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으로 문창과는 봐줍시다 (1)
인생은 쓰다. 그냥 쓴 것도 아니고 존나게 쓰다. 지금 마시고 있는 소주보다 더 쓴 게 인생이다. 더 말해서 무엇하랴. 삼삼오오 모여서 너는 무슨 과니, 학교에 다닐 땐 뭘 잘했니 이런 것들을 묻는 자리에서 나는 혼자 소주만 죽어라고 먹고 있었다. 후배들은 기력이 어찌나 좋은지 대화 주제가 한 바퀴 돌고 난 뒤 지치지도 않고 현대인의 필수지식인 MBTI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했다. 그러다 대뜸, 누군가가 질문을 던졌다.
“만약 세상에 갑자기 좀비가 나타나면 어떻게 할 거야?”
제법 흥미로운 질문이다. 나는 아닌 척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음. 저는 가족들을 데리고 백화점으로 가서 맨 위층을 점거할래요.”
“그러다 좀비한테 들키면?”
“때려잡아야죠.”
저 녀석은 체교과.
“백화점 말고 임시 숙소에라도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방공호 같은 곳이요. 지역마다 하나 씩은 있잖아요.”
저 녀석은 건축과.
“맞아요. 그런 곳에 있어야 정보를 들을 수 있다고요. 게임에서 보면 늘 그런 곳이 중요하잖아요.”
저 녀석은 컴공과.
“사람은 필요 없어! 전 무조건 동물부터 구할 거예요. 사람은 죽어도 돼.”
이 극단적인 미친놈은 수의학과.
“시현아, 넌?”
고개를 들어올리자 여러 개의 시선이 한눈에 보였다. 동아리장이 나를 보며 히죽 웃었다. 저 새끼는 조소과다. 망치질보다 미팅을 더 자주해서 문제지만. 대답을 하기 전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마저 비웠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소주가 달았다. 꼭 첫 잔 처럼.
“최대한 빨리 죽어야지.”
나는 문창과다.
재난 영화에는 수많은 직업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영화에 배치되는 등장인물은 전부 다 저마다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등장하는 캐릭터이며 등장과 퇴장에 분명한 목적이 있다. 생존이 최우선목표인 장르에서 작가와 인문학자가 등장하지 않는 건, 당연히 그들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요리사는 던전에서도 밥을 만들고 무당은 영매라도 해서 재판에서 이기게 해주는데 작가는 대체 뭘 한단 말인가? 나도 작가가 되어 글을 쓰는 것으로 먹고 살고 싶지만 참 답이 없는 직업이다.
사실 직업이 작가인 캐릭터가 등장해서 뭘 하겠는가? 전기공학과가 배선을 고치고 화이트 해커가 보안 프로그램을 만지고 조소과가 망치로 좀비를 내리치고 있을 때, 작가는 대체 무얼 할 수 있냔 말이다. 기껏해야 투**우의 한 장면 처럼 책을 땔깜으로 쓰면 안 된다고 울기나 하겠지.
내가 술에 취해 이런 말들을 늘어놓자 처음에는 내 말을 듣는 시늉이라도 하던 후배들이 어느새 하나둘 씩 사라져 내가 앉은 테이블이 텅 비어버렸다.
“야. 홍시현. 네가 타노스보다 적중률이 좋은데? 타노스는 인류의 절반까지 죽일 수 있는데 넌 다 죽였다.”
“흥. 웃기는 소리. 타노스의 인류에는 동양인과 대다수의 여성은 포함되지 않아. 그러니까 타노스의 적중률은 사실상 3할도 안 된다고 볼 수 있지. 더러운 백인 남성 우월주의자들. 타노스도 백인 남성이었어.”
“……. 내가 말하려는 게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이상한 부분에서 딴지를 거는 게 사회성 없는 오타쿠의 특징이라는 거 너도 알지? 술 그만 먹고 자취방으로 꺼져라.”
“네가 뭔데 나보고 가라 마라야. 너 뭐 돼?”
“어. 동아리장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기득권자가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이런 더러운 사회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사회냐? 자유시민들이여, 일어나라. 혁명을 일으키자!”
그러나 나는 일어나지 못하고 식탁 위에 철푸덕 엎어졌다. 염병. 현실고증 미쳤네. 일어나기도 전에 쓰러지다니. 진정한 인문학자다운 태도였다. 술에 취해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누군가가 내 앞에서 싹싹 비는 꿈이었다. 문창과적 입장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라 무슨 일인 지는 몰라도 상대가 무조건 잘못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렇게 빌어도 안 된다고 했다. 상대는 내가 거듭 거절하자 화가 났는지 씩씩대며 뭐라고 외치고는 내 뒤통수를 퍽 후려쳤다. 누군가와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직접 얻어맞는 것도 문창과적 입장에서 흔한 일이 아니라 당황해서 어어, 하는 사이에 그 녀석은 후다닥 뛰어가 버렸다. 혹시 내가 잡을까 봐 얼른 도망가는 모양새였다.
나는 꿈 속에서도 경찰 부르라고 크게 소리를 쳤다. 합의금이라는 명목의 불로소득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까지 생각한 순간 엄습하는 쎄한 기운에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새까맣고 안광이 없는 눈을 보았다.
“아아아아아아악!”
눈 앞에 피칠갑이 된 양의 머리가 있었다. 식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질을 치다가 딱딱한 뭔가에 걸려 자빠졌다. 비둘기의 시체였다.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주위를 살펴보니 몇 십 마리의 동물 시체가 피범벅이 된 채로 사방에 널브러져있었다. 비릿한 혈향이 자욱해 코가 마비될 것 같았다.
“…….”
충격적인 광경에 나는 그대로 기절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속이 참을 수 없이 메슥거려서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익숙하지 않은 향 냄새가 고요했으나 귀에 정제되지 않은 소란스러운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 이 녀석이 무슨 일을 저지른 건 분명합니다. 그곳에 있던 동물 사체가 무려 49구였습니다. 49구요. 제정신으로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이번에는 가주님께서도 감싸지 못하실 겁니다. 차라리 잘 됐습니다. 아예 내쫓아 버립시다.”
험악한 소리를 듣고 있자니 속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머리까지 어지러워서 나는 누운 채로 병상 옆의 협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저기 누, 웁.”
누구 없냐고 물어보려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구토를 하고 말았다. 순리를 거스르고 역행하는 이물질에 눈이고 코고 목이고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았다. 한 차례 거센 폭포가 쏟아지고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아까까지는 분명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내가 목을 부여잡고 켁켁거리는 소리만이 전부였다. 살다 살다 이렇게 아픈 건 처음이었다. 50도가 넘는다는 중국의 유명한 술을 한 병 다 마시고 난 다음 날에도 이정도로 속이 아프진 않았다. 누군가 내 목구멍에 손을 집어넣고 위장을 박박 긁어내는 것 같았다.
“누구 없, 으윽.”
다시 한 번 도움을 청하려고 애써 입을 열었다가 2차 폭포가 시작될 것 같은 예감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불행하게도 손에 무언가가 질퍽하게 묻는 느낌이 들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반사적으로 입에서 손을 떼어내고 손바닥을 보았는데 놀랍게도 내 손에는 핏덩어리가 묻어있었다. 그냥 피가 아니라 점성이 있는 핏덩어리였다. 설마 하는 마음에 폭포가 쏟아졌을 바닥을 보니 바닥이 온통 핏빛이었다.
“…….”
나는 시야가 흐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아무런 저항 없이 다시 쓰러졌다. 무려 3번째 기절이었다.
그 뒤로는 기억이 희미했다. 마치 죽은 것처럼 깊이 잠을 자다가 목구멍이 타는 듯 아파와서 목을 부여잡고 긁어대며 몸부림을 친 적도 있었고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서 가슴을 퍽퍽 친 적도 있었다. 시간을 볼 겨를이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아주 오랜 시간을 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뜰 때 눈이 제법 뻑뻑하게 느껴졌다.
“일어나셨군요?”
다분히 사무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다.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목을 어거지로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목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조금 움직일 때마다 뼈와 근육이 아파왔다. 내 목에 뼈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을 하려는데…….
“…….”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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