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트윗 백업

동오대만/가센 썰 (2)

센티넬버스 | 가이드 최동오 x 센티넬 정대만

트위터 썰타래 백업이고요

https://penxle.com/weehan/871724822

에서 이어집니다.

가센 동댐

 

해피엔딩인 줄 알았으나 정대만은 도무지 '다 큰 성인 남성이 마찬가지로 다 큰 성인 남성과 온종일 손잡고 돌아다니는 낯부끄러운 짓'을 계속할 수 없었다

 

로 시작하는 두 번째 에피소드 보고 싶다.

그러고 다니는 사람들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음.

 

좋아하는 상대가 아니라면 몸을 섞을 수 없다거나(최동오는 그런 이들을 불편해했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에 사심을 섞는 걸 이해할 수 없다나. 정대만은 사심도 없으면서 종일 손 잡고 돌아다니는 열정이 대단하지 않냐고 대꾸함.)

매칭률이 낮아서 종일 가이딩해도 모자란다거나(보통 매칭 오류임. 파트너 교체를 신청하면 됨. 참고로 과거 정대만이 자신보다 낮은 레벨의 가이드와 파트너를 맺은 건 매칭 오류가 아니라 인력 부족 때문임.)

일하다 눈맞아서 가이딩을 핑계로 연애질한다거나(정대만은 한창 깨 볶을 시기의 연인들과 마주칠 때마다 한숨을 쉬었음. 쟤네는 서로 좋아 죽기라도 하지 나는 지금 애인도 아닌 녀석이랑…. 최동오는 그런 정대만을 무시했음.)

근데 보통은 안 그럼. 당연하지. 센티넬로 발현하면서 가이딩 없이는 못 사는 몸이 되었다지만 사람 체면이 있지, 어떻게 그래?

 

Q. 하지만 가이딩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잖아요?

A. 그거랑 다르지 인마! 난 종일 손잡고 쎄쎄쎄하고 싶지 않아 동오랑!

포기가 빠른 남자 정대만. 그는 손잡고 다니기 시작한 지 이틀 만에 이거 못하겠으니 그만두자고 말했음.

 

손잡고 다니는 건 부끄러우니 한 번 할 때 제대로 가이딩 하자고? 나야 좋지. 근데 대만아, 네가 가이딩을 '제대로' 받았는지 내가 알 방법이 있어?

 

동오는 퇴짜를 놨음.

복수의 시간이다.

대만이가 시러시러하고 동오가 나도 시러시러로 응수하는 지금…. 최동오 씨는 꽤 통쾌했음. 대만이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럴 리가요)

몰랐으면 모르되 정대만 입에 거짓말이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동오는 게으르게 가이딩할 수 없었음.

 파트너 간 신뢰 관계 파탄 났다는 뜻임.

 

100% 완충됐는데 충전기가 안 빠지고 달랑거려서 미칠 지경인 정대만. 부끄러운 건 둘째치고 한 시라도 안 떨어지는 최동오가 귀찮았음. 180 중반 건장한 성인 남성 둘이 손잡고 다니면 여기저기 부딪히거나 몸을 구겨야 할 때도 많았고….

정대만은 손에 땀 차면 반대 손으로 바꾸는 최동오한테 질렸음.

내 가이드가 이렇게 징글징글한 녀석이었다니. 원래 안 이랬는데…. 정대만은 순진하고 성실했던 가이드가 이상해졌다며 한탄함. 자기 손에 자유를 되찾아 주고 싶었지ㅠ 아, 자유로웠던 과거여!

 

지 업보라는 생각은 하나도 안 함.

포기를 모르는 남자 정대만.

틈만 나면 손 놓을 방법을 찾아다님.

 

가이딩 정도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을까요?

없어요. 그 분야 진척도 없으면서 연구비만 타 먹는다고 유명하잖아요.

그렇죠(시무룩)

그건 왜요?

얘랑 손잡고 다니기 싫어서요.

대만아, 왜 나를 보고 말해. 대화 상대를 봐야지.

포기를 모름.

 

혀 넣어서 1분 하면 세 시간은 손 안 잡아도 괜찮지 않냐?

키스가 단순 접촉보다 180배 낫다고?

(좀 에반가) 음…. 한 시간은 어때.

대만아, 때려 맞추려 하지 말고 그냥 손잡아.

하….

 

동오가 '저렇게까지 싫어하는데 그만둘까?' 같은 생각을 하기엔 100% 정대만이 너무 생기 넘쳤음. 역시 센티넬은 가이딩 충분히 받고 잠 잘 자고 밥 잘 먹어야 낯빛이 살아.

 그리고 그건 정대만이 더 잘 알았지. 100% –> 70% –> 100% 해보니까…. 다시 예전처럼 살 생각을 하면…. 싫었음 ㅠㅠ

능력을 쓸 때도 느꼈지.

사람은 궁지에 몰렸을 때 초월적인 힘을 발휘한다고들 하지만, 그리고 그게 순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제가 지른 불을 만끽하면서, 정대만은 이대로 타죽어도 좋겠다 대신 내일도 타오르고 싶다고 생각했음. 내일이 분명하게 보장된 기분이란 썩 괜찮았지.

그래, 가이딩 좋아! 근데 이제 진짜 됐다고!

 

그러나 아무리 말해도 요지부동인 가이드 최동오는 스쿼트나 했음. 너는 떠들어라. 나는 운동이나 하련다. 대퇴이두근과 대퇴사두근이 도드라졌음. 살 빠져서 바지가 흘러내렸던 건 이제 옛일이야. 동오가 잘 입던 그 바지는 허벅지가 껴서 못 입게 됐음.

정대만은 최동오의 스쿼트 자세에 잘못된 구석이 없는지 살폈음. 건강해지겠다고 운동하다 다친 사람이 한둘이어야지. 기이할 정도로 부상에 예민한 정대만 덕분에 최동오의 무릎은 멀쩡했음.

넌 혼자 오면 될 걸 꼭 나까지 끌고 오냐.

대만이 네가 자세 봐주잖아.

내가 전문가야? 트레이너 요청해.

생각해 볼게.

 

정대만은 그 말을 믿지 않았음. 이쪽도 신뢰가 폭삭 무너졌구나…. 서로를 믿지 않는 파트너라니 참 잘하고 계심.

정대만이라고 최동오의 의도를 모르진 않았음. 거의 시위하는데 어떻게 몰라? 말만 안 했지 모든 행동으로 보여주잖아.

최동오는 정대만을 감당할 수 있는 가이드라는 거지. 나는 너를 살릴 거고, 그 일은 내게 버겁지 않다고.

그러니까, 내가 너한테 의지하지 않아서 자존심 상했다는 거잖아.

 

정대만은 제 몫의 운동을 하는 대신 최동오를 지켜봤음. 답은 명쾌했지. 땀 뚝뚝 흘리며 버티는 최동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정대만의 상대는 최동오가 아니었음. 진짜 문제는 가이딩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해답을 찾은 정대만은 임무를 늘렸다. (네?)

정대만이 최동오를 믿지 않은 게 이 모든 일의 시초라면, 믿으면 되는 거잖아? ㅇㅋㅇㅋ 내가 그거 해준다. 조금만 기다려라. 동오야!

 

Q. 근데 애초에 정대만은 왜 최동오를 믿지 않은 것임?

A. 그야 최동오가 가이딩을 못 버텨 했으니까…?

 

그럼 정대만은 잘못 없지 않냐

정대만은 가이딩을 힘겨워하는 가이드를 많이 봤음. 파트너를 맺었던 모든 가이드가 그랬지. 가이딩이 조금만 길어져도 안색 퍼레지고 코피 뚝뚝 흘리고. 인간을 학대하고 싶지 않았던 정대만은 가이딩을 최소화하는 버릇을 들였음.

 가이드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파트너로서 당연히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지. (정작 가이드 없이 살 수 없는 건 센티넬인데)

초반에 동오를 막 쓰긴 했지만, 사고방식이 바뀐 건 아니었음. 안색 멀쩡하니까 괜찮구나 하고 의지…. 비슷한 걸 했는데…. 동오도 힘들어한다길래 얘도 다른 가이드랑 별다른 바가 없구나 한 것임.

말이 책임이지, 가이드한테 기대하는 바가 별로 없다가, 동오 만나고 기대해도 되나 보다! 했다가, 동오가 안 괜찮다니 다시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는, 그런.

 

역시 정대만은 잘못 없는 듯(동오도 잘못 없지만)

여하튼 파트너께서 의지해 주길 바란다고 하시니 의지할 건더기를 만들기로 한 정대만 씨.

 

좀 어려운 일인데….: 수락

이 일 맡은 센티넬이 폭주해버렸지, 뭔가: 수락

소방 쪽에서 지원 요청했대요: 제가 가겠습니다.

 

일 와방 늘리고 추가 근무 실컷 하고 최동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날뛰기 시작함.

그리고 동오랑 손 꼭 잡고 다님.

임무 전후 가이딩에 종일 동오 손잡고 대박 성실하게 충전함.

가끔 배터리 떨어지면(92% 정도) 본인이 먼저! 요구하기도 함!

 

대만 씨 오늘은 동오 씨 손 잘 잡고 계시네요?

생각해 보니 동오쯤 되는 가이드의 가이딩을 피하는 건 손해더라고요.

까르륵

하하하

동오는 갑자기 돌변한 파트너 때문에 미칠 것 같았음.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정대만, 의도 없이 사람 홀리기에 재능있는 그는 작정하면 오히려 언행이 과장되는 경향이 없잖아 있었으며…. 이미 의도 X 정대만에게 감긴 동오 눈에는 과장된 이모저모가 도드라지게 보였음….

이상하달까, 안 해도 될 일을 위해 기운을 쓰는 듯해서 달갑지 않았음. 평소보다 잘 웃으면서 시원시원 쾌활하게 '최동오는 믿음직한 가이드다.'라고 말해봤자 그게 진심으로 들리겠냐고. 진심일 때의 정대만을 아는데.

맞잡은 손을 놓을 수는 없는데, 이대로 잡고 있어서도 안 될 것 같았음. 죄다 잘못된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막막했지. 정대만이 먼저 문제를 파악했다고 생각하니 더 그랬음. 저 가식적인 언행 하나하나가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거잖아.

네가 나를 믿지 않아서 나는 너를 믿지 못했지. 대만아, '나는 너를 믿는다'라고 거짓말하면 정말 믿는 게 돼? 나는 네 거짓말에 속아서 너를 믿으면 되는 거야? 이게 네가 찾은 방법이야?

 

오…. 대만이는…. 진심이었는데….

 

최동오는 정대만과 파트너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함. 불신이 겹겹이 쌓여서 더는 못할 것 같았고, 이 관계를 지속하다간 좋은 꼴 못 보겠다 싶었음. 센티넬을 포기하는 건 속이 쓰렸지만, 그보다는 정대만이 더 중요했지. 최동오는 정대만을 놓아주고 싶었음.

센티넬을 무리시키는 가이드라니 최악이야.

동오는 자신 대신 정대만의 파트너가 될 만한 가이드를 찾아다니기 시작함.

정대만이 믿고 의지할 수 있을 만한 사람. 레벨과 인성과 체력과 가이딩 능력 기타 등등을 따져서(평가 기준: 최동오의 눈에 참) 정대만을 감당할 수 있는 가이드를….

그런 가이드가 있을 리 없지만, 열심히 찾음.

정대만이 일을 늘린 덕분에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음. 동오는 서둘렀음. 진작 이랬어야 했어. 괜찮은 가이드를 찾으면 바로 파트너 교체를 신청하자고 해야지.

수소문하다 보니 파트너와 싸웠느냐는 물음을 받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동오는 부정했음.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잘 안 맞아서.

정대만을 보면 무얼 향한 건지 모를 비웃음이 나왔음.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정대만의 속이 지금은 투명하게 보이는 듯했지.

 

나한테 가이딩 받으려고 일 늘렸구나.

그러면 내가 안심할 것 같았나? ……. 무리하다 다치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걱정스럽게 중얼거려도 속은 덤덤했음. 마음 없이 예의상 건네는 인사 같았지. 명치께가 좀 답답한 걸 빼면,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서 이상할 정도였음.

분위기 순조롭게 망해가는 와중에 정대만 씨는

 

산으로 갔습니다.

정대만은 겨울을 싫어했음. 불꽃 남자라서 추운 게 싫은 건 아니고, 겨울만 되면 산불이 기승을 부려서. 이 나라는 산이 많아서 장작 삼을 것도 많았음. 산에서 불이 나면 바람 타고 불씨가 날려 순식간에 번졌고, 잠깐 사이에 산 하나가 다 타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음.

불이 번지기만 하면 다행이게. 산불은 끄기도 힘들었음. 산이니까 소방차도 못 올라가고, 십몇 킬로 장비를 이고 지고 가기도 어렵고…. 불이 강할 땐 헬기도 기류가 위험해서 다가가지 못했음.

 

이럴 때 쓰라고 화염계 센티넬이 존재하는 것이겠죠. (현실에선 산림청이 힘써주십니다)

건조한 겨울~봄이면 화염계 센티넬은 레벨 상관없이 불려 나왔음.

S급 센티넬 정대만. 당연히 불려 나옴.

지금부터 높기는 더럽게 높고 넓기는 개떡같이 넓은 산에 기어 올라가서 불 꺼야 함.

산불…. 진짜 싫어….

산불 현장에서는 가이딩을 받을 수 없거든. 높고 넓으니 한 번 올라가면 짧게는 한나절 길게는 며칠까지도 산에서 버텨야 했음. 그런데 가이딩이 가능하다 뿐이지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가이드를 어떻게 데려가겠어? 그냥 산도 아니고 불 난리 난 화재 현장에.

그러다 폭주라면 어떡해용? 불 끄라고 올려보냈는데 안 될 말이지. 물론 센티넬들은 가이딩 대체품을 받았음. 그 이름하야….

 

☆억제제☆

세상에는 억제제 먹을 바에는 폭주하는 게 낫다는 말이 있지…. 억제제는 이름대로 폭주를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약물이라 부작용이 끝내줬음.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어도 절대 죽지는 않는 게 이 약의 묘미임.

 

정대만은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던 약병을 받아들고 쫌 울고 싶어졌음.

갑자기 불려 나온 정대만은 방금 막 임무 하나 끝낸 참이라 배터리 25%였음. 타이밍의 신에게 버려져서 동오 손도 못 잡고 왔어. 정대만은 벌써 시뻘게진 산을 보며 가늠함.

 

억제제…. 안 먹을 수 있을까?

 

있겠냐.

한편 파트너가 복귀하기도 전에 현장으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최동오 씨

 

화염계 센티넬은 산불 나면…. 불려가지.

 

뉴스로 보고 들어서 알고는 있었으나 내 주변 일이 되자 기분이 묘함.

 

...? 잠깐만, 정대만이 불려갔는데 최동오는 왜 여기에 있지?

 

화염계 센티넬과 파트너 맺은 건 처음이라 돌발 상황(?)에 당황하는 동오 귀엽겠다.

 

저, 그럼 가이드는 어디로 가면 되죠?

어머, 동오 씨는 처음이구나. 산불 현장에서 억제제 지급해서 가이드는 안 가요!

억…. 제제...요…?

다시 말하지만, 이 세상에는 억제제 먹을 바엔 폭주하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방금까지 파트너 교체 신청할 생각이었지만) 내가 좋은 것만 먹이고(?) 잘 재우고(?) 곱게 가이딩해서(?) 충전시킨 센티넬한테 억제제를 먹인다고?

동오의 손이 파르르 떨림,, 심상찮은 반응에 동오에게 토막지식(산불 현장 억제제 지급)을 알려준 사람이 물었음.

 

대만 씨 가이딩하고 가셨죠?

네, 가이딩 해줬더니 쏠랑 임무 하러 갔지만요…. 복귀 못 하고 끌려갔지만…. 가이딩을 하고 가긴 했죠

가이딩 받고 가셨으면 억제제 안 먹어도 괜찮을 거예요!

그렇군요…. 제 센티넬은 억제제를 먹어야 하겠군요….

 

동오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안심시켜준 그이에게 감사 인사를 하지 못했음,

황망해 있는 건 잠시였고, 동오의 머리는 의문을 제시했음. 그렇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이해가 안 됐거든.

 

억제제를 지급하니까 가이드는 가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나?

억제제 먹고 부작용에 시달리는 센티넬이 산불을 꺼? 그런 일을 시킨다고?

여태까지 그렇게 해왔다고?

솔직히, 센티넬은 돌연변이지. 괴물 취급받지 않음에 감사해야 해. 그것들이 이성을 잃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

강하고 위험한 존재들은 평생을 살아온 관성대로 규칙에 묶였고 국가가 채우는 목줄을 거부하지 않았으며….

얼핏 강자로 보이는 소수가 당하는 부당함에 관심 가질 대중은 없었다.

정대만은 가이드의 손을 놓기 싫어 훌쩍거리는 어린 센티넬 몰래 마른세수했음. 아직 일은 시작도 안 했는데 지독하게 피곤했어. 뒤에선 어서 나오라고 난리고, 앞에선 신파극을 찍고….

 

싫어도 어쩌겠어. 까라면 까야지.

 

라고는 말하지 않았음. 충분히 가이딩 했으니 괜찮다고나 해줬지.

넓지 않은 공간에 불려 나온 센티넬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사람이 모였음. 센티넬과 가이드는 한 세트나 다름없으니까.

산불 현장에서 가이드는 할 일도 있을 자리도 없건만 다들 매번 따라왔음. 정대만의 저번 파트너도 그랬지. 나가기 직전까지 손을 잡아줬었음.

그때 걔는 별 소용도 없는 가이딩을 그렇게 해줬는데, S급인 지금 가이드께서는 자기 혼자 편하게 서울에 계시는군. 정대만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겨우겨우 제 파트너와 떨어진 어린 센티넬이 코맹맹이 소리로 물었음.

 

형 가이드는요?

바빠서 못 왔다.

많이 바쁜가 보다. 형 혼자 보내구.

어어, 걔가 요새 좀 그래.

 

정대만은 종알종알 대꾸하는 어린 녀석의 나이를 가늠하다가(...중학생 아니겠지? 제발 고등학생이어라.) 인간을 혐오하게 될 것 같아서 그만둠….

대신 만만한 최동오를 까기 시작함.

 

최동오 바쁘지. 엄청 바쁘지. 헛짓거리하느라 바빠서 자기 센티넬이 태백산맥 오르는데 관심도 없지!

 

그렇다…. 정대만은 최동오가 괜찮은 가이드를 수소문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음.

최동오가 열심히 숨기지 않은 탓도 있긴 한데.

믿는다고 대놓고 말했더니 오히려 동오 위염이 악화돼서... 잘못된 걸 모를 수 없었음. 이 방법은 아닌가 보다.

그래도 이미 잡아둔 일을 안 할 수는 없어서 좀 떨어져 있었더니 공동 지인이 연락해서는

 

너 동오한테 무슨 짓 했냐.

 

하잖아.

 

손잡고 다니자고 떼를 써대서(언제?) 별말 없이 따라줬더니(네가?) 도망칠 작정을 해?

먼저 연락해 가며 어울릴 정도로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아닌 녀석이 틈만 나면 핸드폰을 보길래 뭐하나 싶었는데 깜찍하게 허튼짓하는 중이었음.

 

S급 가이드가 땅 파면 나오는 줄 아나.

다행히 최동오는 눈이 높았음. 적어도 최동오만큼은 하는 가이드를 원했으니까. 그 정도 등급에 실력에 파트너까지 없는 가이드를 어디서 구해? 꿈도 크지.

최동오의 눈에 차는 가이드가 나타났을 리는 없고, 일도 얼추 정리했으니 붙잡아다 얘기 좀 해야겠다…. 고 생각했는데.

 

나 왜 산에 있냐.

헬기 소리 때문에 귀가 먹먹했음.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산은 불바다였지. 착륙 지점을 찾아 머뭇거리던 헬기는 결국 공중에 멈췄고. 정대만은 몸이 다 풀렸는지 확인했음.

 

착륙 불가능합니다.

 

알아서 뛰어내리라는 뜻이니까. 10m 상공에서, 불타는 나무와 바위가 깔린 비탈길로.

파쿠르를 시켜도 산에서 시키냐. 죽으라고 고사 지내는 거 아냐?

 

그게 아주 말도 안 되는 헛생각은 아니어서 정대만은 웃었음. 그럼 내가 악당이 되는 셈인가? 재미있네.

 

망설이지 않고 훅, 뛰어내렸지.

정대만 씨 빌런역 마음에 든다며 악당 등장하고 계신 그 시각 최동오 씨: 지하철 타고 동서울터미널 가는 중이시다.

 

처음엔 택시 탔는데 차가 너무 밀려서 못 참고 내려서 가까운 역까지 달렸음…. 서울에서 태백까지 기차보다 버스가 빠르다는 걸 알고 싶진 않았는데 정대만 덕분에 하나 배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운동할 시간에 면허를 땄을 텐데…. 후회한다고 지하철이 더 빨라지진 않았음. 그리고 이런 일(센티넬이 가이드는 서울에 버려두고 자기 혼자 태백산맥 감)이 생길 줄 누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부랴부랴 정대만 센티넬 어디로 불려 갔는지 문의하고 외출계 신청하고 태백까지 가는 법 찾아보고 고속버스 예매해서 숨 헐떡거리며 달린 최동오를 알았다면

더는 버틸 수 없어서 억제제 병뚜껑 딴 정대만이 조금이라도 덜 외로웠을까.

동오가 현장에 도착했을 땐 센티넬 소집 후 6시간째였고, 진화 작업을 마친 센티넬이 하나둘 복귀 중이었음. 동오는 제 센티넬이 나왔는지 기웃거리는 가이드 무리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다가갔음. 마침 한 사람이 제 센티넬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 나간 덕에 자리가 생겨서 거기에 설 수 있었지.

산의 초입. 불에 다가가기 위해 자리 잡은 터에 가이드를 위한 자리는 없었음. 덕분에 '가이드는 안 가요', 그 말이 동오를 속일 작정으로 나온 거짓말은 아니었다는 걸 알았지. 불청객이 되긴 처음이라. 어떻게 있어야 할지 고민한 동오는 두리번거리는 대신 화마가 휩쓸고 간 폐허에 시선을 뒀음.

파트너를 따라온 가이드들을 보기 부끄러워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눈치 살피며 몇 시간을 서서 기다렸을 사람들 앞에서 감히 떳떳할 수 없어서.

재가 된 산을 한참 바라봐도 정대만은 복귀하지 않았음. 계절답게 낮이 짧아서 사위는 금방 어두워졌음. 주변의 가이드들은 죄다 제 센티넬을 맞이하러 떠났고, 참혹한 광경은 봐도 알 수 없게 됐지.

앞이 보이지 않으니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졌을 때였음.

 

정대만 센티넬의 가이드세요?

동오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음. 오소소 돋은 소름이 부끄럽게도 목소리의 주인은 아직 어린 가이드였음. 키가 작아서 있는 줄도 몰랐던 거지(시야가 좁아질 정도로 심적 여유가 없기도 했고).

어린 가이드는 한참 우물거리다가 동오와 눈을 마주했음. 느리고 작은 목소리가 동오에게 물음.

제 파트너가 아직 안 왔는데…. 그분이랑 같이 갔거든요. 그분은 강하시잖아요. 그러니까 곧 돌아오겠죠?

 

형태가 질문이었을 뿐 돌아오리라는 확신이 느껴졌음.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함이 아니라 동오를 위로하려고 말을 건 것 같았지.

그러나 동오는 그럴 것이라 대답할 수 없었음.

어째서일까, 정대만이 죽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돌아올 게 분명한데. 왜 입이 안 떨어지지.

어린 가이드는 대답 없는 동오의 곁에 오래 머물지 않았음.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센티넬의 이름을 외치며 달려 나갔지. 동오는 그 아이를 따라 걸었음. 정대만이, 아직 어린 몸을 업고 복귀했으니까.

복귀를 알린 정대만은 제게 달려온 가이드에게 업고 있던 센티넬을 넘겨줬음. 동오는 정대만의 재 묻은 얼굴과 휘청거리지 않는 걸음, 느리지만 불안하지 않은 움직임을 살폈음. 가까워지자 목소리까지 들렸지.

 

억제제 먹어서 그래. 늦지 않게 먹였어. 네가 안아주면 금방 일어날 거야.

다정한 음성이 단단하고 믿음직스러웠어. 축 늘어진 제 파트너를 품에 안은 가이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음. 그들 앞에서 정대만은 마치 영웅 같았지. 연신 고개를 꾸벅이는 어린 가이드에게 손을 휘저어 주는데, 피로해 보여도 여유가 느껴졌고….

설마 괜찮나?

 

동오는 회의스러워졌음.

 

내가 여기까지 달려올 이유가 있었나? 내가 필요했으면 정대만이 알아서 나를 데려왔겠지.

 

동시에 그런 자신이 혐오스러웠지.

 

파트너의 안전에 기뻐하진 못할망정, 이게 무슨…. 나는 이 정도로 역겨운 인간이었나?

그러나 모든 헛된 의문은 홀로된 정대만이 지척까지 다가온 최동오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 앞에서 무너졌음.

 

아, 나도 동오 보고 싶다.

 

지친 목소리가 솔직했어. 단단함을 꾸며내지 않은 얼굴은 외로워 보였지만, 돌아갈 장소가 있는 사람만이 갖는 갈망이 느껴졌지.

해는 저물었지만, 아직 장비들이 철수를 마치지 않은 탓에 불이 켜져 있었음. 동오는 정대만이 선 밝은 곳으로 한 발짝 들어갔음. 정대만이 보기 쉽게. 최동오를 찾기 위해 어둠을 뒤지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타박하듯, 장난스럽게 말했음.

 

그러게 나도 데려오지 그랬어.

깊이 숙였던 고개가 퍼뜩 들리고 동그랗게 커진 눈이 최동오와 마주쳤음. 녹색 눈동자가 안도감으로 번들거렸어. 정대만은 입꼬리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호두처럼 턱을 구겼다가, 언제 서러워했냐는 듯 웃었음. 찡그린 눈썹만 혼자 어리광을 부렸지.

 

그러게, 괜히 혼자 왔다.

불빛이 밝았어. 정대만의 표정도, 거기에 담긴 감정까지 최동오의 눈에 보일 만큼. 선 채로 조금 벌린 팔도 보였고. 이제야 후들거리는 다리도 보였고. 웃어 보이기 위해 깨문 입술도 보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보였지.

 

최동오는 정대만을 힘껏 끌어안음.

오늘 진짜 힘들었어.

응, 그랬겠다.

나만 가이딩 못 받고 갔다고…. 잘 좀 따라다닐 것이지. 필요 없다고 할 땐 징그럽게 따라오더니.

그건 네가 나를 두고 간, 아니다. 내가 잘못했어.

억제제 진짜 싫어.

나도 그거 싫어해.

최동오도 싫어.

......

이걸 진심으로 듣네. 취소다, 인마.

대만아….

동오는 정대만이 웅얼거리는 말에 전부 대답해 줬음. 줄곧 바라던 것이 대가 없이 안겨 와서 놀랐지만, 놓아줄 생각은 없었지.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면 정대만의 몸이 풀어지는 게 느껴져서 만족감이 차올랐어. 정대만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생각했지.

네 가이드가 하고 싶어.

그렇게 한창 끌어안고 있을 때까지는 분위기 좋았으나 본부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은 지옥 같았음. 호기롭게 "이제 집에 가자!"라며 최동오의 품에서 벗어난 정대만이 한 걸음 떼자마자 오한과 어지럼증, 빈속이라 구토 대신 헛구역질, 그 와중에 입 마름…. 등등의 억제제 부작용을 호소했기 때문에.

열도 안 나는데 춥다고 덜덜 떨면서 헛구역질 욱 욱하다가 갑자기 목마르다고 생수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어지러워서 휘청거리는 정대만…. 을 보다 못한 최동오는 어부바를 시전함.

공주님 안기 이벤트는 정대만 때문에 무산됐지만, 오늘의 정대만은 초주검 상태라 얌전했다. (아싸)

동오의 등에 업힌 정대만은 몸을 한껏 옹송그렸음. 동오의 목에 감은 팔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는데, 동오는 숨 막히지도 않는지 묵묵히 걸을 뿐이었음.

 

동오야…. 너 이러려고 운동했나 보다.

대만아, 힘들면 헛소리하지 말고 자.

야아, 업혀 가면서 어떻게 자냐….

업혀 가는 게 미안해서 못 잔다는 거 아니고 업혀있는 게 힘들어서 못 잔다는 거다.

 

정대만은 파트너께서 바라시는 대로(아니야) 입을 다물었음. 입술이 댓 발 나왔지만, 인간답게 수평 시야각이 180도인 최동오 씨에겐 보이지 않으니 동오는 알 수 없는 일이었음.

억제제 부작용 끔찍한 거야 모르지 않았지만, 오늘따라 이상하리만치 괴로워서 서러울 지경이었음. 농담할 여유가 있을 때는 따라오지 않은 최동오를 탓하는 척도 했는데. 이젠 그때 동오를 부르지 않은 게 후회스러울 뿐이었지.

 

부를걸. 가이딩 받았으면 억제제 따위 필요 없었을 텐데.

아프고 어지러워 혼곤했던 탓에 뚫린 입을 단속하지 못한 것은 정대만의 패착이었다….

 

댐: (말한 줄 모름. 속으로 생각만 하려 했음.)

동: o O (방금 그거 어리광은 아니었지…?)

툭 뱉어진 말은 어리광보다는 후회였고, 자책에 가까웠음. 최동오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니었을 것이며, 정대만을 배려한다면 대답하지 않는 쪽이 좋을 터였어. 적어도 동오는 그렇게 생각했음.

 

하지만 이미 들어버렸는걸. 동오는 정대만이 자신을 두고 떠났을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돌아봄.

그때. 장장 여섯 시간의 진화 작업으로 겨우 꺼뜨린 불이 시작됐을 때. 강하고 빠르게 부는 바람 때문에 다가가지도 못하는 동안 매초 불이 수배로 커졌다던 때.

산에는 네가 절실했을걸. 그래서 너도 급하게 온 거잖아. 나한테 올 생각도 못 하고.

일 다 끝나고 (부작용으로 죽어가지만) 멀쩡한 센티넬 챙기고 나니까 긴장이 풀려서 정대만을 이해할 수 있게 된 최동오(아님. 정대만이 자길 필요로 하니까 만족스러워서 관대해진 것임)

정대만을 위로하기 위해 말 고르던 중에 머리카락을 쥐어뜯기다(빡빡머리였다면 안 뜯겼을 텐데…. 안타깝군)

악!

너! 너 때문이잖아!

무슨 소리야?!

네가 오는 바람에 긴장 풀려서 아픈 거잖아!

 

그래, 억제제 부작용이 이 정도는 아니었지! 그때랑 지금이랑 다른 점이라곤 최동오뿐이다!

최동오를 깜빡한 건 본인 잘못이지만, 최동오 봤다고 긴장 풀리는 몸이 된 건 최동오의 잘못(?)이라는 정대만 씨의 주장.

동오는 기가 막혔으나 아픈 사람 상대로 드잡이할 수는 없으니 성내는 거 받아줬음…. (방금까지 빌빌거리던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는 악력이었지만…. 참아냄!)

씩씩거리던 정대만은 이내 힘을 빼고 최동오의 등에 늘어졌음.

 사람이 아프면 이상해진다더니 정말이구나…. 다시는 억제제 먹을 일 없게 해야지…. 동오는 이런 생각이나 함.

동오야, 내가 어떻게 해야 믿을래.

 

목소리가 낮고 작았어. 바람이 소란스러워 자칫하면 묻힐 것 같았지. 동오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음.

 

이만큼 아파본 적이 없다, 내가. 이거 너 때문이야. 네가 나 데리러 와서 아픈 거라고. 그래도 내가 널 믿는 게 아니냐? 아직도 부족해?

담담히 묻는 말에서 피로가 느껴졌지만, 그건 녹초가 된 몸 때문이지 최동오 때문이 아니었음. 정대만은 최동오에게 지치지 않았어.

 

근데, 부족해도 조금만 봐주면 안 되냐.

 

모순되게도 그래서 최동오는 생각했음. 자신이, 최동오가 정대만에게 가혹했다고.

댐: 그래도 파트너 교체는 좀 참아봐라.

동: 대만이는 계속 말했는데 내가 안 들었어…. (못 믿을만했다는 건 생각 안 함)

 

동상이몽도 가지가지….

속내는 제각각이지만 표면적으로는 센티넬도 무사히 복귀했고 서로 대화하여 조율도(...) 했음.

정대만은 돌아와서도 억제제 부작용으로 사흘 밤낮을 낑낑 끙끙거린 끝에 온종일 최동오와 손잡고 다니는 신세를 벗어났다고 한다.

한편 뒤늦게 좋은 가이드를 찾았다는 지인의 연락을 받은 최동오 씨.

사과하고 거절하려는데 어떤 사람이냐며 얼굴 들이미는 정대만 때문에 식은땀 보노보노 되는데 화면 가릴 생각은 못 함. 어제까지 아팠던 사람 밀어내지도 못하고 채팅 기록을 공개하다.

오, 가이딩 경력 화려해.

...나도 경력 좋아.

취미가 운동이라고? 체력은 합격이겠네.

내 취미도 운동이야…!

나랑 파트너 해보고 싶으셨대. 영광인 걸.

너랑 파트너 해보면 그런 말 못 하실걸!

뭠마?

천하의 최동오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정대만 어때.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욕심내는 최동오 상당히 미련하지. 쭉 읽은 정대만이 교체 신청하기 귀찮으니까 거절하라고 하면 그제야 안심함. 근데 파트너 끊으려고 한 사람은 최동오 당신이잖아요. 오히려 자기 좀 봐달라고 한 정대만이 여유만만임.

어쨌거나 저쨌거나 두 사람이 파트너 교체를 신청하는 일은 없었고 최동오는 정대만을 잘 따라다니며 필요해 보일 때만 적절히 가이딩을 권하게 되었다고 한다.

메데타시 메데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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