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r Lucis

후회의 이름

한 번의 선택으로 갈리는 세계에, 미련이 없었냐고 한다면…….

Final Fantasy XIV, WoL x Fandaniel

“후회하지는 않는 겁니까?”

“……응?”

창가에 놓인 꽃에 물을 주던 케테르의 손이 멈췄다.

사시사철 추운 지고천 거리라고는 해도, 오늘은 유독 볕이 좋은 날이었다. 창으로 새어들어오는 빛은 분명한 색채로 온통 무채색인 집을 물들였다.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시간의 한 자락. 항상 은은한 마력이 감돌기에 서늘하지는 않은 공간이었지만, 어쩐지 조금 더 따스한 것만 같은 아침.

태양의 색으로 치우친 순백 위에는 칠흑을 감은 이가 둘 있었다. 최초 발화자는 엄밀히 말하면 조금 달랐지만, 얼빠진 표정을 하는 빛의 전사는 말 그대로의 암흑이었다. 봄의 온기가 깃든 곳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주인일까. 멀쩡히 살아있는 주제에 어떠한 생명의 빛깔도 가지지 않은 남자. 그에게 존재하는 색채란 보색 관계에 놓인 두 눈이 전부였다. 태양과 꼭 같은 금빛과 한밤의 청자빛. 마치 이 공간이 안고 있는 모순처럼.

작은 물뿌리개를 내려놓은 그가 창틀에 기대어 몸을 돌렸다. 역광을 받은 남자의 얼굴에서는 표정을 읽을 수 없다. 별의 이름을 버리고 스스로 그림자의 이름을 택한 자. 그것을 증명하듯이.

“후회는 없냐고 물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당신이 더 잘 알 텐데요? 스스로의 선택을 돌아보시죠.”

“하하…….”

그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작게 웃었다가, 말없이 창틀을 톡톡 두드리다가, 늘어진 커튼을 걷었을 뿐이다. 채 들어오지 못했던 햇살이 방을 밝혔다.

불필요, 무의미의 연속. 생을 구성하는 요소를 취할 필요가 없으면서 굳이 행하는 것. 식물에 특별한 감흥도 없는 주제에 소중한 존재라도 되는 마냥 매일 돌보는 것. 천직인 점성술사를 두고 암흑을 다루는 수호자 행세를 하는 것. 파다니엘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가해지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제 생명을 어떻게든 붙들어놓는 것.

같이 녹아버릴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의 바다 내해까지 비집고 들어온 순간부터.

뱉을 수 없던 말은 결국 형태가 되지 못했지만 그는 그것마저 이해했다. 했을 것이다, 라는 추측은 통하지 않았다. 그와 자신을 이루는 에테르가 같아서가 아니었다. 이것은 어떠한 특성에도 기반하지 않은, 온전히 마음에서 비롯된 완전한 이해였다. 본질적인 물음을 알았다. 후회하지 않느냐는 피상적인 질문 뒤에 감춰진 원망을 보았다.

살고 싶지 않은 이를 살린 것에 대한 후회는 없느냐고.

당신도 이 길을 거쳤기에 알고 있지 않느냐고.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눈이 그친 하늘은 맑았다. 냉기와 온기가 뒤섞인 바람이 앞머리를 날렸다. 환한 햇살이 그의 모순을 더욱 뚜렷하게 밝혔다. 그에게서 유일하게 뚜렷한 빛. 삶을 천명하면서도 죽음이 물든 보라색. 세계를 구했으면서도 그 스스로만은 구하지 못한 역설의 존재.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가 없는 존재는 없어, 파다니엘. 나라고 다르지 않아.”

“그렇다면 어째서 돌이키지 않죠? 돌이킬 힘도 가지셨잖아요? 지금이라도 이 빌어먹을 숨통을 끊어 버리면 되는 거라고요. 할 수 있잖아요, 당신 만큼은!”

미동조차 않던 눈이 잠시 감겼다. 우습기도 하지. 그는 이런 충돌이 있을 때마다 흔들렸다. 이러한 대립은 한두 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가볍게는 단순한 비아냥거림으로, 흔하게는 파다니엘이 스스로를 해하는 방식으로, 드물긴 했으나 때로는 서로의 생명을 꺼뜨리기 위한 난전과 함께 일어나기도 했다. 족히 몇십 번은 일어났을 식상한 대치에도, 언제나 평정을 유지하는 빛의 전사님의 이름이 무색하게 마음의 동요가 겉으로 드러났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서글픔이 묻어났다. 큰 소리가 쓸어낸 자리에는 고막을 누르는 침묵만 남는다. 그는 결국 고개를 완전히 돌려 창문 바깥을 바라보고 말았다.

“……가지 않은 길이 정말 무의미했는지, 내가 가는 길이 정말로 의미가 있는지,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거든. 너도 모르고, 나도 몰라. 돌이킨다 해도 그것이 더 올바르게 나아간다는 확신도 없고. 후회하지 않냐 물었지? 확실하게 답하면, 안 해. 전혀.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있어. ‘아, 조금 달랐으면 어땠을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다시금 뒤를 돈 케테르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남아있지 않았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그는 가볍게 웃었다. 더이상은 역광이 아니었다. 그는 햇빛을 받으며,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주장하고 있었다.

“늘 생각했어. 조금만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 안일함이 너를 너무나도 큰 위험에 몇 번이나 빠뜨렸고, 내 섣부른 생각이 너에게 쓸데없는 짐을 얹어 버렸으니까.”

그림자에 녹아든 태양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그저 감추고 있었을 뿐이라 말하는 듯이.

너를 선택할 수 없었던 나에 대한 속죄.

“그거 알아? 너는 내가 선택한 ‘가지 않은 길’이야.”

그러니 돌이킬 수 없는 법이다.

나의 후회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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