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의 메두사 (3)
007. 우리 늑대씨는 채식주의인데 말이지.
"어느 신전의 사제인지는 알고 있나?"
프리실라와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녀의 질문에 프리실라는 생각에 빠진 듯 잠시 말이 없었다.
"정확히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쌍둥이 여신을 섬긴다고 들었어요."
"쌍둥이 여신이라면..."
서로 등을 맞댄 채 기도 하는 쌍둥이 여신상의 모습이 떠올랐다.
"클레어와 테레사."
"앗, 맞아요! 어어...?"
그러나 정답은 이레시아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였다. 늑대가 어느새 그녀의 등 뒤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 참 빨리도 오는구나."
이레시아가 파이프 연기를 뱉어내며 이죽거렸다. 늑대는 눈매를 일그러트리며 그녀의 행색을 훑었다. 쥰의 상태를 살피고 그녀의 방으로 갔을 땐 이미 침실은 텅 비어있었다. 덕분에 그는 머리에 살짝 열이 오른 참이었다. 그래도 우려와는 다르게 이레시아는 단정한 옷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언제 나왔지?"
"글쎄... 얼마나 됐더라."
그녀는 딱히 대답해줄 생각이 없는 말투로 찻잔만 기울였다.
"옷은?"
"당신이 늦길래 대신 좀 부탁했어. 다시 인사해. 이쪽은 프리실라 오르테즈. 이 여관에서 일하는 모양이야."
"설마..."
"홀린 거 아니야."
이레시아가 눈매를 구기며 그의 의심을 단숨에 잘라냈다.
물론 조금 위험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홀린 것은 아니니까.
"인사해. 이쪽은 리플의 용병. 내 호위를 맡고 있어."
호위라고 쓰고 감시라고 읽는 쪽이 맞는 거겠지만.
그녀의 말에 늑대가 고개를 들어 프리실라를 응시했다. 금색 물감을 떨어트린 듯 신비로운 눈동자에 프리실라는 멍하니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자 무표정한 그의 미간이 살포시 구겨졌다. 늑대는 그늘진 얼굴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제서야 저도 모르게 무례를 범했다는 걸 깨달은 프리실라가 황급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 아까는 정말이지 감사했습니다."
"........."
이런. 영 싫어하는 부분을 건드려버렸네. 왜 아니겠어. '원수'가 남긴 흉터가 남들 눈에는 넋을 잃고 볼 신기한 구경거리라는 게.
이레시아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프리실라에게 이만 가보라고 손짓했다.
"앉아. 식사 주문했으니까. 아가는?"
"약 먹고 잠들었어."
"이런... 케이크가 필요 없게 됐네."
아이가 놀라서 울거나 할 때는 단 음식이 좋다고 프리실라가 추천해줘서 시킨 건데.
그녀가 은 포크로 케이크 위의 딸기를 집어냈다.
"디저트는 식사 끝나고 먹어."
"엄연히 말하자면 내 식사는 당신이지. 이건 그냥 허기나 잠깐 달래는... 에피타이저 같은 거고."
붉은 딸기만큼이나 붉은 입술이 날름 그것을 먹어 치웠다.
"내가 멋대로 나돌아다니는 게 그렇게 불만이라면 다음부턴 조금 더 빨리빨리 오는 게 어떨까."
그런 그의 속마음을 안다는 듯 이레시아가 비꼬듯 혼잣말을 했다. 늑대는 할 말이 많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곧이어 식탁 위로 음식들이 서빙됐다. 미디엄 레어로 구워져 나온 커다란 스테이크와 각종 고기, 샐러드 따위가 늘어지게 나왔다.
그런데 어째 샐러드 종류가 내 앞쪽에 더 많은 기분인데...
반대로 커다란 스테이크는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이레시아는 저도 모르게 짧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늑대는 질린단 얼굴로 음식들을 내려다봤다.
"인간들은 정말 생각하는 게 다 똑같나 봐? 우리 늑대씨는 채식주의인데 말이지."
"시끄러워."
늑대가 짜증 어린 기색으로 고기 종류를 그녀의 앞으로 밀어내고 샐러드를 제 앞으로 가져왔다. 체구는 그녀의 배 이상으로 크면서 그는 고기는 단 한조각도 먹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먹지 못하게 되었다는 게 정답이지만.
부모의 '내장'을 억지로 먹고 살아남은 남자는 아마 죽을 때까지 평생 고기는 입에도 못 대겠지.
그럼에도 커다란 스테이크를 한조각 썰어낸 이레시아가 핏기가 채 가시지 않는 걸 내밀었다.
"먹어볼래?"
"치워."
늑대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이레시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기를 다시 제 입으로 가져갔다. 그녀가 이번엔 생선을 늑대 쪽으로 내밀었다.
"이건? 물고기는 먹을 수 있잖아."
"알아서 먹을 테니 신경 꺼."
생선 요리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대답이 돌아왔다.
까칠하게 굴기는.
그녀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접시를 내려놨다. 한동안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만 울렸다.
"이건?"
그러면서 그녀는 식사 중 자꾸만 다른 음식들을 늑대에게 내밀었다. 그녀 딴에는 저 체격에 풀만 먹는 그가 이해가 안되서긴 했지만, 반대로 늑대는 그녀가 이해가 안됐다.
'저 많은 고기들은 전부 어디로 들어가는 거지?'
한 두접시도 아니고 다섯 접시가 넘어가는 고기 요리들이 하나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웃기게도 야채들은 손을 거의 대지 않았다.
"채소는 왜 줄지를 않는 것 같지?"
"고기가 더 맛있으니까."
심플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건?"
이번엔 작은 새우를 내밀며 물었다. 탱글탱글한 새우가 그의 입가에서 맴돌았다.
"채소도 먹도록 해."
"음... 당신이 이걸 먹으면?"
도대체가 식사 시간대마다 이렇게 자꾸 뭘 먹이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받아먹지 않으면 식사 시간이 끝날 때까지 이것저것 음식을 내밀어댈게 뻔하기에, 그는 잠시 고민 하다가 그것을 받아먹었다.
만족스런 미소가 번진 얼굴로 그녀가 턱을 괸 채 그를 관찰했다.
"흐음, 새우는 먹는구나?"
끽해야 야채나 퍽퍽한 생선 살 따위나 깨작거리는 식성을 신기한 듯 보던 이레시아는 프리실라에게 몇 가지 고기 요리를 더 주문했다. 프리실라는 이미 반쯤 비어버린 접시를 놀란 눈으로 보더니 다시 급히 주방으로 들어갔다.
늑대 역시 어이없다는 눈초리를 보내는 게 느껴졌지만, 별수 있나? 인간의 식사로는 통 배가 부르지 않는 것을...
그건 그렇고, 아까 이야기로 돌아가서.
"광산에서 실종된 사람들의 정보와 함께 '현자의 돌'에 대한 소문도 알아봐야겠어. 더불어 몇 달 전 이 도시에 있었다는 사제에 대한 소문까지."
이레시아가 반쯤 꺼진 파이프 담배를 다시 집어 들며 덧붙였다.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였다.
영주 부인의 의문의 돌연사, 파헤쳐진 무덤, 현자의 돌, 쌍둥이 여신을 모시는 사제, 광산의 메두사.
이들 사이에 무언가 보이지 않는 실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무래도 일찌감치 의뢰를 마치고 돌아가긴 힘들어 보였다.
아니, 정 귀찮아지면 메두사가 있는 광산을 통째로 날려버릴까? 어차피 이번 의뢰는 광산에서 사람들이 실종되는 이유와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일 텐데.
아. 하지만 광산 안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모르니 그것도 안 될 일이었다. 이 록하트 산맥을 모조리 무너트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하여간 망할 플라티나. 메두사라니 어째 너무 쉬운 의뢰라고 생각했어.
평범한 인간들은 메두사를 맨 눈으로 보는 순간 돌로 변해버릴 테지만, 이레시아의 3분의 1은 라미아였다. 그녀 라면 메두사의 눈을 보더라도 별 효과가 없을 터.
"하다못해 대략적인 위치라도 알면 좋을 텐데..."
"일단 오늘 밤 히아센에게 전갈을 보내도록 하지. 그 녀석이라면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확실히 정보에 관해서는 히아센의 실력이 꽤나 쓸만하긴 하지만...
"그동안 당신은 뭘 하려고?"
"감시."
이레시아의 눈초리가 절로 가늘어졌다.
"도와주지 않을 거야?"
"네가 허튼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때."
붉은 눈이 냉랭한 빛을 띄었다. 순수한 노동의 고뇌가 변질되어 비춰지자 반발심이 치켜 올라왔다.
아니, 사실 그가 정보를 모아오는 동안 조금은 다른 일을 알아볼까 하는 사심이 없진 않았다. 예를 들어, 제 다리에 박힌 족쇄의 주술에 대한 정보라든지.
어쩔 수 없지 않는가? 누가 노예나 달고 다니는 이딴 개 목걸이를 달고 다니고 싶어 하겠어.
"당신, 정말 이렇게 나올 거야?"
"마법사 언니!"
"?"
느닷없이 무거운 대화 속을 쨍하는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 마법사 뭐?
그녀가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
이레시아는 어딘가의 누군가를 닮은 이목구비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반묶음의 갈색 머리칼, 얼굴의 옅은 주근깨에 어딘가 짓궂은 인상의 아이였다.
아까 전 프리실라가 감싸던 여자아이, 동생이라고 했던가?
"너... 아까 그 꼬마구나."
"아이린이예요. 아이린 오르테즈! 와아. 언니 진짜 예쁘다..."
아이린이 두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진짜 예쁘다구요."
"아니, 그거 말고."
"음... 마법사 언니?"
잘못 들은 게 아니었네. 아이린의 기대에 부푼 얼굴에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왔다.
"혹시 제자를 구하고 있지 않으세요? 날 제자로 받아줘요!"
"제자...?"
이레시아는 결국 기가 차는 얼굴을 하고 말았다.
내가 방금 눈앞의 이 핏덩이에게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늑대가 고개를 숙이고 작게 기침을 하는 게 보였다. 아니, 비웃는 건가?
그러던가 말던가, 아이린은 두 손을 모아 콩알만 한 물방울을 만들어 그녀에게 내밀어 보였다.
"이거 봐요. 나도 마법을 쓸 수 있어요! 그러니까..."
"마법사가 아니라고 내가 분명 말 했을 텐데? 그리고 그런 건 정식으로 아카데미에 가서 배우는 게 어떨까, 꼬마야."
그녀는 아이린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했다.
쥰보다 한 두살 많으려나. 어린 나이치고 발현된 능력이기는 한데, 그녀는 누굴 잘 가르칠 재주도 없거니와 귀찮은 건 딱 질색이었다.
게다가 주술과 마법은 비슷한 듯 하면서도 그 차이점이 분명한 학문이었다. 그러니 멋대로 마법사라고 불러대면 곤란했다. 마탑에서 등록되지 않은 마법사가 아니냐고 찾아왔다가는 일이 시끄러워질게 분명할 테니.
"하지만 시간이... 시간이 별로 없는걸요."
아이린이 금세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괴이에 비하면 짧은 생이긴 하지만, 아직 창창한 나이의 꼬맹이가 할 말은 아닌데."
"그럼 혹시 마법사 언니가 나 대신 찾아주면 안 돼요?"
"... 그 이상한 호칭은 제발 좀 그만둬 줄래, 꼬마야."
"부탁이에요, 마법사님! 언니가 저희 할아버지 좀 찾아줘요!"
늑대의 기침 소리가 더 요란하게 터지자 그녀의 미간이 미묘하게 찡그려졌다. 마법사와 언니라는 호칭 둘 다 그만둬 달란 말이었는데. 따로 띄어서 써달라는 게 아니라. 그런데...
"할아버지?"
"... 네. 우리 할아버지가 광산에서 돌아오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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