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브] 나를 잊은 별에게 (4)
올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초입이 무더웠던 탓인지, 아니면 누구보다 사춘기를 조용히 넘길 것 같았던 소년이 엇나가는 모습을 목도한 탓인지. 정확한 사유는 알 수 없었으나 노아의 시선은 종종 오래도록 예준의 낯에 따라붙어 있었다.
목 끝까지 강박적으로 채운 단추와 반듯한 넥타이, 각을 살려 다림질한 게 분명한 말끔한 셔츠와 바짓단. 소년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대로였지만 그가 동요하고 있다는 느낌을 노아는 지워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소년이 하민을 유난히 신경쓰기 시작했다는 것도 묵인했다. 아니, 묵인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용기를 내어 시도한 일탈이라고 해봐야 학교를 벗어나지도 못한 채 한 시간, 고작 한 시간을 체육관 창고에 처박혀있던 게 고작인 예준이다. 그런 소년의 시선이 ‘우리’가 아니라 ‘누군가’를 향한다고 대수로운 일이 일어날 리 없다. 그럴 것이고, 그래야만 했다. 그들의 중심축에는 남예준이 있었고, 때문에 소년은 더욱 무른 만큼 단단하게 자리를 딛고 서 있었기에.
“이걸로 마무리 할까?”
“와, 그럼 축제 때 학생회 반 이상이 올라가는 거예요?”
“어디 볼까.”
남예준, 한노아, 채봉…. 그래, 밤비. 봉구 아니고 밤비, 도은호, 유하민까지. 가만히 예준의 옆에서 함께 서기를 하고 있던 하민의 입이 삐죽 나왔다. 유하민 아니고 하민이요. 그 말에 학생회 테이블에 둥글게 앉은 학생들이 와르르 웃었다. 남예준만이 그래, 그래. 유하민 아니고 하민이지, 하고 서둘러 그의 편을 들었다.
“아무튼, 회의 끝. 모두 사라지도록 해.”
노아의 선언에 소년이 잠시만, 하고 한 켠에 자리 잡은 미니 냉장고를 열고 아이스크림을 한아름 꺼내들었다. 언제 준비했어요? 오늘 점심에 사서 미리 넣어뒀지. 눈을 내리깔고 조금 민망하다는 얼굴로 웃는 예준의 곁에 동그랗게 애들이 모여들었다. 얌전히 학생회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려준 예준은 각자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집어간 뒤에야 남은 걸 손에 쥐었다. 형, 먼저 연습 가 있을게요! 그래, 잘 가. 이따 봐요! 응, 앞에 보고 가야지. 모든 인사에 소년이 상냥하게 답해주는 동안 노아는 창틀에 올라앉아 다리를 까딱거리고 있었다. 모두가 떠난 뒤에야 소년은 노아의 곁으로 다가와 가만히 자리를 잡고 섰다.
“슬슬 덥다.”
그치. 동의를 구하듯 묻는 말에 노아는 대강 자신이 쥐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소년의 넥타이에 손가락을 걸어 가볍게 끌어내렸다. 그럼 좀 풀고 있던가. 입이 자유롭지 못한 탓에 뭉개진 발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난감한 얼굴로 웃으며 노아의 손을 붙잡았다.
“그래도 내가 부회장인데, 잘 입고 다녀야지.”
“그럼 내가 뭐가 돼…?”
“하하하.”
뭔데, 이 사회적 웃음은. 심술처럼 노아가 맨 위 단추를 풀어내자 소년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너 진짜 오늘 왜 이래. 미간을 좁힌 자리를 꾹 엄지로 누르자 그제야 예준은 낯을 풀어내고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근래에 어둑해진 소년의 눈가가 눈에 들어왔다. 노아는 창틀에서 내려와 학생회실을 가로질렀다. 그는 학생회실의 문을 잠그고 문가에 기댄 채 예준을 돌아봤다.
“그래서 뭐가 문젠데.”
“문제는 무슨, 진짜….”
“남예준.”
너 유하민이랑 무슨 일 있었냐. 불쑥 꺼낸 말에 소년은 무언가에 베인 사람처럼 아픈 얼굴을 했다. 예준은 자리에 주저앉으며 얼굴을 감싸쥔 채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진짜 잠을 못 자서 그래. 소년은 무던하려고, 덤덤하려고 애썼으나 노아의 앞에서는 그런 노력들이 무참히 무너져내리고는 했다.
“하민이, 우리가 알던 애 아닌 거 같아.”
“무슨 소리를, 너 진짜 무슨 일 있어?”
“거 봐, 믿지도 않을 거 왜 물어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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