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과 거짓말
누가 체스판의 말을 잡고있다고 생각해?
사람들은 생각보다 공포를 우숩게 생각한다. 그야 직접 겪어보지 못하는 이상 가볍게 말하는 작자들은 수두룩 빽빽하니까. 그렇게 그 분위기는 전염병처럼 퍼져가며, 끝내 그것은 정말 공포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건 당연하게도 진짜 상황 앞에서는 모든게 의미 없어진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모두가 얼빠진 표정으로 지금 상황을 봤다. 사실 그들에게는 폴룩스는 그냥 특이하고 적응을 잘하는 직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방심했다는 증거였고, 그렇게 이 사건이 터졌다.
압도적인 무력에 저항도 못하고 맥아리 없이 죽어버린 별. 그리고 그 앞에 피를 묻은 칼을 들고있는 소년.
명백한 살인죄였다.
이것이 별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폴룩스를 포함한 6팀 전체가 죽느니만도 못한 벌을 받을 것이다. 세계와 사람들은 그들을 조롱할 것이고, 불쌍하게 여길 것이다. 록시는 자신의 앞에 닥쳐올 미래를 상상하며 눈을 찔끈 감아버렸다.
그런 록시를 본 카리나는 어떻게든 결단을 내렸어야했다. 저 미친놈이 일으킨 독단인지, 아니면 모두 도망쳐버리던지. 하지만 그 결단을 내리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다.
쾅!
귀신같이 별이 죽었다는 사실을 안 누군가들이 이 공간에 들이닥쳤다. 카리나는 저 모습을 보고 내심 절망했다. 싹수 노란 신입 하나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팀원들도 전부 죽게 생겼으니까. 이제 자신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저 신입이 자신이 모든걸 했다고 자수하는 방법 밖에ㄴ..
“ 안녕하세요 리겔씨, 정말 처리하러 와주셨군요. ”
“ 오랜만이네 폴룩스군. ”
뭐?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보고 폴룩스를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리겔'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보았다.
3개의 별훈장, 그리고 제법 나이가 들어보이는 노인이었지만 결코 약하지 않은 기운.
무려 3성이나 되는 별이 이 곳에 당도한 것이다.
“ ㄹ, 리겔씨를 뵙습니다! ”
“ 죄송합니다..! 저희 신입이 무례를.. ”
“ ..이런 폴룩스군. 얌전히 지낸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던 모양인가봐, 자네들의 선임들이 내 등장에도 이렇게나 당황하지 않나. ”
“ ..어쩔 수 없었습니다. ”
“ 자네도 참. ”
리겔은 혀를 끌끌 차더니 6팀 전원을 보며 똑똑히 말했다.
“ 저 별은.. 그래. 내 부하를 건든 바람에 내가 직접 처리했다고 보고할걸세. 그러니 그대들은 내 난입에 의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상부에 보고하게나. 이건 명령이야. ”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상황이었다. 폴룩스가 사고를 쳤다는 사실은 묻힐 것이며, 6팀이 해결하지 못한 이유도 납득이 가는 이유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사안이 있었다면..
“ 왜 저희를.. 아니, 폴룩스를 돕는겁니까? ”
“ 아처씨 지금 무슨 소리에요! ”
“ 하지만.. 이유 없이 이런 친절을 베푸실리가 없잖습니까.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
“ 흠, 그 점은 나도 이해하네. 3성이나 되는 별이 왜 말단 팀에 있는 신입을 돕는지 말이네. ”
리겔은 길게 늘여진 흰수염을 쓰다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 그냥, 저 소년에게 빚진 것이 있어서야. 그 이상 그 이하의 이유도 없네. ”
“ ..믿기진 않겠지만 사실이야. ”
3성의 별이 한낮 밑에 사는 사람에게 빚진 것이 있다? 모두가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할지 몰라 얼이 빠져버렸다. 폴룩스는 저 반응이 나올걸 예상했는지 리겔을 보았다.
“ …아득하네요. ”
“ 어쩔 수 없지, 그대는 많은걸 짊어졌으니까. 그리고 그 사실은 아직 동료들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고. ”
“ 그나저나 정말 이렇게 처리를 해주셔도 당신에게 타격이 없는거 맞습니까? ”
“ 그래. 무려 5성급이나 되는 분에게 허락까지 받고 왔네. ”
5성.
그 숫자는 폴룩스도 아찔한지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래도 일이 이렇게 되는건 그도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 아아 걱정하지말게. 내가 눈 여겨보고있는 존재라고 말하니 이해하고 넘어가더군. 그리고 저 별이 사고친 점이 너무 많아 상부에서도 떨어트릴 생각이었는데, 마침 그대가 내 힘을 쓸 수 있는 상태가 되기도 하였고 충돌도 예견된 일이었으니 상부도 눈을 감아 준거네. ”
“ ..폴룩스 이건 너도 알고있었어? ”
“ 아니. 꿈에도 모르고 있었는데. ”
“ 그냥 잘 짜여진 판이었던거네.. ”
결국 처음부터 이렇게 될 예정이었던 것이다. 6팀은 그 사실을 알자 힘이 쭉 빠지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폴룩스도 마찬가지로 벽에 기대버렸다.
“ 그래도 그대들 덕분에 우린 골칫덩어리를 하나 없앴으니 감사 인사를 전하지. 그럼 들어가게나, 폴룩스는 힘을 반납하고 가고. ”
“ ..처음부터 이런 작정이었던거군요. ”
“ 세상에 공짜는 없지, 이런 운도 여러번 오지 않고. ”
“ 에휴 그래도 다행이다.. ”
“ 그러게요..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어요.. ”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잔별만은 아무 말 없이 이 상황을 노려보다가 먼저 박차고 나가버렸다.
“ 어, 어어? 잔별아! 주인을 놔두고 가면 어떡해! ”
“ 야 저 새끼 또 사람 죽이러 간다!! ”
“ 우리 이제 사고치면 진짜 뒈져!!! 야!!! ”
모두가 그런 잔별의 행동에 놀라서 단체로 뜯어말리러 갔다. 아무래도 이제 더 사고가 터지는건 사양이었으니까.
“ 저 도깨비는? ”
“ ..이 회사의 금색 도깨비라면 거기까지 소문이 났을텐데요. ”
“ 아, 그 자로군. ”
모두가 잔별을 뜯어말리러 간 사이 이 공간에는 리겔과 폴룩스만이 남게 되었다.
둘만이 남았다는 것을 알게된 리겔은 그 틈을 이용해 힘을 거두려는듯 손을 내밀었고, 폴룩스는 그걸 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
“ …. ”
“ …. ”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 언제까지 숨기실 예정입니까. ”
“ 아, 제발.. 존댓말하지 마세요. 소름 끼친다고요. ”
“ 하지만 주군에게는 극존칭을 쓰는게.. ”
“ 전 왕이 될 생각 없다니까요? ”
고요한 바다처럼 항상 무표정을 유지하던 폴룩스의 얼굴에 파문이 인 것처럼 부담스럽다는 감정이 드러났다. 그걸 본 리겔은 아무렇지도 않게 극존칭을 이어갔다.
“ 하지만 당신이 폴룩스님의 계승자인건 변하지 않습니다. ”
“ …. ”
“ 이번에는 거짓으로 상황을 무마했지만, 다음부터는 통하지 않을테니 옥체를 조심하시죠. ”
“ 그럴 마음이 없다면 어떡하실거죠? ”
“ 어쩔 수 없죠, 제 힘이 닿는데까지 힘껏 보좌해드릴 수 밖에. ”
폴룩스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리겔을 보다 이내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버렸다. 그도 이런 사람을 설득한다는걸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있기에 답답한거겠지. 그런 모습을 본 리겔은 방긋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 왕이 되시지 않아도 괜찮으시니 부디 선왕의 유언을 이어나가주십시오. ”
“ ..그건 할테니까 걱정마세요. 으, 적응 안돼. 저 갈렵니다 그냥. ”
“ 안녕히가시길. ”
“ 제발 다음에는 그냥 반말 써달라고요.. ”
폴룩스는 인자한 미소를 짓는 리겔을 피해 자신들의 팀원이 있는 쪽으로 도망쳤다. 자신의 운명을 자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런 취급은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언젠간 자신의 곁에 남아있는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해야하지만, 지금이 때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있다. 그래, 언젠간. 언젠간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왕관의 진짜 주인이라는 진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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