아하는, 애주가가 된다-하고 중얼거렸다.

 

“누나 초콜릿 먹어.”

 

빈센트가 들고 있던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하나씩 포장된 초콜릿을 꺼냈다.

 

“자기 전인데?”

 

“아직 안 자니까!”

 

“고마워.”

 

린다가 빈센트가 내민 초콜릿을 받아서 포장을 까곤 입에 집어넣었다. 달콤한 맛이 퍼지는 가운데, 딱딱한 게 씹혔다. 아몬드가 들어있는 초콜릿이구나. 맛있다. 입안에서 몇 번 굴리자 초콜릿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린다가 아쉬운 표정을 짓자, 빈센트가 그녀의 손에 초콜릿을 하나 더 쥐어 주었다.

 

“넌 안 먹어도 돼?”

“응, 난 누나가 먹는 거만 봐도 좋아!”

 

린다는 다시 한번 빈센트가 친동생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가끔, 가족 모임을 할 때만 만날 수 있는 게 아쉬웠다. 린다 또래의 여자 친구들은 동생 같은 건 귀찮고 맨날 싸우기나 한다며 불평하곤 했는데, 린다는 그건 그 애들의 동생이 유독 말썽꾸러기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우리 빈센트는 이렇게 착하고, 순하고, 귀여운데.

 

“매일 매일 같이 있으면 좋겠다.”

 

“나도.”

 

“응?”

“나도 누나랑 매일 매일 같이 있으면 좋겠다.”

빈센트가 린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다. 작고 동글동글한 머리가 깃털처럼 가벼웠다. 린다는 손을 들어 빈센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머리카락 감촉이 사락, 하고 부드러워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괜찮아.”

 

“응? 비니, 뭐가 괜찮아?”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지금은 아니라도 누나랑 매일 매일 같이 있을 수 있는 방법이 있댔어.”

 

“어, 그게 뭔데?”

 

“누나랑 내가 결혼하면 된댔어!”

 

그러니까 나중에 커서, 자기랑 결혼하자고 천진난만하게 재잘거리는 빈센트가 린다의 눈에는 마냥 귀엽기만 했다.

 

“그치만 나는 비니가 남편보단 동생이 되는 게 좋은데…”

 

“동생 같은 남편 하면 안돼? 우리 아빠도 집에서는 엄마보고 누님, 누님해!”

 

“그런가?”

 

나름대로 논리적이고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린다도 조금 졸리기 시작해서, 멍한 머리로 넘어갈까 말까했다. 무엇보다 빈센트가 저렇게 귀엽게 재잘거리고 있노라면, 이 애가 말하는 건 뭐든지 들어주고 싶어졌다.

 

“나랑 누나랑 결혼해도 꼭꼭 누나라고 부를게!”

 

“음, 좀 더 들어봐야 결정해야 겠는 걸?”

 

“매일 제일 예쁜 꽃을 따다가 선물할게!”

 

“그리고 또.”

 

“음, 음…늘 누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오늘도 예쁘다고 말해줄거야.”

 

“정말? 일어날 수 있겠어?”

 

“응!”

 

아침에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빈센트를 알고 있는-그 이유로 이따금 빈센트는 이브넘 가족을 배웅하지 못하곤 했다, 물론 린다도 아침잠이 많아서, 자고있는 린다를 이브넘 부부가 안아 옮기곤 했다-린다는 꺄르륵 웃었다. 빈센트가 단단히 각오를 하고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좋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해!”

 

“이모랑 삼촌보다?”

 

“응! 난 세상에서 누나를 제일 좋아해!”

 

그래. 어차피 또래 남자애들도, 더 어린애들도 다 말썽꾸러기에 사고뭉치들 뿐인 걸. 크면 어차피 결혼을 할 텐데, 그럼 빈센트랑 계속 함께 있는 것도 좋겠다. 빈센트는 커서도 예쁘고 귀여울 테니까. 빈센트를 꽉 끌어안고 이마에 뽀뽀를 두어 번 더 해준 린다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둘 다 자야 할 시간이다.

 

“그럼 그럴까? 커서 비니랑 결혼해야지.”

 

“누나…그럼 나랑 약속, 손가락 걸고.”

 

“자, 손가락 걸고 약속.”

 

새끼 손가락을 걸자, 빈센트는 행복하게 웃었다.

 

 

“가자, 방까지 데려다줄게.”

 

“아니, 내가 누나 데려다줄게. 누나는 손님이니까.”

 

“그럼 부탁 좀 할까?”

 

“응!”

 

린다와 빈센트는 손을 잡고 걸어갔다. 아직 어른들의 모임은 끝나지 않았는지 복도가 밝았다. 좁은 보폭으로 걸어가면서, 린다는 빈센트의 손이 참 작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자기보다 커질까 싶으면서도, 언제 클까 싶었다. 아직 어린 소녀는, 저와 나란히 걸어가는 어린 소년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몰랐다. 빨리 누나보다 커야지, 빨리 누나보다 커서 누나를 꼭 안아줘야지. 하고 생각하는 어린 빈센트를, 알지 못했다.

 

알타이르, 데네브, 베가. 별들이 만드는 대 삼각형이 하늘에 자리하고 있는, 평화로운 여름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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