絲
斑紅斑
* 사망 묘사 주의
* 약 3400자 단편
편지가 왔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인 줄로만 알았다. 한자를 잘못 읽었다거나.
아니었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틀림없이 그 녀석의 이름이다. 평범하지 않은 성씨에, 자신을 너무나도 잘 나타내는 이름에.
미케지마의 편지를 열어볼 자신이 없었다.
이미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누군가가 보낸 질나쁜 장난 편지가 틀림없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그 이름을 본 것이 정신 사납게 굴던 녀석들로 둘러쌓인 상태였던 것이 후회된다. 조금이라도 더 잘 대해줘야만 했는데.
옆 테이블에 편지를 올려둔다. 차마 읽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떠올리지 못할 것도 없었다.
번쩍 하는 자동차의 전면등이 눈을 비추더니 순식간에 들이받았다. 무슨 상황인지 깨닫기도 전에, 미케지마는 나와 착 달라붙어 있었다. 누가 먼저 감쌌는지도 모를 정도로 엉켰다.
그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오직 한 명만이 죽었다.
차라리 둘 다 죽었다면 좋았을텐데.
뉴스에는 이렇게 나왔다.
‘교통사고로 인해 중상 2인… 이송 도중 1인 사망’
아무것도 달라지는건 없었다. ES의 어느 아이돌이 죽었다, 그 뿐이었다.
사고 후 며칠간은 그럭저럭 지낼 만 했다. 누군가 하나 없어진 거라고만 생각했다. 이런 독립이 쉬울 줄 알았다.
미케지마를 습관적으로 찾으면서 뭔가 잘못됨을 느꼈다. 이미 다른 세계의 사람인데, 부른다고 오지도 못하는데.
싫을 정도로 조용했다.
가끔 찾아오는 모리사와나 신카이를 빼면, 그 아무도 미케지마의 얘기를 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나에게 전한다고 한들 바뀌는 것은 없었다.
대신 자기의 이야기를 수없이 늘어놓았다.
홍월은 당분간 2인조로 활동한다고 했다. 하스미 나리는 내 자리는 비워놓겠다고, 조용히 말했다. 칸자키는 담담한 척 나를 걱정하며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발키리는 오래전과 마찬가지로 활동 중지. 이츠키가 단독으로 행한 결정이다. 어느 날은 몇 시간이고 내 앞에 가만히 있어서, 카게히라가 끌고 간 적도 있었다.
니토는 혼자 왔다.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케이토칭이랑 이츠키는 건강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말을 듣자니 여전히 안심되었다.
유성대는 매번 반응이 똑같았다. 모리사와는 테츠를 말리고, 테츠는 나를 붙든 상태로 울고, 신카이는 그런 둘을 조용히 쳐다볼 뿐이었다.
가끔 늦은 시간에는 사쿠마도 왔었다. 미케지마의 대신이라며 맥락없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자세히 말하자면 신세한탄에 가까웠다.
츠키나가는 아주 가끔, 귀국을 할 때면 매번 찾아왔다. 똑같았다. 바닥에 작곡을 하고, 흥얼거렸다. 뭐더라, 쿠로 빨리 돌아와의 노래였던가….
여동생은 오지 않았다. 간혹 아빠나 테츠가 그 대신이라며 꽃다발을 한아름 들고 찾아올 뿐이었다.
어느새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내 처지에 맞지 않게 선물이 가득했다. 수복히 쌓여있는 꽃들이 시들지 않았으면 했다. 이것들을 전부 키우려면 가드니아 녀석들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될 터였다.
실은 알고 있었다. 외로웠다.
조금 더 있었으면 했다.
미케지마가 찾아왔으면 했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아서,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만난다면 너를
구할거야.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네가 슬프겠지만.
뒷말을 삼킨다. 조용히 미케지마의 편지를 열었다.
류 군, 이라며 나를 부르는 여성 어투의 목소리. 나중에 응답해주기로 하고서 천천히 읽는다.
쿠로 씨.
제대로 갔으려나 모르겠네에. 우선은 미신이니까, 뭐어….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때 쯤이면 나는 별 일 없을거다, 바보야아. 놀랐지이? 쿠로 씨가 없어도 살만하더라아. 세상은 넓고, 즐길 거리는 많으니까아! 물론 장난이지롱.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만나러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아!
뭐…. 쿠로 씨는 이런 걸 싫어할테니까 본론만 말하자면.
별건 아니고, 내 이야기를 해보려고.
쿠로 씨. 쿠로 씨는 내가 보고 싶어? 아니면 더이상 보지 않아서 잘됐다고 생각해? 난 보고 싶더라. 내 나름대로 생각했는데, 사람은 사회성 동물이 맞는 것 같아. 날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힘들기만 하고, 좋을게 없어.
레오 씨 말이지, 안 그래보여도 걱정을 많이 하고 있어. 아무리 레오 씨라고 해도 나랑 쿠로 씨를 동시에 보내긴 싫은 거야. 땅바닥에 뭘 쓰고 있어서 흘깃 쳐다보면, 제목이 다 똑같은거 알고 있어?
내가 말솜씨가 없어서 제대로 전해질 지는 모르겠지만…. 쿠로 씨. 내가 많이 좋아하는거 알지? 아직도 그때 일은 생생해. 눈만 감으면 떠오른다니까.
내가 쿠로 씨 만난다고 엄청 기대했었어. 비 오는 날 잘 보이려고 일부러 주황색 옷도 입었었고(쿠로 씨가 재수 없다고 했던 그거), 혹시나 쿠로 씨가 추워할까봐 옷도 하나 더 입었어. 결국엔 쓸모없었지만.
그래서 쿠로 씨를 만나려는데, 글쎄. 쿠로 씨 옆길을 지나는 차가 이상하더라. 멈춰야 할 때인데도 안 멈췄어. 그래서 무서웠어. 또 친구를 잃을까봐. 쿠로 씨를 살리고 싶었어.
그런데 정신을 차리니까 쿠로 씨가 나한테 안겨있더라. 나는 바닥에 누워 있었고, 쿠로 씨는 내 위에 엎어져 있었고. 내 머리에 뭐가 흐르는게 있길래 만졌는데, 뭔가 빨간게 묻어나오더라.
몰라. 다음은 기억 안 나. 누가 119를 불렀나, 그래서 차에 실려갔어. 쿠로 씨 이럴 때는 멀쩡하더라…. 멀쩡하다기엔 위험했지만. 그리고 나중에 눈 뜨니까…. 나만 다른 데에 동떨어져 있었어.
내가 죽기라도 한 줄 알았지 뭐야.
죽은건 너인데도.
쿠로 씨. 보고 싶어. 몇 밤을 더 보내야 만날 수 있는거야? 아무것도 못 타는 주제에 어딜 그렇게 떠난거야? 나랑 같이 여행이라도 가기로 했으면서. 나 혼자서는 재미없는데 말이지.
돌아와.
벌써 쿠로 씨를 보내고도 계절이 2번은 넘게 바뀌었어. 벛꽃은 다 떠난지 오래고, 소나기도 자리를 비켜줬어. 단풍도, 눈살도, 그 모든 것과 헤어졌어. 그런데 쿠로 씨만.
너만 오면 되는데, 너 하나가 없더라.
모두가 걱정하고 있어.
케이토 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네 무덤을 관리하고, 슈 씨는 네 묘비를 몇날이고 껴안고 있어. 테토라 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치아키 씨는 자신의 탓이라며 돌리고 있어.
이렇게 말하니까 더 보고 싶어. 쿠로 씨의 사진을 보고 있는데도, 이렇게 편지를 보낸 정도로 간절한데도.
쿠로 씨. 돌아오기만 하면 뭐든지 해줄게. 더 이상 마마라고도 하지 않을거고, 장난도 치지 않을게. 돌아와.
그거 알아? 쿠로 씨가 나 보기 싫어서 일부러 장난치는 줄 알고, 그렇게 몇 밤을 샜던 적이 있다? 새벽에 갑자기 돌아올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쿠로 씨가 없다는게 이렇게 클 줄은 몰랐거든. 어느 날부터 갑자기 자각하더라.
이제 쿠로 씨는 없는 거구나. 나 혼자 살아야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힘들었어.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써보는데…. 전해지지 않을 거라고는 알고 있어.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을 거니까. 그래도 만약 본다면.
주제넘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있지. 너를 많이 사랑했아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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