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2월 발간된 백호열 게스트북 화양연화 참가작입니다. 그뭔씹 동양AU.주제(백호열의 과거 현재 미래) 에서 너무 많이 드리프트 해버린 것 같아 지금도 주최님께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7월 13일 백호열 온리전 개최를 기념하여 전문 공개합니다. (후속편에 대한 욕심 有) 두쪽보기 아무리 편집해도 가운데가 영 이상하게 나와서 전체페이지도 같이 올립
생각날 때 마다 적습니다. 한달에 한 번 사쿠라기 군단은 모여서 술자리를 만들었다. 처음 몇 번은 모르겠으나 회차가 두 자릿수가 될 무렵부터 술에 찌든 사람을 집에 던져다 놓는 일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날은 요헤이가 좀 취한 수준이었고, 하나미치는 어쩐지 요헤이를 데려다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요헤이는 웃었다. 날이 추우니까 돌아가는 길에
활자 안에서는 모든 것이 분별 없이 물결친다. 백호의 첫 음절은 첫 숨에서부터 약 백여일 전후. 분이 떨어지는 나비보단 참매미의 덩이줄기 벼린 것 같은 날개가 부벼지며 나는 뭉특한 옹알이. 살덩이 두개를 마찰시켜 낸 최초의 시이다. 벚나무 아래를 포대기에 쌓인 채 산책하는 백호는 타고난 문학가이다. 노을에서는 붉은 홍옥을 보고 베어문 과육 시큼한
괜찮아? 응. 괜찮아. 뼈 아프진 않구? 으응. 호열이 폭신폭신한 침대 위에 길게 엎드려 누워서 말했다. 베개를 가슴 아래에 끼우고 있어서 어쩐지 꾸욱 눌린 목소리가 났다. 일전이라면 겹쳐누운 몸의 무릎을 집어들어서 가슴을 누르느라 나야 하는 야한 소리인데 베개를 끌어안고 있느라 야하기는 개뿔이 그저 오갈 곳 없는 병자의 신음으로만 들려서 죽을 것
가끔 거대한 기억을 남기는 날이 생기지 않아? 예를 들어 파도와 바다가 어디에서 분리되는지 같은 것 말이야, 내 최초의 기억은 해변가의 포말이었어. 바위의 으슥한 틈새나 심해의 그림자 따위는 모르는 가벼운 공기. 그래서 말이야, 내가 태어난 장소가 어디다 라고 정확하게 말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게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같이 말을 하게 되면 더 답
봄의 제전 미토 - 사쿠라기 요헤이는 올해 쉰 여섯이 되는 미혼 남성이다. 가나가와 토박이었는데, 젊을 적 친구의 뒷바라지를 한답시고 도쿄에 올라간 지 몇십년, 청년으로 장성한 요헤이는 절친한 친구 - 사쿠라기 하나미치와 함께 돌아왔다. 하나미치는 어쩐지 더 큰 것 같았다. 기실 문제가 되는 것은 별 거 없어 보였으므로 요헤이는 하나미치와 길게 살
너의 신중치 못한 행동이 좋아. 벽에 등밖에 붙일 수 없을 정도로 꼼짝없이 몰렸을 때에 되려 큰 소리를 치는게 좋아. 단정하지 못하게 옷을 흩어놓곤 와서 허리띠를 만져달라 하는 말이 좋아. 아랫턱에 힘을 주고 입술을 삐죽이는 모양이 좋아. 집중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몸을 기울여서 가까워지는 얼굴이 좋아. 꽃을 고를 때엔 철에 맞는 것을 고르려 용을 쓰는
대양과도 같은 모래의 산을 보았다면 당신은 이 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많은 일을 엮었지만 이런 일에 대해 많은 시간을 소요한 것에 비하여 그 정도로 긴 글을 남기지는 못했다. 이것은 후일을 도모하는 인간 최후의 필서이므로, 모쪼록 이 글을 얻은 후 당신의 일을 이어가주길 바란다. 고. 호열은 모친의 글자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사구의
…결혼 오 주년의 겨울날, 퇴근시간을 맞춰 택시를 잡아타고서. 예약한 레스토랑에서 화사한 디너를 먹으면서. 서로서로 준비한 약소한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웃으면서. 시내의 랜드마크가 보이는 높은 호텔의 창 앞 테이블에 앉아 술을 나눠 마시면서. 그 모든 일을 보내는 내내 웃었지만 태양을 보지 못한 식물처럼 파리하고 조금씩 말라가는 남편의 옆얼굴을 보며
야, 요헤. 하루코 씨가 그러는데 연애 하면 한 장씩 사진 나눠 가진다더라. 으응. 학생증 옆에 끼워두게 한 장 내 놔. 어? 나 사진 없는데? 요헤이는 꽤나 얼이 빠진 얼굴로 턱을 괸 채 앉아있었다만, 당당하다면 지나칠 정도로 당당한 하나미치의 말에 더 정신이 나간 것 처럼 보였다. 진짜 바보같은 낯짝이어서 하나미치는 으엑, 소리를 내며 냅다 한쪽에 걸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많은 먼지들은 들어갈 곳을 찾아 어지럽게 흩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태중지역을 잊어버린 것들은 지고의 순리에 따라 결국 물로 흘러간다. 물과 물은 흘러 하늘로 떠오르고 다시 떨어져 지면에 스미고 위에서 뿌려지는 낙숫물이 되어 다시 이 흐름에 편승한다. 그러니까 백호 역시 이 곳에 흘러들게 된 것은 어떤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저
나 사람을 죽였어… 어쩌지 호열아.라는 전화를 받은 날. 클리세처럼 구름이 껴 하늘이 땅에 닿도록 낮은 날. 장맛비가 땅을 움푹 패도록 내렸던 날. 백호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던 호열은 전화통을 붙잡고 숨만 쉬다가 말한다. 백호야, 거기에서 그대로 기다려. 현장의 공구상자에 보이는 툴을 다 쓸어담고 두꺼운 비닐봉투와 우의를 상자 뚜껑 안쪽에 붙이듯 접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