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월

랑랑이가 유튜버까지 한다면?

자컾 로그 / 랑월 / 4주년 기념 로그.

오늘 20:00 '4주년 호텔 Vlog' 최초공개

최초공개 제목에 이끌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공개까지 아직 여섯시간이나 남았는데 반응은 벌써부터 뜨거웠다. 평소에도 서로 못해줘서 안달인, 달달하다 못해 이가 썩을 거 같은 이 커플이 기념일이라니. 그것도 4주년이라는 큰 기념일이라니. 제목도 제목이었지만 썸네일도 사람들을 모으는데 한 몫했다. 스파부터 스카이 라운지, 룸서비스와 뷰까지 모든 평가가 흠 잡을 곳 없는 고급 호텔의 스카이 라운지에서 찍은 월터의 사진. 제목에 어느 호텔인지 정확하게 나와있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그 호텔이었다. 기념일에 고급호텔 Vlog라니. 마땅한 공식 팬카페도 없는 채널이었기에 팬들은 최초공개 채팅창에 모여 화력을 더해갔고, 영상이 공개되기 전부터 알고리즘을 타 더욱 불타올랐다.

그리고 한 시간 전부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랑랑은 월터의 품에 안겨서 핸드폰 화면만, 정확히는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만 볼 뿐이었다. 무수히 쏟아지는 주접과 고백들. 그것들이 다 팬심인 걸 알았지만, 아카이빙을 위해 자신이 시작한 유튜브였지만 이렇게까지 월터한테 사랑이 쏟아지는 건 싫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월터의 목을 끌어안자 월터는 웃으며 랑랑의 머리를 빗어주듯이 쓰다듬었다.

"랑랑이 마음대로 해."

언제든 돌아오는 답은 같았지만 랑랑은 정할 수 없었다. 자신이 원해서 한 거였지만 이런 관심은 원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혼자만 보기에는 월터가,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멋진 사람이라고 사방팔방에 알리고 싶었다. 말주변은 없고 컴퓨터를 만지는 건 자신있어서, 그리고 추억을 모아놓고 싶어서 시작한 유튜브였는데 이렇게 화제가 되니 원했지만 원한 결과가 아니어서 랑랑은 마음의 갈피를 못 잡았다.

"…일단, 방으로 갈래요. 형아는… 여기서, 있어요…."

편집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고, 영상이 나오면 혹시 월터가 공개하기 싫은 내용이 있을까 확인도 받아놓고 업로드 할 때면 랑랑은 꼭 혼자 방에서 보길 원했다. 최초공개 없이 올리며 둘이서 같이 보고 행복해 했지만 하나 둘 관심을 주는 사람이 생기면서, 다른 사람도 같이 본다는 생각에 부끄러워 혼자 있고 싶어했다.

방에 들어오자 30분정도 시간이 남았다. 불타던 사람들도 어느정도 가라앉고 봐준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나 유입된 사람도 있어서 채팅창에 올라오는 내용은 뒤죽박죽이었다. 차라리 이런 분위기가 랑랑은 편했다. 아까처럼 사람들이 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꼭 무대에 올라간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이렇게 다양한 말이 오가면, 그 말이 자신에게 향하는 거라도 군중 속의 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조금 마음이 편했다.

별다른 채팅 없이 반응만 살피고 있다가 유튜브 자체의 타이머가 시작되자 타이밍에 맞춰 채팅을 쳤다. 다같이 타이머를 따라 채팅을 치는 이 시간은, 부끄럽지만 즐거웠다. 매 주 이 시간이면 꼭 새해를 맞이하는 것처럼 다 같이 새로운 것을 기다리는 들뜸과 설렘을 공유하는 것 같았고, 자신도 그 속에 속해 있는 것 같았다. 최초공개를 시작한 건 그런 이유였다. 알고리즘이나 유입을 신경썼다면 '아카이빙'인 채널 이름부터 바꿨겠지.

영상의 시작은 언제나처럼 화면이 켜지는 효과와 함께 랑랑의 느닷없는 인사로 시작됐다. 영상을 찍은지 한참이나 됐는데도 아직도 랑랑은 카메라에 대고 직접 말하는 걸 부끄러워 했다.

"4주년이라, 월터 형이랑, 같이… 호텔 가기로, 했어요."

말을 더듬는 것도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은 탓으로 생각했다. 랑랑은 그게 참 편했다. 사실 아직도 겁이 많아서 그런 건데. 카메라에 찍히는 것조차 부끄럽고, 영상이 올라가고 많은 사람이 본다는 생각 때문에 무서워서 그런 건데. ㄱㅇㅇ로 도배되는 채팅을 보며 랑랑은 절대 말하지 않을 거라고 다시금 다짐하며 영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월터가 차에 탔고 차창 밖 배경이 서서히 바뀌었다. 호텔로 향하는 동안 랑랑은 월터의 전화도 대신 받고 마실 것도 입에 대주고, 간식도 먹여주며 웃었다. 그날의 생각에 영상 밖의 랑랑도 웃었다. 그리고 호텔에 가서 하고 싶은 게 있냐는 질문에, 들었던 대답이 떠올라 랑랑은 얼굴을 가렸다. 그런 랑랑을 모르는 영상속 월터는 태연하게 무어라 말했다. 하지만 소리는 삐처리 되었고 입은 모자이크 처리되어 가려졌다. 그 말을 들은 영상 속 랑랑의 얼굴이 새빨개졌고, 랑랑이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혀, 형아, 찍고, 있는데…!"

평소에도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하는 월터였지만, 찍고 있는데도 그럴 줄은 몰랐다는 듯 영상 속 랑랑은, 최초공개를 보고 있는 랑랑처럼 빨개진 얼굴을 가렸다. 귀엽다, 달달하다로 도배되었던 채팅창은 순식간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도 들려줘!'. '우리도!', '모자이크 나가!'. 심지어 19금 이모티콘까지 올라오는 걸 보며, 거실에서 보던 월터는 소리내어 웃었다. 웃음소리가 방으로 들어가자 랑랑은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형아, 때문이잖아요…!"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둘은 스카이 라운지로 향했다. 포토존과 찍는 사람이 보이게 카메라를 세팅하고 나서 랑랑은 한참동안 월터의 사진을 찍었다. 한참 다양한 포즈와 애교를 보이던 월터는 랑랑이 사진을 고르는 사이 카메라 쪽으로 와서 작게 속삭였다.

"사진 찍을 때 아니면 부끄러워하느라 애교 제대로 안봐줘요. 물론 그것도 귀엽지만."

'미쳤다', '랑랑이 강하냐?', '월터 유죄', '남의 남자한테 심장이 뛰네'

온갖 주접 채팅이 올라왔고 랑랑은 입술을 삐죽였다.

'고민하다가 형이 귀엽다고 해준 거라 넣었는데…. 역시 넣지말걸 그랬나.'

영상 속 랑라이 사진을 다 고르자 월터가 랑랑의 손을 잡고 포토존으로 이끌었다.

"같이 찍어야지."

직원에게 사진을 부탁하며 월터가 손을 잡자, 랑랑은 부끄럽다는 듯 빨개진 얼굴로 웃으며 사진 찍는 카메라를 봤다. 웃는 사진, k하트 사진에 이어 뽀뽀하는 사진이 찍히자 채팅창은 또 다시 불탔다. 사진을 찍으면 보통 영상에서도 보여줬기에 다들 '큰 거 오나?', '큰 거 온다.' 하며 기대하고 있었는데 사진 없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왜 안보여주냐 불타는 채팅창에 랑랑은 짧게 채팅을 하나 올렸다.

[저만 볼 거예요…!!]

채팅창 여론은 초등학교 쉬는 시간 딱지마냥 쉼없이 뒤집혔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아까 못한 방구경도 하고, 스파도 즐기고 나자 저녁 시간이 되었다. 보통 1박 2일 여행이면 집에 돌아가는 것까지 영상에 담았는데, 저녁을 먹으며 와인잔을 부딪히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상이 끝났다. 그리곤 나오는 아웃트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난리가 났고, 랑랑은 대답하지 않은채로 컴퓨터를 껐다. 다들 눈치챘겠지. 난리난 채팅창 반응이 잊혀지지 않은 랑랑은 방에서 나와 다시 월터의 품으로 돌아갔다. 월터 역시 영상을 보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랑랑을 끌어안았다. 오랫동안 입어 목이 늘어난 랑랑의 원피스가 흘러내렸다. 그 아래에는 잔뜩 긁힌 등과 월터의 송곳니 자국으로 엉망이 된 피부가 있었다.

랑랑이의 머리를 정리해주다가 그것들을 본 월터는 웃으며 랑랑의 어깨에 입을 맞췄다.

"사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릴까?"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지만 랑랑이가 싫어하며 자기를 독점하고 싶어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말없이 고개를 저은 랑랑은 월터의 어깨에 남긴 울혈을 손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진 말고…. 더 남겨줘요, 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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