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권은 마누라한테
2726 준탯
"햄아... 이게 맞는 기가. 내 눈이 이상한 거 아니제?"
어릴 적 말고는 본 적도 없는 통장을 든 채 통장 잔액의 0을 몇 번이고 다시 세고 있는 태성이다. 자기도 프로 선수면서 왜 이렇게 놀라는 건지. 그 모습마저 귀여워 느른한 미소를 띤 준수는 태성의 머리칼이나 가지고 논다.
당장 쓸 돈만 빼놓고 이제껏 모은 돈이 들어있는 통장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수입이 발생하면 다 태성에게 준 통장으로 돈이 들어올 곳이기도 했다. 학생 시절부터 조금씩이나마 모아둔 돈이니 적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태성의 반응이 과하긴 했다.
"어. 맞으니까 통장 좀 그만 봐. 너도 프로인데 왜 놀라는 건데."
"아니이...- 내랑은 액수가 다르다 아이가. 진짜 이거 내가 관리해도 되는 기가? 매주 용돈만 받고 산다꼬?"
벌써 몇 번째 같은 질문인지. 애초에 동거할 적에도 태성이 종알종알 이 예금 들어라, 저 적금 들으라고 할 때마다 자아 없이 어어, 했던 건 잊은 건가 싶다. 애초에 돈 쓰는 데 관심이 없는 건 저보다 태성이 잘 알 텐데.
동거할 적에도 크게 돈을 쓸 때는 태성과 데이트할 때와 농구화 구매할 때 말고는 없었다. 먹는 것에 관심이 있냐, 그것도 아니다. 음식에 대한 선호가 뚜렷한 편도 아니고, 근육량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 닭가슴살만 먹는다고 해도 별문제가 없었으니까. 동거 초기에는 그걸 보고 태성이 좀 질려하긴 했었다...
"태성아. 용돈 얼마 줄지나 고민해. 등신같이 그것만 계속 보지 말고."
참나. 곧 파묻힐 것처럼 통장을 보던 태성은 준수의 말에 고개를 든다. 이게 얼마고... 하면서 손가락으로 0을 세던 태성은 어디 갔는지 거만한 표정으로 통장을 흔든다.
"어허, 전하. 이제 예쁘게 굴어보소서. 햄의 월급통장은 내한테 있다. 수틀리모 용돈이고 뭐고 없는 기다."
이제야 바가지 긁는 마누라 같아진 모습에 좀 더 진한 미소를 지으며 태성을 소파 위에 눕힌다. 그 위를 점한 준수는 반소매 티를 벗어 던지고 고개를 숙여 이마를 맞댄다.
"서방님이 힘 좀 써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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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은 미래의 이야기
오전 훈련을 끝내고 팀원들이랑 구내식당에서 천천히 밥을 먹고 있는 준수. 팀원들끼리 저번 시즌 우승 기념 성과급 이야기하고 있는 걸 듣기만 하고 있다. 돈 관련 이야기는 여전히 별 관심이 없어 그저 태성이 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는 중이었다. 애초에 용돈 통장은 아예 다른 걸 쓰고 있기도 하고, 수입 통장은 태성에게 쥐여주고 아예 태성의 핸드폰에 은행 앱도 깔아 로그인해 준 지 오래였으니까.
"선배, 이번 인센 어떻게 하실 거예요? 투자? 아니면 플렉스?"
후배의 물음에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동료들의 시선이 전부 준수에게 쏠린다. 한 번도 같이 투자나 부동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던 준수라 어떤 대답을 할지 매우 궁금해하는 시선들이다.
"글쎄...- 나 용돈 받고 살아서 얼마 들어왔는지 모르는데. 태성이가 알아서 하겠지."
그것도 잠시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는지 준수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린다. 괜히 밥을 뒤적이다가 먼저 간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곧장 핸드폰을 꺼내 태성에게 전화를 걸며.
"그래서 이번 주 용돈이 많았던가. 하여튼 존나 귀여운 새끼..."
신호음이 끝나자 귓가로 태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용돈 받고 사는 준수가 보고 싶어 써봤습니다...
동성혼 가능, 모병제 아닌 대한민국으로 생각하고 작성했습니다.
준수가 프로 입성하고 태성이 졸업하자마자 프로포즈 했습니다. 약 2년 차 신혼부부 설정입니다. 현재 준수네 팀원들은 결혼식 때 모두 왔다는 설정으로 태성이를 알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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