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면볶이 만드는 법

소설도 맞고 레시피도 맞다

창작공간 by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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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고삼인 시절, 최대몸무게를 갱신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당면볶이를 만들려고 한다. 먼저 집에 재료가 있는 지 확인해야지. 당면 있고 고추장 있고 고춧가루가아... 있고! 설탕 있고 카레가루 있고 굴소스 있고 다진마늘!..은 없지만 마늘 있고 고기느은.....없다! 메인 재료가 없으니 당장 마트로 출발!

본가에서 훔쳐 온 장바구니를 들고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마트로 빠르게 다리를 움직인다. 마트에 도착하니 배에서 식사용 알람 시계가 울린다. 으아 얼른 사고 가야지. 고기는 돼지고기든 소고기든 상관없지만 비계가 많은 게 좋다. 흠 고삼 때는 대패삼겹살이나 그냥 삼겹살을 넣었는데 뭐 고르지. 평소라면 더 싼 걸 고르지만 공교롭게도 오늘은 둘 다 할인을 해서 고민된다.

"흐으으음...."

좋아, 삼겹살로 결정이다! 하지만 세일을 놓칠 수 없으니 대패도 사야지! 냉동고에 쟁여둔 만두와 치킨너겟이 곡소리를 내는 거 같지만 무시한다. 

"31120원 입니다~"

결제를 하니 휴대폰에 알림이 떠서 겸사겸사 통장잔고를 확인했다. 1231원.

"헉..."

아이스크림 사야겠다! 운이 좋게도 통장에는 딱 아이스크림을 사기 좋은 정도의 돈이 남아있고 이 주변에는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있다. 두께만 다른 돼지고기 2팩이 든 장바구니를 앞뒤로 휘적이면서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도착한다. 눈치 볼 사람이 없는 가게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아이스크림이 있어 결정 느림보인 나는 평소에 아이스크림을 고르는데 오래 걸린다. 하지만 지금 내 손엔 얼른 냉동고로 들어가야 할 고기들이 있고 무엇보다 배가 고프다. 다행히 오늘은 내가 먹고 싶은 맛이 정해져 있다. 이제 하나만 고민하면 된다.

싼 거 2개를 살까, 비싼 거 1개를 살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웬만하면 다다익선파이다. 서늘한 기운을 담고 있는 오렌지 맛 하드 2개를 꺼내서 결제한다. 띠링, 이제 통장에는 31원만 남았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내일모레면 월급이 들어온다. 결제를 마친 아이스크림들을 바구니에 던지고 밖으로 나간다. 숨을 뱉으면 김이 보일 날씨지만 겨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기엔 따뜻한 날이다. 괜히 고개를 들어 구름에 가려진 태양을 보다가 집으로 걸어간다.

집도착! 잽싸게 아이스크림과 대패삼겹살 냉동고로, 겨울바람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준 김말이는 옷장으로 쑤셔 넣는다. 깨끗한 상태로 요리를 시작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간다.

"앗 차가!"

수도꼭지를 가운데로 돌려서 튼 수도에서 차가운 물이 나온다. 조금만 기다리면 따뜻한 물이 나오겠지만 시간이 아깝다. 나는 대충 적셔진 손바닥 위에 비누를 올리고 마구 비빈다. 거품이 손 전체를 가릴 때 쯤 비누를 내려놓고 팔등으로 수도꼭지를 올린다. 미지근해진 물이 손을 감싸고 거품을 하수구로 흘러내린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수도를 잠근다. 손목을 몇 번 터니 벽에 물방울이 맺힌다. 남은 물기는 옷에 닦아버리고 화장실 불을 끈다.

얼른 만들어야지.

넓다란 프라이팬에 수돗물을 받는다. 프라이팬을 잡고 있는 손목이 달달 떨리면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로 옮겨서 불을 켠다. 물이 열을 올리는 동안 대용량으로 산 당면을 먹을 만치 뜯어낸다. 물이 보글거리면 건 당면을 넣어 팬 안에 들어가도록 꾹꾹 누른다. 당면이 팬 밖을 삐져나가지 않고 얌전히 자리를 맡은 걸 확인하고 타이머를 7분으로 맞추고 시작을 누른다. 이제 타이머가 울리기 전까지 소스를 만들면 된다. 마늘 5조각을 꺼내 갈릭프레스로 하나하나 다져준다. 다진 마늘을 그릇에 담고 소스용 재료들을 전부 꺼낸다. 순서는 상관없지만 설거짓거리를 줄이기 위해 설탕, 고춧가루, 카레 가루와 같은 가루를 먼저 푼다. 매운 게 땡기니깐 고춧가루를 더 넣어준다. 그다음엔 고추장과 굴소스를 넣고 섞는다.

"너무 뻑뻑한데.."

급하게 물을 한스푼 넣고 섞는다. 좀 낫네.

삐빅!

"아니 7분이 지났다고?!"

나는 빠르게 불을 끄고 당면을 몇 번 휘젓는다. 그 중 한 가닥을 들어본다. 이 정도면 되겠지. 면수를 한 컵 정도 따로 두고 나머진 전부 버린다. 당면은 체 위에 올려둔다. 지금부터 시간 싸움이다. 나는 프라이팬을 다시 가스레인지 올리고 불을 켠다. 팬 위에 물기가 사라지면 바로 삼겹살 두 줄을 팬에 올린다. 삼겹살이 구워지는 동안 남은 삼겹살을 비닐봉지에 넣고 냉동고에 넣는다. 삼겹살을 몇 번 뒤집어 보다가 가위로 잘라서 익었는지 확인한다. 다 익은 걸 확인하면 삼겹살을 밖으로 꺼내고 팬 위에 소스를 들이부어 기름과 섞이도록 젓는다. 그리고 당면을 집어넣어 소스와 섞는다. 고기가 익는 동안 당면이 불기 때문에 덜어놨던 면수를 넣어 당면이 풀어지도록 한다.

사실 당면을 익히면서 고기를 구우면 이럴 필요가 없지만... 내년엔 가스레인지 바꾼다!

하루도 안돼서 까먹을 생각을 하며 잘린 삼겹살을 올리고 후추를 뿌리면 완성!

"와 진짜 보기만 해도 살찔 거 같다."

고기기름과 소스를 먹어 새빨갛게 번들거리는 당면을 보니 자동으로 침이 나온다. 파블로프의 개는 저리 가라. 이제 당면볶이의 유아슬이 나간다. 덜어 먹을 그릇과 당면볶이를 탁자 위에 두고 자리에 앉는다. 나는 젓가락을 들고 말한다.

"잘먹겠습니다!"

이 말을 시간을 들여 요리를 한 나를 위해 하는 인사이다. 설령 실패한 요리라 하더라도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으니깐. 나는 당면과 고기를 한껏 집어 그릇에 옮긴다. 고양이를 혀를 가져서 바로 먹으면 데이기 때문에 젓가락으로 휘저으면서 음식을 식힌다. 됐다. 고기와 당면을 한입에 넣는다. 이 고탄수고지방의 맛, 맛이 없을 수 없는 음식이다. 나는 고삼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이 요리를 해 먹을 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입맛이 변해 예전에 했던 레시피보다 소스를 덜 넣었는데 이건 좋은 선택이었다. 예전처럼 했다면 너무 짜서 당면을 더 넣었어야 했을 거다. 카레 가루와 마늘은 자칫하면 맵고 짜기만 한 음식에 변주를 줘서 질리지 않게 해준다. 맛있다. 나는 고기와 당면을 조금 남기고 밥을 한 주걱 퍼서 비빈다. 이 소스는 밥이랑 먹어도 맛있다. 사실 고기+고추장+밥 조합을 싫어하는 한국인이 더 적겠지. 고추장 싫어하는 사람은 한국에 살기 힘들겠다. 근데 김치랑 고추장 중에 뭐 싫어하는 사람이 더 한국에 살기 힘들까. 누가봐도 엠비티아이 N이 할법한 상상을 하며 밥까지 싹싹 비우고 휴지로 기름을 닦아내며 다시 생각한다. 아마 당면볶이를 먹게 될 일은 점점 줄어들겠지. 입맛도 바뀌고 건강도 챙겨야 하니깐. 그리고 야채를 넣거나 다른 재료를 빼면서 레시피도 바뀔 거야. 언젠간 당면을 안 넣게 될 수도 있겠지. 예전에는 죽을 때 까지 당면볶이만 좋아하면 어떡하지 했는데. 새참스럽지만 영원한 건 없구나. 기분이 좀 그렇네.

어깨가 처진다. 그래도 정리는 미리 해야하니 기름이 묻은 휴지들을 휴지통에 버리고 그릇들을 싱크대에 넣는다. 수도꼭지를 가운데로 돌리고 따뜻한 물이 나올 때 까지 고무장갑을 낀다. 수세미에 미지근한 물과 세제를 묻혀 거품을 낸다. 환기하려고 열어둔 창문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온다. 해가 지면서 온도가 떨어져 전보다 차가운 바람이다. 괜히 짜증이 난다. 나는 얼른 문을 닫기 위해 손을 빠르게 움직인다. 프라이팬을 닦고 그릇에 거품을 묻힐 때 밖에서 누군가가 소리친다.

"제 목소리가 들리는 모든 분들-! 올해 수고하셨고 내년에는 새롭고 즐거운 한 해를 보내시길 바라요-!"

"시끄러워 미친놈아악!!!"

..푸핫!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래, 영원한 게 없으면 어때, 좋아하는 게 달라져도 늘 새롭고 즐겁게 보내면 되는 거지. 깨끗이 닦은 그릇과 젓가락을 받침대 위에 둔다. 거품이 묻은 싱크대에 물을 전체적으로 뿌리고 고무장갑을 벗는다.

아이스크림 먹어야지.

냉동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낸다. 어렸을 때 부터 좋아하던 아이스크림이다. 포장지를 벗겨낸 아이스크림은 내가 생각했던 거보다 작았다. 그럼 그렇지. 기대없이 한 입 베어 물자 예전보다 진해진 오렌지 맛이 입 안을 감쌌다. 

맛있다.

사람은 무언가에 쉽게 실망하지만 그만큼 기뻐하기도 한다. 나는 올해 마지막 겨울바람을 느끼며 창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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