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무지개는 어느 시간대, 어느 세계든 똑같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려는 하늘을 보았다. 본격적인 여름은 아직 아닐텐데 벌써부터 쏟아지는 비는 마치 더위가 더 심해지기 전의 유예 같이 느껴졌다. 대한민국, 고향을 떠나 중국의 사천, 그것도 시간대도, 역사도 다른 곳으로 온지 몇년이 흘렀다. 이제는 제갈 려라는 자신의 이름보다 당 려라는 이름이 더 익숙해졌고 쉽게 고개를 돌려 부름에 답하게 되었다.
그래도 30년 세월이 어디 가는 건 아니라 고향 하늘과 같은 무지개를 보자 방으로 돌아가는 걸음을 돌려 정원으로 나오게 되었다. 비에 적은 흙내음은 도시의 콘트리트와 다르며, 풀내음도 여기가 더 풍부하다. 그럼에도 무지개는 똑같이 보여서 그는 정자에 앉아서 고향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옷이 좀 젖기는 했지만
“고향의 노래인거냐?”
“어르신.”
그가 내는 인기척에 노래를 멈추고 려는 다가오는 그를 잡아 당겨 제 무릎 위에 앉히고 잠시 멈추었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오 한낮의 태양 비 갠 하늘 무지개 우린 어디로든 떠날 수 있어~.”
“어디 가고 싶은게냐?”
가만히 안겨 있던 그의 말에 려는 노래를 멈추고 웃고 말았다.
“제가 가기는 어딜 갑니까?”
“혹시 아느냐, 왔을 때처럼 훌쩍 가버릴지 말이다.”
떠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굳이 묻는 그를 보면서 려는 웃었다. 방으로 오지 않으니 직접 찾으러 온 것도 알겠다. 그러면서 부르는 노래가 떠나고 어쩌고니까 괜히스레 심통 아닌 심통을 부리는 상태인 것을 알기에 려는 정자에서 일어나 방으로 걸음을 돌렸다.
“그냥 무지개도 뜨고, 비도 그쳤으니 놀러나 가고 싶다는 생각 했습니다.”
“그 생각만 했느냐?”
“고향 생각도 잠시 했는데 돌아간다든가 그런 건 아니고 무지개는 어디에서나 무지개다 싶어서요.”
“실없는 생각을 하는구나.”
“그리고 무지개도 이쁘지만 어르신은 더 이쁘다는 생각도 했고요.”
옆에서 걷던 걸음이 빨라지더니 순식간에 저 넘어로 가버린다. 방에 들어가면 틀림없이 붉어진 얼굴을 볼 수 있겠지. 무지개보다 더 사랑스러운 이 아닌가. 내가 어찌 당신을 두고 떠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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