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첫 번째 만약, 도서관에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그는 마침내 도달했다. 세계의 끝이라는 곳에. 절벽 끝에 선 그는 바이크에서 잠시 내려 사진을 찍었다. 핸드폰에 줄줄이 달린 스트랩이 흔들거렸다. 단 한 장 찍은 사진에선 저멀리 벌건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뜨고 있었다. 그는 어쩐 일인지 곧바로 SNS에 올리지 않고 다시 바이크에 올라탔다. 지구의 마지막 땅이라는 여운도 그를 잡아둘 순 없는 모양인지, 하얀색 바이크는 시끄러운 마찰음을 내며 고르지 않은 길을 달린다. 목적지는 추억이다. 그곳에서 언제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기계생명체에게 줄 것이 있었다.
ㅡ네가 나가지 못하더라도 걱정 마. 나라면 이곳에 언제든 올 수 있으니까. 내가 세상의 끝에 도달하게 된다면⋯⋯ 그때는, 그 사진을 꼭 현상해서 네게 선물할게.
두 번째 만약, 도서관에 대한 기억을 잃게 된다면
밤이 내린 도시를 걷는 여자가 있다. 여자는 조용히 사람들의 틈으로 섞여든다. 외투를 다 뒤져 몇 장 없는 지폐를 길거리 위에서 야채를 파는 노인에게 억지로 쥐여주고, 손을 내밀고 엎드린 노숙자에겐 핫팩을 건넸다. 장갑을 낀 손에 잡혀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내밀어진 전단지를 세 장이나 받곤 어딘가에 있을 쓰레기통에 구겨 버렸다. 그 길 끝에 만난 이들은 어딘가의 조합원, 무슨무슨 이름의 협회장과 휠체어를 탄 남자, 그리고 이젠 세상에 없는 누군가의 어머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는 길에서 아는 사람을 보면 표정을 팍 구기곤 인파 속에 제 모습을 숨기기 바빴다. 누군가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이 멋쩍고 좋은 말로 대답하는 게 어색해서, 그는 누군가 제 곁에 다가오는 것을 몹시도 불편해했던가. 다만 최근 몇 년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한 달 정도 모습을 감췄던 그가 제법 살가워졌다는 소문이 돌었다. 그에게 그 일에 대해서 물어도, 그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 길 끝에 있는 이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세 번째 만약, 도서관에서 나오지 못했다면
으슥한 도시의 그림자 속에 어슬렁거리는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유행이 한참 지난 하얀색 바이크를 타고 다녔다. 제법 귀여운 얼굴과 달리 그는 누구보다도 난폭하게 도로를 질주했다. 그리고 손에 든 작은 확성기의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면, 꼭 무슨 일이 얼어났던가. 그 여자가 사라지고 벌써 2년이 지났다. 그가 사라졌다고 한들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가 사라졌기에 변하지 않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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