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14

Loving tides sweep in and bear you down

2023.06.24.

UND by 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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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갈까.

그렇게 말하며 아젬은 지맥이 죄 꼬여 있는 출입금지지역으로 저들을 이끌었다. 에테르가 편중되어 지대가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지맥을 타기는커녕 마법 하나 쓰는 것도 저어되어 그들은 뙤약볕 아래를 맨몸으로 걸어야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많은 바다를 내버려 두고 굳이 재해의 전조가 보여 답사차 들렀다던 해안으로 끌고 올 줄은 몰랐다. 널 순순히 따라온 내가 바보였지.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삼키며 타박하자 아젬이 능청스레 어깨를 툭 쳤다. 휘틀로다이우스는 손바닥으로 살랑살랑 손부채를 부쳐 주었는데, 당연하게도 요만큼도 시원하지 않았다. 품 넓은 소맷자락이 땀에 젖은 맨살에 척척하게 달라붙었다. 똑같이 땀범벅인 꼴로 신나게 팔을 흔들며 걷고 있는 두 사람을 보니 짜증을 낼 기력도 나지 않았다.

오랜 세월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구릉은 길이 없다. 먼저 방문했던 아젬이 수풀을 헤치며 지나간 흔적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완만한 언덕이었으나 정상에 이르는 길목은 비탈에 가까웠다. 이마며 어깨 따위를 찌르는 덩굴을 쳐내며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앞서 걷는 익숙한 등에서부터 거의 다 왔어, 열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빽빽한 나무그늘 틈새로 하늘이 가까워졌다. 두터운 나뭇가지를 붙잡아 둔 채 아젬이 뒤돌아섰다. 휘틀로다이우스가 냉큼 팔뚝 아래로 머리를 집어넣고, 에메트셀크도 한숨과 함께 뒤따랐다.

문득 바람이 불었다. 한 발짝, 돌부리를 딛고 무릎을 폈다.

땀에 젖은 이마를 훔치며 에메트셀크가 고개를 들었다.

울창하던 녹음이 일순에 사라졌다. 대신에 밀도 높은 색채가 한순간 눈꺼풀을 뒤덮었다. 발밑에 펼쳐진 세상이 하늘처럼 드넓었기 때문에 에메트셀크는 잠시간 말을 잃었다. 어느덧 해거름이었다. 수평선의 경계를 흐리며 하늘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노을을 쏟아 놓은 양 찬란하게 부서지는 윤슬에 눈이 부셨다. 쏴아아―, 파도 소리가 나뭇잎에 부딪혀 귓전으로 쏟아져 내렸다. 무심코 숨을 들이켜자 바다 내음이 번졌다. 심장까지 새하얀 포말이 들이차는 듯했다.

인간은 원한다면 어디든 발 디딜 수 있었기에, 그는 이토록 인위 없는 세상을 목도해 본 적이 없었다.

쏟아지는 태양을 등지고 아젬이 활짝 양팔을 벌렸다. 휘날리는 긴 머리카락을 누르며 돌아보는 휘틀로다이우스의 눈동자도 바다를 품어 반짝거렸다. 어때? 너희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지.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물거품처럼 부풀어 올랐다. 소금 먼지 뒤섞인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그의 친구들이 벅찬 숨을 터뜨렸다. 그저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양 해맑게 웃는 얼굴들이, 정말이지 나잇값이라고는 조금도 못 하고 있어서, 에메트셀크도 도리 없이 헛웃음처럼 입술을 끌어올리고 만다.

그날 에메트셀크는 신발 두 짝을 잃어버렸다. 그는 파도에 떠내려가는 것들을 붙잡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잡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락거리는 모래사장을 지나 다시금 거친 대지에 올라서더라도 그들이라면 필시 저를 맨발로 걷게 두지 않을 것이기에.

지금의 그는 심해 아래에 있다. 눈부신 물비늘도, 상냥한 파도도 없는 칠흑 같은 심연 속에서 에메트셀크는 단단히 상자를 잠갔다. 이제 에메트셀크는 당위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 또다시 흘려보내는 것은 잘라내기 위해서다.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대신 영원해지도록.

눈을 감으면 발밑으로 파도가 밀려들었다. 발등을 어루만지는 서늘하고 부드러운 물결, 발가락 사이를 간질이며 흐르던 모래 알갱이. 온통 생경한 것들 사이로 자신을 빠뜨리던 황혼빛 웃음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모든 심상들을 한데 담아 해저의 물결에 실어 보냈다.

심해의 파도는 무겁다. 아마 흐르고 흐른 끝에 바다웅덩이에라도 처박힐 것이다. 진창에 파묻히게 된들 저와 같은 것을 기억할 이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상관없었다. 그럼에도 행선지 없는 여행은 언제나 뜻밖의 결과를 피워 내기 마련이라서.

만일, 혹여라도 제가 버린 것들이 누군가에게 닿는다면, 다시 뭍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 그가 맨발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유류품이 될 감정들을 하나둘 흘려보내며, 아주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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