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머커멜리
지독한 악몽 속에서 가까스로 눈을 뜬다. 아직 어둡다. 발작하듯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고자 차게 식은 손끝으로 반대 팔을 감싼다. 숨을 몰아쉰다.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쉰다. 진창 속에서 벗어나고자 알코올에 몸을 맡기고 싶어진다.
누군가가 옆에 있는 삶은 익숙하지 않다. 멜리시아의 인생은 그렇다. 부모를 모르고 혈육이 있는지도 모른다. 기억의 시작점은 보육원이었고 미성년의 마지막도 보육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지만 없다. 어쩌면 누군가 옆에 있는 삶보다 누군가가 자신을 떠나는 삶이 익숙한 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선택한 일은 결국 사람을 곁에 두기보다는 사람을 잃게 만든다. 죽음으로 몰아넣는 건 타인이지만 결국 죽이는 건 멜리시아다. 자신의 선택이고 자기 일이다. 회의감이 파도처럼 몰려와 잠기기도 했지만 그뿐이다. 결국 모든 것의 원인은 ‘자신’이다. 회의감은 혐오가 된다. 우울감이 멜리시아를 죽인다. 알코올에 몸을 맡긴다. 멜리시아는 생각한다. 나는 혼자 죽겠구나.
속이 울렁거린다. 구역질이라도 할 것 같아, 옆을 더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들자, 손등에 온기가 겹친다. 그제야 옆의 누군가가 눈에 들어온다. 옆을 덥히는 온기를 알아차린다. 타인이 부재한 삶 속에 들어선 타인이다.
어지럽게 흔들리던 숨은 한순간에 진정된다. 흩어지는 옅은 말소리를 ‘앤디’는 어렵지 않게 듣는다. 익숙하게 등을 쓸어내리고 두드려준다. 엉망이 된 머리카락과 옷자락도 부드러운 행동거지로 정리한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멜리시아는 머커에게 기댄다. 멜리시아를 좀먹던 생각이 녹아내린다. 과거의 그는 누군가를 잃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 지금은 아니다…….
‘앤디’는 기다린다. 멜리시아의 ‘앤디’. 머커이고 챈들러 올드맨. 머커는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 역시 멜리시아와 같은 직업을 가졌다. 사람을 잃게 만드는 일. 멜리시아와 다른 점은 사람을 스스로 죽게 만든다는 것. 누군가의 옆에서 부재를 견딜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부재한다. 그 부재를 견디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죽는다. 그 방식 속에서 살아가는 머커는 기다림에 익숙하다.
머커는 멜리시아를 본다. 우울감을 호소하고 알코올에 의존했던 멜리시아다. 하지만 머커는 그런 멜리시아도 좋다. 지금의 멜리시아도 좋다. 어떻든 변화하려고 했으니. 물론 다툼과 갈등이 있었지만… 지나간 시간이다. 머커는 멜리시아를 기다린다. 기다림에 익숙한 머커는 멜리시아의 옆에서는 부재하기 위해 기다리지 않는다. 멜리시아가 인식하기를 기다린다. 자신이 옆에 존재한다는 것을.
“멜리.”
“…… 앤디.”
멜리시아는 누군가가 옆에 있는 삶이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누군가 떠나는 삶에 너무도 적응해 버린 탓이다. 타인이 부재한 삶 속에서 숨 쉬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제 삶을 가득 채운 부재 속에서 들어선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멜리시아를 기다린다. 멜리시아처럼, 그의 부재에 외로워한 사람을 안다. 그의 존재를 안다. 멜리시아는 생각한다. 혼자 죽지 않겠구나.
서로의 존재를 아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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