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하오버]애증
의사가 나소드남자의 가슴을 주물렀다<- 이 한 문장을 보고 써낸 글
수치 조정, 출력 체크. 수술과 정비의 경계에 놓인 무언가를 마친 의사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위치해서 기동하는지 확인할 겸 나소드 남자의 가슴을 주물렀다. 의아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반나소드에겐 뭉친 근육 테라피라는 조금 허울좋은 변명을 던졌다. 사실 표피 아래에 위치한 것이 진짜 근육인지, 근육을 흉내내는 전선피복 타래인지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으면서도 그저 그것을 제 손으로 느끼고싶었을 뿐이었다. 체온이라고 해야할지 발열이라고 해야할지도 모호한 온기가 피부와 피부가 맞닿은 곳에서 전달된다. 인간의 몸을 하고있음에도, 인간이라 정의내리기 어려운 존재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은 이종(異種)을 사랑하게 된 걸까요? 의사는 멍하니 노란색 렌즈와 시선을 마주한다.
매번 도움을 받기만하는구나, 미안하다 애드.
대체 무엇이 미안한 걸까? 그는 늘 '미안하다' 는 말을 입꼬리에 달고 다녔다. 살아가기 위해 숨을 쉬는 것도,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죄로 생각하는 것일까. ‘살아가는 것’ 그 자체를 죄악으로 여긴다면, 신벌을 받고 쫓겨난 것마냥 행동하는 건 영락없는 인간만이 가능한 사고일텐데. 그래, 분명히 당신은 인간인데, 인간인데도.. 왜 이렇게도 가까운데 멀게 느껴지는 걸까? 그렇기에 의사는 실험대에 놓인 반나소드를 ‘인간’ 으로 취급하지 못했던 걸까. 그럼에도 소년은 인간의 감정으로 인간의 껍질을 한 사내를 바라보게 되고만다. 시선을 돌려버리면, 잡은 손을 잠깐 놓치면 다시는 붙잡지 못할 곳으로 영영 소실될 것만 같은 당신이 미워. 어린아이는 풍선을 매단 끈을 팔목에 칭칭 휘감았다. 차라리 풍선과 함께 두둥실 날아올라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로, 행복한 것만 보고 느낄 수 있는 환상적인 모험을 떠날 수는 없을까. 사랑한다고 너무 세게 끌어안으면 터져버리고, 그대로 내버려두면 결국 풍선은 안에 담은 기체를 잃고 쪼그라들어 형체를 잃어버린다. 불안하게 풍선을 잡은 손이 떨려왔다. 모두가 행복하게 웃고 떠드는 테마파크 안에서 풍선을 잡은 채 광장 안에 덩그러니 서있는 어린아이는 결국 엉엉 울음을 터뜨려버린다. 다른 이들은 울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물어본다. 아가야, 왜 울고있니? 아이는 풍선이 떠나는 것이 싫다고 대답한다. 타인은 말한다. 풍선이 터지면 다른 풍선을 사면 되지 않냐고. 바보같긴, '다른 것' 으로 대체할 수 없으니 이렇게 울고 있는 게 아니겠냐고. 하지만 풍선은 소년이 풍선을 생각하는 만큼 소년을 생각하지 않는다. 풍선은 사물이다. 소년의 마음에 대답하고 마음을 내 줄수 있는 교감이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풍선놀이는 언젠가 자의던 타의던 그만둘 수밖에 없다. 그 미래가 다가오는 것이 두려워서 아이는 계속해서 울었다. 행복해야 할 현재에 집중할 수 없었다. 정해진 이별은 어린아이에겐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첫 행복이었으니까. 첫 반려였으니까. 첫사랑이었으니까.
나는, 네놈이 정말 싫어. 반나소드.
으, 으음.. 그런가? 내가 미움 살 행동을 했다면 사과하마..
그런 태도가 정말 싫어.
이 테라피는, 한 쪽이 상대에게 자신의 조각을 뜯어서 망가지고 텅빈 자리를 메워주는 것이었으니 테라피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천칭의 총량은 바뀌지 않았지만, 한 쪽 천칭의 무게추가 점차 엉망으로 망가지고 있었다. 중심을 잡을 수 없으니 곧게 서 있을 수 없었다. 어질어질한 사랑과 이별의 세계에 현기증을 느낀다.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줘도 당신은 날 떠나게 될텐데, 멈출 수가 없는 일방적인 이타심이란 자기모순. 애愛와 증憎이 괴롭게 뒤섞여서 독이 되어 심장을 찔러왔다. 애愛는 애哀가 될 것이다. 증憎은 증贈으로 대체한다. 그게 오버마인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디톡스였다. 모든 것을 내주고 슬픔 안에 잠겨서 당신을 따라갈 거야. 평생 너를 원망하며 네 죽음을 뒤따라 죽어서 네가 입에 달고 다니는 '미안하다'를 놓지 않게 할거야.
나를 잊지 마,
잊지 말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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