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용납하고 싶지 않은 일
"----!!"
학교처럼 보이는 건물을 지나가던 중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일본어 같습니다. 돌아본 곳에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사이에 예화가 있었습니다.
헌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朝鮮人のくせに。(조선인 주제에.)"
"自分のお金で通う学校でもないじゃないか?(자기 돈으로 다니는 학교도 아니잖아?)"
어조가 심상치 않습니다.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비꼬는 말이라는 건 잘 알겠습니다. 일본인 아이들이라고만 생각하기에는 얼굴형이 전형적인 한국인 같은 사람도 있는데...
"기사님 멈춰주세요."
선우가 다급히 차에서 내렸습니다. 잠깐. 예화의 옷이 다 젖었어요. 물을 맞았나?
"あなたの学費もあなたのお金ではないでしょう。(너희 학비도 너희 돈은 아니잖아.)"
"両親のお金だから私のお金だよ。(부모님 돈이니까 내 돈이야.)"
"結局、あなたの両親が稼いでくるお金だねか?(결국 너희 부모님이 벌어오는 돈이네?)"
저렇게 옷이 엉망이 되었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다니. 예화도 담력이 대단하네요.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퍽 소리가 났습니다. 저 막돼먹은 것들이 손찌검을 해?
"助けてくれと言ってみて~。(도와달라고 해봐~.)"
차에서 내리려 했으나 운전기사가 저를 제지했습니다.
"끼어들어봐야 골치만 아픕니다."
"하지만!"
그 사이 선우가 급히 예화를 감쌌습니다.
"来た。王子様。(왔다. 왕자님.)"
"パパが言った。 もうすぐ滅びるよ!(아빠가 그랬어. 곧 망할거야!)"
"あなたの両親が教えたのかな? 人前で無礼に行動しろって? (너희 부모님이 가르쳤나? 사람 앞에서 무례하게 행동하라고?)"
청년이 아이들을 노려보았습니다. 기세에 짓눌렸는지 아무 말도 못 하고 흩어지는군요. 왜 기사님이 말렸는지 알겠네요. 굳이 언성을 높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군요.
선우가 예화를 데리고 차량으로 돌아왔습니다.
"미안해 오빠..."
"사과하지 마. 너는 아무 잘못 없어."
선우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었습니다. 번역기라도 있으면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알아들었을텐데... 갑갑하네요. 딱 봐도 싸가지를 밥 말아 먹은 아이들이 대체 무슨 소리를 했을까요? 아니. 모르면 속은 좀 나을까요? 짐작만 하는 지금도 속이 터지려 하는데.
"경성에 가도 달라지는 건 없어."
"아니. 그곳은 달라."
"아니! 뻔해. 일본 아이들은 날 미워해. 돈 많고 일본에 충성하는 부자들의 자식들도 날 계속 미워할거야..."
예화의 목소리에 점점 울음이 섞이더니 터지듯 울음이 쏟아졌습니다. 학교생활이 힘들어 보였지만 이 정도로 심각하다니... 견디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존경스럽네요.
"난 어딜 가도 미움받을거에요..."
차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따돌림이 얼마나 힘든지 나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겠지요. 이렇게 공공연한 상황에서는 교사와 학교가 개입해야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학교에서 모를 리가 없어요.
해방 후 시간이 좀 흐른 후에도 말썽인 교사들이 많았다는데 지금이라고 멀쩡할 리가 있나요. 특히 사립학교라면 돈에 충성하겠죠. 하여간 망할 놈들. 자식 인간성이라도 좀 제대로 갖춰놓을 것이지.
조심스럽게 등을 토닥였습니다. 아이는 한참을 울다 도심을 벗어날 즈음에야 진정했습니다.
"예화야. 경성은 괜찮아."
"어떻게 장담해요."
"앞으로 네가 다니게 될 학교가 어디인지 말 안 해줬지? 이화여자보통학교야."
이름이 익숙합니다. 설마 그 대학의 전신일까요? 한국 여성 교육을 논할 때면 절대 빠지지 않는 이름, 이화여대요.
"이화? 내가 아는 곳이 맞아?"
"맞아. 정웅 아저씨는 이화학당이라 부르는 곳이야."
한국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이 맞았어요. 예화가 두 눈을 반짝였습니다.
"정말? 정말이야?"
"그럼. 그곳에서는 선교사들이 너희를 가르칠 때도 있어. 그런 곳에서 감히 경거망동하는 자가 있겠어?"
"다들 요한 신부님처럼 좋은 분들이시겠지?"
"그럼."
"좋아, 난 완전 좋아!"
그렇게나 좋을까요? 하긴. 나도 이화에서 오라고 했으면 냅다 달려갔습니다. 지금도 한국의 명문으로 꼽히고, 한국의 수많은 대학 중에서 상위권으로 꼽히는 곳 아닙니까. 입시생 시절에 원서를 냈고 붙게 해달라고 하늘에 빈 학교 중 하나였는걸요. 슬프게도 이 학교가 나를 부르는 일은 없었지만... 이건 그냥 넘어가야겠어요. 떠올리니 힘들었던 기억만 납니다.
지금의 위상도 이런데 이 시절에는 어땠을까요? 내가 이 시대 사람이었다면 여성에게도 교육의 문을 열어준 기관에서 배우고 싶다며 부모님을 괴롭혔겠죠. 예화도 같은 생각일까요? 정보량과 시대 차이가 있으니 정확히 짐작할 수는 없네요.
"진작 말해줬어야지! 나, 기다릴 줄 알아."
울음이 가득했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습니다.
"언니. 언니는 경성에 가봤어요?"
"네."
"이화학당도 혹시 가봤어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미 거짓말을 산더미처럼 했는데 이 정도는 해도 되겠죠? 이화여대 학생은 아니어도 안 가본 것은 아니니까.
"그곳에 계신 선생님들은 예화를 아껴줄거에요."
이화의 선생님들은 여학생들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이야기를 칼럼에서 읽었습니다. 분명 도움이 되어줄거예요. 학내 따돌림은 사람의 일이라 장담 못 하지만... 이화학당은 조선 여성들의 교육을 위해 설립된 학교입니다. 적어도 이 학교의 학생은 조선인이라는 핑계로 사람을 괴롭히지는 않겠죠.
"두 달이면 가는거야. 그렇지?"
"응. 두 달이야. 딱 두 달. 장미가 피면 경성으로 갈거야. 단풍이 들 때면 친구와 함께 웃고 있을 거야. 오빠가 약속할게."
아이가 행복하게 웃었습니다. 우리가 탄 차는 집에 도착했습니다.
"언니 언니. 선물 준다고 했었지?"
"잠깐만 기다려요. 방에 물건이 있어요."
예화는 방 앞까지 졸졸 따라왔습니다. 선우가 방 안으로는 들어가면 안 된다고 제지하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밖에서 보이지 않을만한 위치에서 가방을 뒤적였습니다. 찾았다. 내가 쓰려고 인터넷을 열심히 헤집고 다니며 찾은 물건이지만 예화에게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요. 핀을 싼 비닐은 뜯어내 가방에 밀어넣었습니다. 유선지 포장은 걷지 않은 채 들고나왔습니다.
"짠. 선물이에요."
"어떤 물건인지 저만 알고 있을게요!"
그러기에는 많이 예쁠걸? 예화가 유선지를 펼쳤습니다. 리본과 펜던트로 장식한 머리핀이 종이 속에서 나왔습니다.
"와!!"
예화가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선우가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것을 주셔도 됩니까? 부담되실 것 같은데..."
"비싼 물건 아니에요."
현대사회가 지금보다는 훨씬 풍요롭거든요. 최저시급에 맞먹는 물건이기는 해도... 이정도야. 내가 과외로 버는 돈이 얼마인데. 이런 일에 쓰는 돈을 아까워하는 건 안 될 일이지요.
"달아줄까요?"
"네! 맞다. 빗. 빗 필요해요!"
"들어와요. 내가 묶어줄게요."
아이를 방으로 데려와 빗 빗으로 머리를 정리해주었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머리카락을 아까처럼 땋아 정리하고 머리핀을 꽂아주었습니다. 아이는 기분이 좋은지 눈을 꼭 감고 싱글벙글 웃고 있었습니다.
"좋아. 거울 볼래요?"
"응!"
거울을 본 아이가 신나게 웃으며 나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언니, 정말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예화가 밖으로 나와 기사님과 선우에게 머리핀을 자랑했습니다.
"자. 예화야. 이제 부모님께도 보여드리러 가야지?"
"응응! 오빠랑 언니도 같이 가자!"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 서점 아저씨의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면전에서 볼 용기가 없으니 거절할게요.
"저는 할 일이 있어요."
"오빠랑 가자."
"응!"
선우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갔습니다.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았습니다. 이 시절의 상처 일부를 원치 않게 엿봤어요. 전부 이해하지도 못하고 일부는 짐작이었을 뿐인데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운이 쭉 빠지다니. 맞는 모습을 봤을 때는 나까지 아픈 기분이었습니다. 직접 맞은 당사자는 오죽했을까요. 아이의 기억에 이 시절은 상처로 남을 겁니다. 곱씹을 때마다 통증을 남기겠지요.
그래도 곁에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에요. 그마저도 없었다면...... 이 시절이 아이의 기억 속 날카로운 파편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제가 일어를 몰라 일본어는 번역기를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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