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우형, 건선, 지원솔빈

견지원

지원솔빈

복지사업 by 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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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田景凪 - ダーリン

무감하게 흘러나오는 텔레비전 안의 연예인이 환하게 웃으면서 뭐라고 중얼거리는 건 보고 있는데, 머리가 핑 돌고 어지러워서 자꾸만 마른 세수를 한다. 사흘 전의 새벽, 침대의 스프링이 꺼지며 튕기는 소리에 천천히 잠에서 깼는데, 모든 익숙한 공간 사이에서 낯선 문소리가 들렸다. 이런 새벽에, 아직 동트기도 전에 어딜 가냐고 묻고 싶었는데 차마 입이 열리진 않아서 그냥 숨죽여서 그 시간을 흘려보냈다.


피솔빈이라는 여자는 종종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였다. 사만원짜리 밥을 사줬더니 손을 덜덜 떨며 커피는 자기가 사겠다고 말하는 모습이나,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해외여행을 함께 했을 때 농담으로 던졌던 말에 실내화를 신을 수는 없는지 물어보는 모습이나, 본인이 담담하게 헤어지자 고해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왈칵 눈물을 터트리는 모습같은 것들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슴 안을 헤집었다. 차라리 오롯이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안을 헤집으면 낫지. 관계의 종료는 언제든 썩 기쁜 일은 아니었다지만, 이정도로 힘든 일이 몇 년 안에 있었나? 피솔빈이 제 안에 가득 들어찬 지는 5년이 채 안됐다. 분명 길다면 긴 시간인데 지금 내게는 너무 짧지 않나, 더 길게, 더 오래 피솔빈이 제 곁에 있길 원했다.

나 지금 꼴이 너무 우스운데….


솔빈이 전셋집을 내놓고 같이 살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었다. 옆집에 살고 있는데 굳이 집을 따로 나누는 것도 애매했고, 주기적으로 얼굴을 보고 싶으니까 차라리 같이 사는 게 어떤지에 대해서 꽤 진지하게 얘기했었다. 솔빈의 부담감 때문에 돈을 일부 나눠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했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다고 느끼기는 했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된 지 얼마나 됐다고, 어린이 코 묻은 돈 같아서 솔빈이 준 돈은 그냥 다시 돌려주고 싶었다. 물론 그녀의 성격 상 그랬다가는 부담감에 못 살 것 같다고 도망칠 것 같으니 최대한 공평하게 보이도록 반반이다, 이렇다 저렇다 해서 겨우 눌러두었지만 사실은 그것도 일부 거짓말이 있기는 했었다. 관리비 같은 것들도 전부 제 통장에서 자동이체되도록 처음부터 설정해두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그냥 본인이 내고 있다고만 했고. 솔빈은 그것도 못마땅해하는 것 같았지만 대신 장을 보고 요리해주는 값 정도면 비슷하게 나올 것 같다고 해서 겨우 타협점을 찾아, 그렇게 함께 산 지 이제 이삼년이 조금 흘렀나….

솔빈의 동생에게 본인의 체크카드를 하나 넘겨주고 과하게만 쓰지 말라 일렀다. 솔빈에게 말을 하지 않는다면 상황을 보고 돈을 조금 더 넣어줄 수도 있다고. 뒤에서 괜히 이런 저런 공작을 하는 것 같았지만 차라리 그게 나아보였다. 솔빈은 너무 많은 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였고, 아주 가끔, 그녀 자신의 집안사 이야기를 듣게 되는 날이면 본인이 할 수 있는 건 그 어깨를 끌어안고 가볍게 다독여주는 정도의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솔빈이 지원의 집안에 대해 알게 되는 점이 커지면 커질수록, 솔빈이 가지고 있는 부담감이 커지는 것도 언뜻 눈치는 채고 있었다. 결국 모든 건 다 폭탄같은 거라서, 솔빈이 헤어지자고 말하는 건 이미 밟은 지뢰폭탄에서 발을 떼는 것과 비슷했다. 당연히 일어날 일임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터지고 나니 모른 척 하고 싶었다. 자신의 집안이 원인이라면 처음부터 이미 자신은 탈락인 거 아닌가 싶어서, 그냥 원인을 다른 곳에 돌려버리고 싶었다.

어떻게 그래요, 저희 집 사정도 이제는 다 알잖아요. 저라는 위험을 굳이 감내하려고 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리고…. 그냥, 아시잖아요. 저보다 더 좋은 사람 많고, 충분히 그런 사람 만나실 수 있을거예요. 너무 좋으신 분이니까…. 그러니까 저희 이제 그만 만나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꽤 추한 모습으로 그 앞에서 흐려진 시야를 숨기려고 몸을 작게 말았었다. 겨우 붙잡고 한 말이라는 게 저녁은 먹고 가, 여서 똑같이 울고 있는데도 그러면 그럴까요. 하고 마지막 만남을 좀 더 길게 미뤘다. 집에 데려와서도 겨우 붙잡아 앉혀 놓고, 마지막으로 안아달라고,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그런 말들로 애써 붙잡아 미룬 것도 결국 몇 시간이 되지 않았다. 삐걱이는 침대, 옷을 갈아입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작은 숨소리 안에 얽혀있는 울음소리 따위를 멍하니 눈을 감고 들었다. 익숙하게 도어락을 풀고 솔빈이 집 밖에 나가고서도 한시간정도 그대로 멈춰있었다.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따위를 생각하면서. 출근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도무지 일을 생각할 수가 없어서 상사에게 병가로 자택근무를 요구했다. 딱히 영업팀이 내야하는 보고서나 자료는 노트북에도 다 있었고, 기한도 넉넉했으므로 일주일 정도 연차와 섞어 사용하겠다고 전달했다. 고작 이런 일에 연차의 일부를 쓰는 것이 조금은 아까웠다. 어쩌면 솔빈과 함께 이걸로 여행을 갈 수 있었을텐데. 아니, 이제는 의미가 없나…?

그래도 일주일 정도 지나니 밖의 모습이 보이기는 했다. 아직 여전히 부엌에 남아있는 같이 쓰던 머그컵이나, 솔빈의 취향으로 산 토스트기 같은 것은 여전했기 때문에 기분이 묘했다. 굳이 치울 생각도 없었고, 가능하면 토스트기가 죽건, 본인이 죽건, 뭐 하나 죽을 때까지 그냥 계속 그 자리에 두고 싶었다. 그냥 영원히 솔빈이 이 안에 있었다는 흔적을 지우고 싶지가 않았다. 세탁물은 쌓여가고 설거지도 쌓여가고 쓰레기도 쌓여가는데 어째 밖에 나갈 생각이 전혀 안 들었다. 솔빈이 어디로 가서 뭘 하고 있는지조차 알아볼 생각도 안했다. 어차피 지금은 학기 중이고 그 성격에 학교 안을 돌다가 찜질방이나 모텔같은 곳에 가서 자고 코인 빨래방을 돌겠지. 그냥, 그냥 알았다. 어쩌면 잠시 본가에 돌아갔는지도 모르고, 친구의 집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냥 머릿속이 뭘 해도 솔빈의 생각이 가득해서 미칠 것 같았다. 회사 일이나 다른 것을 좀 더 생각하고 있는데도 이 정도로 솔빈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솔빈이 보고싶었다.


견팀장, 소개팅이라도 해볼래?

제가요? 아뇨, 됐습니다. 소개팅은 무슨….

인사팀에 견팀장 동기가 소개팅 주선 잘 한다고 회사에 소문났더라. 얘기나 들어봐.

아뇨, 진짜 괜찮은데….

소개팅 물어다준다고 해도 이미 본인이 진즉 발로 찼다. 안 그래도 병가를 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집으로 달려온 게 동기였다. 오자마자 헤어졌냐고 캐물으면서 편의점에서 소주를 한가득 담아왔다며 죽어라 부어주고 핸드폰의 전원도 꺼서 멀리 던져주셨다. 정말 감사하게도 덕분에 미련넘치는 카톡은 안 보냈다. 새벽까지 그 지랄을 하다, 아침까지 바닥을 기는 꼴을 보고 결국 대차게 소리를 질렀다. 열받게 여기서 이러지 말고 네 집이나 돌아가라고. 옆구리를 발로 찼더니 설설 바닥을 좀 더 기다가 한바탕 코를 골면서 거실을 다 차지하고 누워 자더라. 아마도 밤 중에 술을 마시면서 흘러가듯 소개팅 얘기가 나왔는데, 스스로 답변한 꼴이 더 웃겼다. 솔빈이가 아니잖아. 뭐, 솔빈이가 아닌게 당연한데 그딴 답으로 동기의 황당한 표정을 구경했던 게 기억이 난다. 진짜 제대로 빠졌느니 뭐니 하면서 결국 깔깔 웃던 동기가 괘씸해서 술병채로 그 입에 꽂아버리고 나도 바닥에 누웠었나. 아마도 그대로 죽은듯이 둘 다 자고 일어나니 주말이 반나절은 넘게 지나가 있었다. 코 좀 그만 골고 네 집으로 꺼지라고. 다시 동기를 꾸욱 짓밟고 그 위를 걸어 침대로 돌아갔다. 알아서 일어나면 돌아가겠지.


삼주 쯤 지났다. 이제 토스트기가 보여도 죽을 때까지 끌어안고 사는 것보다 빵을 넣어 먹을 생각이 먼저 들기 시작했다. 머그컵도 머그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좀 괜찮은 것 같았다. 핸드폰 최근 검색 기록 내용에 이별 후유증 따위를 검색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 정도로 망가졌으면 진작에 솔빈의 핸드폰에 부재중 연락을 100통 정도는 남겼을테다. 그 정도 공사구분을 할 수 있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라도 본인에 대해 집중하는 게 나았다. 제발, 그렇지 않고서야 일부로 솔빈의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는 본인의 모습이 지독하게 싫어졌을테니까. 차로 지나가는 시간 단 10초였다. 그 정문을 똑바로, 25km로 달려서 스쳐지나가면 그게 10초였는데, 굳이굳이 퇴근 할 적에 그 정문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 주 쯤에 솔빈을 생각할 때마다 불안증세마냥 손가락을 책상에 두드리고 있는 걸 깨달았다. 책상에서도, 텀블러에도, 마우스에도, 마지막에는 젓가락을 그러고 있는 걸 깨달았을 때 좀 더 생산적인 생각을 하는 게 낫겠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솔빈의 생각을 할 때 해외주식을 얼마 넣을지도 같이 생각하기로 했다.


한달이 됐다. 정말로 내가 이걸 굳이 날짜를 센 건 아니지만, 그냥 우연히 캘린더를 봤을 때 그 날짜가 저번달의 날짜와 똑같았다. 어쩌면 신이 뭔가 계시를 준 건 아닐까? 이젠 해외주식 창을 열어두고 핸드폰 화면을 손으로 툭툭 두드리고 있었다. 잘못해서 이상한 주식을 100주 살 뻔 했다. 이러다간 정말 안될 것 같아서 영업을 나간다고 하고 솔빈의 퇴근시간에 맞춰 초등학교 앞으로 갔다. 사실 다 구라였다. 난 헤어진 날부터 하루하루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고, 본인이 뭘 했는지는 기억 못해도 솔빈이 오늘 무슨 일을 하고 있을 지에 대해서는 기억하고 싶었다. 매번 토스트기를 보면 솔빈이 그 토스트기를 사러 갔을 때 입었던 옷이 생각났다. 그 날 했던 대화가 먼저 생각났다. 빵 따위 10장은 다 태워서 다 갖다버렸다. 머그컵을 보면 그 안에 따듯한 차를 데워 마시거나, 커피를 타던 솔빈이 먼저 생각나서 전부 다 깨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가, 그것 말고는 솔빈을 기억할 방법이 없을까봐 수건으로 깨끗하게 닦았다가를 반복했다. 솔빈이 오늘 무슨 옷을 입었는지도 확인하고 싶었고,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너무 궁금했다. 난 그냥 피솔빈이라는 여자가 궁금했다. 하루 내내 그 생각을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잠들기 전까지 그 생각을 하고 다시 눈을 뜨면 또 그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애써 무시하려고 해도 그렇게 안 되는 걸 알면 이제 정말 그만둬야했다. 무슨 자신감인지, 아니면 오기인지, 그냥 그 차를 끌고 초등학교 앞에 대충 세웠다. 딱지가 붙든지 말든지.

익숙한 짧은 머리가 보이길 기다렸다. 그냥 멍하니 그 교문 앞에 서서 초등학생들이 소리지르며 뛰어다니는 꼴을 한참 봤다. 생각해보면 자신은 초등학생 따위, 어린 아이따위 관심도 없었다. 걷다가 발로 찰까봐 걱정 하는 정도. 솔빈이 가르치는 아이들이 어떤 성격이라는 얘기를 할 때 좀 더 집중해서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젠 초등학생을 보면 난 피솔빈부터 생각하는데, 그냥 모든 게 괘씸했다. 그녀는 그냥 잘 있을 것 같아서.

담벼락에 기대 서 있다가 전자담배를 물러 차 안에 들어갔다가, 또 나와서 바닥을 돌이 몇개나 떨어져있는지 세다가, 또 전자담배를 물러 차 안에 들어갔다가. 하교시간이 좀 지나 있어서 다행이었다. 차 안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것도 우습지만, 초등학교 앞 찻길에 이렇게 차를 세워두면 학부모들의 불만이 장난 아니라고 하는 솔빈의 얘기를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솔빈은 그렇게 말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종종 얘기하다보면 언뜻 이야기가 길어지는 일이 꽤 있었다. 그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솔빈의 하루 생활하는 모습이 다 그려졌다. 젠장, 진짜로 피솔빈이 너무 보고싶었다. 담배를 대충 던지고 마른 세수를 하며 숨을 길게 뱉은 순간에 담벼락에서 익숙한 얼굴이 스쳐나왔다. 차 문을 어떻게 열고 뛰쳐나갔는지는 그닥 기억이 안 난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피솔빈의 손목을 잡아채서 뒤로 잡아끌었고, 솔빈아 하고 입 밖에 네 이름을 뱉은 후였다.

나, 더 기다려야 해?

익숙한 체온이 손 안에 들어오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 동그란 얼굴이 약간 찌푸려지더니 곧 눈 안이 반짝거리고, 물방울을 뚝뚝 떨구는 걸 보면서 냉큼 그 작은 체구를 끌어당겼다. 당장에라도 그 몸을 안아들고 잔뜩 제 향을 가득 묻힌 집 안에 데려가고 싶었다. 집에 가자, 응? 보다 나긋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을까. 어깨를 품에 딱 붙이고 차 안에 솔빈을 앉혔다.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뱉어낸 담배의 숨이 차 안에 가득 있어서 신경이 쓰였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밖에서 피우는 건데. 뒷자리 창문을 열고 급하게 환기를 했다. 그 사이에도 솔빈은 계속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기에, 한 손으로 계속 솔빈의 손을 붙잡고 엑셀을 꾹 밟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서 솔빈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다. 그녀가 하나하나 말하는 것을 전부 귀담아 들었다. 뭐든 너를 위해서라면 다 포기할 수 있는데 나는. 함께하던 공간, 우리 집. 매번 네가 앉아서 식사하던 자리. 거기에 네 자리가 있었다. 혼자서 있건, 누가 오건 그 자리는 그냥 비워뒀었다. 오직 너만이 그 자리를 사용해줬으면 해서. 네가 다시 그 자리에 앉아서, 아직 다 닦지 못한 눈물을 급하게 수습하는 동안에 철없이 흐르는 웃음을 애써 꾹꾹 눌러 참았다. 네가 확언을 한 것도 아닌데. 미지근한 물을 가져다주며 솔빈을 하나하나 뜯어본다. 그냥 그 자리에 네가 있는 게 좋았다. 지독하게 너를 사랑했다. 지난한 시간이 흐르니 그게 더 잘 느껴졌다. 네가 어색하게 웃는 모습을 훑는다. 내가 이제 할 수 있는 건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밖에 없어서, 그 단어를 가볍게 돌린다. 솔빈이 보다 그 의미를 잘 이해해주길 기다리며.

Aimer - カタオモイ

솔빈아, 이제 나 좀 욕심 내줄래? 나는 우선순위 첫번째가 피솔빈인데…, 나는 이미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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